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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도련 Sep 11. 2020

불호에 대한 감상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감상을 이 한 문장으로 표현하고 싶다.


‘액션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재밌는 액션 영화.’

나는 액션 기피증으로 보일만큼 장르가 그렇다면 무조건 '싫다, 안 본다.’를 남발한다. 그런 내가 총소리를 투 두두 듣고 약간 주황빛이 도는 영화 속 핏물을 볼 경우는 하나다. 모든 게 정반대인 엄마가 액션을 좋아하기 때문에 나란히 앉아 보는 경우.

사실 이 영화는 재미있게 보았다. 그래서 적는다. 내가 불호하는 카테고리에 대해 모순되지만 좋았던 점을.
 
나름 '때리고 부수고 죽이고’의 동기가 절절했던 이유. 핏줄이 당긴다는 것은 뭘까. 해본 적 없던 생각도 들게 하고 무엇보다 배우 황정민의 캐릭터가 매력적이었다. 보통 칼잡이들은 쓸데없는 가오가 너무 많다. 어차피 죽일 거면서 이리저리 왔다 갔다, 겁을 주는 모양새. 꼴불견이다. 그들에 반해, 황정민은 영화에서 참 <담백하게> 죽인다. 살인을 뜻하는 동사 앞에 이런 수식이 붙어도 되나, 고민했다. 그런데 이 말을 대신할 적합한 것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는 ‘묻는 말에 대답.’ 혹은 ‘여기서 나가야 돼.’ 등 짧고 명료한 요구에 불이행 시 해하거나 죽였다. 동기는 모두 존재조차 모르던 딸에게 가기 위해. 살인 동기에 부성애가 한껏 녹아있어서 특별하다거나 정당할 순 없지만. 그렇다고 비열해 보이진 않다.
 
아빠의 저녁밥상을 차리기 위해 그릇을 나를 때. 밥과 국, 수가지의 반찬이 모두 올려진 후, 엄마는 내가 놓은 것을 다시 배치한다. 나에게 미대 나온 것 맞냐며 식탁 레이아웃 수정에 돌입하곤 한다. 그렇게 대공사를 마친 다음에야 아빠는 숟가락을 들 수 있다. 그렇다. 전공한 과목에 따라 주어지는 기대에 약간 못 미치는 사람이다. 둔감하다.


그렇지만 둔감한 미대 졸업자가 보기에도 영화는 풍부한 영상미를 가진다. 일본에서는 청량하고 푸른빛의 화면. 방콕에서는 내리쬐는 햇볕을 그대로 얹어 놓았다. 샛노랗고 채도 높은 이미지. 만약 이 작품 속 공간이 한국에만 머물렀다면, 아마 회색빛이 감도는 어둑한 ‘보통 액션’이 되었을 것. 공간의 변화에 맞추어 올린 디테일이 감명 깊다.
 
자, 이제 액알못의 눈에도 상당히 별로였던 점을 나열해본다. 이정재, 처음엔 흥미로운 인물로 등장한다. 문제는 갈수록 <캐릭터 비약>이 심하다. 그의 대사처럼 ‘왜 황정민을 쫓아 죽이려 하는가.’에 대한 타당함을 모르겠다. 초반에 그는 형의 장례식에도 별 슬픈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가족을 죽인 대가, 불타는 복수심이 어디에도 없다. 그저 스토리가 굴러가기 위해 억지로 만든 악당. 딱 거기까지다.


아마 영화를 보던 관람자라면 공감할 부분이기도 하다. 중후반쯤 가다 보면 이유 불문하고 황정민을 응원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찰나마다 나타나는 이정재의 존재는 극성맞은 방해꾼으로 그친다. 일본에서 자란 교포,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 어찌 보면 징그럽게 악한. 그런 연기를 이정재는 잘해주었다. 다만, 생생한 특징을 가진 캐릭터가 움직임에 뜻이 적다. 이것이 내가 이 영화에 가장 크게 느낀 실망감이다.
 
사람들은 앞과 뒤에 권선징악을 두었다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좋다. 인상 깊다.’하진 않는다. 그것이 타당하고 좀 더 넓은 범주로 와 닿게 하려는 판로를 잘 짜야한다. 기승전결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캐릭터가 견고할수록 작동이 쉬운 것처럼. 따라서, 스릴을 위해 일부를 크게 줄여버리는 실수는 감상에 물음표를 띄우게 한다.
 
성공적이었다. 액션 장르에 치를 떠는 나에게 지루함을 남기지 않았으니. 사실 영화 감상을 제대로 정리해본 게 손에 꼽는다. 영화관을 나오거나 재생 화면을 닫음과 함께 감상을 공중에 날려버리곤 했다. 그러나 조금 적어보는 이유는 가장 친한 대학 동기가 먼저 자신의 감상을 말하며 내 것도 궁금해해 주었기 때문이다. 덕분이라고 말하고 싶다, 적어 내려 가며 알게 된 게 많다. 내가 이렇게 100 분하고 조금 더 되는 작품에서 광대한 걸 뽑아내며 읽을 줄도 아는구나, 놀랐다.

추가적으로, 배우 박정민이 배역을 위해 체중감량을 했다는 말도 들었다. 대체 그의 연기 스펙트럼은 어디까지인가 감탄했다. 러닝타임 대부분 '때리고 부수고 죽이고'가 반복될 때. 반복과 반복 틈에서 열심히 발휘하는 끼. 추임새라고 하기엔 박정민의 끼는 덩치가 컸다. 물론, 긍정적인 의미로.

시작과 끝은 굵고 단단하지만 촘촘할 필요는 매우 있다. 좀 더 관람자에게 '친절히 설명해주어야 할' 액션 영화다. 그 부분은 황금 주연 명품 연기로 지울 수 없는 물음이 되겠다.


글 초반 부에 '액션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라고 쓰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나와 함께 영화관을 들어갈 일이 드문 '액션 추종자' 지인들은 하나같이 혹평을 쏟았다. 이런게 아쉽고 저런게 아쉽고 하면서 말이다. 극호 장르에 느낀 불호와 불호 장르에 느낀 극호라. 오묘한 교차가 일렁인다. 다만, 우리를 통상에서 구했노라, 한다.


아무튼 다악구, 감상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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