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 속에 피어난 의심
우리 엄마 선영은 상당히 서툰 엄마였다. 과거형으로 끝내는 것이 맞나, 머뭇거린다. 근래에는 서툴지 않으니 맞다. 친구 같은 엄마여서 부럽다는 말을 듣는다. 그러나 나는 그녀의 첫 아이다. 살면서 처음 잉태한 생명이다. 몸 일부분이 밖으로 나온 첫 사례이기도 하다. 처음은 매끄럽기 어렵다. 불가피하게 생긴 굴곡은 가파랐다. 그걸 하나씩 넘으며 상처를 줍곤 했다.
선영은 딸을 믿는다면서 믿지 않았다. 이를테면, 어린이 논술 선생님이 내 사고력을 칭찬하면 칭찬했다. 그런데 다른 아이를 칭찬하면 내것은 어딘가로 곤두박질쳤다. 그리고 더는 칭찬해주지 않았다.
엄마 선영은 첫 애 손을 잡고 그리기 대회로 향한다. 출품작엔 꼭 <상상화> 조건이 붙는다. 지금 떠올리면 날치기 현장이다. 때 묻지 않은 머리의 노동을 날로 먹기 참 좋았다. 그래도 메달을 목에 걸어주면 누구든 야호! 했다.
- 미래 자동차는 어떤 모습일까요?
선영과 어느 보도블록에 앉았다. 받아온 8절지를 넙적한 미술 가방 위에 깔아준다. 그리곤 재빠르게 "뭐 그릴 거야?" 한다. 어떤 모습일지 더 생각해야 하는데. 딸의 그림실력을 믿는 보호자는 참지 못한다.
"하늘을 나는 건 어때? 날개 같은 걸 달아서.. 아니면 또 뭐가 있니. 우주? 우주를 그려야 하나?"
때때로 어른의 동심은 진짜 동심을 방해한다. 전략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어린애가 전략적이기엔 역부족이다. 18년 전 심사위원도 그런 역부족을 모를 리 없었다. 결국 선영의 아이디네이션을 무시하고 그리기 시작한다.
바닷속을 달리는 물고기 자동차. 달릴 때마다 공기방울을 무수히 만든다. 그것에 탄 사람들은 기쁜 표정이다. 사방에 돌에 낀 미역도 그린다. 아스팔트 위나 수중이나 지나치는 것을 보는 재미는 필수였다. 곧 모든 탈것의 의무라고 여겼나 보다.
우리 집에서 죽어 나간 몇십 마리 금붕어를 생각했다. 이상하게도 사 오자마자 배부터 둥둥 떴다. 아빠는 건져서 변기에 내리는 것도 일이라고 했다.
안타까워 멀찍이서 변기의 쿠구구- 소릴 듣는다. 마트 상인이 병든 것을 판 사정이었겠지만. 나는 내 탓 같았다. 그래서 죽어서는 안 죽는 차가 되렴, 했다. 뭐, 금붕어는 바다에 살지 않는다. 동심이란 무식한 구석을 꽤 가진다.
턱을 괸 채 바라보던 선영이 어디론가 간다. 맞은편 벤치다. 거기는 20년 지기가 있었다. 걔랑 대회도 세트라면 세트로 참가하곤 했다. 엄마는 허리를 굽혀 걔 그림을 보는 듯했다. 아줌마랑 대화를 끝낸 후 다시 내 쪽으로 왔다.
돌아온 선영은 뭔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말이 없다. 그러거나 말거나. 한창 물살을 가르는 내 금붕어에 취해 있을 때였다.
"아까 지나가는 사람들이 재승이 그림 칭찬했다더라. 쟤는 장어 버스도 그렸어. 길어가지고 사람들 다 타게."
가슴에서 둔탁한 소리가 났다. 장롱 위 물건을 꺼내다 바닥에 떨어뜨린 것처럼 컸다. 일곱 살 동갑내기가 똑같은 생각을 하다니. 쟤도 바다라니. 미웠다. 다섯 살 이래, 두고두고 잊힐 수 없는 충돌이다.
갑자기 금붕어 차가 형편없어 보였다. 시야가 뿌연 층으로 덮였다. 붓을 몇 번 더 움직이고 선영에게 도화지를 줬다.
"어머니가 미래의 홍대생을 못 알아보셨네. 상도 너만 탔잖아."
재작년 20년 지기의 목소리다. 마주 보고 앉은 술상에서 기어이 꺼낸 것이다. 일곱 살 얼굴을 하고서. 걔는 금붕어는 어떻고, 장어면 어떻니. 늦었으니 집에 가자고 했다.
그건 선영도 마찬가지였다. 어머? 그랬나, 난 우리 딸이 받을 줄 알았는데~ 하곤 앨범을 넘긴다. 눈을 흘기는 내게 시상식 끝나고 본 모터쇼 기억나냐며 묻는다.
그렇게 내 금붕어는 또 한 번 쿠구구- 쓸려갔다.
'나도 장어 버스를 그려야 하나.'
유치원생 머리에 스스로를 의심하는 물음만 가득 찬 날. 그래서 잊을 수 없다. 사실 그날은, 내 인생 가장 멋진 금붕어를 그린 날인데도 말이다.
쿠구구-
그때 그 금붕어는 어디로 갔을까. 탁 트인 바다를 헤엄치고 있을까. 아마 그렇다면 돌에 낀 미역이 너풀거리는 바다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