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이 내게 집을 리모델링 하는 동안 아빠를 맡아줄 수 있겠냐고 물었다.
-ㄴ
컴퓨터 카톡을 하고 있던 나는 숨이 막혀서 내지르듯
니은을 찾아 눌렀다.
노.
안된다는 말이었다.
-ㅇㅋ.
동생은 더 물어보지도 않았다.
나도 더 설명하지 않았다.
아빠와 나의 관계는 이미 끝나 있다는 것을 동생도 알고 있었다.
내가 임신 후기를 달리고 있는 임산부라서가 아니고,
양가 부모의 도움 없이 아기를 키워 내야하는 초보 엄마라서가 아니다.
나는 아빠가 싫다.
솔직히 이제는 생리적으로 거부 반응이 들 정도다.
아빠가 있으면 속이 안 좋고, 입맛이 없어진다.
숨이 막히고 가슴이 답답한 기분이 든다.
입덧이 심했다.
변기통을 붙잡고 잠을 잤다거나, 링겔을 맞았다는 여느 임산부 같지는 않았지만
나 역시도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래도 엄마를 들여다보지 않을 수는 없었다.
간병인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엄마에게 인사조차 제대로 안하는 가족들에게 엄마를 그냥 맡길 수는 없었다.
힘겹게 떠난 고향길.
버스에 타러 가는 5분 남짓되는 거리만으로도 구역질을 해대서 남편이 급히 차를 몰아 서울로 향했다.
그렇게 힘들게 올라가고 있다고 했다.
"호두과자"
아빠한테 온 문자는 저게 다였다.
마음 착한 남편이 나 대신 호두과자를 살까봐 남편한테 얘기하지도 않았다.
현관을 열고 초주검이 되어 있는 나의 얼굴을 보고도
아빠는 호두과자를 찾았다.
"아빠. 입덧하는 딸 걱정은 안하고 호두과자 부터 찾는게 맞아?"
"...너는 왜 아빠를 나쁜 사람을 만드니?"
아빠는 정말 노여워보였다.
하지만 아빠의 노여움은 이제 나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어렸을 때는 아빠가 노여워하면 겁이 났다.
그건 몇 시간동안 이어지는 '훈계'를 듣고 나면
나는 죽으러 가고 싶다는 충동을 이겨내야만 하는 시간이었으니까.
혹은 당장 아무것도 안하고 바닥으로 꺼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들을 했다.
그러면서도 가장으로서의 책임이 있었기 때문에 울면서도 일을 나갔다.
그게 나였다.
그런데, 그렇게 일궈놓은 내 사업을 빼앗아 갔다.
엄마의 간병을 반절 정도 했다.
내가 퇴근을 하고 엄마를 돌봤으니 아침 점심만 책임지면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도 나를 집 안에 앉혔다.
딱 하루.
남자친구에게 차이고 나서
눈물이 나와서 그냥 들어가 잔 날이 있는데.
그 날 얘기를 하면서,
내 사업장에서 알바를 구해서,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취미 생활을 찾아하고, 집에 와서 내가 한 밥을 먹고 침대에 누워 있었다.
"너도 그랬잖아."
아기를 가지고
엄마 아빠의 비호를 받으며
산해진미를 먹고 다니는 산모들을 아빠는 오늘도 보지 못하고.
먼 길을 올라가 기진맥진한 만삭의 산모에게 무거운 택배를 들여다달라고 한다.
아빠는 모른다.
아빠만 모른다.
아빠와 나의 관계는 이미 끝나 있다는 것을.
나는 엄마를 보러 서울을 가고,
그 때 자야할 집이 필요할 뿐인 것을.
아빠는 아직도 모른다.
정말 아빠는 내 인생에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임을.
동생의 결혼이 불거지고
동생과 내가 같이 갚아나가던 그 집을 꼭 동생을 주고 싶어 했던 아빠의 바람대로
동생의 신혼집은 그 집이 되고
아빠는 갈 곳이 없어졌다.
엄마를 혼자 보낼 수는 없다며 따라 들어간 요양병원에서 일주일 남짓 살아 놓고
"병원에서는 못살겠다"며 눈물 짓더니 내게 물었다.
"아빠 너희 집 가서 살까?"
400키로 멀리 떨어진 지방으로 시집을 가는데는
집에서 400키로가 멀어진다는 메리트가 있기 때문이었다.
아빠는 여전히 모른다.
어떤 마음으로 내가 아빠랑 같은 식탁에 앉아 있는지.
엄마만 아니었으면, 이라는 생각을 수백번을 하고 앉아 있는 나를.
우리의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언제부터일까.
수많은 시간들이 생각난다.
아빠랑 진짜 한판 하려고 카페에서 얘기한적이있다.
아빠가 체면은 차리니까소리 못지르게 하려고. 그래서 쌓인 얘기들을 했다.
아빠가 죽으러 간다고 햇던거나. 뭐 그런것들을 아빠는 기억하지 못했고. 너무 미안하고 또 그러면 아빠가 제정신이 아니니까 버리라고 했다.
나는 이제 아빠랑 다시 잘 지낼 수있다고 생각했다.
이런 시간을 보내서 좋았고 가끔 이런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고 몇 주도 되지 않아 아빠가 나한테 대화를 요청했고 카페에 가서 또 지난한 이야기들을 들었다.
나는 완전히 지쳤고 아빠와의 관계에 대한 큰 절망을 느꼈는데.
아빠는 개운한 얼굴로 자주 이렇게 만났으면 좋겠다고 했다.
기시감이 들었다.
그때 그게 기분이 나빴었구나? 나한테 돌려주려고 기다리고 있었구나.
인터넷에서 너무 점잖으신 아버지에게 섬망이 와서 바뀐 모습에 슬퍼하는 딸의 글을 봤다.
나는 작은 것에도 화를 내고 말도 안되게 우겨대는 아빠 앞에서
이게 섬망인지 아닌지 헷갈려하다가 그냥 섬망이기를 바랐다.
섬망이겠지, 하며 이해하려고 했다.
하지만 섬망이 아니었다.
그냥 아빠의 성격이었다.
"너는 가끔 아빠를 쓰레기처럼 볼 때가 있어"
내가 대답이 퉁명스러웠고,
내 눈빛이 이상했고,
내가 이상했고.
나는 그걸 아니라고 해야했고,
반성 해야 했고, 사과해야했고, 뉘우쳐야 했다.
수렴첨정을 거두어 달라고 돌바닥에 머리를 찧는 세자는 물려 받을 나라라도 있었지.
그 모든 자의적 해석들에 너무 화가 나서 말했다.
"내가 진짜 아빠를 쓰레기 취급했다 치면,
나를 잡을게 아니라
아빠의 인생을 돌아봐야 되는거아냐?"
뭐를 기대하고 말했는지 모르겠는데
나는 아빠의 똥귀저귀를 갈고 기진한 상태였고
더 이상 아무것도 봐줄 수가 없었다.
엄마의 기저귀를 매번 갈다가 정말 너무 힘이 들어서
이미 5년 이상 남동생은 기저귀에서 빠진다는 이유로
모든 간병 활동에서 빠졌기 때문에
"남동생이 같이 나눈다면 어떻겠느냐" 라고 물어 봤었다.
옆에 누워 있던 아빠가
"만약 내 기저귀를 네가 갈아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난 죽어버릴 것이다" 라고 말했었다.
그래서 그 이후로도 2년 이상을 나혼자 엄마의 기저귀를 갈아왔다.
하지만 아빠는 2년 후.
본인의 똥기저귀와 똥싼바지, 엉덩이와 성기를 딸에게 내보이는데
그 어떤 수치심도 없었고
오히려 살살하지 못한다며 성질을 냈다.
그 모든 것들이 터져서
나는 정말 해야될 말만 했다.
그런데도
"어떻게 아빠한테 쓰레기라는 말을 해?!" 라며 서러워 했다.
밖에 있는 간호사들이 들을 정도로 고성을 지르면서 논리가 와해된 자기 주장들을 펼쳤다.
수많은 날들이
나에게 결심하라고, 돌아서라고, 돌아보지 말라고 했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그렇게 몇 년을 더 휘둘리다가
400키로가 넘는 거리에서
대화를 나누지 않고 살면서
치밀어 오르는 분노에 가끔만 힘들어 하면서
나를 찾는 중이다.
그래서 또 아빠를 맡아 달라는 사람이 나왔을 때
나는 가까스로 니은을 하나 보냈다.
ㄴ.
자음 하나에 담긴 것들을
동생이 제대로 이해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