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찰시리즈 01.
나는 감기를 잘 걸리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1년에 한 번 정도, 아주 드물게 감기기운을 심하게 느낄 때가 있곤 했는데,
피부 속으로 스며들어오는 듯한 불쾌한 추위와
코에서 미간으로 향하는 특유의 감기향(?)이 느껴질때면
나는 몸을 움츠리고 이불 속에 파묻혀 정말 단단히도 숨어버렸다.
사실 추위나 몸살기운은 내 몸 속의 바이러스로 인한 것인데
나의 본능은 이를 외부적 요인이라고 생각하는지
내 주위의 껍질을 더욱 단단하게 만드는 방어기제를 활성화하는 것이었다.
이렇듯 나를 드러눕게 만드는 감기몸살이야 매우 드문 상황이지만,
언젠가부터 인간관계에서 오는 고통과 환멸이 감기기운과 비슷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심지어는 이 고약한 몸살기를 더욱 자주, 간헐적으로, 또 주기적으로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거절과 좌절의 반복, 피어나는 반목과 질시,
인간관계에서 받아들여지지 못한 자가 내뱉는 기침에는 온갖 바이러스 뿐이 가득할 뿐이다.
나는 원래부터 관계를 쌓아가는 것에 재능이 없었다.
모든 관계의 기초가 되는 대화 방법부터, 시간을 갖고 숨을 돌리는 'room'이 필요하다는 것도,
모두가 목적을 갖고 서로를 대하겠지만 그 목적을 적절히 숨긴채 상대를 대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어려워했다.
어찌보면 관계가 깊어지는 그 과정과 결과, 두 가지 모두를 회피하고만 싶어했던 것 같다.
인간 내면이 복잡한 다면적 구조를 가진 입체 형태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나의 캐릭터는 여전히 X,Y축만 존재하는 2D 세상 속에서 단순한 입력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비가역적인 애정을 갈구하다 거절당한 하루,
나는 또 다시 감기에 걸려 또 다시 이불 속에 파묻혀 움츠려 들었다.
스스로를 보호하고자 나만의 얇은 벽을 한 겹 한 겹 쌓으며
"다시는 인간을 사랑하지 않겠노라" 다짐하며 애정 바이러스가 섞인 콧물을 휴지에 풀어댔다.
카톡을 기다리는 이불 속 엉겁의 시간이 나에겐 모두 독한 몸살기운처럼 느껴질 뿐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모두 떠나간다.
그들이 밉진 않다.
미운 건 나 자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