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육아도 하는 변호사 Jan 04. 2024

 엄마가 부끄러워

"현정아, 학교 다녀와서 전기밥솥에 있는 밥 잘 챙겨 먹어. 소연이도 좀 챙기고."


아침에 학교 가려고 일어나면 엄마는 언제 일어났는지 화장도 마치고, 옷도 예쁘게 차려입고 거기에 밥까지 다 해 놓으시고 나를 기다렸다. 어릴 적부터 아침잠이 없었던 나는 항상 새벽 6시 30분에 일어났다. 그렇게 오전 6시 30분 내가 일어나는 것을 본 우리 엄마 금옥 씨는 나에게 오빠랑 동생이랑 밥 같이 먹고 학교 가라 말을 남기고 새벽부터 일하러 나가셨다.


'치... 자전거 타고 나가면서 저렇게 예쁘게 차려입고 간담.'


일을 시작한 금옥 씨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나는 괜히 나쁘게 말해본다.


우리 엄마 금옥 씨는 내가 초등학교 2학년에 일을 시작하셨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 일이다. 금옥 씨가 시작한 일이 어떤 일이냐 하면 집집마다 시험지 돌리는 일이다.


지금은 일일 시험지라는 것이 없지만 30년 전 정도만 해도 , 매일매일 집으로 시험지를 가져다주시는 선생님, 아줌마가 있었다. 매일 같이 우유를 배달해 주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면 된다.  우리 엄마 금옥 씨가 아이템플이라는 일일 학습지 배달을 시작한 것이다.  그것도 자전거에 책과 문제집을 싣고 우리 동네를 구석구석 배달하며 다녔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참 철없는 생각이지만 어린 마음에 그런 엄마가 정말로 부끄러웠다.



"현정 엄마 아니세요? 시험지 돌리는 일 시작하셨어요?"

"네, 지난달부터 시작했어요. 아직은 구독하는 학생이 많지 않네요. 수민이 어머니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자 여기 이거 하나 드릴게요. 수민이 오면 같이 해봐요."


금옥 씨는 하루종일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돌면서 집집마다 시험지를 돌렸다. 사실 이런 일은 처음해 보았다. 결혼 후 회사를 그만두고 종호, 현정, 소연이 삼 남매를  낳고 집에서 10년 동안 아이들만 키웠었다. 


저 멀리  대한민국 남쪽 끝 지방 살다가 잘 살아 보겠다고 연고 없는 서울에 올라와서 살고 있다. 형편이 넉넉하지 못해 아이들이 어릴 때는 나사 끼우기, 인형 눈달기는 해보았다. 그런데 이렇게 돌아다니며 시험지 구독 좀 하시오, 책 좀 사보세요라는 판촉일은 해본 적이 없었다.


 사실 금옥씨에게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어머니,우리 시험지 좋아요, 한번 보세요, 책도 좀 사세요. 아주 알차답니다 라고 말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시험지 한번 해 보라고 보하기 위해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낯선 대문을 두드리는 것 더 부끄러웠다. 어린 현정이가 엄마를 부끄러워했던 것보다 금옥 씨 스스로  일을 많이 부끄러워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경찰인 남편 봉급으로 다섯 식구가 연고 없는 서울에서 생활하는  쉽지 않았다. 식비며 하나둘씩 늘어나는 학원비며 감당이 안되었다. 언제 반지하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알 수없었다. 형편이 이러해도 지금까지는 아이들이 어려서 어쩔수 없이 집에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막내 소연이도 초등학교 1학년이고, 그렇게 아이들도 제법 자랐으니 금옥씨가 나서서 돈을 벌어 보기로 결심했다.


실행력이 빠른 것이 장점인 금옥 씨는 벼룩시장 신문을 보며 일자리를 찾았다. 하지만 10년 경력 단절 금옥 씨가 일할 수 있는 곳이라고는 식당 주방일이나 마트 캐셔, 보험 정도가 전부였다.


 하지만 금옥 씨는 조금은 교육에 관련한 일을 하고 싶었다. 결혼 전에는 주판학원 선생님으로 일하기도 하였기 때문이다. 또 뭐랄까. 그래도 엄마라 그런지 아이들이 보기에 덜 부끄러운 일을 하고 싶었다. 식당이나 마트캐셔가 부끄러운 일이라는 건 아니었지만 이상하게 영 마음이 내키지 않는 것이었다.


금옥 씨는 자신에게 맞는 일자리가 없음에도 아이들의 눈을 생각하고 또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 종호와 현정이가 구독하고 있던 일일 시험지가 생각났다. 시험지를 배달하지만 선생님이라 불린다는 것, 아이들을 교육에 관한 일이라는 게 꽤 마음에 들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

"어머님, 안녕하세요. 종호랑 현정이 일일 시험지 잘하고 있지요?"

"네, 선생님 덕분에 잘하고 있어요. 선생님 그런데 선생님이 하시는 일 말이에요. 저도 할 수 있을까요?"

"아,, 어머님 일자리 찾고 계시는구나. 알겠어요. 제가 있는 본사에 한번 문의해 보고 다음에 알려 드릴게요."


선생님은 곧 소식을 전해왔다. 금옥 씨 동네에 일하던 선생님 한분이 그만두게 되었다는 소식이 다. 금옥 씨는 그 소식을 듣고 본사에 연락했다.


" 제가 그만둔 선생님 자리를 대신해 일해 볼게요. " 


 그러나 그냥 바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게 시험지 본사 입장이었다. 그만둔 선생님이 가지고 있던 회원수만큼의 비용을 전직 선생님에게 지불해야 했고, 거기다 일일 학습지 선생님으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본사에서 백여 권의 책을 구입해야 했다. 즉, 돈이 필요했다.

 



"여보, 나 일일 학습지 선생님 한번 해보려고요."

"일일학습지? 근데 당신 내 체면도 있고..  난 좀 그런데. 좀 부끄러워"

"일하는데 부끄러운 게 어딨 어요. 아이들도 많이 컸고, 어쨌든 난 할 거예요."


금옥 씨는 남편에게 당신 쥐꼬리만 한 월급으로 다섯 식구 먹고살기 힘들다는 이야기는 차마 하지 못했다. 이렇게 살다가는 평생 반지하 신세라는 말도 하지 못했다.  금옥 씨에게는 결혼하고 10년간 조금씩 모아 온 비자금이 있었다. 그 돈을 본사에 고, 자전거 타는 일일 학습지 선생님이 되었다.


 


 "현정아, 우리 저기 떡볶이 집에서 순대랑 먹고 갈까?"

"민정아, 그래."


학교가 끝나고 떡볶이를 먹자는 민정이 말에 골목길을 지나 떡볶이 집으로 향다. 그런데 앞쪽에서 자전거 한대가 달려오고 있었다. 커다란 자전거에 책과 시험지를 가득 실은  리 엄마 금옥 씨였다. 순간 나는 본능적으로 민정이가 저분이 우리 엄마라는 사실을 까 싶어 부끄러워졌다. 나는 순간적으로 고개를 옆으로 휙 돌려 금옥 씨의 시선을 피했다. 나를 못 본 것일까 고개를 휙 돌린 내 모습을 본 금옥 씨도 나를 아는 체 하지 않고 그냥 지나쳐 갔다. 자기 뒤에서 쾅 소리가 들렸다.


나를 신경 쓰고 가던 금옥 씨가 자전거에 실린 짐 무게에 기우뚱하다가 무게를 못견디고 자전거가 넘어져 버린 것이다. 뒤를 돌아보니 금옥 씨는 넘어져 있었다. 거기에 자전거에서 쏟아진 책은 거리에 흩어지고 시험지는 바람에 펄럭 펄럭 휘날리고 있었다.  


"현정아, 저 아줌마 넘어졌다. "


민정에 말에 나는 금옥 씨가 아픈 것도 생각하지 않고

'에이 왜 저기서 넘어지고 그런데...'라고 생각과 함께 눈물이 핑 돌았다. 눈에 눈물을 채워졌다. 나는 입을 꾹 다문채 금옥 씨에게 다가가 땅에 떨어져 굴러다니는 책과 시험지를 주었다. 금옥 씨에게 어떤 말도 없이. 금옥 씨도 나에게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민정이와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니 금옥 씨가 집에 와 있었다. 나는 민망함에 금옥 씨를 쳐다보지 못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어린 나이였지만 내 행동이 비겁하고 금옥 씨에게 깊은 상처를 주는 행동이라는 사실은 충분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금옥 씨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저 덤덤하게 평범한 저녁을 준비했다.


경찰이셨던 아빠는 항상 늦게 오셨다. 그래서 직장인의 정상적인 출퇴근 시간이 오전 9시에서 오후 6시까지란 사실은 어른이 되어서 알았다. 아빠는 언제나 자정 넘어오시거나 집에 들어오지 못하셨으니. 그래서 저녁은 언제나 금옥 씨와 나, 오빠 종호, 동생 소연 이렇게 넷이서 먹었다.

그날은 밥을 먹는데 금옥 씨가 조심스레 나에게 말했다.


"현정아, 엄마 일일 시험지 돌리는 거 부끄럽니?"


금옥 씨의 돌직구 같은 말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여기서 부끄럽다고 이야기해야 할지 하나도 부끄럽지 않다고 이야기해야 할 것인지 두 가지 상반된 마음이 싸우고 있었다. 정서적으로 정상적이었다면 부끄럽지 않다고 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어릴 적 나는 상당히 직설적이고 솔직한, 그러니까 내 맘대로 성격이었다. 그런 나는 조심스레 내 눈치를 살피며 말하는 엄마에게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엄마, 나는 아빠가 경찰인 건 자랑스러운데, 자전거 타면서 일일 시험지 돌리는 엄마는 부끄러워."


내 말을 금옥 씨는 별다른 이야기 하지 않고 알았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저녁에도 일일 시험지 배달해야 하는 집이 있어서 나가봐야 한다며 집을 나섰다.


그때 금옥 씨의 뒷모습을 기억한다. 금옥 씨의 어깨에는 삶의 무게에 짓눌린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고, 가슴에는 누가 쏘았는지 모르게 커다란 화살로 멍이 들어 있었다.


그 일이 있은 후 금옥 씨는 출근할 때 옷차림에 더욱 신경 썼다. 정말 선생님처럼 보이려고 예쁘게 차려입었다. 현정이 눈에는 금옥 씨가 예쁜 선생님 같았다. 그렇게 오늘도 빨간색 투피스에 구두를 신고 무거운 시험지를  실은 금옥 씨 자전거가 출발한다. 이 정도면 현정이가 좀 덜 부끄러워하겠지 생각하며.




*커버 이미지: pinterest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