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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erry Oct 17. 2020

설렘 :

설렘의 마디들

설렘.
또는 설레임.
설렘은, 참 예쁜 우리말이야.


연한 보랏빛이 살짝 섞인 것 같은 연하늘색. 그리고
은은한 분홍빛이 감도는 그런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게 되는 어느 저녁에 어울리는 단어야.


그리고 어딘가 모르게
조금은 연약해 보인달까?
마치 아직 어리고 실수투성이지만
조금씩, 조금씩 한 걸음 내딛으려는 나를 보는 듯해.

있지,
너무 빨라지고, 많아지고, 편해지면
설렘이 없더라.
이제는 이 설렘을 그냥 가질 수 없어.
조금, 조금은 애써야 해.
아니 더 애를 써야 할지도 몰라.
흘러가는 이 시간에 그냥 몸을 맡기다 보면

마치 손가락 사이로 

사르륵 빠져나가는 모래알처럼

금방 사라지고는 해

때로는 무기력감에 잠겨있을 때도 있어.

나를 둘러싼 것으로 주터 오는 어떤 우울감일 수도.

그 우울감, 무기력함은 나를 눈앞의 작은 쾌락에만 집중하게 해. 그리고 어느샌가 나도 모르게 그 즐거움에 심취해, 행복을 되찾았다고 착각하게 하지.

그러다 보면 저 멀리 있는 나무도, 강도, 야생도,

심지어 내 옆에 서 있는 사람도 잊게 해.


그렇게 나를 둘러싼 것들을 잊어간다는 것은 너무나 슬픈 일이야.
그것들을 잃어버린 나의 삶은 무엇으로 가득 차 있을까.

어느 순간 나는 그 시간들을 후회할 것만 같아.


모든 것이 좀 더 빠르고, 바쁘게 움직이는 이곳에서는,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지만 숨막힐 듯 고독한, 빠르고 일사불란한 매일의 시간들 속에서는,
그 설렘을 되찾기 위해 노력해야 해.


그래서 나는, 설렘을 종종 따라가.
무모해 보일지 모르지만,
바보 같아 보일지 모르지만,
분명히 느껴져.
그건 분명히, 무엇을 향한 단순한 ‘욕망’과는 다른 거야. 즐거움, 안락함과는 다른 거야. 어느 부분은 비슷할지 모르지만, 뭔가 또 다른 것을 내포하고 있어.

때로는 안락함과 정반대의 길을 가면서 느끼는 것이기도 하거든. 나의 어떤 부분을 희생하면서까지도.


누군가는 그렇게 물어볼지 몰라.
왜 굳이 노력해야 하지? 왜 그것을 찾기 위해 애써야 하지? 왜? 무엇을 위해?


기억을 돌이켜봐.

새로운 무언가를 만지는 것 자체만으로 마냥 좋아하던 어렸을 때의 나는 어디로 갔을까?

옆에서 누군가가 울고 있을 때, 슬픈 일을 겪었을 때 그것이 무엇이든 함께 울고 있는 나는 어디로 갔을까?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이의 손을 꼭 잡아준 그때가, 언제였더라?


그것이 있고 없고의 삶은 참 달랐던 것 같아.

언젠가부터, 우리가 막을 새도 없이,

저 머나먼 곳에서 무한의 속도로 달려오는 듯한 

기술이라는 것이 이 문명을 지배하기 시작하면서

그 느낌은, 기억은 점점 멀어져 갔어.

내가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무서우리만치 단순한, 회색의 삶이 되기가 너무 쉬워졌어.

그렇게, 어디서 누가 주는지도 모르는 편안함에 우리의 모든 것을 내어줘.


전기와 와이파이가 없는 세계는 마치 나의 존재를 부정하는 듯 해.

우리도 모르게 그것들에 익숙해지고 있어.

아니 그렇게 내버려 두고 있어.

결국 서로가 없다면

가장 불행해질 존재들인데 말이야.

지금 우리의 세계엔,

사람이 없어.


내게 설렘과 비슷한 단어가 하나 있다면

바로. 모험?
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아.
아직 내게 없는 것,
또는 내가 동경하는 것.
흔히 ‘자아실현’이라고도 얘기하곤 해.
하지만 나는 그냥 이것을 설렘이라고 표현하고 싶어
실현하든, 실현하지 않든
지금 그것이 내 심장을 뛰게 한다면,
다른 고민은 내려두고 일단 나아가는 거야.


아, ‘마음의 소리’라는 표현도 좋은 것 같아.
왠지 어떤 만화가 먼저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지만.

20년 조금 넘게 살아오며
그런 설렘의 마디들이 이어져 

나를 여기로 이끌었다는 것을 깨달았어.

무언가를 향한 무한한 열정을 느꼈을 때의 설렘, 누군가를 향한 설렘, 누군가에게 아무 조건 없이 도움을 주었을 때의 설렘, 누군가와 연대했을 때의 설렘.


정말 신기하게도, 매 순간 그 설렘이 올 때의 기분은 하나같이 내가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해.
좀 웃기게 표현하자면, 내 심장이 밖으로 나와서 막

멱살을 잡고 끌고 가는 것 같은?


동경하던 건축을 보기 위해,
예술을 하고 이야기하기 위해,

평생 한 번도 배워본 적 없지만 지금 하고 싶을 때,

누군가에게 그 책을 당장 선물해야 할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들 때에,

어떤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자리, 그 자리가, 그 사람들이 막 나를 부르는 것 같을 때,

그곳으로 마냥 달려가던 순간들.


모두가 그런 순간이 있을 거야.


문득 든 생각인데
미지의 세계에 나아갈 때는

늘 설렘 반 두려움 반이 있음을 발견해.
설렘이 단 1프로라도 더 있다고 느끼면

나는 설렘을 택해.
어쩌면 내 생각과는 다를지도 몰라.

그런데 이상하게 후회는 없어.

그런 순간순간들이 우리 삶을 아름답게 빚어가.

그런데 요즘엔 그런 것이 점점 드물어지는 듯 해.
많은 사람들이 점점 더 그 설렘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 같아 안타까워.



-ep.
당신은 마지막 설렘을 기억하나요?


사람과 사람 간의 간격이 더 커지는 것에

점차 익숙해지는 요즘이,

시시각각 우리의 시선을 빼앗는 수많은 것들에 휩싸이는 어지러운 세계,

다른 이의 욕망을 나도 모르게 추구하게 되는 현실이 참 안타깝고 슬퍼집니다.


이제 아이들은 온라인으로 수업을 듣고 친구를 만납니다. 모든 것이 온라인화 되어 더 발달하고 초연결시대가 오고 있는 지금, 즐거울지는 몰라도, 몸이 편해질지는 몰라도, 이상하게 마음은 어딘가 불편합니다.

우리의 눈과 마음은 더욱 차가워지는 것 같습니다


더 많은 이들이 이 설렘의 자국을 기억해내기를 바랍니다. 그 흔적이, 아직 우리 삶에 남아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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