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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송어 Nov 03. 2019

K-판타지, '82년생 김지영'

영화를 둘러싼 이슈들에 대하여.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이 유명세를 탈 때에도 나는 애써 읽지않았다. 나는 그야말로 예민한 편이고, 불편을 쉽게 느끼며, 옛날 이야기를 자꾸 꺼내는 한을 쌓아놓고 사는 아이다. 나는 알고 있었다. 내가 <82년생 김지영>을 읽으면 돌이킬 수 없이 예민하고 불편하게 살아갈 것임을.  


소설  <82년생 김지영>은 나의 남자친구가 먼저 읽었다. 경상도 남자. 여동생이 하나 있는 외아들. 이제는 세 대로 줄어든 제사를 지내고, 명절 때는 차례에 성묘까지 가야하는 사람. 맞벌이를 하면서도, 반찬이 없다고 타박을 받는데 미안해 하는 여자. 해풍 맞은 생선을 올리려고 시골길을 달려 사오는데도, 다 사서 만든 제사상을 차린다는 평가를 받는 여자를 어머니로 둔 그가 영화를 같이 보러가자고했다. 나는 슬픈영화를 보면 며칠간 일상생활이 안되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그가 보고 싶다길래 갔다. 그와 나눌 대화들이 궁금했다. 이 사람은 이 영화를 보고 어떻게 생각할까. 


우리의 한줄평은 같은 단어로 축약이 가능했다. '비현실성' 

남자친구는 소설에 비해 영화에 나오는 지영이 겪는 상황이 조금 더 현실적이라고 했다. 나는 영화의 장르가 판타지라고 생각했다. 그 중에서도 공유가 연기한 지영의 남편이 가장 비현실적이라고 했다. 정신과에 가기를 두려워 하는 아내 대신 본인이 진료를 받고, 자신의 엄마로부터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아기를 목욕시키기 위해 일찍 집에 들어오고, 밥상에 아내의 국이 없는 것을 알아차리는, 그런 남자? 

물론, 내가 한국 남성에게 가지는 불신이 짙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나에게  우울증이 있는 것 같으니 정신과를 가라고 권한 것은 아버지였지만, 그럼에도 약을 먹는 나를 껄끄러워 한 것 역시 아버지다. 나의 남자형제는 어떠한가. 그는 나의 sos신호에 혼자 유난떨지말라고 해놓고, 내가 가진 의무를 아주 조금 나눠가지자마자 백기를 들었다.


내가 이 영화가 판타지라고 하는 부분은 여러가지다. 지영의 언니 은영은 매번 틀린 것은 틀렸다고 말한다. 시킬 일이 있으면 습관처럼 은영아,를 부르는 부모 앞에서 남동생을 불러 일으켜 일을 시키는 사람이다. 현실은 어떠한가. 나 뿐만 아니다. 나의 친구들은 보통 그렇게 항거하다가 그렇게 일하기가 싫어서 동생을 시켜먹냐고, 당신이 하시겠다고 노구를 끙,하고 일으키는 부모를 보고 마음이 아파 결국은 자기가 하고마는 그런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김지영>을 보고 판타지라 느끼는 지점이 다른 이유는, 자꾸 이것이 성 대결이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수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정보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지영의 빙의 이후 반성하는 시누이를 보며, 나는 이모를 떠올렸다. 필자의 이모는 결혼 준비중에 시아버지가 지병으로 갑자기 돌아가셨는데 시어머니가 '사람 잘못들여서' 그렇게 됐다고 때렸다. 말그대로 맞았다. 그런데 이 상황을 필자의 남자 형제는 알고있는가? 모른다. 애초에 어머니는 그 얘기를 그 애에게 전하지 않았다. 

지영의 집에 다녀와서 앓아누운 엄마를 본 지석은. 멀리 사는 누나 은영을 불러 엄마의 용태를 파악하게 한다. 지석은 엄마의 우울을 파악하고 공감하는 것에서 한 발 물러선다. 엄마와 은영 사이에 쌓여 있을 관계와 맥락이 있다는 것을 지석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바로 이 지점이. 같은 영화를 보고 한쪽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하고, 한쪽은 '현실의 순한맛 버전'이라고 하는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여자로서 '행복한', 김지영. 밥은 밥솥이 해준다면서요. 애는 문센이 봐준다면서요. 



얼마전 모 프리랜서 여자 아나운서가 검색어 순위에 이틀간 올라있었다. 영화 <...김지영>을 보고 올린 후기 때문인데.  어쩜 그렇게 뻔한 이야기를 하셨는지. 개탄스러울 지경이다. "예쁨 받고 사랑받는" 여성이 되기 위해 "이상한 평등을 부르짖으며 싸우는 페미니스트를 이해하지못하"면서 "남자직원들이 짐을 들어주고 문을 열어주고" "예쁜옷을 더 많이 입을 수 있는 것"에 감사하는 사람이 동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에 놀랐다. 사실 불쾌했다.

그러나 모르면서 멍청한 것과, 알면서 멍청하려는 것은 분명 다르다. 다시는 돌이킬 수 없어질까봐 소설 <...김지영>을 읽지 않은 나의 모습은. "여자로서 불편"해하는 그 사람 보다 더 질이 나쁘다. 


한가지 더 고백하자면, 필자 역시 아나운서 지망생이었다. 

내가 아버지에 대해 불만을 적은 글을 상당수 적어왔지만, 아버지의 양육 방식중에 감사하는 부분이 있다. 아빠가 나를 딸로 키우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빠는 레이디퍼스트보다는 장유유서에 방점을 찍고 나를 키우셨다. 나는 남자 동료에게 문을 열어주는 사람이고, 내 짐은 내가, 네 짐은 나눠서 드는 사람이다. 몇번 나가본적도 없는 현장에서지만 화장이 무너지거나, 옷에 주름이 가기때문에 대기실에 조용히 앉아있으라는 주문을 받는 것은 굉장히 곤혹스러운 일이었다. 

그 분은 그런 상황에 순응한 사람일게다. 순응해야만 했을 것이다. 몸의 라인을 드러내기위해 옷핀으로 채워진 옷과, 뾰족구두. 전족을 신은 여성처럼 뒤뚱뒤뚱 걷는 그 사람은 바닥에 떨어진 펜 한자루 조차 스스로 줍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면 편안한 복장으로 자기 일을 보던 남성 직원은 펜 한자루 정도는 줏어줬겠지. 

하지만 나는 아니지않은가. 그것이 너무 너무 이상해서 때려치고 나온 사람이 아닌가.  그 사람이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성인잡지에 모델이 되던 시점에 <현남오빠에게>를 읽고 있던 나는 달라야한다. 





나는 안타깝다. 그 사람이. 그렇게 "예쁨을 받"다가 결혼을 해서 임신을 하게되면. 아니 결혼만 하게 되도 일선에서 물러나겠지. 운이 좋으면 비싼 유모차에 애들을 태우고, 영어 유치원을 보내고, 남편 돈으로 논다는 손가락질을 받으며 살아갈 것이다. 그 이후에는? 영화속에 서울대 공대를 나와서 수학문제집을 풀며 속을 달래는 엄마처럼, 연기를 전공하고도 집에서 동화 구연을 하는 엄마처럼. 혼자 신문을 읽고, 뉴스를 보며 살게될까? 경력 단절 된 이후에, 그때 그 김지영이 이상하다고 한 사람이에요! 다시 날 예뻐해주세요! 라고 외친들. 그 사람들이 다시 그를 찾아줄까? 아니. 예쁨 받고자 하는 더 젊은 여자에게로 넘어가 있을 것이다. 그 성인 잡지는 매년, 아니 매월 그 커버걸을 바꿔대니까 말이다. 그래 그때가 되면 알아채기를 바란다. 그리고 같은 여자로서 소리 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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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거지를 시킬거면 정확하게 반으로 나눠달라는 내게 엄마는 그냥 본인이 한다고했다. 그러다가 병이 났다. 대신 아버지가 집안일을 하기 시작했고, 내게 일을 시켰다. 정확하게 반으로 나눠달라는 내게 그러면 하지말라고 본인이 한다고 하시더니, 결국 몇주내로 나와 남자형제를 불러 일을 반으로 나눠줬다. 

많은 것이 바뀌었다. 남동생은 더이상 기름이 있는 그릇을 그렇지 않은 그릇에 겹쳐놓지 않는다. 아빠와 동생은 행주질을 하면서 자기들의 숟가락 쓰는 습관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출근하는 남편을 웃으며 보내고 돌아서서 한숨을 쉬는 지영을 나의 남자친구는 이해하지 못했다. 아마, 영화 말미에 남편에게는 괜찮다고 하는 지영 역시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억지로라도 이해해야할 것이다. 사회는 내 남자친구에게 설거지를 시킬 것이다. 그러다보면 내 남자친구도 기름기 있는 그릇을 포개어놓는 행동은 하지 않으리라. 

사회는 변한다. 거기에 따라가지 못하면 그냥 늙어 죽는 방법 밖에는 없다. 후대에 이르러 성차별 주의자로 평가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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