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사회의 소비압력
앞에서 집에 놓고 쓰는 것은 난이도 하, 들고 다니는 것은 난이도 중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그렇다면 '난이도 상' 은 무엇일까?
사지 않는 것이다. 소비하지 않으면 쓰레기도 없다. 나도 도달하지 못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난이도 하 단계에서 유리 소재로 된 화장품 용기를 찾는다면, 난이도 중 단계에서는 공병 재사용을 위해 화장품 공방을 찾아다닌다. 난이도 상 단계라면 화장품을 쓰지않기로 결정하는 것이다.
나는 작년 여름부터 화장을 하지 않은 지 꼭 1년이 되었다. 너무나 간단했다. 어차피 잘 하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는 것을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예의라는 이유로 십년도 넘게 지속해오지 않았나 싶은 자괴감 마저 들었다. 애들 데리고 출근하는 아침은 언제나 바쁜데 준비시간도 줄어들고 피부도 좋아지는 느낌이었다. 처음에는 직장 내에서 누가 뭐라고 할까봐 위축되었지만 시간이 갈 수록 갈색 피부에 오돌토돌한 여드름 자국이 나 있는 내 피부를 가리지 않아도 되는,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느낌이 들어서 오히려 자신감도 높아졌다.
밀랍랩이나 스테인레스빨대 같은 플라스틱 대체품도 내게는 결국 안쓰는 게 낫다는 결론이 난 물건들이다.
각각의 생애주기를 갖고 있는 물건들(핸드폰 3년, 후라이팬 1년, 차 15년?)을 주기적으로 사고, 새 디자인이 나오면 또 사고, 새로운 기능이 있는 물건이 나오면 또 산다. 아무 생각 없이 쓰고 버리는 삶에 익숙해져서 대체용품을 사면 샀지, 사는 것 자체에는 의문을 제기할 수 조차 없던 어느날, <제로웨이스트 난이도 상> 단계에 이르면 새로운 질문을 맞닥드리게 된다. 내가 지금 사려고 하는 것이 정말 필요한 것일까? 나는 왜 이 물건이 필요한 걸까? 정말 내가 필요한 걸까? 이 자본주의 사회가 내게 사라고 시킨걸까?
"플라스틱 제품을 몇 번씩 사용하는 것은 플라스틱 업계의 입장에서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었다. 플라스틱이 사용되는 즉시 버려져 끊임없이 다시 생산되는 것이 업계가 원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물건을 소중히 여기고 한 번 이상 사용하려는 마음을 없애기로 한다. 그로부터 몇 년 지나지 않아서 거대한 플라스틱 쓰레기 더미는 엄청난 환경문제로 다가왔다."
플라스틱 행성, 53쪽 게르하르트 프레팅, 베르너 보테
쓰레기 문제는 어느 순간 일회용품과 대안품의 문제를 넘어서게 된다. 소비의 패턴을 끊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하지 않을 수 있고 무엇을 해야하는지와 같은 선택의 문제를 만나게 되면 결국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차를 타고 무엇을 먹고 사는가, 소비라는 것이 마치 그 사람의 사회적 지위를 대변하는 듯한 문화에서 벗어나 최소한의 소비를 선택한다면 역설적이게도 그 최소한으로 선택된 것은 나를 가장 잘 설명해주는 무엇이 되지 않을까?
쓰레기없는 삶을 산다는 것은, 마치 전통시장에서 포장없이 알맹이만 사 오는 것 처럼 나를 둘러싸고 있던 여러가지 '나 인척 하던 물건'을 벗겨내고 진짜 나를 찾는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