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회 파리올림픽이 막바지에 이르렀다. 현지시간으로 내일(8월 11일) 저녁 폐회식으로 16일간에 걸친 스포츠 경기와 축제의 막을 내리게 된다.
폐회식을 위해 스타드 드 프랑스는 거대한 콘서트 홀로 변신을 하고 100명이 넘는 공연자, 곡예사, 댄서 및 서커스 예술가가 출연하여 장관을 이룰 것이라고 한다.
206개국에서 10,500명의 선수들이 참가, 32개 종목에 329개 경기가 진행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금 13, 은 8, 동 7 합계 28로 메달 순위 7위를 기록하고 있다.
출전한 모든 선수들이 원하는 대로 시상대에 올라 메달을 목에 걸고 자랑스럽게 손을 흔들며 자국의 국가가 울려나기를 기대하며 올림픽에 출전했을 것이다. 올림픽 경기가 진행되면서 메달 소식과 함께 선수의 이력이 조명되기도 하고 협회와의 불협화음이 불거져 나오기도 했다.
나는 한 번 도 흘려본 적이 없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께서 흘리셨다는 그 피땀이 그들의 훈련에 비유되기도 한다. 얼마나 고되고 힘든 훈련이면 피땀 흘렸다는 표현이 적확할까?
시골 국민학교 100미터 단거리 육상선수 활동을 억지로 잠깐 했었던 나로서는 도저히 상상조차도 할 수 없는 그들의 훈련이다. 오죽하면 그들의 힘든 훈련을 지옥훈련이라고 말할까. 매스컴을 통해 지옥훈련이 보도될 때마다 강인한 정신력과 불굴의 의지에 나이를 불문하고 존경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태권도에서 16년 만에 금맥 계보를 이은 '언더독의 반란'을 일으킨 금메달리스트 김유진 선수. 그녀는 183cm의 큰 키로 하루 한 끼를 먹으며 57kg 체급을 유지하는 지옥훈련을 버텼다고 한다. 그녀가 경기를 위해 준비한 발차기는 한 번에 2시간씩 하루 만 번을 넘었다고 한다. 경기를 마친 김유진 선수에게 외신 기자들이 던진 질문은 "낮은 세계 랭킹이 걸림돌이 되지 않았나?"였고 김유진 선수는 "랭킹은 숫자에 불과하다. 랭킹이 하나도 신경 쓰이지 않았다."라고 당당히 말했다. 김유진 선수의 마인드가 잘 드러나는 인터뷰였다.
이런 대범한 선수에게도 운동을 관두고 싶을 만큼 힘든 훈련이 이어졌다고 한다. 운동뿐 아니라 몸관리도 처절하게 해야 했는데 체급에 맞는 체중에 도달하자 " 정말 행복했다.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라고 말했다. 그녀가 금메달을 딴 이후 가장 먹고 싶어 하는 음식은 맥주를 곁들인 삼겹살과 된장찌개였다.
세계 최 정상에 오른 금메달리스트가 가장 먹고 싶은 음식은 유명 셰프의 고급 요리나 세계적 특산품으로 만든 요리가 아닌 소박한 한 끼였다. 날마다라도 쉽게 준비해서 먹을 수 있는 메뉴다.
김유진 선수의 목표는 세계 선수권과 아시안게임 금메달까지 더해 그랜드슬램을 꼭 이루는 것이라고 한다.그녀의 이런 목표가 달성되기를 힘껏 응원한다.
그녀뿐만이 아니다. 올림픽에 출전하는 선수 전부가 오랜 시간 지옥 훈련을 버티고 자신을 통제하고 욕구와 싸워야 했다. 국가대표에 발탁되지 못한 마이너리그 선수들이라고 이와 다를까. 결코 그렇지 않다. 그들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목표에 도달하려고 사력을 다한다. 선수 당사자뿐 아니라 그들과 호흡을 함께 하는 코치와 감독과 한 팀을 이루는 또 다른 선수와 협회와 국가는 어떤가. 또 누구보다 성공하기를 염원하는 가족들의 눈물겨운 비하인드 스토리는 어떻고.
한 모임에서 알게 된 아끼는 동생이 있는데 그녀는 어릴 때부터 여러 운동을 거치다가 중학생 때 조정 종목에 정착해서 오랜 기간 조정선수생활을 했다고 한다. 그녀의 스토리만 해도 눈물 없이 들을 수 없었다.
나는 올림픽뿐 아니라 운동경기 관람을 그다지 즐겨하지 않는다. 놀이로 하는 게임도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내 휴대전화에는 게임앱이 단 한 번도 다운로드된 적이 없다. 명절에 하는 윷놀이도 그렇고 3명만 모이면 판을 깐다는 고스톱은 아예 방법도 모른다. 애초에 남을 이기려는 승부욕이 없이 태어난 것인지, 각박하고 치열한 세상에 승부욕이 없다 보니 그래서 삶이 지지부지 이 모양인지는 모르겠다.
경기관람 중 승부가 엇갈리고 뒤바뀌는 그 찰나의 조마조마한 마음을 도저히 즐길 수가 없다. 그것은 단순히 즐기지 못하는 마음을 벗어나 내게 일종의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이런 면에서 나는 루저쯤은 될 것 같다.
경기를 단순히 경기로 여기고 승부가 엇갈리고 명장면이 연출되는 그 순간을 즐겨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지난 주말에도 가족끼리 배드민턴, 탁구, 양궁 등 우리나라 출전 선수들의 경기를 TV로 시청했다. 그런데 경기에 집중하지 못하고 자꾸 내 시선이 다른 곳을 맴돌았다. 오죽하면 아들에게 "엄마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의무이행을 안 하시는 것 아니냐, 이러시면 애국자가 되기는 어렵다, 선수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함께 해야 한다" 등 이런 말을 들었을까. 아들은 가족끼리 흥미진진한 경기를 즐기며 소통하고 싶어 했지만 나는 충족시켜 줄 수 없었다. 그저 보는 둥 마는 둥 흘깃흘깃 흉내만 낼뿐이었다.
왜 그런지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선수를 선수로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선수가 내 아들, 내 딸, 내 조카처럼 느껴지기 때문인 것 같다. 그들의 지옥훈련이 떠오르고 경기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고단한 시간을 딛고 올라왔을지 그들의 과거가 자꾸 떠올라서 그렇다. 승리하는 선수에게는 기쁘게 박수와 격려를 보낼 수 있다. 그러나 패배한 선수가 더 내 마음을 후벼 파는 것을 어쩌란 말인가. 다른 이는 절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솔직히 이런 내 모습이 기이해서 어디에 두고 속시원히 이야기도 해 본 적이 없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선수 단독 출전이 아닌 팀별로 여러 명이 출전하는 경기는 그럭저럭 긴장감을 부담할 수 있을 정도이다.
미혼일 때만 해도 야구장, 농구장, 배구장 등 직접 구장에 가서 환호성도 지르고 함께 파도타기 응원도 하며 경기 관람을 즐기곤 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 바뀌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낳은 자식 일도 아니고 남의 자식일에 내 마음이 이렇게 조마조마한데 그들의 부모님의 마음은 어떨 것이며 가족 된 심정은 어떨지 생각만 해도 마음 저 밑에서부터 눈물이 고인다.
연배가 비슷한 이웃 작가님 댓글에 이 눔의 갱년기는 남녀를 구분 없이 존재감을 드러낸다고 하셨는데 이것도 나이 탓을 해야 좀 덜 민망하려나 싶다.
오늘도 경기가 치러질 텐데 마음을 다잡고 눈을 가늘게 뜨고 한 번 경기를 지켜볼까나? 벌써부터 긴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