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 앗아간 것들
여름이 지나면서 매미 울음도 잦아들었다. 초저녁이면 마당 가에서 피우던 생쑥 타는 냄새와 툇마루의 모기향 냄새도 어느새 사라졌다. 초롱초롱하던 연분홍 참깨꽃이 지고 난 자리에는, 여문 참깨가 톡톡 터질 때가 되었다.
대장간에서 잘 벼린 낫으로 마른 참깨 줄기를 썩썩 베어내어, 어긋나게 걸쳐 세워두었다. 마당에서는 막바지 익은 고추가 두툼한 몸에서 물기를 빼며 버석버석 태양초로 말라갔다. 꼿꼿하던 해바라기도 고개를 땅으로 떨구며, 꽃잎은 시들고 씨앗이 영글어 갔다.
아침저녁으로 풀벌레 소리가 또렷해졌고, 발밑에 밀쳐 두었던 까슬한 이불은 새벽이면 다시 끌어당겨졌다. 가을이 다가오는 사이, 크고 작은 태풍이 몇 차례 스쳐 지나갔다.
동네에는 단짝 친구 선아가 있었다. 엄마들끼리도 이름을 부르며 친구처럼 지냈다. 필요한 물건은 서로 빌려 쓰고, 급한 일이 생기면 이른 아침에도 찾아갈 만큼 허물없는 사이였다. 선아 부모님은 온순하고 정이 많기로 동네에서 손꼽히는 분들이었다.
선아 아버지는 키가 크고 눈매가 또렷한 호남형으로, 말수는 적었지만 늘 사람 좋게 허허 웃으셨다. 말이 느리고 더듬는 편이었지만, 그 또한 사연이 있다고 했다.
선아 어머니는 키가 작고 둥글둥글한 인상에, 유난히 큰 입으로 웃음이 시원하게 터지는 분이었다. 그 웃음소리는 우물가까지 퍼질 만큼 환했다.
성품 좋은 두 분을 닮아 다섯 남매도 모두 순하고 반듯하게 자랐다.
일곱 식구가 살기에는 조금 비좁다 싶은 집이었지만, 그 집에는 늘 아이들이 모여들었다. 우물가 옆이라는 이유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두 분의 너그러운 성품 때문이었다. 장난꾸러기들이 무슨 짓을 해도 크게 나무라지 않으셨다. 그저 허허 웃으시면, 그걸로 다 괜찮아졌다.
동네 대부분이 백열등을 쓰던 때에도, 그 집에는 등잔불과 남포등이 켜졌다. 등잔불 켜는 일이 신기해 보여, 성냥을 그어 불을 붙였다 껐다 하며 몇 번이고 장난을 치곤 했다.
선아의 막냇동생은 터울이 커서 분유를 먹고 있었다. 선아는 분유통을 열어 크게 한 숟가락 떠 입에 털어 넣더니, 비밀로 하자는 눈짓과 함께 내게도 한 숟가락을 건넸다. 하지만 입가에 묻은 흔적 때문에 곧 들통이 나고 말았다.
늦게 본 선아네 막냇동생이 허약해 걱정이 많았던 터라, 어느 날은 영양제로 원기소를 사왔다. 막냇동생만 먹이기로 단단히 일러두었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한 통이 통째로 비워졌다.
그럴 때도 선아 엄마는 그저 웃으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동생 먹이라고 샀더니, 큰 것들이 다 먹었네. 막둥이 아프면 너희가 업어줘야 해.”
동네에 염소 바람이 일었다. 흑염소를 먹고 효험을 봤다는 이야기가 돌자, 집집마다 엄마들이 염소를 들이려 했다. 학교에서 돌아오니 마당 가에 새끼 염소 한 마리가 쇠꼬챙이에 묶여 있었다. 그날부터 염소 담당은 내 몫이 되었다. 비를 맞히지 말라는 당부가 뒤따랐다.
염소 자랑을 하려고 선아네 집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도착하기도 전에 “메에메에”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선아네 집에도 똑같은 새끼 염소가 묶여 있었다.
다음 날부터는 등교 전에 염소를 농수로 근처 닥나무에 매어두었다. 남의 밭이나 논에 들어가 작물을 망치지 않도록 늘 신경을 써야 했다. 염소가 먹일 풀도 마땅치 않아, 농수로 주변을 벗어날 수 없었다. 하교 후에는 다시 염소를 데려와야 했다.
처음에는 신기하고 귀여워 힘든 줄 몰랐지만, 점점 일이 번거로워졌다. 염소가 자랄수록 힘이 세져, 끌고 가는 대로 순순히 따라오지 않고 제멋대로 버티기 일쑤였다. 친구 집에 놀러 가서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서둘러 돌아와야 했고, 수업 중 소나기라도 쏟아지면 염소 생각에 마음이 급해졌다.
그렇게 제대로 놀지 못한 날이면, 괜스레 화가 나 닥나무 가지로 염소 등을 톡톡 쳤다. 그럴 때마다 염소는 몸을 피하지도 않고, 오히려 나를 향해 얼굴을 들며 반갑게 울어댔다.
“내일 태풍이 온다고 하니, 방죽 너머 사는 학생들은 등교하지 말아라.”
종례 시간에 담임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학교 뒤에는 큰 방죽이 있었고, 그 너머 동네 아이들은 방죽 한가운데 난 오솔길로 통학했다. 비가 많이 오는 날이면, 길이 잠기기 전에 서둘러 하교하라는 방송이 나오기도 했다.
다음 날 아침, 먹구름 사이로 해가 비칠 듯 말 듯했다. 비는 오지 않았고 바람도 잔잔했다.
“뭐야, 태풍이라더니 비도 안 오고. 귀찮게 염소 또 매어놔야겠네.”
엄마는 오후에 비가 올 수도 있다며 우산을 챙기라 하셨지만, 나는 별생각 없이 염소를 농수로 옆 닥나무에 매어두고 학교로 향했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지자, 창문이 덜컹거릴 만큼 바람이 거세게 불기 시작했다. 조회대의 높은 기둥에 매달린 태극기가 요란하게 펄럭였다. 먹구름이 낮게 내려앉아, 교실 안이 초저녁처럼 어두워졌다.번개가 번쩍이며 하늘을 갈랐다.
“방죽 너머 학생들은 즉시 하교하라.”
교내 방송이 울렸다. 그제야 아침에 매어둔 염소가 떠올랐다. 하지만 염소 때문에 먼저 가야 한다는 말은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다.
오후가 되자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빗줄기는 굵어졌고, 바람은 거세져 플라타너스가 쓰러질 듯 흔들렸다. 전체 하교하라는 방송이 울렸다. 굵은 비보다 바람이 더 무서웠다. 우산을 펼쳤지만 소용이 없었다. 바람에 뒤집히고, 온몸이 순식간에 젖었다. 눈도 제대로 뜰 수 없었다.
집에 들르지 않고 곧장 염소를 데리러 갔다. 농수로 물이 넘칠 듯 출렁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닥나무에 매어둔 염소가 보이지 않았다. 빗물을 훔쳐내며 주변을 살폈다. 혹시 누가 집으로 데려갔나 싶어 달려가 보았지만, 헛간은 텅 비어 있었다.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태풍이 온다는데… 왜 그대로 매어뒀지.’
오빠와 함께 다시 닥나무 쪽으로 향했다. 가까이 가 보니, 가지 하나가 꺾여 있었다. 염소가 비바람 속에서 버티다 부러뜨린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인지 알 수 없었다.
귀찮다고, 염소를 미워했던 마음이 떠올랐다. 그 생각이 가슴을 더 세게 눌렀다. 끝내 염소를 찾지 못했다. 태풍 속으로 우리 집 염소는 사라졌다.
거센 비바람에 이삭 무게를 이기지 못한 벼들이 쓰러지고, 논에는 물이 가득 차올랐다. 어른들은 삽을 들고 비바람 속으로 나갔다. 물꼬를 터 농수로로 물을 빼내야 했다. 흙탕물이 묻은 벼 이삭을 일으켜 세우고, 지푸라기로 몇 가닥씩 묶어 세웠다. 선아네 논은 동네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고, 선아 아버지도 그곳으로 향했다.
염소를 잃어버린 걱정에 훌쩍이며 책가방에서 젖은 책을 꺼냈다. 태풍 덕에 숙제도 없었지만, 마음은 전혀 가볍지 않았다. 야단맞을 일을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해졌다. 문득, 선아 엄마였으면 어땠을까 싶었다. 괜히 선아가 부러웠다.
그때, 엄마가 흙빛 얼굴로 들어오셨다.
“선아 아버지 돌아가셨단다. 아이고, 어찌 살까.”
엄마의 말은 이랬다. 선아 아버지는 뇌전증을 앓고 계셨고, 말을 더듬는 것도 그 후유증이었다. 논에서 물꼬를 트던 중 발작이 일어나 쓰러지셨고, 물이 찬 논바닥에서 끝내 일어나지 못하셨다. 어른들은 쓰러진 벼를 세우느라, 그 사실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다.
태풍이 지나간 뒤, 논도 집도 엉망이 되었고, 염소와 함께 선아 아버지도 돌아오지 않았다.
태풍은 바람이 아니었다. 사람이 막거나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땅속 깊은 숨을 뒤집어 놓는 거대한 숨결처럼 밀려왔다. 고요하던 들판은 한순간 몸을 떨고, 벼 이삭들은 서로를 붙잡은 채 흔들렸다. 공들여 일군 곡식들은 물속에 잠겨, 농부의 시간과 손길을 말없이 삼켜버렸다. 잠깐의 방심으로도, 지키고 싶던 것을 잃게 만드는 힘이었다. 나는 그날, 염소를 잃었다.
지나간 자리에는 남은 것이 아니라, 사라진 것들만이 또렷하게 남았다. 그 앞에서 사람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다. 그저 잃은 것을 받아들이고, 남은 것을 붙잡는 일뿐이었다. 그럼에도 땅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다시 숨을 고르고, 젖은 가족들은 어둠 속에서 또 한 철을 궁리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