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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어지는 사람을 그대로 두면 목에서 의자 끄는 소리가 난다. 끅 했다가, 끅 - 또 끅, 한다. 어느 땐 이런 소리가 주책맞아서 힘을 뺀 주먹으로 머리를 두드린다. 그러다 보면 꼴사납다.
스물을 앞에 단 언제나 <주책맞은 이별>을 한다. 그건 형태가 다 달랐다. 가슴에 번지는 뜨끈함을 모른 척 밥집으로 향하기도 하고. 동생 방에서 전화를 움켜잡고 울기도 했다. 아주 최근에는 숨이 넘어가려다 우연히 마주친 차장님 앞에 그대로 굳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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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기계이고 싶다. 기계라 불리는 친구들은 헤어진 직후 흔적을 곧바로 정리하거나 나와의 이별에서도 ‘일해야 해.’ 했다. 그들은 미운 존재보다도 존경할 존재다. 얼마나 존경하느냐면, 따라 하려다 벽을 만나면 의자 소리를 한 세배로 내게 된다.
일단 그런 날은 앉아 있어 본다. 어지러워도 밥을 먹고, 핸드폰은 최대한 멀리. 그러면 하루가 간다. 학생 때는 이랬던 것 같다. 그렇게 몇주를 보내다 보면 으쓱해지는 날도 온다. 같이 수업 듣던 동기에게 ‘나 그래도 빨리 잊은 것 같지 않아? 다 컸나 봐.’ 하면 걘 웃는다. 어깨를 세게 밀고 ‘퍽이나.’ 하면서.
첫사랑과 헤어진 날, 조 과제가 있었다. 내 눈을 필요로 하는 것들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고 그의 페이스북을 몇 분에 한번 새로고침 했다. 그러다 자리만 지키던 조원은 이내 눈물을 줄줄 흘리고 만다. 콧물 삼키는 소리에 누군가 일어났다. 교수님께 성의는 이쯤이면 보인 것 같으니까 밥이나 먹으러 가자고 했다.
"걔도 이런 거 참 좋아하는데.."
내 말에 다 같이 아! 소리를 내며 몸을 젖힌다. 먹구름은 밥집까지 따라온다. 아까 그 ‘퍽이나’ 속에 그 밥집의 소시지 볶음이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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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은 바보짓도 해봤다. 마지막 통보에 뭔가를 빼먹고 싶지 않아서,라고 해두자. 핸드폰 메모장에 꼭 해야 할 말을 적고 읊었다. 아마 그때 걔는 알았는지도 모른다. ‘너무하다 생각하지 않니.’를 ‘너무 않지 않았니.’로 적어 그대로 발음한데 이어서, 음절에 띄움이 부족한 것을. 스피커폰으로 이별한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매우 우스꽝스러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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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리고 최근에는. 제일 못하는 것을 제일 못하게 해야 했다. 마트에서 엄마 모습이 진열장에 가리기라도 하면 울었다. 어디 있느냐고 고래고래 찾는다. 몇 분 후, 눈물로 매끈한 내 뺨에 엄마는 이마를 짚는다. 나는 누가 나를 두고 가버리는 것도, 내가 두고 가버리는 것도 싫어한다. 그래서 탁탁탁, 온 힘으로 쫓거나 자꾸만 뒤를 돈다. 하다못해 같은 지하철을 탄 상사가 먼저 내리자, 그가 내리기 직전까지 눈을 마주쳐 인사하는 강박도 지녔다.
참 사람을 그냥 두고 보내기 어렵다. 항상 이물감이 느껴진다. 누군가와 멀어지면. 물어뜯는 손톱에 덜렁거리는 쪼가리가 생긴다든지, 속눈썹이 눈앞에 돌아다닌다든지. 그런 이물감. 잡아다 떼어버리면 피가 나고 무리해 집어내면 벌겋게 될 것을, 그래서 그냥 둔다. 아직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나와야 하는 이물감은 정말 참을게 못됐다.
어린이날 3만 원이 넘는 건 ‘도로 갖다 놔.’에 맞춰 두고 와야 하는. 딱 그런 것이다. 마지막이니까 제대로 담자고, 마음먹고 쳐다본 얼굴은 잘생겼다. 이게 이 순간 들 생각인가. 드라마를 봐도 ‘먼저 일어날게.’에선 쿨함을 전혀 못 느끼는데. 그렇게 제일 못하는 걸 어렵게 해냈다. 내 등에 대고 무어라 했을까. 아무도 모르는 걸 집가는 길에 울면서 생각한다.
내 주책은 서른이어도 계속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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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고. 이별 회고. 쓸데없지만 쓸게 있는 것.
적다 보니 의자 소리가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