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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송어 May 10. 2020

사랑하는 나의 가해자에게

남동생에게 쓰는 편지. 

술을 마신 날, 너의 귀가 소리에 나는 항상 심장이 두근거린다. 

숨을 죽이고 방에 있어. 마치 자는 것 처럼. 

깨어있는 기척이 나면 네가 문을 벌컥 열더라고. 


너는 모르겠지. 이해도 되지 않겠지.


내가 뭘 어쨌다고? 


여러 번 설명했는데도, 넌 여러 번 모르더라. 

그래서 다시 설명하려해. 이번이 마지막이 되길 간절히 바라. 


아빠가 아직 술을 끊기 전. 아빠가 반주를 즐기던 시절에 말이야. 

너는 항상 탈이나서 자리를 떴잖아. 

아빠는 조금만 더 마신다고 하셨지, 너희를 보면 기분이 좋다고. 

그리고 몇 잔의 술이 오가면, 아빠는 갑자기 멘토가 되고 싶어 했어. 

알잖아. 내가 뭘 말하는지. 


아빠는 항상 '교훈적인' 이야기만 하셨어. 

한 번도 술김에 나를 때린적도 없고, 욕을 한 적도 없어. 

그냥 30분, 혹은 더 길게 

내가 왜 나쁜 애고, 모자라는 애인지 듣고 있어야 했지. 


그게 폭력이고, 학대더라. 


그걸 몰랐어. 아빠가 술을 끊고 한동안은 그런 일이 적었으니까. 

근데 오티나, 개총을 갔는데 너무 무서운거야. 

몸이 오들오들 떨리고  

비명을 지르고 싶은거야.

술이 있는 자리에 가면 그렇게 무서운거야. 


그리고 알게됐지. 

아. 그게 나한테 굉장히 무서운 경험이었구나. 

아빠가 술을 즐기던 그 오랜 시간 동안, 나는 그게 굉장히 무서웠구나. 


그래서 너한테 여러 번 부탁했어. 

-나는 술에 취한 남자를 무서워해. 나는 네가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어. 

하지만 넌 별로 술을 줄일 생각도 없었고. 

내가 뭘 무서워하는지, 왜 우울증 약을 먹어야하는지 관심도 없었지. 


너는 아빠를 원망했어. 

아빠 처럼 살기 싫다고 했어. 

지금의 네 모습이 아빠와 얼마나 같은지는 모르더구나.


알아 넌 얼마 전에 나한테 사과했었고, 또 사과하겠지. 

그리고 또 다시 술을 마시겠지. 

아빠처럼. 

네가 술을 끊을 때 까지는 나는 또 지옥 같이 살아야겠지. 


아니 네가 나쁘다는게 아니야. 아빠가 나쁜 사람이 아니듯이. 


그런데 내가 너한테 이 말을 하는 이유는, 

나는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우울증 약을 계속 먹고 있고 있고

어쩌면 네가 생각하는대로 '동생이 한 말 한마디에 쉽게 상처받는' 

그런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야.


그래도 나는 아직은 네 누나라서 이런 말을 하지. 

근데 네가 결혼을 해서 네 와이프한테 그런다면?

혹은 네 딸한테 그런다면? 


아빠는 좋은 사람인데, 내가 너무 예민한 것은 아닐까. 

아빠는 그냥 한 말인데. 내가 너무 소심해서 그런걸꺼야. 

울면서 잠들어. 

마치 어제처럼. 

그런데 그런 인생이 좋았는가, 다른 사람에게 권할만한가. 

그러면 그건 아니야. 

나는 아직 생기지도 않은 미래의 조카를 위해 이 편지를 쓴다. 


넌 술을 끊어. 

이건 선택이 아니고 필수야. 

너는 아무 말도 안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 아무 말도 아닌 말에 밤새 울며, 다음날 까지 슬픈 사람이 있어.

그 아무 말도 아닌 말을, 난 인생 통틀어 너에게 한 번도 한 적이 없었어. 

너도 어디서도 들어 본 적 없을걸? 그 아무 것도 아닌 말.


아무 말과, 그렇지 않은 말이 구분이 안된다면

더더욱이 술을 끊어.

너의 술 때문에 상처 받는 사람은

나 하나로 끝내자. 


사랑하는 나의 동생, 가해자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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