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장면 손녀

명필 할아버지를 그리워하며

by 박도련

작년 이맘때쯤 나는 상복을 입었다. 성인이 되고 첫 장례를 치르는지라 알아갈 게 산더미였다. 할아버지는 우리 곁을 떠날 듯 말 듯 두어 달 하시고 가셨다. 유품만큼 마음을 정리할 틈도 주지 않고 장례는 끝났다.


할아버지는 그렇게 다정한 사람은 아니었다. 할머니처럼 '우리 강아지.'하고 불러주지도 않았다. 소파에 딱딱한 자세로 몸을 구겨 넣곤 '공부는 잘했어?' 물을 뿐이었다.


대학 때 우연한 솜씨로 상을 탔다. 당시 거금으로 다가온 상금 50만 원을 어디에 쓸지 꽤 오래 고민했다. 그러다 일부를 할아버지께 보내드리면 어떠니? 했던 엄마의 제안에 응했다. 그는 친구들과 짜장면집 가는 것을 즐겼다. 꼭 좋은 날이 아니어도 짜장면이 좋은 날로 만들어준다고 자주 가셨다. 내 상금은 그렇게 할아버지의 짜장면값으로 쓰였다.


그걸 잊어갈 즈음 아침에 전화 한 통이 왔다. 할아버지였다.


"장한 일로 용돈을, 네가 이렇게.. 잘 먹었다. 방학은 언제 하냐?"


이미 방학 중이었지만 말하면 얼른 내려와라 하실게 뻔해 아직이라고 했다. 이후로도 뜬금없는 전화는 계속됐다. 취업한 지 1년은 족히 지났음에도 그는 내가 보고 싶으면 방학은 언제 하냐?, 했다. "회사는 그렇게 긴 방학이 없다니까!" 짜증을 냈지만 곧 보고 싶다는 신호임을 알아차렸다. 사실 자체 방학인 연차엔 남자 친구와 이곳저곳을 놀러 다니느라 바빴다. 더 이상 못 듣게 될 줄 알았다면 그 방학을 할아버지께 낼걸, 후회도 한다.


그 주말도 남자친구와 원 없이 놀아보자,를 실행 중이었다. 병원에서 '할아버지가 오늘, 내일'이란 말을 꺼냈다. 급히 올라탄 기차에서 나는 끝까지 철없었다. 그의 상태보단 남자친구와 못다 한 이야기에 아쉬움이 몰려왔으니까. 의사 말대로 그날 병실을 나서며 했던 '또 올게.'는 지켜질 수 없었다.


장례를 다 치르고 할아버지 번호를 눌렀다. 가시기 전 숙제처럼 했던 통화 기록을 보며 울었다. 죄다 수신인 것도 이유였다. 병이 심해지자 그는 당신이 건 전화에 '왜 전화했냐?'라고 물었다. 노인의 기기 오작동이라고 별 대수롭지 않게 여기다가, 몇 초 후 다시 온 전화에 같은 말씀을 하시는 걸 듣고는 그게 아닌 걸 직감했다.


이제 나는 뜬금없는 전화를 받을 수도, 기다릴 수도 없다. 딱딱한 자세도 볼 수 없다. 다만, 어딘가에서 짜장면을 드시고 계실 거라 마음대로 생각한다. 그를 따라오게 된 친구들을 맞이하며 그릇을 내어주시면서.


'내 손녀, 갸가 상을 타선.. 나 먹으라구 돈을 줬네.' 이런 말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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