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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erry Sep 01. 2020

2020년, 그 의외스러움에 대하여

2020년에 돌아보는 20년 조금 넘긴 내 인생.

2020년은 내겐 조금 특별하고,
의외스러운 한 해다.

물론, 나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그럴 수 있겠다.
“전 세계인 모두가  2020년을 다시 시작해야 해”라는 누군가의 억울한 외침에 피식-웃으며 공감할 수밖에.

새로운 10년은 마치
모든 것이 마치 0으로 돌아간 것처럼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삶을 제로베이스로 바꾸어 놓은 듯하다..
핀란드를 다녀온 이후 나의 삶도 특별히 그러하다.

우연히, 그러나 언젠가부터 천천히 이때를 기다려왔듯
비거니즘이라는 개념을 알게 되었고 이상하게도 전혀 거부감 없이 실천하기 시작했다.

내가 먹는 음식이 어디서 왔는지, 그리고 다시 어디로 가는지는 정말 중요한 것이었다.
단순히 눈앞에 있는 것 너머의 ‘진실’을 알게 된 후 내 삶의 ‘식(食)’은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그리고 ‘식’이 바뀐다는 것은 그 사람의 삶을 많이 바꾸어 놓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가족부터 시작하여 내 주위 사람들로부터 자연스럽게 내 ‘식’에 대해 질문을 받기도 하고,
때로는 비판을 받기도 하고, 아직 미미하지만 그중 소수는 호기심을 넘어 동참해보고 싶어 하는 용기를 보인다. 그것이 참 반갑다.

놀라운 것은, 나의 일상의 이 작은 선택의 전환이 굳이 말로 구구절절 설명하고 다니지 않아도

벌써 주위의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여전히 불완전하지만, 완전 채식을 지향하면서 적어도 ‘속건강(장 건강이라고 해야 할까?)’은 최상이 되었다. 낮잠이 필수였던 내가 피로함이 싹 사라지고 아침에 눈을 떠 잠자리에 들기까지 몸이 늘 활기차니 말이다. 누군가에게 건강한 삶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물은 적이 있다.

“잘 자는 것”이라 하더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그거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타깝게도, 늘 틀어진 골반과 잘못된 자세를 유지해왔던 습관으로 인해 겉 건강(?)은 생 처음으로 내 일상에도 큰 영향을 미칠 만큼 악화되었지만 말이다. 장 건강과 겉 건강이 둘 다 최상이라면 더 망설임 없이 곳곳에 나름의 간증을 하고 다녔을 텐데 그게 참 아쉽다.


그렇다. 처음으로 병원을 꾸준히, 7개월간 다니고 있다. 그것도 2020년 이전엔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한의원을.

감기도 잘 안 걸려 병원을 자주 다니는 편은 아니었는데 말이다. 어렸을 때 충치가 하도 많아서 치과에 살다시피 하던 것 빼고..

많으면 일주일에 네 번씩이나 한의원에 다니며 물리치료는 기본이고 고주파, 침 치료, 산소치료, 추나치료까지 아주 VVIP단골 고객이 돼버렸다. 평생 병원 다닐 거 올해 다 다니는 느낌이다. 처음엔 컴퓨터 작업을 매일 하느라 디자이너라면 한 번씩은 다 겪는다는 손목터널 증후군인가 보다 했는데 근본 원인은 그것보다 훨씬 깊숙이- 그리고 아주 오래전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이 아픔을 겪어보니 정말 지나가는 사람들 다 붙잡고 제발 바른 자세 의자 사라고 권유하고 싶다. 그만큼 내 평소 자세가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우리 몸이 얼마나 촘촘히 연결되어 있는지를 뼈저리게 깨닫고 있다.

처음 2개월간 치료를 받고 통증이 다리 저림으로 내려갈 때쯤 얼른 수영을 했어야 하는데 타이밍을 놓치는 바람에 통증은 곧바로 팔로 다시 올라왔고 이러다가 1년 꼬박 채워 다닐 듯싶다. 오죽했으면 한의원 의사 선생님이 오밤중에 집에 있는 트레드밀을 가져다주셨다. 내 몸상태에서는 재활운동으로 수영 아니면 트레드밀밖엔 없는데 해야 하는데, 수영이 불가능한 상황이니 이거라도 해야 한다며.


환자를 이렇게나 챙겨주는 의사 선생님을 만난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아 신기하고 감사하다. 오늘도 치료를 받다가 언제까지 이렇게 매일 밤 다리 저림에 고통받아야 하냐고, 그냥 수술하면 안 되냐고 의사 선생님께 푸념을 늘어놓았다. 수술은 그때는 나아질지 몰라도 결국 몇 년 안에 재발하는 경우가 많고, 마치 벽에 박은 못이 점점 약해지는 것처럼 오히려 환자에게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하셨다. 난 젊으니까 금방 나을 거라고, 포기하지 말라는 그 말씀을 거듭하시는데, 당장은 아프지만 그래도 조금은 견딜만한 힘이 되는 것 같다. 말 한마디의 소중함을 매번 느낀다. 덕분에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힘과 용기를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코로나 19 덕분에 수영장도, 운동시설도 갈 수 없는데 같은 건물 확진자까지 생긴 바람에 재택까지. 더군다나 평소에 좋아했던 엎드려 책보거나 그림 그리는 그 자세도 다리 저림의 원인 중 하나라고 한다. 오늘 아침에는 앉아서 한참을 일했는데 바닥에 앉는 것도 역시 안 좋다. 푹신한 침대보다 소파에서 자는 걸 좋아하는데 소파에서 자면 허리 다 망가진단다. 집 앞에 맨날 친구한테 자랑하는 호수공원이 떡하니 있는데 평지 걸으면 안 된단다.... 감옥이라고 표현하기엔 너무 배부른 소리지만 미술관 가면 기본 3시간은 머물고, 여기저기 다니기 좋아하는 내 성격에 이러다가는 정말 미칠 것 같아서 나에겐 이 답답함을 풀기 위해 손이라도 열심히 움직여야 할 판이다. 시간도 많겠다 이렇게 인생 성찰하기 딱 좋은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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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 얘기를 하다 딴 길로 한참 샜다. ‘의(衣)’도 바뀌었다. 신기하게도 ‘식’이 바뀌면서 시작된 것 중 하나다. 여기서 다 줄줄이 말하긴 어렵지만 ‘식’이 바뀌면서 내가 발 딛고 선 이 땅의 생태계, 함께 살아가는 생명들과 우리는 연결되어있음을 매일 느끼며 살아간다. 단순히 내 편리함, 혹은 즐거움 하나로, 심지어 어떨 때는 충동적으로 구매했던 옷 한 벌이 플라스틱 바다에서 힘겹게 호흡하는 생명들이, 서식지를 잃어가는 생명들에게 주는 고통은 너무 크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이전과 같을 순 없다. 절대 그럴 수는 없겠다. 핀란드에서 늘 친구와 놀러 다닌 중고가게는 그래서 참 좋았다. 자원의 순환이 모두에게 익숙한 그 나라, 한국도 하루빨리 그런 나라가 되기를 정말 간절히 바란다. 최근엔 그런 가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어 기분 좋은 현상이다. 어쩌면 이제 그것이 필수 불가결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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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住)’도 살짝 덧붙여본다. 뭐든 삼박자가 맞아야 읽는 맛이 있으니까.

생 처음으로 자취를 했다. 8개월간 자취를 하면서 4년간 별문제 없이 기숙사 생활을 잘해온 내가 정말 대견했다. 그땐 정말로 별 불편함을 못 느꼈는데.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는 말이 맞다. 난 다시 기숙사 생활을 할 수 있을까.

무조건 공동체살이만을 옹호하려는 건 아니다. 지금은 물론 그럴 수도 없는 상황이고, 혼자 있는 것은 확실히 무언가에 집중하는데 더 도움이 되고, 인간에겐 공동체가 필요하다는 사실도 역으로 알게 해 준다. 무엇보다 대부분의 생활용품과 가전이 기본적으로 갖춰져 있던 기숙사에서 이제 정말 나 스스로 ‘살림’을 해보는 자취를 경험하니 가사 노동의 중요성을 이제야 알았다. 마룻바닥이 원래 깨끗한 게 아니고, 빨래도, 설거지도, 무엇보다.. 요리도.

누군가의 수고가 있었기에 난 그것들을 별생각 없이 누려왔다.


또 하나, 조금만 불편하면 돈도 절약하고, 쓰레기도 덜 나온다. 장바구니를 항상 챙기고, 플라스틱 병에 담긴 생수를 사 먹는 일이 내 삶에 더 이상 없도록, 물 끓여먹는 게 습관이 되면서 더 이상 ‘편리함’을 최우선에 두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자꾸 하게 된다. 조금만 신경 쓰면 되는 그 ‘건강한 불편함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지구를 지속 가능하게 하니까. 그것은 나와 내 곁의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는 것과도 동일한데, 아직 많은 사람들이 이를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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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의, 식, 주 가 바뀌면서, 동시에 새로운 ‘만남’도 경험하고 있다.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을 새롭게 알게 되고, 이렇게 만나게 된 사람들의 어떤 공통점을 발견했다.

모두가 마음에 어떤 ‘불씨’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의 크기는 다 달랐지만,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어떤 열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 불씨들이 모여 크고 작은 프로젝트들을 진행하고, 그 불길을 처음엔 희미해 보였지만 점점 커지며 순식간에 많은 사람들에게 닿았고 세상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움직임에 함께하고 한 목표를 바라보는데 동참하기 시작했다.


크고 작은 움직임들에 몇 가지에 참여하면서, 때로는 이런 생각도 든다.

여전히 아직 우리는 소수이다. 우리가 정말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이 움직임이 의미가 있을까-

하지만 아무리 그런 두려움이 계속 올라와도, 이 움직임에 참여하고 있는 우리들은 이 발걸음을 돌이킬 수 없는 듯하다.

이미 우리 모두는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된 이상, 소중한 이들을 지키고 싶다는 마음은 오늘의 나를 걷게 한다.

지치고 힘겨워 조금 더딜 때도 있지만, 계속해서 나아가는 어떤 힘이 우리 안에 공급됨을 발견한다.

그것은 이미 누군가 외로운 싸움을 하며 이 길을 앞서 걸어갔기에, 그 발자국이 우리에게 남긴 힘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직 2020년이 3개월이나 남았다.

요즘은 ‘용기’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한다.

누군가에게 내 진심을 전하는 것은 생각보다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그런 적이 많이 없었던 걸까,

최근에 그런 ‘용기’를 내는 것이 정말 큰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태 나에게 그 진심을 전한 사람들은 정말 용기 있는 사람들이었구나. 그 진심을 가볍게 생각했던 과거의 나를 반성한다.

그리고 나도 진실한 사람이 되고자 좀 더 노력하고 있다. 그 용기를 달라고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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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들이 인간답게 살 권리를 투쟁하며 온몸으로 기어갔던 한강대교.

차로는 5분이 채 안 걸리는 그 짧은 거리가 누군가에겐 머나먼 순례길과도 같은 그 다리를 천천히 걸으며 우연히 본 누군가의 문장이

한참이나 기억에 남는다.


“당신이 세상에 해야 할 말들이 아직 많이 있습니다.

그 말들이 세상에 나올 때 비로소 삶의 멜로디가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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