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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테 Aug 13. 2024

누가 그 물을 차지했나?

그 시절의 여름방학은 이랬다

초여름 탱글탱글하고 빨간 앵두열매가 익기 바쁘게 어린 손들이 앞다투어 한 움큼씩 따내어 입에 털어 넣다 보면 초록잎 사이에 빨간 점은 한 개도 남지 않는다. 뒤 이어 앵두와 비교할 수 없는 크기와 맛의 자두가 기다리고 있었다. 손끝으로 눌러도 지문하나 찍히지 않는 반들반들 단단한 자두가 초록에서 노르스름하게 변하기 시작하면 그땐 새콤 대신 달콤이 자리 잡기 시작한다는 신호다. 노란빛에서 주황으로 그리고 빨강으로 바뀌어야 제대로 몸값을 쳐주는 자두인데 꾸러기들 손이 가만 둘리가 없다. 주황으로 익기도 전에 노란빛 자두를 눈여겨봐 뒀다가 이 정도면 먹을만하다 싶을 때 얼른 따낸다. 하필 이 즈음이 장마가 한창 진행되는 때라 급한 마음만큼 자두가 빨개지지 않는다. 아침에 눈 뜨면 자두나무 밑으로 가서 어제 찜해놓은 자두를 살피지만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입에 고인 침만 삼키고 돌아선다. 그러다 우리 4남매 누구에게라도 빼앗길까 싶어 결국 붉어질 때까지 참지 못하고 손을 대고야 만다. 나중에 눈독 들인 그것이 사라지고 난 자리를 보는 허탈감에 막내는 한 번씩 땅바닥에 앉아서 발을 동동 구르기도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언니 오빠가 잽싸다 보니 어린 막내 차지가 어렵다. 가끔 양보도 있었겠지만 늘 억울한 건 막내였다.

대추열매와 곤충




까치밥으로 남긴 두세 개 자두가 나무에 남았을 때는 장마도 끝나가고 여름방학이 시작된다. 방학 첫날은 야심 차게 컴퍼스로 흰 도화지에 큼지막한 원을 그려 계획표도 세우고 며칠은 일기도 밀리지 않고 잘 쓴다.

동생 숙제도 챙겨준다. 그렇지만 작심삼일.

아침에 일어나서 밥상 앞에 앉아 그날 우리 4남매가 수행할 미션을 잘 챙겨 듣지만 놀다 보면 잊어버린다.

방학이잖나. 밥을 먹고 나서 어슬렁 하이에나처럼 놀거리를 찾는다. 바로 숙제나 공부를 했다면 지금의 내가 아니었겠지.

더위를 피해 친구네 집 감나무 아래 돗자리 앞으로 모여든다. 그래도 지나 다니시는 어르신들 눈이 있으니 옆구리에 방학숙제나 낡아서 너덜거리는 동화책은 한 권 끼고 가야지. 그 동화책 속에는 여학생이라면 누구나 좋아하는 종이인형이 들어있다. 갖가지 드레스며 테니스복, 수영복, 피크닉복. 우리 시골뜨기들은 입어보지 못했던 그런 옷차림에 구슬끈 가방에 이쁜 뾰족구두, 큼지막한 꽃장식의  넓은 모자까지. 눈이 휘둥그레진다.

이만하면 준비물은 되었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감나무 그늘이 어느 방향으로 이동할지 훤히 알고 있으니 오래까지 그늘이 유지될만한 자리를 선점해야 한다. 놀이에도 과학이 적용된다. 산수가 적용된다. 디자이너는 아니지만 종이인형을 책임 질 오늘의 코디네이터가 된다. 거기서 배 깔고 누워서 흥얼흥얼 노래 부르며 그림숙제 좀 하다가 한쪽에 치워놓고 공기놀이도 하고 종이인형으로 신세계에 빠져든다.

"아얏!! 누구야, 누가 내 머리 때렸어?" 놀다 보면 감나무에서 땡감이 머리 위로 톡 하고 떨어진다.


매미는 시끄럽게 울어대고 기차는 지축을 울리며 달구어진 선로를 덜컹덜컹 지나간다. 기찻길 옆 족제비싸리나무는 기차가 지나면서 일으킨 세찬 바람에 몸을 이리저리 휩쓸리는 여름의 한 낮. 넓은 호박잎도 기름 바른 듯한 토란잎도 더위에 축축 늘어진다. 놀이가 시들해질 즈음엔 감나무 그늘도 담장 너머 친구집 뒤꼍으로 숨어버린다. 이제 집에 점심 먹으러 간다. 바쁜 부모님 대신 언니가 우리의 밥상을 봐준다.


참깨꽃이 이쁘다


너무 더워서 시원한 물속이 간절하다. 그러나 머리채를 잡히고 운이 좋았던 날 이후로 나는 아무리 더워도 농수로에 가서 발이나 담그고 물텀벙 정도나 할 뿐. 오빠는 벌써 수건을 챙겨 들고 농수로 큰 빨래터로 내리 달린다. 동네 들판과 시내를 경계로 탑천이 흐르고 있는데 거기까지는 금기사항이다. 거긴 유속도 수량도 농수로와 비교할 수 없어서 익사사고가 간간히 일어나는 곳이기에 여름만 되면 부모님 단속이 매일 이어진다.

"들판 건너 갯뚝까지는 절대 가지 말아라." 오빠에게 하시는 말씀이다.

오빠가 이 약속을 지켰는지 어기고 큰 물의 유혹을 즐겼는지는 알 수 없다. 여동생 셋을 둔 오빠의 놀이는 우리랑 접점이 거의 없었으니까.


저 들판 중간쯤 탑천이 흐른다. 왼쪽은 고속철로(KTX  SRT운행)   오른쪽은 기존 철로


장마가 지나고 불볕더위엔 농수로도 수량이 줄어서 놀기에 재미가 적다. 이럴 땐 집 안에서 놀아야지.

부엌 앞에는 도르래에 달린 두레박 우물이 있었다. 얼마나 깊은지 물이 고여있는 우물 속을 들여다보는 것도 쉽지 않다. 시커면 우물 속으로 꼭 빨려 들어갈 것만 같다. 깊은 만큼 물은 얼마나 차가웠는지 막 길어 올린 물을 뒤집어쓰지 못할 만큼이다. 동네 가운데 있는 공동우물과는 다르다.

점심을 먹고 무료한 오후시간 우리들의 이벤트가 있었으니 바로 우물가에서 하는 물놀이.

김장 때나 꺼내 쓰는 타원형의 큰 다라이(대야라고 하면 그 맛이 안 나서 다라이라 쓴다). 넓이도 깊이도 어린 우리 두 명이 들어가기에 충분한 크기다. 거기에 도르래를 굴려서 물을 길어 올린다. 다라이가 커서 물을 한참 긷는다. 누구든 물놀이를 하려면 물을 길어 올려야 하는 나름의 규칙이 있다. 아무리 차은우처럼 간절한 눈빛을 보내도 물 긷는데 손을 보태지 않으면 차은우라도 소용없다. 언니와 내가 반복으로 물을 퍼올리지만 나보다 힘이 센 언니가 아무래도 더 횟수가 많다. 그래도 천사 우리 언니는 횟수에 눈감아 준다.

상추

우물이 깊다 보니 한참 길어 올리면 점심 먹은 게 다 소화가 될 지경이다. 물을 긷다 말고 언니는 큰 양푼에 미숫가루를 탄다. 설탕을 듬뿍 넣고 시원한 우물물을 부어 달달하게 만들어 놓는다. 물놀이하다가 속이 출출할 때 먹으려고 미리 준비해 놓는다. 비눗방울 놀이도 좀 하려고 퐁퐁(주방세제) 물도 그릇에 풀어놓아 준비한다. 물속에 들어앉아 비눗방울 부는 재미가 쏠쏠하다. 무지개색으로 비치는 비눗방울이 날아다니는 것을 보는 것은 또 다른 즐거움. 이제 큰 다라이에 물도 가득 채워져 가고 마침 막내는 낮잠을 자고 있고 딱 좋다.

언니랑 나랑 콧등에 땀 송골송골 맺히도록, 손바닥에 도르래 고무줄 마찰이 뜨거워지도록 물을 길었으니 겉옷만 벗어던져놓고 물속에 "풍덩" 하고 들어갈 준비는 다 되었다.


그때 순식간에 우리의 눈앞을 스쳐 지나가는 뭔가가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물속에 아직 발가락 한 개도 넣지 못했는데

"풍덩"하는 소리와 함께 다라이 밖으로 흘러내린 물이 내 맨 발을 적셨다.

이게 무슨 마른하늘에 날벼락,

'끝내주는 해결사'도 해결 못하는 소리란 말인가.


"아~~ 시원하다."  


그 말 뒤끝에 고개를 돌려보니 순식간으로 지나간 것은 바로 우리 오빠.

이미 우리가 큰 다라이 옮길 때부터 우리를 살쾡이처럼 훔쳐보던 오빠가 순간 뛰어든 것이다. 올림픽 금메달 선수만큼 빠르게 우물물이 가득 넘실거리는 큰 다라이에 돌격.


"아악~~~~~~~~~~~~!!!!!!"

 어쩔 수 없지. 언니와 나는 당장  달려가 오빠를 끌어내는 수밖에.

꽃사과


눈을 흘겨줄 만큼 매섭게 심술을 부리는 막바지 더위가 지나가고 있다. 하루에도 몇 차례씩 재난문자가 울려댄다. 그리고 워킹맘들의 힘겨운 사투도 점차 지쳐갈 때이다. 이젠 방학이 그다지 반갑지 않은 시절이 된 것 같다. 맞벌이 부부에게 양육을 전적으로 도와주실 부모님이라도 계시면 큰 도움인데 우리 아이들은 학교 돌봄 교실로 학원으로 더위 속에 스며든다. 코로나도 재 유행이라 하고 아프기라도 하면 발을 더 동동거린다. 워킹맘이 아니더라도 더위에 하루 세끼 밥상을 준비해야 하는 손길의 수고는 또 어떻겠나.

사랑이 아니면 감당할 수 없는 일들. 사랑은 그 위대한 힘처럼 여기저기에 감미료가 되어서 아이들을 먹이고 살린다. 부모님의 사랑이 그렇고 조부모님의 사랑이 그렇고 교사들의 사랑이 그렇다.


"어서 개학해야지!!! 어이구!!!"

를 아침마다 입에 달고 있는 취학연령의 학부모님과 조력자님들께 고마움과 응원을 시원하게 보내드리고 싶다.

"키워보니 그 시절 금방 갑니다."

 위로 같지 않은 위로를 속으로 읊조릴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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