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는 것도 힘들겠다"는 말을 들은 나
가정주부는 집에서 노는건가요?
제목을 적으며 다시 부글거리는 좁은 속을 어찌할까.
때는 한 달여전, 아들의 친구 가족과 같이 나들이를 갔었다.
친구의 엄마와 내 남편은 각자 아이를 잠깐 돌봤다.
어색하게 있기가 힘들었는지 친구의 아빠가 내게 이것 저것 물어왔다.
그러다 일 얘기가 나왔다.
가정주부로 있다는 내 얘기를 듣고는 짐짓 안타깝다는 표정과 함께
"집에서 마냥 노는 것도 힘들겠어요"라는 대답을 들었다.
당시에는 대화의 흐름에서 그 말이 튄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나 역시 대답을 웃으며 부드럽게 넘겼었다. 하지만 한달 남짓 지난 지금까지도 이 말이 계속 맴도는 것은 무언가 꺼름칙했기 때문 아닐까?
놀아? 내가?
뭐하고 놀아? 집에서 소꿉놀이라도 한다는 건가?
밥그릇에 눌러 묻은 음식물 찌꺼기를 푹푹 찌는 더위에도 고무장갑 껴가며 주부습진 걸려가며 설거지하고, 일주일 내내 쌀 씻고 밥 지어 올리고 반찬 만들어내고, 빨래 하고 널고 개는 일, 화장실 변기에 오줌 튄 거 문지르고 닦아내는 것, 욕조 곳곳에 물 때며 곰팡이 악취에 그걸 지우려고 뿌린 락스 냄새 맡아가며 청소하는 일 모두 노는건가?
라며 나의 뾰족한 마음이 돋아났다.
당시 친구의 아빠는 아무 의도 없이 한 말인 것 같았다.
"나도 일이 바쁠때는 회사에서 눈치를 안보는데 요새는 일이 없어 한가하니 마음이 불편하다"
뒤이어 했던 이 말에서 악의가 없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에서 생각해보니 친구 아빠와 나의 대화적 흐름이 자연스러운지는 잘 모르겠다.
다른걸 다 차치하더라도, 그래. 인정한다. 나는 노는 게 제일 좋다. 뽀로로랑 누가누가 더 잘 노나 내기해도 내가 이길 자신있다. 타고난 한량 체질이라 누가 돈을 트럭으로 가져다 줘서 1년 심백육십오일 이십사시간을 내내 놀기만 하면 좋겠다.
정말이지 할 수만 있다면 노는 것을 아주 기깔나게 잘 해낼 자신이 있다.
놀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시간과 돈이 필요하다. 아니다, 돈이 있으면 내 시간은 만들어 낼 수 있다.
가사와 육아 모두 나를 대신할 사람을 고용하거나 기계를 사는 데 쓰면 내 시간은 생긴다.
하지만 첫째로 나는 현재 그럴만 한 시간적, 물질적 여유가 없다.
그리고 나는 내가 논다고 생각해보거나 누군가에게 내가 그렇다고 그렇게 말해본 역사가 없다. 육아와 가사는 거저 되는 것이 아님을 몸소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 자녀 이상을 둔 부모들의 노고와 고됨을 한 없이 높이 샀으면 샀지 폄하 해본적이 없다.
그래서 그 말에 내가 뾰족해진걸까 생각이 들었다.
만약에 내가 지금 노동으로 생각하는 모든 것이 돈으로 해결된다고 가정했을 때
오롯이 내 시간만이 남아있을 때 무엇을 할까 고민해봤다.
역시 글쓰기였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 오래도록 할 수 있었던 일은 과거에나 지금에나 글을 쓰는 일이었다.
내가 하는 일을 다른 이에게 면밀히 다 말해줄 필요도 없고 상대도 알 필요 없지만
적어도 나는 다른 사람의 시간을 '논다'고 표현하지 않는다.
그건 그 사람에 대한 존중이 없고 배려가 없는 말이라고 생각해서이다.
하지만 내가 발끈하며 글까지 쓰게 된 데에는 분명 내 속에 자리잡은 자격지심 때문이겠지.
그것도 경제적으로 이바지 못하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감 때문이겠지.
돈 걱정 없이 글 쓰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그냥 사심없이 속세의 걱정과 미움 없이 정말 글로만 가득 채울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