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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도련 Nov 15. 2020

장어 버스

믿음 속에 피어난 의심



우리 엄마 선영은 상당히 서툰 엄마였다. 과거형으로 끝내는 것이 맞나, 머뭇거린다. 근래에는 서툴지 않으니 맞다. 친구 같은 엄마여서 부럽다는 말을 듣는다. 그러나 나는 그녀의 첫 아이다. 살면서 처음 잉태한 생명이다. 몸 일부분이 밖으로 나온 첫 사례이기도 하다. 처음은 매끄럽기 어렵다. 불가피하게 생긴 굴곡은 가파랐다. 그걸 하나씩 넘으며 상처를 줍곤 했다.

선영은 딸을 믿는다면서 믿지 않았다. 이를테면, 어린이 논술 선생님이 내 사고력을 칭찬하면 칭찬했다. 그런데 다른 아이를 칭찬하면 내것은 어딘가로 곤두박질쳤다. 그리고 더는 칭찬해주지 않았다.  

엄마 선영은 첫 애 손을 잡고 그리기 대회로 향한다. 출품작엔 꼭 <상상화> 조건이 붙는다. 지금 떠올리면 날치기 현장이다. 때 묻지 않은 머리의 노동을 날로 먹기 참 좋았다. 그래도 메달을 목에 걸어주면 누구든 야호! 했다.


- 미래 자동차는 어떤 모습일까요?


선영과 어느 보도블록에 앉았다. 받아온 8절지를 넙적한 미술 가방 위에 깔아준다. 그리곤 재빠르게 "뭐 그릴 거야?" 한다. 어떤 모습일지 더 생각해야 하는데. 딸의 그림실력을 믿는 보호자는 참지 못한다.

"하늘을 나는 건 어때? 날개 같은 걸 달아서.. 아니면 또 뭐가 있니. 우주? 우주를 그려야 하나?"

때때로 어른의 동심은 진짜 동심을 방해한다. 전략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어린애가 전략적이기엔 역부족이다. 18년 전 심사위원도 그런 역부족을 모를 리 없었다. 결국 선영의 아이디네이션을 무시하고 그리기 시작한다.

바닷속을 달리는 물고기 자동차. 달릴 때마다 공기방울을 무수히 만든다. 그것에 탄 사람들은 기쁜 표정이다. 사방에 돌에 낀 미역도 그린다. 아스팔트 위나 수중이나 지나치는 것을 보는 재미는 필수였다. 곧 모든 탈것의 의무라고 여겼나 보다.

우리 집에서 죽어 나간 몇십 마리 금붕어를 생각했다. 이상하게도 사 오자마자 배부터 둥둥 떴다. 아빠는 건져서 변기에 내리는 것도 일이라고 했다.

안타까워 멀찍이서 변기의 쿠구구- 소릴 듣는다. 마트 상인이 병든 것을 판 사정이었겠지만. 나는 내 탓 같았다. 그래서 죽어서는 안 죽는 차가 되렴, 했다. 뭐, 금붕어는 바다에 살지 않는다. 동심이란 무식한 구석을 꽤 가진다.

턱을 괸 채 바라보던 선영이 어디론가 간다. 맞은편 벤치다. 거기는 20년 지기가 있었다. 걔랑 대회도 세트라면 세트로 참가하곤 했다. 엄마는 허리를 굽혀 걔 그림을 보는 듯했다. 아줌마랑 대화를 끝낸 후 다시 내 쪽으로 왔다.

돌아온 선영은 뭔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말이 없다. 그러거나 말거나. 한창 물살을 가르는 내 금붕어에 취해 있을 때였다.

"아까 지나가는 사람들이 재승이 그림 칭찬했다더라. 쟤는 장어 버스도 그렸어. 길어가지고 사람들 다 타게."

가슴에서 둔탁한 소리가 났다. 장롱 위 물건을 꺼내다 바닥에 떨어뜨린 것처럼 컸다. 일곱 살 동갑내기가 똑같은 생각을 하다니. 쟤도 바다라니. 미웠다. 다섯 살 이래, 두고두고 잊힐 수 없는 충돌이다.

갑자기 금붕어 차가 형편없어 보였다. 시야가 뿌연 층으로 덮였다. 붓을 몇 번 더 움직이고 선영에게 도화지를 줬다.


"어머니가 미래의 홍대생을 못 알아보셨네. 상도 너만 탔잖아."



재작년 20년 지기의 목소리다. 마주 보고 앉은 술상에서 기어이 꺼낸 것이다. 일곱 살 얼굴을 하고서. 걔는 금붕어는 어떻고, 장어면 어떻니. 늦었으니 집에 가자고 했다.

그건 선영도 마찬가지였다. 어머? 그랬나, 난 우리 딸이 받을 줄 알았는데~ 하곤 앨범을 넘긴다. 눈을 흘기는 내게 시상식 끝나고 본 모터쇼 기억나냐며 묻는다.

그렇게 내 금붕어는 또 한 번 쿠구구- 쓸려갔다.

'나도 장어 버스를 그려야 하나.'

유치원생 머리에 스스로를 의심하는 물음만 가득 찬 날. 그래서 잊을 수 없다. 사실 그날은, 내 인생 가장 멋진 금붕어를 그린 날인데도 말이다.




쿠구구-

그때 그 금붕어는 어디로 갔을까. 탁 트인 바다를 헤엄치고 있을까. 아마 그렇다면 돌에 낀 미역이 너풀거리는 바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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