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예쁜 그릇이 있어.
방향도 일정하지 않은 상흔이
길고 짧게 마구잡이로 빗금 그어진
조금은 오래된 그릇 말이야.
내겐 중요하지 않았어.
얼마나 오래 함께 머물렀는지
그릇이 먼저였는지 내가 먼저였는지
그저 곁에 있으면 될 뿐.
내 예쁜 그릇은 운명을 품느라
뜨겁게 달구어졌다가 얼음처럼 차갑기도 했어.
끄윽끅 물새소리가 종일 닫혔던 입에서 나오면
기진한 채로 달빛 강가에 나가 누웠어.
우린 발 앞의 길을 걸으면 되는 거라고
아무도 듣지 못할 노래를
별같이 빛나는 내 예쁜 그릇에게
불러주었어 나는.
설움이 물처럼 흐르는 강가에서
내 예쁜 그릇을 정갈하게 씻어
깨진 잇새를 꽃잎으로 메워주고
누덕누덕한 그리움을 채워주고 싶어.
방을 오래 비웠다 돌아오던 날의
조금 낯설고 대단히 익숙한 방안 공기처럼
뒤안길을 돌고 돌아온 옛 사람이 댓돌에 벗어놓은 뒤축 구겨진 신발 한 켤레처럼
별같이 빛나는 그릇의 그림자로 남고 싶어.
그렇게 스며들고 싶어.
가까운 금강하류 강변에 다녀왔어요.
누군가의 생각 속에 머문다는 것,
누군가를 생각한다는 것은
참으로 외로운 일이고
또 그렇지 않은 일이기도 합니다.
한동안 익숙한 일상을 벗어나게 되었어요.
떠나기 전에 유년기 매거진 글을 한 편 예약발행해놓고 싶은데 가능할지 모르겠어요.
어쩐지 가능성이 희박해서 이 글을 대신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어요.ㅎㅎ
말로는 글쓰기보다 작가님 독자님들과의 소통이 더 재밌다고 하면서도 글쓰기에 미련이 조금은 있나봅니다.
얼마전에 잠깐 쉬고 오겠다고 공표를 해놓고는 여길 떠나지 못하고 계속 읽고 댓글 달고 라잇킷 누르고 있더라구요.
왜그랬을까 했더니 직전에 구독을 누르고 소통을 막 트게 된 작가님들이 눈에 밟혀서였어요.
라이테가 이렇게 우물쭈물 허당이랍니다.
그럼에도 소통해주셔서 감사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