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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송어 Oct 17. 2019

서른 살, 아빠를 입양하기로 했다.

딸이 쓰는 아빠 육아일기  

그날은 같이 일하는 동료들에게 문자를 남기고 출근을 미루고 있었다.

가족과 친구들이 모인 작은 사업체라서 그들은 사정을 알고 있었다.

또, 아빠한테 깨졌구나.


나는 출근을 미루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카페에 가는 일탈을 감행했다.

물론, 출근을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긴 했다.

나는 커피 한잔을 상위에 두고 눈물을 바닥에 뚝뚝 떨어뜨렸다.


네가 하는 게 뭐가 있다고 그래?

처음 듣는 말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들을 때마다 숨이 막힌다.

도대체 무엇까지 해야 만족할 것인가.

나는 평생을 순종적인 딸로 살아왔다, 그리고 책임감 있는 딸로 살아왔다.

아빠가 암에 걸려 오늘내일할 때 가족들에게 슬퍼할 시간을 주고 돈을 벌러 뛰어 나간 것은 나였다.


20대 후반, 나는 프리랜서로 막 발을 내딛는 중이었지만 그 일이 그러하듯 큰돈을 벌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내가 한 달을 벌어도 못 버는 돈을 아빠의 가게에서는 하루에 벌어댔다.


무균실, 골수이식. 항암치료.


아빠에게 주어진 과제들은 꽤나 큰돈이 필요해 보였다. 선택할 수가 없었다. 선택할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바로 모든 것을 정리하고 아빠의 가게로 출근했다.


나는 하루에 열두 시간을 일했다.


가족 중 아무도 거기에 신경 쓰지 않았다.

내가 끼니를 거르고 일을 하다 병에 걸리고

치아가 부러져서 잇새가 벌어지고,

머리가 한 움큼씩 빠지고.

저녁을 차려먹을 힘이 없어서 맥주 한 캔으로 허기를 대신하면서도

빨래를 널어야만 했다. 쌓인 집안일을 해야만 했다.


아빠가 완치 판정을 받고,

나는 그동안의 세월을 보상받고 싶어 했다.

-네 덕분이야. 고생많았다.  

하지만 나의 시간은 남동생과 같은 선상으로 평가됐다.


나는 헛구역질을 하면서도 가게를 보는 동안

내 옆엔 아무도 없었다.

나를 대체할 인력은 없었다.

남동생이 '슬퍼서' 일이 끝나면 바로 술을 마시러 나갈 때

나는 도저히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누구도 만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오던

그런 날들이 계속됐다.


아빠가 무균실에서 나오고

엄마가 다시 집안일을 맡고,

나는 딱 열두 시간'만' 일하면 된다고 가슴을 쓸어내릴 때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많은 것이 변해있었다.


프리랜서 시절 나를 선망하던 나의 경쟁자들은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었다.

나는 도저히 공백을, 경력단절을 메울 자신이 없었다. 아니 메우려고 무언가 시도할 시간이 없었다.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었다. 

치아는 깨지고, 머리는 빠지고, 살도 10키로 가량 빠졌다. 그래도 아침에는 어김없이 해가 뜨고, 나는 새벽별이 뜰 때 쯤엔 집에서 나와야했다. 


아빠가 내게 물었다. 아니 선언하듯 말했다. 

"네가 한 게 뭐가 있다고 그래?"

많은 말들이 갈길을 찾지 못했다. 아마 서로 밀치고 나오려다가 그랬나보다. 말문이 막혔다. 그리고 하릴없이 눈물로 흘렀다. 

내가 뭘 더 해줘야 만족할 것인가.

내가 뭘 더 포기하고, 뭘 더 버려야 만족할 것인가.

왜 아빠조차 부모로서 나에게 해주지 못했던 것을 나에게 바라는가.

나는 가지지 못한 것보다는 가진 것이 감사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아빠는 왜 지금 이 상황에 만족하지 못하고 주말드라마의 철없는 막내처럼 행동하는 것일까.


그날, 한 시간 동안 카페에 앉아서 카페 바닥에 작은 물 웅덩이를 만들고, 코푼 휴지가 커피 컵 보다 높게 쌓일 때 쯤. 

아빠가 내게 바라는 것을 하나로 정리했다.






부모.

부모의 역할.

부모가 보여줘야 할 책임감.


젊음과 열정과 꿈을 다 갈아 넣었는데도 돌아오는 것은 ‘네가 나한테 해준 게 뭐가 있냐’는 원망.

그런 속 편한 소리는 좋은 부모 밑에 있는 애들이나 하는 말이다. 어린 시절 받지 못했던 안정감을 나에게서 받은 것은 아니었을까. 


자기의 아내도, 아들도 아닌.

자신을 가장 많이 닮은, 나.

가족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아무도 원하지 않았는데도 자기 갈아 넣고서는,

그것을 인정받고 싶어 하는 사람.

나와 아빠는 무서울 정도로 닮았으니까.

엄마도, 동생도 아니었다. 아빠의 부모가 될 사람은 바로 나였다.

우리 집에서 아빠의 부모가 될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서른 살, 나는 아빠의 부모가 되기로 결심했다.

나는 아빠를 마음으로 입양했다.


나는 그 어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보다 아빠를 사랑할 것이다.

아빠의 흠을 이해하고, 아빠의 잘못을 보듬어 줄 것이다.

조건 없는 사랑과 함께 칭찬해줄 것이다.


내가 아빠에게 받고 싶었던 안정, 지지, 인정.

나는 그 모든 것을 아빠에게 해주기로 했다.


아빠,

나도 입양은 처음이라서 서툴지도 몰라.

그래도 조금만 기다려줘.

하루하루 아빠를 더 아끼고 사랑해줄게.

우리 잘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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