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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도련 Jul 22. 2020

<기초 기프티콘 수급자>

해학은 가까이에 있어!


영국에는 J.K. 롤링이, 한국에는 박도현이 있다.
에든버러 카페 <엘리펀트 하우스>에서는 해리포터가 태어났다. 그리고 일산 <스타벅스>에서는 수많은 자소서가 태어난다. 그녀가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기 이전의 삶을 들은 적이 있다. 빈곤한 일상을 커피숍에서 보냈다는. 평범한 공간에서 환상을 꿈꾸었기에 J.K 롤링은 성공했다. 대학교 울타리를 졸업으로 벗어나 보니 나는 아무것도 아닌 게 되었다. 더 이상 인스타그램 해시태그에 '#미대생 #디대생 #홍대생' 할 수도 없다.

한 때 빨빨거리며 다니던 당찬 미대생은 이제 없다. 참으로 슬픈 소식이다. 하지만 어쩌겠나, 4년 다 가르쳤으니 학교가 나가란다. 그렇게 앞자리 전공과목을 돌려주고 나니 <생> 앞에 취준이 붙었다. 돈은 쪼들리고 불안은 때를 가리지 않고 엄습해온다. 취준생은 그런 것이었다. 좋아하는 것에 아끼지 않던 커다란 씀씀이를 줄여야 했다. 셋 모두 마음에 들면 삼총사를 다 손에 넣던 시절이 있는가 하면, 고민 끝에 셋 중 하나를 겨우 골라야 하는 요즘을 살고 있다.

남동생 표현으로는 꼴값, 엄마 표현으로는 외출하고자 하는 핑계. 이상하게 과제든 공부든 집에서는 잘 되지 않는다. 그래서 굳이 돈을 주고 커피를 사서 공간을 빌린다. 테이크 아웃을 하고 강의실로 올라가던 작년까지만 해도 4100원 커피 값은 매우 저렴했다. 심지어 내게 잘 오지 않던 '집중의 신'이 강림해 목이 타진 않을까 사이즈업을 해갔다. 그리고는 강의 내내 화장실을 갈망하는 바보짓을 반복했던 기억이.

4100원, 일명 <자릿세>는 꽤 혜택이 많다. 이를테면, 에어컨 바람에 추위를 느껴 부르르 떨 권리를 준다. 더불어, 조금 있어 보이는 말로 백색소음을 제공받을 권리. 그리고 운이 좋다면 옆사람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아도 될 전력공급의 권리도 함께. 콘센트 전쟁은 항상 피곤하니까. 아메리카노 톨 사이즈에는 이렇게 많은 권리가 녹아있다. 그렇다고 힘껏 빨아버리면 다음번까지 얼음이 녹기를 기다려야 한다. 기다림마저 포기한다면 나중은 커피 맛이 싹 달아난 생수를 마셔야 한다.

진정으로 늘어놓고자 하는 건 사실 이게 아니다. 아끼고 아껴, 또 아낀 한 잔은 어차피 내 돈이기에 아깝다. 주는 권리가 저렇게 많은데도 말이다. 약 20일 전의 이야기이긴 하다. 지금은 내 타이틀은 <빈곤한 취준생>이 아니다. 그 대신 <기초 기프티콘 수급자>이다. 못 들어보았다며 트렌드에 뒤처진 게 아닌가 자책하지 말기를. 내가 만든 말이니까.

지금 날짜로부터 19일 전은 바로 내 생일이었다. 올해 생일 말고도 매년 7월 3일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고 있다. (자랑하려 한건 아닌데) 30개가 족히 넘는 배달된 선물. 그리고 10개 조금 넘는 식음료 기프티콘. 찌그러진 취준생을 어디선가 기억하고 보내준 사랑이다.

자, 선물 자랑은 뒤로 하고 본론이자 결론. 열몇 개의 기프티콘은 현재 내 삶의 질을 확 높여주고 있다. 권리를 꽉꽉 눌러 담은 쿠폰으로 당당히 착석한다. 지갑 없이 빈손으로 가는 스타벅스, 짜릿하다. 주문 중에 그란데와 톨 사이에서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지 않아도 된다. 어쩜 내 지인들은 이리 정이 넘치는지, 모두 세트메뉴이다. 덕분에 컵 크기를 늘리고 얼음 눈치를 봐가며 빨대를 놓지 않아도 된다. 생일로부터 일곱. 여덟 번의 스타벅스행이 즐거웠던 이유이다. 문제는 반토막이 난 남은 기프티콘 그리고 다시 토막이 날 나의 잔고.

이런 사태에 어떻게 '물이 반 밖에'를 '물이 반이나 남았네~!' 할 수 있겠는가. 긍정적인 사고도 기프티콘 앞에서 막히고야 만다. 구석 자리에 앉아 혼자만 아는 안타까움에 사로잡힌 찰나. 고등학교 동창이 옆으로 와 앉는다. 워낙 편하게 지내는 사이기에 내가 <기초 기프티콘 수급자>라는 걸 밝혔다. 내 말을 듣더니 아까 도도하게 앉던 숙대생은 어디에도 없게 되었다. 박장대소를 하고는 "네가 <기초 기프티콘 수급자> 임을 세상에 알려야 한다."며 멋진 워딩이라고 했다.

정말 그럴까? 아직 생각 중에 있다. 다만 이것이 나만의 해학임은 분명하다. 스크루지 영감을 자처할 수밖에 없는 취준생이기에 더더욱.

"나는 빈곤하지만 웃픈 삶을 이어가고 있는 <기초 기프티콘 수급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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