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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테 Apr 30. 2024

소식이 오고, 심쿵...

연락없던 남편과 시동생 소식을 한 날에 들었다.

그의 소식을 받은 것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라는 5월 중순이었다. 

10여분 거리에 사시는 아버지께 드실 음식을 챙겨다 드리고 텃밭 채소 몇 가지를 뜯어서  아파트 주차장에 주차를 막 끝낸 직후였다.

오늘 음식을 갖다 드렸으니 닷 새 정도는 시골에  가지 않아도 되겠고 뜯어온 채소로 무슨 음식을 해드려야 할지 생각하며 가벼운 마음으로  신발에 묻은 흙을 털어내려던 참이었다.

 사흘 전 그에게 보낸 마지막 메시지에 왜 요즘 애들에게조차 연락이 없는지, 잘 지내는지 물었었다. 두 달 전쯤부터 소식이 끊겼다. 

전화나 문자메시지에  바로 답신이 오지 않더라도 근래에 이렇게 오래 연락이 안 되진 않았는데  무슨 일이 생긴 걸까 걱정이 커져가고 있었다.


 소식을 전한 이는 엉뚱하게도 아파트 관리사무소 여직원이었다.

저장해 둔 관리사무소 번호로 전화가 왔다.

"네, 여보세요?"

"**동 ##호 사시는 분이죠?"

"네. 무슨 일이지요?"

"방금 남편분 누나라는 분이 전화가 왔는데 집에 안계신지 연락이 안 된다고요."

"네. 제가 외출해서 방금 주차장에 도착했는데 무슨 일인지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남편이 두어 달을 연락이 없는 게 심상치 않았다. 게다가 시부님은 간경화로 소천하신 집안 가족력이 있고  마지막으로 집에 다녀갔던 그때 남편은 하루 4병의 술을 매일 마시고 있었다. 이러다가 큰 일을 피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 늘 불안 불안했다.

시부모님 두 분 모두 소천하셨고 남편 형제지간에 연락 끊긴 지가 15년인데 관리사무소에  전화까지 걸어 급히 찾을 일이 무엇이겠는가.

 관리소 그녀의 말에 의하면 오래전 연락이 끊긴 시누이가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의 관리사무실에 전화를 해서 내 연락처를 물었다고 한다. 규정상 입주민 전화번호를 직접 안내해 줄 수 없다고 하자,  집안에 중대한 일이 생겨서 꼭 통화를 해야 한다고 본인 번호를 전해달라고 했단다. 그 말 뒤끝에 남편이 위독해서 중환자실에 있다고.




순간 온몸에 피가 빠져나가 찌릿찌릿 저린듯하고 심장이 쿵 하고 낼 수 있는 최대한의 박동소리를 냈다. 정신이 아득해지고 뭘 어찌해야 할지  머릿속이 새하얗다는 말이 딱 그  순간이었다.  기어이 올 것이 오고야 말았고,  두려워하던 일을 나는 피해 갈 수 없구나...

그렇게 오래 소식이 끊긴 시누이(지척에 살고 있으나 그럴 수밖에 없는, 남보다 못한  관계로 남은 사연이 있다) 번호를 받고 집으로 올라왔다.

집에 오니

"엄마, 고모 목소리 같은데 자꾸 내 이름을 부르고 문을 두드렸어. 근데 안 열어줬어."

 딸아이가 말했다. 시누이가 맞았다. 인기척이 없으니 직접 관리사무소에 연락을 한 것이다.

바들바들 떨리는 목소리로 시누이와 통화를 했다. "올케, 난데 **이가(손 아래 시누이) 전화 왔어. 지금 ○○(남편)가 뇌출혈로 중환자실에 있대. 막둥이가 지금 하고 있는 일 마무리 하고 바로 올라간다고 해."

소식이 끊긴 그가  어느 도시 병원 집중치료실에 누워있다고 했다. 자세한 내용은 모르고 작은 시누이에게서 연락을 받아서 전해주는 것이라고 했다. 근무 중인 시동생이 하던 일을 마무리하고 서둘러 올라갈 채비를 할 거라고 했다.  1시간 후쯤 막둥이 일이 끝날테니 올라갈 거면 함께 가라는 말이었다.

비보를 아이들에게 알리니 순식간에 어린아이처럼  울기 시작했다. 딸이 대학 3학년,  아들이 고3이었다.

어디가 어떻게 아파서 집중치료실에 누워있는지, 왜 뇌출혈인지, 교통사고라도 난 것인지  영문을 모른 채 백팩에 간단한 간병 준비를 챙겼다.

코로나 시국에 병문안은 바로 될지,  PCR검사도 하지 않았는데 병원 출입은 가능할지 그런 생각은 할 수도 없을 만큼 넋이 나가있고 긴박했다.




이직을 한 지 한 달 밖에 되지 않았는데...

코로나 시국에 업계 상황이 좋지 않아 채용결정이 나고도 한 달 넘게 계속 출근날짜가 미뤄졌다. 겨우 출근한 지 한 달쯤 되었지만 눈앞의 기막힌 상황에 평정심을 유지할 수도 없었고 급작스런 결근으로 벌어질 상황 따위는  생각할 수 없었다. 떨리는 목소리  그대로 오너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늘 근무를 할 수 없게 되었어요. 남편이 집중치료실에 누워있는데 병원이 너무 멀어요. 병원에 도착해서 상황을 보고 다시 연락드릴게요. 갑작스레 죄송합니다."

양해를 구하는 게 아니라 일방적인 통보에 가까웠다. 이해심 많은 오너는 뒷 일은 걱정 말고 다녀오라고 하셨다.

곧바로 친정 오빠에게 전화를 해서 초지종을 얘기했다. 오빠의 목소리가 착잡했다. 조심히 다녀오라고 가서 자세히 알아보고 연락 하기로 했다.

1시간이면 일을 마무리한다던 시동생은 두 시간이 넘어서야 일하던 작업복  차림으로 도착했다.

큰 아이 아홉 살, 작은아이 여섯 살 때 이후 왕래가 없었으니 14년 만의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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