잽싸게 2층으로 올라가 구석 자리 좋은 몫을 골랐다. 다행히 점심 손님들은 1층에서 간단히 마시고 가는지 2층은 여유롭다. 창가를 바라보며 사색을 즐기는 척, 온갖 고상한 척을 해본다. 그러다 급하게 음료를 받으러 간다.
“주차는 어떻게 돼요?”
“1만 원은 이용 시 1시간, 2만 원 이상은 2시간입니다.”
“그래 길 건너 앞에 주차하고 온 나 너무 칭찬해 너무 잘했어.”
가끔 쿠폰이 들어오면 미루다 날려먹거나, 딸과 함께 케이크를 먹으며 데이트를 즐겼던 것이 전부였다. 스타벅스에서 노트북을 두드리며 공부하는 사람들을 겉 멋든 사람이라 생각했다. 카페에서 공부라고는 해본 적 없는 아줌마가 촌티 팍팍 내며 온전한 시간을 누린다며 나름 철저하게 계획하고 뚜벅뚜벅 걸어온 내 모습을 보며 피식 웃어본다. 웃기기도 하고 나름 멋지다 생각 들며 자랑스럽기도 했다. 혼자 자뻑에 빠져 그 자체로 흐뭇하다. 스타벅스 맞은편 국밥집에 주차했다. 그리고 책 보따리를 들은 가방을 움켜쥐고 막 바뀐 횡단보도를 뛰어 온건 비밀이다. 점심시간이라 매장 안은 주문하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은근히 긴장되고 설레지만 태연한 척 주문한다.
‘좀 창피한데 모자라도 쓰고 올걸’
‘핸드폰 배터리가 48%, 아놔, 충전기’
맘 같아서 빨리 집에 가서 충전기를 갖고 오고 싶지만, 왕복 8차선 횡단보도를 걸어 국밥집으로 걸어갈 자신이 없다. 범죄를 지르는 것 같은 소심한 아줌마는 핸드폰을 포기한다. 자몽허니블랙티를 우아하게 한 모금 마시니 세상 다 가진 여자 같았다. 이 순간은 무엇 하나 부러운 것이 없었다. 이게 뭐라고 이러는지, 헛웃음만 새어 나왔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교육서와 육아서를 읽고 있었다. 도대체 얼마나 더 읽어야 육아, 교육을 잘하는 엄마가 될 수 있는지 머리와 행동이 하나가 되는 그 시점이 나에게 올지 미지수다. 그래도 육아서 덕분에 책 읽는 엄마가 되었다. 책을 한참 몰입하여 읽는 중, 남자 두 분이 들어와 상사 이야기를 꺼내며 가장으로서 무거운 어깨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외나무다리에 서있는 듯한 남자들의 대화를 엿듣게 되었다. 순간 남편의 모습이 살짝 스쳐 지나가기도 했지만 내가 멋진 여자가 되어 호강시켜 주겠다는 굳은 다짐을 하며 다시 책에 몰입해 본다.
역시 돈이 좋지 않던가! 집에서 읽는 것보다 책장이 잘 넘어갔다. 어느새 한 시간 두 시간이 지나고 시끌벅적해 힐끔 쳐다보았더니 내 나이 또래쯤 되는 40대 무적파워 특공대 아줌마 무리였다. 잔뜩 상기된 목소리로 하하 호호 2층 홀을 휘어잡아 대실이라도 한 줄 알았다. 사실 지인들과 만나 이야기를 할 때면 다른 테이블 생각 없이 심취되어 한껏 떠들어 속을 풀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뿐 피해자가 되니 상대가 몰상식한 것 같고 깝깝한 심정이었다. 키즈존이 아니라 줌마존이 있어야 할 듯했다. 그래서 배터리고 없어 켜지도 못한 이어폰을 귀에 쿠욱 찔러댔다.
책을 다시 잡으며 뒷길이 훤히 보여 차가 지나가는 통창을 바라보다, 햇볕에 눈 한번 찔끔 감아보기도 하며 뮤직비디오 주인공인 줄 급하게 책을 마무리하고 새 책을 잡았다. 굳이 가방에 넣으면 될 것을 '나 책 읽는 여자야' 하며 번듯하게 테이블 위에 책을 나열해 놓았다. 다 식어버려 아이스 자몽허니블랙티가 되어버렸지만, 이것 또한 내가 열심히 한 흔적이라는 생각에 자아도취를 하고는 다른 음료를 한 잔 더 시킬까 생각도 해보지만, 이거라도 아끼자는 아줌마 정신이 이럴 때 튀어나온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내가 당당하게 주차장에 주차했지 '
악뮤의 이찬혁, 이수현의 성장기를 읽으며 개성 강하고 자기주장이 뚜렷한 이찬혁이 당당한 뮤지션, 작곡작사가이기에 박수를 보내고 사춘기 시절 또한 편을 들어주지만 정작 내 아이가 그렇다면 어땠을까 생각을 해본다. 그러지 못하기에 악뮤가 될 수 없다는 단정을 짓고, 자유를 존중하고 믿고 기다려줄 수 있는 부모가 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을 감출 수 없다. 옆테이블 대학생으로 보이는 여성이 노트북을 두드리며 베이글을 먹는 모습은 왠지 지적여 보여 눈길이 간다. 나도 저러고 싶었는데 부러우면 지는 거라던가? 난 이미 패배자였다.
나 혼자 온전히 책을 읽으며 사색을 즐기는 시간 왠지 뿌듯하고 감격스럽다. 내가 얼마 만에 나를 위해 이런 시간, 이런 환경을 누려봤단 말인가? 고작 차와 케이크값 10,200원에 누구 엄마, 누구 아내가 아닌 나 자신을 찾아보게 되었다. 그것도 주차비 몇 푼이 아까워 공터에 주차를 한 것이다. 아껴야 하고 살림, 육아를 잘해야 하지만 내가 가정을 지키고, 아이들을 잘 이끌고, 가정의 평화와 행복을 위해서는 때론 어떤 방해도 아닌 나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그리고 결심한다 매주 금요일은 스타벅스로 향하겠다고,
이제 돌아갈 시간, 알람이 울린다. 다행히 아직 스타벅스 쿠폰이 2개가 있다. 좀 더 당당하게 모자를 쓰고 100% 충전한 핸드폰과 충전기, 그리고 노트북까지 들고 와서 베이글까지 먹으며 제대로 즐겨보자. 그땐 육아, 교육서가 아닌 자기 계발책을 들고서
우아하고 고상하게
온전한 나만의 시간을 위해
사람들을 통해 영감을 얻고, 정보를 통해 아이디어를 구하며, 연습을 통해 실력이 향상된다. 하지만 현 상황을 파악하고 새로운 발견을 이끌어내며 자신만의 고유한 해답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혼자만의 고요한 시간이 필요하다. - 에스터 부흐홀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