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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송어 Jul 08. 2020

개념녀 죽이기   

To kill a 개념녀.

나는 소위 말하는 개념녀였다. 


나는 키가 170이 넘는다. 측정 최고 기록은 172다. 

스물한 살이 넘은 시점부터 나는 '모솔' 딱지가 붙어 빨리 남자 친구를 만들어야 했다. 혹시나 나를 마음에 둔 남성들이 기죽고 다가오지 못할까 봐 낮은 굽을 신고 다녔다. 항상 약간 몸을 구부리거나 짝다리를 짚었다. 

당시 '루저녀'가 기승이었으므로 소개팅을 할 때는 "나보다 큰 사람이면 돼"라고 말하고는 했다. 


대충 170이라는 나의 소개팅 상대로, 대충 175라는 남성이 배치됐다. 그리고 만나보면 그의 키는 항상 나와 같거나, 혹은 작았다. 

나는 170보다는 컸고, 소개팅 상대는 175보다는 작았기 때문이다. 



<1호가 될 순 없어> 중 170이 조금 넘는다는 남성 중 170되는 사람은 못 봤다는 최양락 옹 



결국은 180이 넘는 남자를 나의 첫 남자 친구로 맞이하기 전의 일이다. 그러니까 내가 아직 개념녀 상태인 시점에. 내가 '불편함'을 느끼기 전에 말이다. 


나는 대학생이었고, 현업인 출신의 성인 남성과 밥을 먹으며 '조언'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오가는 술잔에 얼굴이 불콰해지고 그는 "현장에 가보면 여자가 없다, 확실히 여자가 취업하기 어려운 구조다."라고 운을 띄웠다. 그는 그 이유로 "똑같은 농담을 해도 여성들은 불쾌해하기 때문에, 무슨 말을 못 해서 불편하다"라고 했다. 

당시 개념녀였던 나는 동기들과 다르게 그 조언을 깊게 받아들였다.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10년 전의 나는 그토록 어렸다. 







술자리를 피하지는 않았던 어린 송어에게는 친목 모임 초대가 잦았고 다수 참석했다. 당시에 남자 친구가 없는, 어린, 여자 대학생인 나는 모임에 노총각들과 자주 짝이 지어졌다. 

"쟤 어때?" 

개념녀긴 했지만, 생각이나 취향이 없던 것은 아녔던지라. 단호하게 그들의 짝짓기를 거부했다. 그러면 소위 '인기 있는' 남성들은 나를 설득해 누구 하나라도 선택하게 하고 싶어 했다. 

 

"아니 송어야 그러니까. 무인도에 저 남자애 둘 이랑 너랑 딱 셋이야. 그래서 한 명이랑 꼭 결혼을 해야 해. 그러면 누구냐고. 네가 결혼을 안 하면 인류가 멸망한다니까?" 

그것이 성관계를 암시하는 것이라는 것이 한 번에 와 닿지는 않았지만, 한 대를 유지해봤자 남는 것은 근친상간뿐이라는 것은 알았던 개념녀는 

"자살할래요" 

라고 대답하고는 했다. 



그날은 나의 단호한 대답에 결국 재미없어하던 남성- 오빠-들이 제 동료에게로 그 관심을 옮긴 다음이었다. 

"송어 같은 스타일 어때?"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안 하는데 자기들끼리 김칫국을 나눠 마시는 모습을, 나는 23세쯤에는 약간 달관한 듯이 흘려들을 수 있는 경지가 됐다. 


"아 송어 좋지... "

그리고 그가 늘어놓는 이상형을 듣더니 다른 남성 동료가 농담을 던졌다. 

"하... 이 자식. 이거 야동 너무 많이 본 거 아냐?" 

그가 말하는 이상형의 조건이 야동에 많이 나오는 여성의 특징과 비슷하다는 뜻이었다. 

"이 녀석아 너 그러다 뼈 삭어" 


불편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이때다!  

나는 그 현업인의 조언을 떠올렸다. 

그래 불편해하지 말자. 


"그러게요. 얼마나 많은 생명들이 낭비되는 거예요" 


그리고 장내는 굉장히 불편한 침묵으로 가득 찼다. 심지어 나에게 무인도 어쩌고 했던 남성조차도, 나의 재치에 화답하지 못했다. 

나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소재가 자연스럽게 야동 배우로 바뀌고, 심지어 마스터베이션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마스터베이션의 산물인 정액과 정자에 대해서는 말해서는 안된다? 






심지어 나는 노잼이어도 웃어줬다...! 




그들의 기분 나쁜 농담을 참아야 하긴 하지만, 

내가 농담을 하면 안 된다?

나는 농담에 미쳐있는 사람이었으므로 그 불합리함이 나를 화나게 했다. 

그 이후로 나도 그 모임에 나가지 않았고, 그 모임도 더 이상 나를 부르지 않았다. 



사실 돌아봐도, 개념녀라고 부르기엔 꽤 문제가 있었다. 아무도 나를 개념녀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애교라고는 약에 쓰려고 해도 없고. 힘쓰는 일에도 굳이 나서고. 나보다 어린애들에게 기분 나쁜 농담을 하면 내가 나서서 더 더러운 농담을 해대고는 했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스스로가 '개념녀'였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그렇게 하기 위해서 소개팅에 나가서 애프터를 받아와야만 했다는 데에 있다. 


"아니 연락은 오는데. 저랑 잘 안 맞는 것 같아요" 


그렇게 하면 나의 가치가 오른다고 생각했다. 

나는 170 언저리의 남자들을 만나 파스타를 먹고, 마시기 싫지만 나도 돈을 써야 하니까 커피를 마셨다. 평소에는 절대 입을 일이 없는 소개팅용 복장에, 한껏 다정한 표정으로 그의 말을 경청해주고. 평소보다 한 옥타브 높은 목소리로 구슬이 굴러가는 웃음소리를 내주는 것. 그 이후에는 들어오는 에프터를 거절하는 일련의 과정은 하나의 의식이자 게임이었다. 


그들의 농담을 유머를 체득해 그들의 사회에 완벽히 편입되고자 했던 나의 노력은 그들의 차가운 냉대로 완전히 무너졌다.

이것이 만약 현업에서도 같은 상황이 된다면? 

나는 농담도 모르고 불편해하는 애가 돼서 승진에서 밀리게 될 것이다. 

농담을 하면? 다시는 그 사회에 편입되지 못할 것이고. 


멋이 없을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성차별이 생존의 문제라고 인식하기 시작한 첫 사건이었다. 

그래서 개념녀로서의 모습을 죽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거울에 비친 모습을 보듯 나의 모습이 비춰보였다. 

내가 한창 개념녀일 때, 나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언니들의 모습이. 


왜 저렇게 싸울까. 기분 좋게 술 마시는 자리에. 

라고 생각했던 내가 결국 누구보다 격렬히 싸우다가 알게 됐다. 

그 언니들이 나를 위해 무엇을 한 것인지.


내 안에 개념녀를 죽여버린 나는 페미니스트인가. 

사실 내가 감히, 스스로 페미니스트라고 말해도 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은 확실하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개념녀로 자라온 어린 동생들을 위해 나설 준비가 되었다는 것. 

 

그들에게 성적 농담을 하는 사람들에게 정색을 하고 사과하라고 요구할 준비가 됐다. 

20살 가까이 차이가 나는 남자에게 데이트 신청을 받았다고 곤란해하는 동생을 대신해 전화로 욕을 해 줄 준비가 됐다. 

한 달에 한 통 씩, 크랙 필러를 사서 공중 화장실에 있든 구멍과 나사못을 메꾸고 있다. 

예전처럼 작고 타이트한 옷으로 내 권력을 찾기보다는 편한 옷을 입고 그들과 지력이나 힘으로 겨룬다. 



가끔은 세상만사가 다 귀찮을 때가 있다. 

저렇게 여자가 어떻고, 남자가 어떻고 나불거리던 사람들도 짧은 치마 한 번이면 나에게 친절할 것이고. 내가 하는 말에 귀 기울일 것이고. 나에게 겉으로라도 져주는 척을 할 것이다. 

그냥 좋게 좋게 지나가라고 나를 나무라는 여성들에게 화장한 나의 모습을 보여주고, 미적으로 내가 우위를 차지할 수도 있다고 알려주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러면 나는 거울 앞에 서 맨 얼굴의 나를 본다.


그 개념녀는 더 이상 없다. 

완전히 내 안에서 죽었기를 바라며 또 고개를 슬며시 드는 그것을 죽인다. 


매일 계속될지도 모르는 내 안의 싸움에서 

맨 얼굴의 내가 맹렬하고 용감하게 이겨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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