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절인연

나를 스쳐간 모든 사람들을 떠올리며

by 듀홈마

2024년이 왔다. 예전엔 12월 31일에서 1월 1일을 맞이하는 날엔 가슴이 두근거리곤 했다. 1999년을 넘어 2000년을 맞이하는 해에는 더 그랬다. 그 시대를 관통하는 나 자신에게 빛나는 날들만 가득할 것만 같았다. 나는 그 자체로 하얗고 반짝였다.


그 즈음 나는 10대였다. 그리고 지금에의 내 나이는 40을 바라본다. 그간 나의 색깔은 회색이 되었다. 이젠 머리에 피가 마른 나이가 얼추 되어서인지 모든 것이 심드렁하다. 예전엔 검은색이 아니라면 흰색만이 답인줄 알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인간이 되서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인간이라서 그래. 라고 바뀌어 갔다.


시절인연. 나는 이 단어를 보면 조금 서글퍼진다. 그 시절에는 둘도 없던 친구나 연인이 떠오른다.

그 중에도 몇몇은 아직 연락하고 지낸다. 하지만 정말 생사 여부만 묻는 정도. 가끔은 나의 인간관계의 폭이 이렇게나 좁았나 내심 놀라곤 한다.


나는 언제나 세상 밖 아웃사이더였다. 나름대로 내 안에서 최선을 다하고 기를 써봤지만 내 주변 사람들은 오래 가지 않았다. 예전엔 그게 다 내 탓인줄로만 알았다. 그래서 더욱 더 노력해서 나와 소원해지는 사람들에게 연락을 하고 시간을 쪼개서 밥을 먹고 이야길 나누려고 했다.


그러면 한 동안은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인연이라는건 (친구든 연인이든간에)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변할 수 있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내 손에 팽팽히 잡던 그 끈을 느슨하게 놓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아무 노력을 하지 않아도 나를 좋아해주는 몇명의 사람이 늘 있었다. 그건 나의 선의를 선의로 받아주거나 내가 아무 의도 없이 한 말과 행동을 좋게 오해해주거나 해서 생긴 인연들이었다. 그런 부분은 내가 어찌해서 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나와 멀어진 사람 역시도 같은 맥락이었다. 내가 무진 애를 써도 제자리걸음이거나 뒷걸음질 치는 사람들이 있었다. 마찬가지로 내가 어찌해서 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대학시절 내내 붙어다니던 한 친구가 있다. 지금의 남편 역시 그 친구 덕에 만나게 되었다. 나와 친구 모두 휴학 없이 졸업해서 입학때부터 줄곧 단짝이었다.


졸업해서도 한동안은 자주 어울렸다. 그러다 각자 일을 하게 되면서는 점점 얼굴 보기가 어려워졌다. 그 다음은 내가 아이를 낳으며, 친구가 서울에서 인천으로 이사를 가며, 나 역시 서울에서 남양주로 이사를 오며, 친구가 결혼을 하며, 친구 역시도 아이를 낳으며.. 점점 상황이 다채롭게 달라지면서 멀어졌다.


친구가 아이를 낳기 몇 달전, 몇 년만에 처음으로 얼굴을 봤다. 그런데 정말 예전 같지 않았다. 대화하다 문득 적막이 흐를때면 집에 가고 싶어졌다. 분명 친구도 무거운 몸을 이끌고 멀리 나온 수고를 했고 나 역시도 오랜만에 서울로 나온 것이었는데 우리는 무얼 위해서 여기에 함께 있는건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간 나도 많은 일이 있었고 상대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비단 이 친구 뿐만 아니라 그 시절 가까웠던 누구를 다시 만나더라도 지금에의 나는 어색하고 힘들었을지 모른다.


내가 예전에 그렇게도 좋아했고 사랑했던 사람들은 다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나는 어쩌면 그 시절에의 나를 추억하는건 아닐까? 그 때에 빛났던 나. 큰 고민 없이 많이 웃던 나.. 그런 내 모습의 작은 부스러기들을 주워 모으고 싶은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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