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더 좋아지려고 그러는 거야

상황이 안 좋아서가 아니고

by 듀홈마

연극영화과를 나와 이렇다 할 자격증 없이 소위 예술병에 걸린 채로 어찌저찌 임출육을 겪은 A가 있다.

위 인물에게 가장 적합한 미래 직종을 고르시오.


1.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예술인으로! 죽을 때까지 한량처럼 살다 가자! 아티스트 프리랜서.

2. 몸이 힘들어도 인간에게 치이는 것보다는 낫다! 식당, 잡무 아르바이트.

3. 사랑합니다 고객님! 인바운드, 아웃바운드 영업 홍보 콜센터.

4. 반복되는 작업을 하더라도 안정적인 월급 받는게 좋지 않을까? 백화점 및 쇼핑센터 판매직

5.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나는 카프카의 벌레가 된다. 계속 무직.






외벌이를 해오던 남편이 직업을 바꾸기로 결심했다. 그간 회사 소속으로 영업직을 해오던 남편은 이사직함을 달고 열심히 일을 했고 소득도 컸다. 하지만 직함의 무게값으로 애써 번 소득을 직원관리, 영업관리 차원으로 뿌려야 했다. 그 와중에 급여도 밀리게 되면서 회사를 나왔다. 그리고는 회사 동료와 같이 자회사를 차리게 됐다. 그러다 코로나가 창궐했다. 회사 안에서의 영업 외에도 자본금을 영끌해서 펼쳤던 사업도 있었다. 본 영업과 영끌 사업 모두 결과는 처참했다. 그렇게 이번 영업장도 폐업수순을 밟는 중이다.


지금 남편은 완전히 다른 직종을 알아보고 있다. 그리고 나 역시 일자리를 알아보는 중이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 있는 동안, 그 시간에만 할 수 있는 일 위주로 찾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다. 확실히 서울에는 뭐든 많아서 일자리도 많다. 돈을 벌려고만 하면 정말 벌 수 있는 곳이 서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내가 있는 곳에서는 생각보다 식당 일자리가 많이 없고 있다 해도 내가 원하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의 파트타임은 잘 뽑지 않는다.


오늘 아웃바운드 영업 홍보 콜 아르바이트를 하러 면접을 본다. 비슷한 업무는 예전 대학 조교때 해본 적이 있어 어렵다고 느껴지지는 않는다. 시간당 만원씩을 받는데 문제는 하루 2시간만 필요한 것으로 알고 있어서 하루 2만원, 주 5일이면 10만원.. 한달에 40만원 버는 셈이 되어 액수가 작다는 것이다.


일단은.. 주변에 일자리가 없으니 뭐라도 일단 해보자 하는 맘으로 면접을 보러 가는 것인데. 노느니, 놀면서 공치느니, 공치면서 까먹기만 하느니 뭐라도 정말 단돈 얼마라도 벌어보자! 하는 맘으로 가는 것인데.. 이렇게 마음이 비워지기 까지 오래 걸렸다.


여전히 온전히 비워지지도 못 했다. 우리는 넘어야 할 산들이 많다. 상황에 따라 나랑 아이만 친정엄마 댁으로 들어가 살아야 할 수도 있는데.. 그게 나로서는 속이 상했다. 상황이 안좋으니까 우리가 들어가서 살게 되는게 미안하다.. 그리고 사실 눈치도 보인다 했더니 남편이 속상해 하며 말했다.


"우린 더 좋아지려고 그렇게 하는거야. 상황이 안 좋아서가 아니라"


그래. 남편의 말이 맞지! 맞아. 우린 더 좋아지기 위해서 방법을 찾는거야.

자기 비관에 빠지지 말자. 우리는 지금도 충분히 괜찮고 앞으로는 더 괜찮아질거니까.

오늘도 나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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