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 무렵이면 모내기한 논의 모들이 어느덧 자리를 잡고 제법 굵어진다. 장대비에 앞서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따라 키 낮은 초록 벼들이 한결같이 흔들리면, 보는 이의 마음에도 연초록 기운이 스며든다.
별당 아씨가 곱게 탄 가르마처럼, 줄을 맞춰 가지런히 선 벼 포기들 사이로는 비에 불어난 논물이 잘름잘름 흘러간다.
어린 벼 사이에서 찰랑이던 논물을 박차고 청개구리가 불쑥 뛰어오를 때면, 나는 걸음을 멈추고 가슴을 쓸어내리곤 했다.
그 풍경 또한 한철 지나간 물결처럼, 이제는 되돌릴 길 없는 기억이 되고 말았다.
동네 앞을 가로지르다 철도 교각을 지나, 먼 들판 쪽으로 굽어 흐르는 농수로가 있었다. 폭은 들쭉날쭉했고, 그에 따라 수심도 제각각이었다. 송사리와 올챙이가 헤엄치던 물길이었다.
장마철이 되면 농수로의 유속과 수량이 가장 많아졌고, 그때가 연중 가장 맑은 물이 흐르던 때였다. 그 농수로에는 빨래터가 세 곳이나 자리하고 있었다.
세탁기와 짤순이가 흔하지 않던 시절, 우리는 동네 개울가와 공동 우물, 마당 귀퉁이의 펌프 샘에서 손빨래를 했다. 큰 빨래는 혼자 하기 어려워, 양쪽에서 서로 끝을 잡고 반대 방향으로 비틀어 물을 짜냈다. 그러다 한쪽 힘이 더 세면 균형을 잃고 넘어지기 일쑤였다. 그렇게 되면 막 빨아낸 빨랫감이 흙바닥에 떨어져 다시 빨아야 했다.
그래도 한바탕 웃고 나면, 그 번거로움마저 대수롭지 않게 느껴졌다.
점심을 먹고 감나무 그늘 아래 모여 앉아 감꽃을 실에 꿰어 목걸이를 만들었다. 그러다 해가 높이 올라 그늘이 보자기만큼 줄어들면, 우리는 하나둘 집으로 흩어졌다.
잠시 뒤, 양동이와 대야에 빨랫감과 비누, 방망이를 담아 다시 모였다.
이때 신발은 물가에서 신기 좋은 슬리퍼나 고무신이 제격이었다. 값도 부담스럽지 않아 잃어버려도 덜 아쉬웠다. 빨래터에서 놀다 보면 신발이 물에 떠내려가 끝내 찾지 못하는 일도 종종 있었다.
마을 어귀의 빨래터는 물이 넉넉했고, 콘크리트로 만든 세 단의 계단이 있어 빨래를 하거나 물놀이를 하기에 알맞았다. 옆 동네와 이어진 곳이라 더위가 절정에 이르면 늘 사람들로 붐볐다.
자리를 잡으려면 기다려야 할 때도 있어, 언니들은 잰걸음으로 뛰다시피 가 먼저 자리를 맡곤 했다. 좋은 자리는 늘 언니들 몫이었다.
언니들이 평평하고 빨래하기 좋은 자리를 잡으면, 남은 자리에는 물놀이를 하러 따라온 동생들이 자리를 펴고 앉았다.
빨래터까지 땡볕을 걸어오느라 온몸에 땀이 맺혔다. 빨래에 비눗물이 번지기 전에 먼저 세수를 하며 더위를 식혔다. 중학생 언니들은 제법 큰 빨래도 능숙하게 해냈다. 언니가 빨래를 하는 동안, 동생들은 양말 몇 켤레를 빨고 헹구기를 반복했다. 농수로에 물이 불어나면 물가 놀이는 더 풍성해졌다.
농수로 옆에 핀 토끼풀이 눈에 들어왔다. 빨래를 내려놓고 토끼풀을 뜯어 꽃팔찌를 만들었다. 꽃이 많을 때는 목걸이를 만들어, 빨래하는 언니 뒤로 가 조용히 목에 걸어주기도 했다.
발을 담그고 물을 첨벙거리면 물방울이 언니들 얼굴까지 튀었다. 언니가 흘겨보면 멈춰야 했지만, 장난기가 일면 오히려 더 세게 발을 동동 굴렀다.
물이 옷에 스며들자 언니들은 금방이라도 일어설 듯 몸을 들썩이다가, 방망이를 들어 물살을 튕기며 되받아쳤다.
잠깐 한눈을 판 사이, 언니가 빨던 오빠 교복 바지가 내 쪽으로 둥둥 떠내려왔다. 언니가 잡기에는 이미 늦은 거리였다. 내 앞으로 오면 좋으련만, 바지는 점점 농수로 가운데로 흘러갔다.
망설일 틈이 없었다. 더 멀어지기 전에 붙잡으려고 팔을 뻗었다. 바지 한쪽 가랑이를 움켜쥐었다. 다행이다 싶던 순간, 나도 함께 물속으로 끌려 들어갔다. 콘크리트 바닥을 벗어나며 빨래와 함께 떠내려갔다.
가장자리에서 물장구만 치던 나는 수영을 할 줄 몰랐다. 허우적거리며 물속을 들락날락했다. 언니가 애타게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쪽을 바라볼 여유조차 없었다.
그때였다. 머리채를 잡아당기는 손이 느껴졌다. 코와 입으로 물을 잔뜩 들이마신 채 겨우 고개를 들었다. 흘러내리는 물 사이로 구원자를 바라보았다.
“어이구, 깊지도 않은데 그냥 발을 딛고 서면 될걸.”
언니였다. 바닥에 발을 디디고 일어서니 물은 허리에도 차지 않았다. 물 밖으로 나올 때는 괜히 민망해, 무릎을 살짝 굽힌 채 비 맞은 족제비처럼 걸어 나왔다. 그 와중에도 손에는 떠내려가던 바지를 꼭 쥐고 있었다.
“빨래 끝날 때까지 물수제비나 뜨고 있어.”
나는 풀꽃을 만지작거리다 물수제비를 뜨며 빨래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물에 빠지지만 않았더라면 고무신으로 송사리를 잡으며 놀았을 텐데, 괜히 아쉬웠다.
고무신을 뒤집어 배를 만들어 띄우려 하자, 언니가 다시 눈을 흘겼다.
“물가에 내려오지 말고 가만있어.”
마을 어귀의 빨래터는 빨래만 하던 곳이 아니었다. 이야기를 풀어놓던 우리의 낮은 마당이었다.
햇빛이 수면 위에서 부서지면, 우리는 그 빛을 건져 올리듯 물을 찰박이며 놀았다. 비누 거품은 작은 구름이 되어 기엄둥실 흘러갔고, 돌에 부딪히는 물소리와 왁자한 웃음 속에서 시원해지는 맑은 기운이 일었다.
여름은 물빛으로 부서졌고, 물을 움켜쥘 때마다 더위는 한 겹씩 옅어졌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더 이상 빨래터에 가지 않게 되었다. 언니는 바빠졌고, 집마다 상수도 시설이 들어섰다.
빨래터에는 논일을 마친 어른들이 흙 묻은 농기구와 장화를 씻으러 드나들 뿐이었다. 유년을 벗어나며 빨래터와 농수로는 점점 내 삶에서 멀어졌다.
가끔 심부름길에 마주치던 농수로에는 물길이 잦아들었고, 송사리도 떠났는지 부초만이 물결 따라 흔들리고 있었다.
이제 그곳에는 물 대신 기억이 흐른다.
농수로를 정비하면서 구불구불하던 물길은 곧게 펴졌고, 빨래터는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 물가에 쪼그려 앉아 자근자근 손을 놀리던 날들도 함께 사라졌다. 이야기를 적시던 자리마저 걷혀 버린 것이 못내 서운하다.
사라진 것은 빨래터만이 아니라, 함께 흘러가던 시간의 결이었을지도 모른다. 손등을 적시던 시원한 물기와 그 위에 내려앉던 웃음도, 막힌 물길처럼 멀어졌다.
그 자리에 남은 것은 바람뿐인데, 바람마저 옛 물소리를 더듬듯 스쳐 간다. 그럼에도 이따금 어딘가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아련히 들려오는 듯하다. 돌아갈 길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