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CE KELLY

고찰시리즈 02.

by Cherry Fraser

소개팅을 했다.

나는 스무살 이후론 누군가를 소개 받아본 적이 없는데,

항상 지독한 자만추라는 편리한 핑계거리를 들이밀어왔다.

뭐 사실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관계를 쌓는 것에 젬병인 나에게는

작위적으로 이성과의 관계를 시작하는 부자연스러움 자체에 거부감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나를 잘 안다.

생물학적 남자로서 이성에게 어필할 수 있는 기본적이고 보편적인 매력을 갖추고 있노라면,

당당하게 '아니'라고 답할 수 있다.

외적인 부분은 차은우 급의 1티어 외모가 아닌 이상 취향의 영역이므로 논외로 하고,

성격은 스스로도 모난 부분을 잘 이해하고 있으며

학습된 사회성에 의존하는 편이라 외향성을 무기로 밀어붙일 수는 없다.

취향은 말할 것도 없이 마이너하기에 공감대를 자극할 수도 없고,

나의 언어는 논리와 분석 체계에 기반하기에 감성을 자극할 수도 없다.


나는 사랑받기 힘든 존재라는 것을 잘 안다.

개같이 멸망한 소개팅의 후폭풍은 깊은 현타와 속쓰림을 동반한 채 나를 집어삼켰다.

짧은 만남을 뒤로 한 채 조수석이 빈 차를 끌고 조용히 음악을 들으며

남산도서관이 있는 소공로를 한바퀴 돌고 집에 돌아왔다.


정말 오랜만에 MIKA의 노래를 틀었다.

'Grace kelly'.

갑자기 문득 떠오른, 어릴 적 무척이나 좋아했던 음악이다.

I could be brown, blue, violet sky, purple, I could be anything you like.

너가 좋아하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니.

유감스럽게도 나는 그렇지 못한다.

있는 그대로의 나로서 사랑받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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