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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테 Aug 19. 2024

된서리 맞은 서리

동조자가 주범이 되었다

  대문그림 출처-네이버 카페 연필스케치 유유




그날은 오전수업만 있는 토요일이었다. 오전 수업이 끝나면 재빨리 담당구역의 청소를 마치고 종례를 한 후 1~6학년까지 전체 학생들이 모두 운동장으로 모인다. 보통 특별한 전달사항이 없으면 선생님께서 종례를 인사로만 대신하고 일찍 끝내신다.

한 학년에 4 학급씩 전체 24 학급이 모두 운동장에 모여서 치르는 특별귀가 활동이 있기에 늦어서는 안 되는 줄 모두 알고 있다.


 평일에는 학년별로 하교시간이 각각 다르기 때문에 개별 하교를 한다. 그러나 토요일엔 전교생이 모두 운동장에 모인다. 운동장 조회대 앞쪽으로는 동네 이름이 쓰여있는 깃발을 든 6학년들이 서 있다. 그러면 자기가 속한 마을의 깃발 앞에 도착하대로 2열 종대 줄을 선다. 전교생이 다 모였다 싶으면 교장선생님의 훈화가 있고 체육선생님의 지도하에 국민체조를 한 번 한다. 그리고 마을 이름을 호명하는 대로 스피커에서 울려 나오는 행진곡풍 음악에 맞춰 동네별로 하교한다.

왜 전체 하교를 했는지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언니, 오빠랑 함께하는 하교가 나름의 즐거운 일이어서 토요일이 기다려지기도 했다. 또 수업도 일찍 끝나는 날이니까.


그런데 평소와 달리 그날 선생님은 청소를 마치고도 인사대신 당부말씀을 하셨다. 창 밖으로 보니 벌써 거의 모든 학생들이 모여 있는 듯한데 마음이 급해졌다. 늑장을 부리다간 우리 동네가 가장 늦게 하교할 텐데 내심 걱정이 되었다.  마음과 달리 선생님께서는

"요즘 어떤 녀석들이 서리를 하는지 학교로 서리했다고 혼내주라는 전화가 온다. 어느 마을에 사는 누가 서리했는지 이름까지 다 밝히니까 서리하지 말고 조용히 보내다가 등교하도록!! 알겠나??"

아니 그런 엄청난 일을 누가 한다고 그러실까? 다 운동장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빨리 끝내주시지. 반장의 구령에 맞춰 인사를 하고 부리나케 운동장으로 총알처럼 튀어나간다.




언니랑 오는 길은 즐겁다.  내가 2학년 때 전교 학생회장이었던 우리 오빠도 함께 하교했을 텐데 내 기억에 없는 것은 오빠는 친구들과 장난치며 하교하느라 그랬을 것 같다. 우리 언니는 동생을 참 살뜰히 챙겨서 친구가 준 간식거리가 있으면 먹지 않고 가방 속에 넣어 뒀다가 이때 꺼내준다. 매번 그런 것은 아니지만 동생 생각을 많이 했던 언니다. 그런 언니가 고마워서 나도 그렇게 한다. 가방 앞주머니나 내 옷 주머니 속에서 뽀빠이 과자나, 쫀드기, 아폴로, 꾀돌이, 볶음 땅콩, 자두, 찐 밤 이런 것들이 계절에 따라 다르게 채워져 있다. 이런 것들을 먹으면서 이야기 나누며 하교하는 길이 그렇게 즐겁다.


고구마줄기(고구마순) 김치. 고구마를 많이 심었던 이  지역 여름철 내내 먹는 별미김치.


땡볕에 40분 정도를 걸어서 집에 도착하면 목도 마르고 배도 고프다. 그러면 바쁜 엄마는 부재중이시고 언니가 얼른 부엌에 들어가 손을 씻고 밥상을 챙긴다. 언니를 도와 나도 우물로 간다. 주황색 뚜껑이 있는 플라스틱 통을 줄에 매달아 우물에 넣어둔 끈을 잡아당겨 통을 건져낸다. 그 안에는 노랗게 익은 여름 열무김치나 고구마순(고구마줄기) 김치가 담겨 있는데 항상 빠지지 않는 여름 반찬이었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엔 우물에 그렇게 김치를 보관했다.

 솥뚜껑을 열어보면 자반고등어찜이 얌전히 들어있기도 하고 깍뚝감자조림 양파볶음 등 대충 있는 반찬을 꺼내 시원한 물에 밥을 말아먹는다. 설거지는 언니 몫, 나는 청소, 막내는 쉬고 오빠는 마당 쓸기지만 동생들을 살살 구슬려 어떻게든 책임을 전가한다. 오빠들이란 쯧쯧. 보통은 신호등색깔의 왕알사탕이 주로 구슬리는 도구로 쓰인다. (그러다가 동생들 부린다고 나중에 엄마한테 크게 혼났다)

이미지출처 중고나라 카페


가방은 한쪽에 던져놓고 숙제는 내일도 있으니까 미뤄두고 마당에 있는 평상에 누워 뒹굴뒹굴 놀다가 아침에 쪄 둔 옥수수를 한 개씩 들고 먹는다. 심심하다. 뭔가 놀거리를 찾는다. 마땅하게 없다.

그때 언니 친구가 놀러 왔다. 눈을 번득이며 뭔가 비밀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며 말을 꺼낸다.

짐작하신 대로 맞다. 바로 서리.




우리 동네 밭에는 주로 농작물이 자라고 있고 과수원이라고는 시내로 나가는 길 쪽 동네 끝에 있는 사과과수원뿐이다. 거기까지는 우리의 활동무대가 아니기에 자주 가지 않는다.

이런 동네 밭에는 고구마, 들깨, 참깨, 고추 이런 작물들이 주로 자라는데 그 해에는 언니 친구집에서 참외를 밭에 심었다. 태어나서 참외 밭이라고는 생전 처음인지라 언니 친구집에 놀러 간 언니를 부르러 갈 때 오며 가며 참외가 자라는 것을 신기하게 보곤 했었다. 오이꽃 닮은 노란 참외꽃이 피더니 동글동글 조그마한 참외가 열렸다. 점차 자라더니 제법 주먹만 해지고 색깔도 연노랑으로 변해갔다. 경이로운 광경이었다. 그러나 참외밭에 가까이 갈 수 없었으니 그 밭을 매의 눈으로 지키고 있는 주인이 있었다. 바로 언니 친구인 선화언니의 큰 오빠.


선화언니 큰오빠는 어릴때 소아마비를 앓아서 다리 한쪽이 불편하다. 키가 큰 그 댁 어르신들을 닮아 큰 키에 다부진 어깨가 우락부락한데 다리 한쪽이 짧아서 목발을 짚고 다닌다. 눈이 부리부리하고 각진 얼굴이 범상치 않은 인상을 주어 선화언니와는 일곱 살 차이인데도 무섭게 느껴진 분이다. 그때 아마도 갓 스무 살쯤 된 청년이었을 것이다. 그런 큰 오빠가 밭을 감시하고 있으니 궁금해서 구경을 하고 싶어도 갈 수가 없다. 언니를 부르러 갔다가도 그 오빠가 밭 근처에만 나타나면 얼른 언니 이름부터 불러댔다. '난 참외 보러 온 게 아니라 언니 데리러 왔어.' 하고 내 마음을 대변하듯.


그런데 비밀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며 그 큰 눈을 번득이며 다가오는 언니는 바로 선화언니. 그러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 은미야, 지금 우리 오빠가 심부름 갔거든. 우리 오빠 없을 때 우리 참외 몇 개 따먹자."

아니 이게 무슨 소리? 참외밭주인 딸이 참외 서리를 하자는 말이다. 왜 참외밭주인 딸이 참외서리를??

참외를 가정용 간식으로 먹으려고 심은 게 아니라 판매용으로 심었으니 맘껏 따먹을 수 없다.  판매해야 할 참외를 어린것들이 손대면 참외 덩굴이 망가지는 것은 뻔한 일이다. 어느 것이 잘 익은 것인지 선별을 잘 못하니 이것저것 다 따냈다가 맛없는 것은 버리게 되는 일이 벌어지곤 했으니까. 그래서 무서운 큰 오빠가 서리꾼을 막으려 밭을 지키고 있었다.


아니, 오늘 담임 선생님이 종례 때 절대 서리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는데 서리라니. 나는 사소한 장난은 좋아하지만 나름의 모범생이라서 하지 말라는 선생님의 말씀을 어기지 않는 착한 어린이.

절대 있을 수 없다. 그런데 왜 이렇게 가슴이 콩닥콩닥 두근두근하지? 운동회날 달리기 출발 선 앞에  선 것처럼. 이것은 참외서리와 착한 어린이 사이에서 밀당하는 내 마음. 자꾸 착한 어린이가 참외서리에게 힘이 달려서 끌려간다. 이를 어쩌지? 이미 마음이 넘어가고 있는데 언니 표정을 보니 함께 눈이 번득이고 목소리가 급격히 낮아진다. 서리에 대한 구체적 실행계획을 세우는 것인가? 나는 입을 꾹 다물고 듣고만 있었다.

내 선택은 두 가지. 밀행에 손을 넣느냐, 아니면 안 된다고 찬물을 확 끼얹어주냐. 침묵은 수긍의 표현이던가. 나는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어느새 서리 계획에 빠져들어가고 있었다.




두 언니 뒤를 살금살금 따라갔다. 먼저 선화언니가 집으로 들어가서 큰오빠가 있는지 확인을 했다. 큰오빠 없음. 보초병이 없으니 참외밭은 우리 것. 혹시 길을 지나가시는 어르신이 계실까 봐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내 임무는 무서운 큰 오빠가 오는지 안 오는지 망을 보는 것. 그러면 두 언니가 밭에 들어가 얼른 참외를 따갖고 오면 미션 완수. 작전이 개시되었다.

면사무소나 시장, 가게가 있는 상가가 밀집한 곳으로 나가려면 우리가 학교를 오가는 그 길로 동네를 빠져나가야 한다. 사과 과수원이 있는 쪽 길은 시내 나가는 버스를 타러 가거나 공동묘지구역 갈때 외에는 다니지 않는 길이다.


나는 당연히 통행이 빈번한 그쪽 길을 눈 아프게 응시하였다. 참외는 덩굴식물이라  서리 하는 두 언니 몸을 감춰주기에는 너무 낮았다. 군대도 다녀오지 않은 두 언니가 포복도 잘한다. 기어서 참외밭까지 가서 두리번두리번 익은 참외를 고른다. 잎사귀  밑에 숨어있는 참외를 잘 골라 가장 노란 참외로 찾아내야 한다. 무보다 못한 참외를 먹을 수는 없지. 두 언니가 나를 봤다 참외를 다 시선을 교차하며 서리를 한다.

 

만약에 발각이 된다면? 나는 길에 서서 망을 보고 있으니 서리와는 무관한 착한 어린이. 단지 언니를 찾으러 왔을 뿐이라고 아무것도 모른채 하면 된다는 나름의 시나리오도 꾸며 놓는다. 이런 사악한 반역자같으니라고.


 언니 티셔츠 앞섶이 제법 불룩해져서 우리가 실컷 먹고 남을 만큼 참외를 따낸 듯했다. 이제 조용히 기어서 참외밭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진 과수원 쪽 길을 퇴로로 선택해 달리면 미션완수가 된다. 슬금슬금 참외밭을 기어 나왔다. 언니가 일어서서 내게 몇 개의 참외를 건네준다. 손에 들고 달리기엔 조금 무겁다 싶지만 이런 기회가 없다. 남김없이 다 갖고 달려보자.




엉거주춤 달리려고 일어서서 외딴집 모퉁이를 돌아서는 순간. 아뿔싸. 하필 무시무시 큰 오빠의 행선지가 면소재지가 아니었나 보다. 시내 나가는 사과 과수원 쪽 길에서 딱 마주치다니. 뭔가 중요한 것을 두고 온 듯 집으로 다시 돌아오는 길이었다. 순간 얼음. 발이 땅에 달라붙었다. 도망쳐야 하는데 그 부리부리한 큰 눈앞에서 어쩔 줄을 모르겠다. 그때 선화언니가 하는 말.


"오빠, 얘네들이 참외서리한 거 내가 못 가져가게 하려고 지금 빼앗는 중이야. 이거, 참외 봐봐. 얘네들이 땄어." 


하고 손에 들고 있는 참외를 자기네 오빠 앞으로 내밀었다. 아 , 이게 아닌데?? 내가 짜낸 시나리오대로 하려면 내 손에 참외가 들려있으면 안 되는데?? 일이 꼬였음을 단번에 알게 된 순간 머리가 돌았다.


참외도둑이 되어 줄행랑쳐야 시간이 된 것이다. 언니와 서로 눈빛이 마주치자 앞섶의 참외를 주루르 땅에 쏟아놓고 죽어라 뛰었다. 집으로 가면 동네방네 다 알게 될 테니 동네를 벗어나는 길을 선택할 수밖에. 언니와 내 생각은 일치했다. 언니가 철도 건널목 쪽으로 방향을 튼다. 거길 건너면 논으로 펼쳐진 들판이라 동네 사람들이 우리가 참외 도둑이라는 것을 알기는 어렵다. 뛰고 뛰었지만 무시무시한 오빠가 목발을 짚고도 너무 잘 쫓아오고 있었다. 운동회때마다 계주 선수인, 나름 잘 뛴다는 내가 도저히 도망갈 수 없는 거리까지 좁혀졌다. 언니가 다시 동네 쪽으로 방향을 돌려 철도 건널목을 건넌 순간 나도 급히 언니를 따라 건넜다. 그때 시내 쪽에서 기차가 달려오는 게 저 멀리 보였다. 철길 건널목은 움푹움푹 요철이 많아서 목발을 짚고 건너기엔 시간이 부족하다. 기차에서 빠~~~앙 하는 기적 소리가 난다. 부리부리 오빠가 건너기를  포기한 듯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한 마디 소리쳤다. 

" 너희들 몇 반인지 다 알아내서 학교에 전화할 거다. 참외서리 했다고."

이젠 동네에서 혼나는 게 문제가 아니라 학교에 알려지는 게 문제. 더 큰일이다. 언니와 나는 생선 먹은 고양이가 되어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왔다. 참외는 한 개도 못 먹고 도둑이 되었다. 서리하자고 제안했던 선화언니는 무사하고 동조한 우리가 주범이 되었다. 도둑은 도둑이지. 큰일이다. 이를 어쩐다. 월요일 학교 갈 일이 꿈만 같아서 밥도 먹기 싫고 우린 최대한 조용히 고분고분하게 집안에서 일요일을 보냈다.


월요일 학교 가면 선생님께서 뭐라고 하실까. 학교 안 가는 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인데 도살장 끌려가는 돼지처럼 학교에 갔다. 월요일 조회시간.


"새터마을 참외서리 누가 했어? 당장 앞으로 나와!!"


이 말씀이 들려올 텐데 나는 거의 죽을 지경이 되어 벌벌 떨고 있었다.  그때 선생님께서   


"다들 별일 없이 잘 지냈나? 결석자도 없고 그럼 됐으니 반장, 인사."




선화언니의 부리부리한 큰 오빠는 말만 그랬을 뿐 학교에 전화는 하지 않았다. 다행이기도 했지만 미안했다. 우리를 잡겠다고 목발을 짚고 달렸을 생각을 하니 너무 철없는 행동이었다. 그 시절이야 서리를 범죄로 여기지는 않았지만 어쨌건 큰 일을 치른 우리는 한동안 동네를 죄인처럼 조용히 다녔다. 다행히 부모님께도 동네, 학교에도 꾸러기 만행이 알려지지 않았다.

언니는 뒤로 선화언니랑 한참을 놀지 않았다.

내 생애 첫서리가 된서리를 맞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한창 혈기 왕성한 스무 살 청년이 불편한 몸 때문에 고등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고 집에서만 지내려니 얼마나 답답했겠는가. 그러니 부리부리 큰 눈에 원망이 담겨있고 늘 표정이 성난 사람처럼 보였던 건 당연했겠지. 지금도 친정 동네에 가면 전원주택처럼 집을 이쁘게 지어놓고 구순이 넘은 아버님 모시고  선화언니 큰 오빠가 살고 계신다. 그때의 서리도둑은 정식 사과도 드리지 못하고 분의 여생이 편안하기를 기원하는 마음만 가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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