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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송어 Feb 09. 2020

껌팔이의 창조경제와 불친절한 송어씨

내가 상가에 입성하여 장사를 시작하게 됐을 때, 내가 한 다짐은 그것이었다.


교양을 잃지 말자. 

약한 사람에게도 친절하자. 


그리고 3년이 지난 오늘, 나는 껌을 팔러 온 판매자에게 눈도 돌리지 않고 엄동설한 매운 목소리로

"안 사요"

라고 했다. 

*

나는 상가의 상점 하나에서 4년째 장사를 하고 있는 햇병아리다. 처음에 이곳에 들어올 때는 정신 똑바로 차리고 행동하자고 생각했다. 각종 이권이 둘러 쌓여 이웃 간에 끊임없는 경쟁을 하는 곳. 그곳이 내가 들어갈 곳이었다. 

하지만 기우였다. 상가의 어른들은 병든 부모님을 대신해 가게에 나온 젊은 나와, 그런 나를 돕겠다고 나선 젊은 내 친구 강가(강 씨 성을 가진 내 친구. 우리가 하는 콩트의 레퍼토리 중 하나다.)를 안쓰럽고 대견하게 여겼다. 그들은 진상이 오면 대신 나서 주기도 하고, 이것저것 조언해주고, 간식거리를 건네기도 하는 등 나와 강가에게 호의적이었다. 

오히려 나에게 무엇이라도 얻어먹으려고 한 것은. 껌 파는 할머니였다. 




나와 강가는 서글서글한 인상만큼이나 거절을 잘하지 못한다. 애초에 강가는 취업 준비 중이었다. 나의 가게에 무단결근을 한 직원을 대신해 하루만 도와주러 나왔다. 그러나 하루 이틀 날짜를 늘리는 나의 호소를 거절하지 못하고 3년 이상을 근무했다. 그런 성향이다 보니 나와 강가는 목발을 짚고 와서 껌을 파는 할머니에게 몇 번이나 껌을 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껌 파는 사람은 상가에 자주 다니는 분이었나보다. 사람들은 능숙하게 그를 무시했고, 

그에게 눈길 조차 주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그 껌 판매원은 마지막으로 우리 가게를 꼭 들렸다. 

껌은 한통에 대여섯 개가 들어있고, 껌 씹기가 직업이 아닌 이상 하루에 한 통을 소비하기는 어려웠다. 그런데도 그는 끈덕지게 나의 가게를 찾아왔다. 

그의 마케팅 전략은 점점 호전적이 되었다. 내가 손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말을 걸었다. 조용하게 하기 위해 몇 번 껌을 산 것이 그의 성공전략이 되어, 거의 매번 손님과 얘기를 나눌 때마다 끼어들었다. 


여느 날처럼 손님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껌 판매원이 다가왔고 더 이상 좌시할 수 없었던 나는 매우 완강하게 사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런데 마침 나와 대화를 나누던 교양 있는 손님이 "내가 껌을 살 테니 이 아가씨를 괴롭히지 말라"며 돈을 냈다. 나는 그 손님에게 질책당한 기분이었다. '목발 짚은 노인에게 어떻게 그렇게 할 수가 있니'. 나의 교양이 바닥난 기분이었다. 

사실 그의 목발은 액세서리에 불과했다. 그가 퇴근을 할 때면 어김없이 목발을 번쩍 들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가는 것을 여러 번 보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퇴근을 하던 껌 판매원은 강가를 보더니 다시 목발을 짚고 우리 가게까지 찾아와 껌을 사라고 종용했다. 사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현하는 강가에게 거의 떼를 부리듯이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내가 빚이 많아서 그래. 백만 원이나 있다고!"

그가 왜 백만 원이라는 숫자를 말했을까. 그는 크게 실수했다. 수천만 원에 달하는 학자금을 여전히 갚고 있는 강가에게 겨우 백만 원의 빚을 가진 사람에게 줄 배려는 없었다. 


나는 그에게 샀던 포장 조차 벗기지 않은 껌 뭉치를 보여주며 말했다. 

"저희 껌 안 씹어요. 이거 보세요 다 쌓여있어요"

"안 씹을 거면 나 줘"

"아 환불해주시게요?"

놀라는 내게 그가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아니. 그냥 나 달라고"


이 얼마나 놀라운 창조경제인가! 그는 박근혜 씨의 지지자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동안 이해하지 못했던 창조경제라는 개념을 바로 이해할 수 있게 해 줬다. 물건이 필요 없다니 가져가겠다. 그리고 다시 팔겠다니! 

나는 창조경제란 개념이 나왔을 때, 대통령이 한 말이니 의미가 있겠지. 이해하기 위해 머리를 굴리던 것이 생각 나서였을까. 치밀어 오르는 분노로 나는 더 이상 껌을 사지 않기로 했다. 






"그러면 비닐이라도 하나 줘"


부모님은 아무것도 사지 않더라도, 짐을 무겁게 들고 가는 사람이 있으면 불러 세워서 편히 들고 가라고 비닐을 챙겨주던 분들이었다. 나 역시도 그 모습을 배웠고. 그래서 어디 쓸 데가 있는가 보다, 하고 비닐을 드렸다. 하지만 그는 그냥 가방에 비닐을 챙겨 넣고 가버렸다. 


다음날도 그는 나의 가게에 들렀다. 마치 받을 것이 있는 사람처럼 와서 껌을 사라고 했다. 나는 마음속 깊이 다시는 껌을 사지 않겠다고 마음먹은 터라,  강한 어조로 사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자 그는 봐준다는 듯이 

"그러면 비닐이라도 하나 줘" 

라고 했다. 


나는 느꼈다. 이 사람은 나에게 '삥을 뜯는' 것이라고. 그에게 나는 너무 손쉬운 먹이라 무엇이라도 나에게 받아가야 직성이 풀리는 모양이었다. 나는 그 껌 판매원에게 환멸을 느꼈다. 

"싫어요"

비닐은 돈 몇 푼 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주고 싶지 않았다. 불쌍함을 자처하는 사람에게 속아주고 돈 몇 푼이 던져주고 얻는 알량한 선민의식이 내 안에서, 작은 비닐 한 장 값도 안되게 떨어져 버렸다. 


아듀, 나의 순수성. 아듀. 아듀. 


그날 이후로 그는 한동안 상가에서 자취를 감추고는 거의 일 년 만에, 다시 나에게로 찾아왔다. 

"언니 오랜만에 왔는데 하나 팔아줘."


나는 눈도 돌리지 않고 엄동설한 매운 목소리로 말했다.

"안 사요"


나는 세상의 풍파에 닳지않고 싶었다. 사람에 대한 근원적인 애정을 유지하고 싶었다. 

하지만 껌판매원의 집요한 영업으로

나는 몇 만원의 돈과 나의 순수성과 교양을 잃었다. 


나는 약자를 도와주는 교양 있고, 

누구에게나 친절한 사람이 더 이상은 아니다. 





그래도 나는 친절한 사람에게 친절한 태도를 유지할 것이며

친절하고 교양있는 모습을 유지하도록 노력할 것이다. 



나는 단지 조금의 생존 능력과 호구성을 잃은 것이라고 자위 하기로 했다. 

아무리 그래도 모두에게 친절하지 않은것보다는 나으리라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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