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송어 Jun 02. 2020

환영받지 못하는 나는 카레향을 맡는다.

나의 시간은 항상 아버지에게 저당 잡혀 있었다. 우울증을 가진 아버지는 불안의 원인을 나의 부재로 돌렸다. 

그러다 보니 항상 친구를 위해 내어 줄 시간이 없었다. 


내가 집에 가지 않으면 불안해하는 아버지가 있어. 


누가 심각하게 여기겠는가. 


집에 들어가면 인사 조차 받아 주지 않고, 옆에 있으면 귀찮아하면서도. 

같은 지붕 안에 있어야 더 큰 화를 입지 않는다는 것을. 

그래서 꾸역꾸역 집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그렇지 않으면 아버지의 선택적 울화가 날 질식하게 한다는 것을. 


그렇게 우울증은 유전인지 환경인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을. 

누가 알겠는가. 


*


오늘은 생사를 오간 친구 '덕분에' 이틀을 밖에서 보내고 돌아온 날이었다. 


문을 열자마자 카레 냄새가 나를 맞았다. 

카레는

내가 좋아하지 않는 음식이다. 

음식을 잘 가리지 않는 내가 유일하게 즐기지 않는 음식. 


문을 열자마자 느껴진 카레 냄새는 내가 이 곳에서 환영받지 않는 이방인, 

아니,

취향이 고려되지 않는 그 이하의 존재라는 준엄한 경고다.  


나는 아무도 관심 없는 지난 내 이틀을 보고하고 몸을 씻었다. 

그리고 급히 저녁 밥상을 차렸다. 

네가 언제 한 번 젓가락 하나 놓아본 적이 있느냐는 사람을 위해. 

늘 그렇듯 오늘도 저녁 밥상을 차렸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김치에

내가 좋아하지 않는 카레로. 


*


그리고 설거지를 했다. 

나의 설거지는 항상 늘어 나는 설거지 감과 함께다. 

설거지를 하고 있으면 이제야 설거지를 하냐는 듯이, 

어디선가 묵은 그릇들을 찾아와 깨지지 않을 정도로만 싱크대에 던져 넣는다. 


외할머니가 그랬듯, 

이제는 아빠가. 


*


그리고 병든 엄마를 챙기다 보면 

아버지는 나를 부른다. 


그는 내가 다니는 모든 길목을 검사하고 감시한다. 

그리고 겨우 찾아낸 어떤 것에 환희를 느끼며 나를 부른다. 


요즘에 그가 심취해 있는 것은 

살짝 열린 서랍을 닫게 하는 일이다. 

그것이 내가 연 것인지, 

누군가 걷다가 친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 서랍이 나의 것이므로. 으레 그렇듯. 나를 잡는다. 


늘 그렇듯. 

당신의 앞이 더러우면 나를 불러 화를 낸다. 

내가 방금 들어왔고, 늘어져 있는 것이 자신의 물건이라도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내 옷이 바닥에 떨어져 있으면 나의 인성에 대해 30분 정도 일장 연설을 한다. 

그가 아무렇게나 벗어놓은 옷가지 옆에 앉아서. 


*


나는 잠귀가 밝다. 

이틀 동안 나의 애인은 이른 출근 때문에 내가 깰까 봐 조심스레 움직였고. 

큰 용기를 내서 한 것이 고작 이불을 고쳐 덮어 주며 볼에 입을 맞춘 것이었다. 

나는 오랜만에 흐드러지게 잠을 잤다. 


그리고 알았다. 


아침잠이 없어진, 이제 늙어빠진 나의 부모는

태양보다 이른 시간에 일어나

마음껏 볼륨을 높이고 텔레비전을 본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눈다. 

나는 태양보다 이른 시간부터 눈을 떠서


혹시 엄마가 사래가 걸리거나 넘어지면

호들갑스럽게 소리만 지르는 아버지를 대신해 

충격에 멍 해지는 남동생을 대신해

엄마를 살릴 준비를 한다. 


*


지난 이틀보다 더 많은 스트레스를 두 시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받으며

나는 문득 내가 우울증 약을 이틀 동안 먹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작가의 이전글 사랑하는 나의 가해자에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