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건너 전화를 걸어 김장 보고를 하는 엄마이다. 그 궁리하며 일년치 대행사 김장보다 딸의 업무, 손주들 일에 더 근심걱정이 많으시다.
"그래 애들 챙겨라!"
"김장보다 애 병원이 먼저지"
"걱정 말고 다 하고 와라, 엄마가 천천히 하면 돼"
"차 조심하고 천천히 와라."
나는 무정하고 못되고 매정한 딸이다. 다 지가, 지 새끼가 먹을 것을 엄마한테 다 맡겨놓고 김치 내놓아라 뚝딱! 을 외치고 있으니 말이다. 그 와중에 나는 못 가면서 엄마 힘들까 봐 미안한 마음에 가부장적이고 부엌일에 손끝하나 털끝하나 대지 않는 아빠라도 도와줬으면 싶고, 김치도 잘 먹지 않는 바쁜 싱글 동생이 나 먹을 김치를 위해 거들어줬으면 하는 생각은 한가득이지만 그나마 양심은 남아있어 차마 도와달라 말을 하진 못하겠다.
"엄마 미안해" 딸을 바라보는 엄마는 그마저도 측은하게 "괜찮아 엄마 살살할 거야 걱정하지 마"라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는다. 그러고는 내 일 보느냐 정신을 빼고 헐레벌떡 애들 챙기느냐 정신은 안드로메다로 가버렸다. 급하게 미루고 미루다 드디어 김장전날 김치통을 부시고, 간신히 새 김치 입장준비를 위해 김냉을 깔끔하게 닦아놓는다. 알타리 1통, 배추김치 3통, 동치미 1통, 파김치 1통 그리고 다른 음식들을 챙겨 오기 위한 큰 그림으로 큰 장바구니와 카트까지 미리 세팅해 놓는다. 엄마는 그 사이 "고추장은 얼마 남았냐" "들기름은 몇 병을 줄까?" "깨소금은 있니?" 물류창고 총관리인처럼 체크하듯이 냉장고점검을 하시건만, 난 늘 언제나 예비되어 있는 엄마창고가 있기에 "어? 몰라 있나? 쪼금 있을걸? 확인 안 해봤는데" 떨어지면 언제든 달라하면 되지 하며 관심조차도 없다. 그 와중 엄마 "나 요즘 김치 별로 안 먹어"라는 말은 하지 말지, 그렇게 바리바리 싸갈 거면서 "고구마 맛있더라 근데 고구마 말린 건 살쪄서 안 먹을 거야 나 주지 마" 아주 가지가지 맞춤형이다.
빈통만 주렁주렁 들고 가서 가득 쟁여오려고 김치 속 넣고 끝날 시간에 맞춰가는 얌체 딸이다. 여러 상황에 이마저도 나름 시간을 조율해서 합리적으로 간다 생각하고... 딸이길 망정이지 며느리였음 뒷방망이 날아왔을 거다. 하긴 요즘은 며느리한테 감히 싫은 소리 못하는 시대이건만 그마저도 싫은 게 우리 며느리의 일상 아니던가. 사실 나도 친정엄마 김장 걱정은 그렇게 하면서 시어머니 김치는 마지못해 한통 담아 오는 시국이다. 친정엄마가 워낙 큰손에 다 챙겨주시기에 굳이 비굴한 소리 안 하고 마지못해 신랑이 가서 한통만 딸랑딸랑 들고 온다. 김장에 딸랑 한통은 가져가고 싶지 않다 굳이 필요 없다는 목소리이지만 그래도 엄마생각에 엄마김치를 생각하는 아드님이 계시다는 마음에 큰 아량으로 베푼 은혜이다. 그마저 다른 건 더 가져오지 말라고 김치통 다 빼서 냉장고 자리가 빈틈이 1도 없다고 강조하며 신랑을 보낸다. 그럼 또 거기에만 담아 오지 엄청 큰 통에 담아놨다며 결국 2통으로 만들어주셔 그걸 옮겨담으며 며느리는 씩씩댄다. 진짜 싫어 진짜 싫어를 외치며 김치를 다소곳하게 담는 것이 아닌 짜증이 섞어 배추폭력배도 아닌데 배추를 마구마구 찔러 쑤셔 넣는다.
이토록 맘이 다르던가?
딸에게도 며느리에게도 둘 다 일은 안 시키는데 왜 맘이 그렇게 다른지, 왜 못된 심보가 나오고,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인지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아들도 있는 우리 엄마, 아들이 있는 나로서는 딸과 며느리, 친정엄마와 시어머니의 관계가 이해되다가도 거품을 물고 씩씩거리다가 어느새 눈물이 글썽글썽해진다. 쓴 물 단물, 쥐꼬리까지 긁어가고 신랑 닮아 삐뚤삐둟한 치아를 위해 교정비까지 친정 부모님께 뽑아오고 병원 가야 한다며 1년 치 김장일 거들지도 못하고 뺀질나게 꽁무니를 친다. 트렁크 한가득 테트리스 하듯이 쌓아 챙겨 오면서 정작 내 딸에겐 엄만 요리를 잘 못하니 오히려 네가 해줘야 하고 넌 나중에 훌륭한 대기업들이 많으니 사 먹으라며 그러니까 돈을 많이 벌으라는 잔소리를 남긴다.
김장철이 끝나면 2~3주 동네카페들은 북적인다. 김장으로 속앓이를 한 집집마다 속풀이 수다가 이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속풀이가 끝나면 송년회로 들떠 정신없다 또 설날이 다가온다. 현명하게 대처하고 싶고 야무지게 지혜롭게 나아가고 싶지만 늘 생각만 그렇고 현실이 되면 그냥 딸, 며느리, 엄마가 되어버린다. 암만 몸에 좋아도 시금치도 싫고 시래기도 싫은 철없는 며느리이기만 하다. 그러다가도 친정에서 갖고 온 배추 속과 수육을 그릇에 예쁘게 곱게 담아 김치 나왔다 뚝딱! 수육도 먹어라 뚝딱! 교정으로 힘든 딸아이에게 저미듯이 얇게 썰어 고이내준다. 그게 엄마 맘인가보다. 바로 내리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