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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sepina Jul 23. 2021

뭐라도 쓴다고 뭐가 되겠냐만은

그래도 뭐라도

집필자 장애 : 글을 쓰는 사람들이 글 내용이나 소재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서 애를 먹는 상황으로, 글길 막힘이라고도 함.
집필자 장애 혹은 글길 막힘으로 번역되는 이 용어는 원래 직업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들이 새로운 작품을 쓸 능력을 상실한 상태를 일컫는다. 강도에 따라서 다양한 범주로 나타나는데, 잠시 글을 쓰기 힘든 경우도 있지만 몇 년 동안 집필활동을 하지 못할 정도로 심각한 경우도 있고, 그로 인해 아예 작가로서의 삶을 포기해 버리는 경우도 있다. 이 상황으로 고통을 받는 작가들은 자신의 작품에 대해 좋지 않게 보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로는 그 반대인 경우가 더 많다. 대부분의 작가가 집필자 장애를 경험하며, 그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다. 글을 쓰는 것에 대한 공포, 불안, 삶의 변화, 한 작품의 완결, 새로운 작품의 시작 등 다양하다. 원인이 무엇이든 글을 쓰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좌절을 느끼는 것이 공통적인 현상이다.
집필자 장애가 치료의 장에서 일어나게 되는 것은 내담자가 글을 쓰기 거부할 때 종종 볼 수 있다. 이는 작가들처럼 직업적인 문제와는 달리, 내면의 자아 검열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상에서도 시험이나 과제물만 앞에 두면 집필자 장애가 일어나는 사람들도 있다. 집필자 장애의 가장 큰 원인은 자기 방어적인 검열과 비판적 평가에 대한 두려움이다.

‘글쓰기 가이드(Fiction Writing Guide)’에서 지니 위 하트(Ginny Wiehardt)는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다음의 열 가지를 제시하였다.

첫째, 글쓰기 계획 세우기. 글을 쓸 시간을 정해 두고 집필자 장애가 있더라도 무시한 채 일단 쓰는 것이다.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아도 단어들을 나열하기만 하는 방법으로라도 일단 쓰는 행위를 한다.
둘째, 너무 무리하지 말기. 글을 쓰는 데만 지나치게 열중하지 말라는 것이다. 글을 쓸 수 없어서 집필자 장애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글을 잘 쓸 수 없을 거라는 절망 때문에 집필자 장애가 생기는 것이다. 따라서 비판적인 시각은 일단 접어 둔 채 그냥 쓴다. 그에 대한 평가를 하고 다듬는 것은 글을 쓴 이후 편집을 할 때 하면 된다.
셋째, 글을 쓰는 것을 작품을 만들어 내는 특별한 일로 생각하지 않기. 글 쓰는 것을 일상으로 생각하라는 것이다. 보통 노동과 마찬가지로 글을 쓰는 것도 하나의 일이다. 글을 쓸 때 사용하는 은유는 노동자나 기술자의 연장통 같은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앉아서 글을 쓰기가 더 쉬워진다.
넷째, 하나의 글을 끝내면 휴식시간 가지기. 집필자 장애는 아이디어가 다시 만들어지기 위해서 시간이 필요하다는 신호다. 창조적인 작업을 하는 데 게으름은 아주 중요한 요소다. 새 글을 다시 시작하기 전에 생활 속에서 스스로에게 시간을 좀 주고 독서나 다른 형태의 예술을 접하도록 해서 새로운 경험과 새로운 아이디어를 모을 수 있게 한다.
다섯째, 시간을 정해 두고 지키기. 자기 혼자서 글을 쓰기만 하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이다. 같이 글을 쓸 사람을 구해서 서로 시간을 정한 다음, 약속을 지켜 나가도록 한다. 물론 서로 비난은 금물이다. 누군가가 자신의 일에 대해서 알고, 그 글이 나오도록 기다리고 있으면 그 기대 때문에라도 글을 쓰는 작업에 박차를 가하게 된다. 집단으로 함께해도 좋다.
여섯째, 집필자 장애 뒤에 숨겨진 심리적 문제 찾기. 글이나 집필에 대한 자신의 불안에 대해서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친구나 동료와 이야기를 나누고, 집필자 장애를 다룬 도서를 읽어 보면서 자신의 집필자 장애에 대한 뿌리 깊은 원인을 탐색한다. 다른 작가들의 삶을 살펴보는 것도 자신의 장애 이유에 대한 통찰에 도움이 된다. 집필자 장애가 계속될 때는 상담을 받아 보는 것도 좋다.
일곱째, 한 번에 하나씩 하기보다는 두 가지 이상의 일을 걸쳐 두고 하기. 이 글을 쓰다가 좀 힘들어지면 다른 글을 써 보는 식으로 작업을 할 때 집필자 장애가 덜한 경우가 있다. 한 가지에 매달려서 생기는 지루함이나 두려움이 서로 다른 글을 쓰면서 해소될 수 있는 것이다.
여덟째, 쓰기 훈련하기. 쓰기 훈련을 많이 하면 아무래도 긴장이 풀어지고 여러 방식으로 글을 쓸 수 있게 된다.
아홉째, 글쓰기 공간 다시 살펴보기. 물리적 환경이 글쓰기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있다. 책상 배치나 자리, 글을 쓰다 차를 마시는 공간 등이 자신에게 편안하게 배치되어 있는지, 변화를 줄 필요는 없는지 다시 살펴본다.
열째, 처음 글을 쓰게 된 곳에서 자신이 왜 글을 쓰게 되었는지 기억하기. 자신이 쓰는 글과 글을 쓰는 이유를 돌아본다. 초심으로 돌아가 글을 쓰게 된 마음을 다시 기억해 내면 처음 글을 쓸 때의 동기나 기쁨 같은 것이 장애를 극복할 수 있게 해 준다.
 쓰기 작업과 관련된 치료에서는 지금까지 열거한 작가들에게 적용되는 방식과 유사한 검열 제거 및 두려움 완화를 통한 사전작업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저 열 가지 방법 중 첫 번째 방법에 작성된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아도 단어들만 나열'할 수준의 글에 명분을 주기 위해 그럴싸하게 지식백과를 인용하며 글을 시작했다. 사실은 아무 말이나 아무렇게 쓸 거다.

 글을 잘 못쓰겠다... 고 징징거린지도 1년이 넘어서 이젠 그런 말도 차마 할 수가 없다. 이쯤 되면 그냥 안 쓰고 싶은 거다. 할 말이 없는 거다. 아무 생각이 없는 거다.

 쓰는 문제로 그치면 다행이련만 요즘은 읽는 것도 영 별로다. 겨우 정해 놓은 '하루 30분 독서'만 근근이 이어나가고 있을 뿐 솔직히 요즘은 브런치 글도 예전만큼 잘 못 읽는다. 집중이 안 된다. 몇몇 작가님들 글만 겨우 따라잡고 있다.

 지난 여행기 매거진은 2012년에 멈춰 있다. 나 2013년부터는 일 년에 최소 3번은 출국했는데 이 상태로는 이번 생에 저 매거진은 다 못 쓴다. 매주 한 개씩 안 쓰면 통장에서 돈 빼간다고 하지 않는 한 다음 여행지 사이판으로 못 넘어갈 거 같다. 여행기 매거진만 구독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왠지 죄송하다. (아!? 그분들은 이 글 볼 일이 없겠구나?) 하필 또 왜 사이판 여행은 특별한 이슈가 없어서 뭘 쥐어짜려니까 안 나온다. 다 건너뛰고 2014년 연말 보라카이로 가서 태풍으로 비바람 맞으며 항구에서 몇 시간 배 대기하다가 하루 꼴딱 새고 다음날 공항에서 다시 12시간 노숙한 얘기를 쓸까 보다. 저처럼 코 앞 활주로에서 비행기 착륙하는 거 보신 분?!


  예전에 친했던 작가님 중에 내 글을 예뻐(?)해주셨던 분이 있었다. 그분은 매일 같이 성실히 글을 쓰고 글 내용도 한결같이 따뜻하고 아름(?)다워서 직접 뵙지 않았어도 그분의 성품을 짐작할 수 있었다.

 어느 날, 작가님이  글감이 떨어져서 글 쓰기 힘들다는 글을 쓰신 적 있다. 그러자  '작가님의 글이라면  오늘 드신 점심 메뉴로만 글 쓰셔도 좋아할 것이다.'라고 그분의 팬(?)이 댓글을 달았다. 그 말에 작가님은 매우 감동받으셨다. 그 기억을 소환해 지금 다시 쓰는 거 보니 나도 감동받았나 보다. 당시에는 누군가에게 그렇게 절대적인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작가님이 부럽고 샘도 났다.(알고 보면 질투의 화신. 그르릉 그르릉)

 사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 일 수 있는 건 그분의 글에는 그만큼 힘이 있었던 거니까. (정이정이님, 언젠가 꼭 브런치로 다시 복귀하셔서 이 글 봐줘용..ㅠ)

 그리고 또 하나. 당연한 얘기를 뻔하게 하자면 소재나 주제가 뭐가 됐든 간에 매일 꾸준하게 쓰신 덕에 글 근육이 단단하게 단련되어 있으셨던 거다.

 모두 다 아는 얘기지만 꾸준함과 지속성은 정말 중요하다. 나는 시작은 잘 못해도 한번 시작하면 꽤나 꾸준하게 하는 편이다. 3월에 시작한 영어 공부도 아직 단 하루도 빼먹지 않고 잘하고 있다.(실력과는 별개로) 그런데 이상하게 글 쓰는 것만큼은 그게 안 된다. 아마도 위에서 언급한 두 번째 내용, '글을 쓸 수 없어서 집필자 장애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글을 잘 쓸 수 없을 거라는 절망 때문에 집필자 장애가 생기는 것이다.'에 해당하는 것 같다.


 6월 한 달은 머리 아픈 일로 수면장애를 겪었다. 피곤해서 누웠는데 눕기만 하면  잠이 오지 않아 최애 연예인과 연애하는 공상도 하고 소용없는 거 알면서 양도 세어 봤지만 더 집중도가 높아져 오히려 정신이 말똥말똥 해졌다. 버전을 수정해 연예인 대상도 바꿔보고 양이 울타리를 넘어오는 장면을 순간 포착하는 디테일도 손을 봤지만 시계는 2시를 넘어가기 일쑤였다.

그럴만한 정당한 사유가 있었고 그래서 그때는 다른 모든 일들은 뒤로 미루어도 스스로에게 변명과 핑계를 댈 수 있었다. 일단락이 되면 정신 차릴 거야. 그럴 거야. 나를 다독였다.(평소엔 가혹하다가 이럴 때 갑자기 스스로에게 관대 해지는 이유는?)

 아니. 마무리가 되고 열흘도 지났지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 여전히 나는 나에게 관대한 중이다. 큰 스트레스는 해결되었는데 이번엔 무기력과 우울이 잠식하기 시작했다. 시간은 많아졌는데 왜 한가하지 않은 것인지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하루가 너무 빨리 흘러가서 마음이 조급하다. '내 너 이럴 줄 알았다' 또 스스로에게 쥐어박는 소리가 계속 튀어나온다.(다시 가혹 모드) 의지의 문제인지 마음의 문제인지 환경을 바꿔야 하는지 자극이 필요한 건지 도돌이표처럼 생각만 한다. 그래. 계속 생각만 한다. 몸은 안 움직이고 생각만 한다. 요즘 mbc 심야 괴담회를 즐겨보는데 생각 귀신이 붙은 것 같다고 사연 보내고 싶다. 심리적인 효과라도 있다면 걱정인형을 사볼까 생각했는데 그건 왠지 누가 사줬으면 좋겠지 내 돈 주고 사려니까 찌질하고 구슬퍼서 또 싫다. 그렇다. 이런 생각만 하다가 하루가 간다. 아...? 이래서 시간이 많아도 안 한가한 거구나?!


 애정 하는 작가님 중 한 분이 몇 달 전 카페를 내셨고 카페 운영기를 잔잔하게 연재(?)하고 계신다. 그동안은 팬의 입장에서 몰래몰래 조용히 글만 읽곤 했는데 요즘은 용기 내어 댓글도 종종 달고 그런다.(온라인에서도 낯가리는 나란 사람, 그런 사람) 나에겐 없는 강인함을 지니신 것으로 추정되는데  글은 또 굉장히 따뜻하고 유려해서 글로 사람을 매료시킨다는 건 이런 거구나 깨닫곤 한다.(물론 그러면서 또 샘을 내고 질투를 한다. 드릉드릉) 요즘 세상에 찾기 힘들 것 같은 이런 마인드로 운영하시는 카페는 어떤 모습일지, 그곳에 늘 계시다는 작가님을 사장님으로 만나면 어떨지 궁금해졌다. 실제로 브런치 작가님들이 다녀가셨다고 하길래 큰 맘먹고 찾아가도 되냐고 여쭈었고 흔쾌히 동의(?)및 주소를 받았다. 함께 갈 친구도 구해놨다. 혼자는 너무 떨리니깐. 낯선 모든 것에 필요 이상으로 긴장하는 나이지만 친구와 함께 차 한잔 하러 가는 정도면 오버스럽지도 않고 작가님께도 크게 부담드리지 않을 것 같아 괜찮을 것 같다. 사실 무엇보다 절망을 느끼지 않을 정도의 긍정적 충격과 건전한 자극이 필요해서였다. '와~! 이런 예쁜 곳에서 맛있는 커피 향 맡으시면서 글 쓰시는군요?(너무 바빠서 카페 계실 때는 못쓰실 것 같지만..) 너무 멋져요. 네네. 저도 정신 차릴게요.' 뭐 이런 자급자족식의 당근과 채찍? 꾸짖음과 다독임? 을 얻어오고 싶다고나 할까...

쓴소리 해줄 손님도 필요하다고 하셔서 손 들어 봄!
최종 방문 승인(!) 받음.

 여름 방학 생활계획표처럼 잔잔한 계획만 몇 개 세웠을 뿐인데 이마저도 하지 못하고 몇 달 뒤 나에게 '결국 아무것도 안 했다'란 질책을 하게 될까 봐 사실은 벌써 겁이 난다. 하지만 지금은 미래가 아닌 현재니 예단하기보단 움직여야 하고 우울과 무기력의 재발이라면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작은 것들을 해나갈 수밖에.

  쓸 말이 없고 할 말이 없으면 지금처럼 아무 말이라도 지껄여야지.

  나야말로 매일 점심 메뉴로 뭐라도 써볼까 했는데 생각해보면 아무 말 대잔치 소재는 많았다. 못? 안? 썼을 뿐.


1. 랜섬웨어 감염돼서 고이고이 모아둔 싸이월드 사진을 비롯, 회사 파일까지 건드려서 지옥문 앞까지 갔다 왔던 일.

2. 이 나이에 SM(네. 그 대형 기획사 SM이요.) 스토어에 강제 가입 했어야만(?)했던 일.

3. 약속 장소 먼저 도착하니 지인이 물건 미리 사달라고 돈 있냐고 물어보길래 보이스 피싱 신고한다고 엄포 놓은 일.

4. 말을 배우기 시작한 친구 딸이 아직 '예뻐'란 말을 모르는 줄 알았더니 알고 보니 엄마 빼고 다른 사람한테  "예뻐"라고 했다는 이야기에 리액션 못 찾아 허둥댔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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