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문그림 출처-네이버 카페 연필스케치 유유
오전 수업만 있는 토요일이었다. 평일에는 학년마다 하교 시간이 달랐지만, 토요일이면 전교생이 운동장에 모여 함께 하교했다.
그래서 청소를 마치고 나면 종례도 길지 않았다. 인사만 간단히 하고 끝나는 날이 많았다.
그날은 달랐다.
담임선생님께서 평소와 다른 당부를 덧붙이셨다.
“요즘 어떤 녀석들이 서리를 하는지, 혼 좀 내 달라는 전화가 온다. 누가 했는지 이름까지 밝히니까 말썽 없이 지내다 등교하자.”
언니 친구인 정미 언니네 밭에는 그해 참외가 심어져 있었다. 오이꽃을 닮은 노란 꽃이 피더니, 어느새 동글동글한 열매가 맺혔다. 주먹만큼 자라고, 색도 연노랑으로 익어 갔다.
그 모습이 신기해 자꾸 눈길이 갔지만, 밭 가까이에는 쉽게 다가갈 수 없었다. 그곳을 지키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미 언니의 큰오빠였다.
큰오빠는 소아마비를 앓아 한쪽 다리가 불편했지만, 눈이 부리부리하고 각진 얼굴은 범상치 않은 인상을 주었다. 동네에서 마주치기만 해도 괜히 몸이 움츠러들었다.
언니를 부르러 그 집에 갔다가도, 큰오빠가 밭 근처에 보이면 먼저 언니 이름부터 크게 불러댔다.
‘나는 참외 보러 온 게 아니라, 언니 데리러 온 거야.’
속으로 그렇게 되뇌곤 했다.
어느 날, 정미 언니가 놀러 왔다. 정미 언니는 눈을 번뜩이며 어딘가 비밀스러운 기색으로 우리 언니에게 말을 꺼냈다.
“지금 우리 오빠 심부름하러 갔거든. 큰오빠 없을 때 참외 몇 개 따먹자.”
참외밭 주인의 딸이 자기네 참외밭 서리를 먼저 제안한 셈이었다.
그 밭의 참외는 판매용이었다. 마음대로 따먹을 수 없는 것이었다. 게다가 서툰 손이 닿으면 덩굴이 상할 것이 뻔했다.
종례 시간에 들었던 담임선생님의 말씀도 떠올랐다. 분명 서리를 하지 말라고 당부하셨다. 나는 나름 모범생이었다. 하지 말라는 일은 하지 않는 편이었다. 그런데 가슴이 자꾸 두근거렸다. 참외를 따고 싶은 마음과, 그러면 안 된다는 마음이 서로 부딪혔다.
언니의 표정을 보니 이미 마음이 기운 듯했다. 눈빛이 반짝였고, 목소리는 낮아졌다. 두 사람은 서리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빠르게 주고받기 시작했다. 나는 그 사이에서 입을 다물고 있었다. 말릴 것인지, 함께할 것인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침묵은 수긍이었을까. 어느새 나는, 그들의 계획 속으로 조용히 들어가고 있었다.
두 언니를 뒤따랐다. 먼저 정미 언니가 집 안을 살폈다. 큰오빠가 없는 것을 확인하자, 참외밭은 잠시 우리의 것이 되었다.
작전이 시작됐다. 두 언니가 밭으로 들어가 참외를 따오고, 나는 바깥에서 망을 보는 역할이었다. 참외는 덩굴식물이라 몸을 숨기기에는 턱없이 낮았다. 두 언니는 납작 엎드린 채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나는 길을 살폈다. 면사무소로 이어지는 길과, 사과 과수원으로 이어지는 길. 면사무소 쪽은 학교를 오가는 길이라 사람의 발길이 잦았고, 과수원 쪽은 버스를 타러 갈 때를 빼고는 거의 다니지 않는 길이었다.
나는 통행이 많은 면사무소 쪽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혹시라도 들키면, 나는 그저 언니를 찾으러 온 모범생일 뿐이라고 둘러댈 생각까지 해 두었다.
그사이 언니들의 티셔츠 앞섶이 점점 불룩해졌다. 실컷 먹고도 남을 만큼 참외를 따고 있었다. 이제 남은 건 도망치는 일뿐이었다.
참외밭에서 최대한 멀어지도록, 우리는 과수원 쪽 길을 퇴로로 잡았다. 슬금슬금 밭을 기어 나왔다. 언니가 먼저 일어나더니, 내 손에 참외 몇 개를 쥐여 주었다.
그런데 아뿔사. 달리려고 외딴집 모퉁이를 돌아서는 순간, 딱 마주쳤다. 하필 큰오빠는 면 소재지가 아니라 과수원 길로 오고 있었다. 발이 땅에 붙은 듯 떨어지지 않았다. 도망쳐야 하는데, 그 부리부리한 눈앞에서 몸이 굳어 버렸다.
그때였다. 정미 언니가 손에 들고 있던 참외를 오빠 앞으로 내밀었다.
“오빠, 참외 서리한 거 못 가져가게 지금 빼앗는 중이야. 얘들이 땄어.”
머리가 핑 돌았다. 내가 꾸며 두었던 변명과는 완전히 어긋난 상황이었다. 내 손에도 이미 참외가 들려 있었다. 졸지에 나와 언니는 참외 도둑이 되었다. 언니와 눈이 마주쳤다. 더 생각할 틈도 없었다. 앞섶에 품고 있던 참외를 주르르 쏟아 버리고, 그대로 뛰었다.
집으로 가면 동네에 금세 소문이 날 터였다. 그래서 우리는 동네를 벗어나는 길을 택했다. 언니가 철도 건널목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 너머는 논이 펼쳐진 들판이라, 그곳으로 나가면 추격을 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큰오빠는 목발을 짚고도 빠르게 쫓아왔다. 운동회 때마다 계주를 뛰던 나였지만, 점점 거리가 좁혀졌다. 언니가 다시 방향을 틀어 철도 건널목을 건넜고, 나도 뒤따라 뛰었다.
그때였다. 저 멀리서 기차가 다가오고 있었다. 건널목은 울퉁불퉁해 목발로 건너기엔 시간이 부족해 보였다. 기적 소리가 울렸다. 큰오빠가 건널목을 건너려다 멈췄다. 그리고 외쳤다.
“너희들 몇 반인지 다 알아내서 학교에 전화할 거다!”
동네에서 혼나는 것보다, 학교에 알려지는 것이 더 무서웠다. 언니와 나는 생선 훔친 고양이처럼 기가 죽어 집으로 돌아왔다. 참외는 하나도 먹지 못했다. 도둑이라는 낙인만 남았다.
서리를 제안한 정미 언니는 무사했고, 함께했던 우리가 주범이 되었다. 월요일 학교에 가야 한다는 사실이 막막했다. 우리는 일요일 내내, 괜히 더 얌전히 지냈다.
월요일, 코뚜레하러 끌려가는 소처럼 학교로 향했다. 조회 시간이 되면 분명 이런 말씀이 떨어질 것만 같았다.
“참외 서리 누가 했어? 당장 앞으로 나와.”
그 생각에 부끄러움과 두려움이 뒤섞여 온몸이 바짝 굳었다. 그때 담임선생님이 평온한 말투로 말했다.
“다들 별일 없이 잘 지냈나? 결석자도 없고, 그러면 됐으니 반장, 인사.”
아무 일도 없었다. 부리부리한 큰오빠는 말만 그렇게 했을 뿐, 학교에 연락하지 않았다.
다행이면서도 마음이 무거웠다. 목발을 짚고 우리를 쫓아오던 모습이 자꾸 떠올랐다. 그제야 우리의 행동이 얼마나 철없었는지 알 것 같았다.
그 시절에는 서리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도 했지만, 그 일을 겪고 난 뒤 우리는 한동안 죄인처럼 조용히 지냈다. 다행히 부모님이나 동네, 학교에도 그 일은 알려지지 않았다.
언니는 그 뒤로 한동안 정미 언니와 어울리지 않았다. 나에게는 그것이 생애 첫서리였다. 그리고 가장 매서운 서리이기도 했다.
이제 와 돌아보니, 기운 팔팔하던 젊은이가 성치 못한 몸 탓에 고등학교 길을 접고 집 안에만 묶여 지내야 했으니, 그 답답함이야 오죽했을까. 부리부리하던 큰 눈에 맺힌 그늘과, 성이 난 듯 굳어 있던 낯빛이 그럴 만도 했으리라. 그때의 서리 도둑은 끝내 변변한 사과 한마디 건네지 못했다. 그저 남은 날이 부디 편안하기를 빌어보는 마음만 품을 따름이다.
실패한 서리는 닿지 못한 손끝의 이야기로 남았다. 장난기 어린 속셈으로 다가가서 끝내 열매를 얻지 못한 채 돌아섰다. 손에 넣지 못한 열매들이야 어찌 되었는지 알 길 없다. 다만 그 곁을 스쳐 간 욕심은 혼자서도 얼굴 뜨거워지는 부끄러움이 되어 아련한 그 시절의 조각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