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동 & 충돌 6. main_Swiss

그리고 독일로 돌아오는 길

by 꼬드kim

2분 안에는 엄청난 초가 숨어 있다.(2007)


취리히까지 들어가는 다음 기차는 밤 11시 10분쯤 도착이다. 숙소를 12시 안에 찾을 수 있을까? 가보지 않은 그곳에서 취리히에서 더 들어가야 하는 그 숙소를. 내일은 인터라켄 가겠다 했는데 갈 수 있을런지?

기차는 국경을 넘어 스위스에 도착하고 처음 들어온 스위스라 방향을 못 잡는 터에 지나가는 사람에게 길을 물어본다. 그녀는 내게 ‘hurry’하며 뛰기 시작했고 나 또한 영문도 모른 채 뛰기 시작해 그녀 덕분에 놓칠뻔한 전철 막차를 같이 달려서 간신히 탔다. 아일랜드 태생인데 남편 때문에 스위스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내가 보기엔 다 유럽인인데 모두 다른 나라라는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난 14kg이 넘는 짐을 메고 20번 게이트 정도까지 있는 지하철역을 거의 몇 분만에 주파! 초인이 되어가는 기분이 든다. 도착해서 지하철 플랫폼을 나가니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시간은 12시를 넘어가고 모자 쓰고 지나가는 청년은 왠지 호러 영화에서 나온듯한 분위기에 무서워서 물어도 못 볼뻔하지만 정작 지나가는 사람이 그 밖에는 없어서 길을 물어봤더니 내 걱정과는 다르게 친절하게 유스호스텔을 안내해 준다. 다행히도 24시간 open 상태인 숙소였다. 유스호스텔 체크인 할아버지는 나보다 더 반갑게 나를 맞이해준다. 어제도 새벽 3시에 체크인 한 동양인이 있었다면서 대환영이라고 하신다. 시즌이라서 그런지 오늘 쓰는 방을 내일은 바꿔야 한다며 키를 건네주셨는데 룸메이트인 프랑스인으로 추정되는 여인이 나의 여행 온 목적을 꼬치꼬치 캐묻는다. 거의 조사받는 심정이 되어 이것저것 대답해주다가 남자 찾으러 온 거냐는 질문부터는 벙어리 귀머거리 행세를 시작하고 있다 나는. '난 여행이 고파서 온 거라고요 흥!' 이런 말이 하고 싶으나 침묵이 제일 좋을 때인 거다. 12시 넘어 들어온 숙소라 피곤도 한데 이런 질문까지 받으니 우울해진다. 그래서 내일 갈 인터라켄을 그려보며 그냥 못 알아듣는 척. 가끔은 이 ‘척’이란 단어가 너무 좋다. ㅎ

어김없이 이른 새벽에 눈이 떠졌다. 일어나 밖을 보는데 비가 온다. 비가 오면 인터라켄은 볼 수 있는 게 없어서 다음으로 미루라는 말이 있다. 근데, 난 다음이 없다. 이번 여행에서만큼은 말이다. 오늘 돌아와서 내일 잠시 루체른 보고 튀빙겐으로 넘어가야 하다 보니. 그래서 그냥 비를 맞으며 인터라켄을 향해가는 기차에 몸을 맡겨본다. 보드 점퍼임에도 불구하고 꽤 춥다. 우산을 든 손도 장갑을 끼고 있지만 시리다. 그래도 즐겁다. 인터라켄 정상에는 라면이 있거든. 잠을 잘 못 잔 것도 며칠째이고, 잘 안 맞는 음식 덕에 체력이 바닥나 있었던 지라 그게 어찌나 간절한지.

오늘도 혼자 출발했지만 또 다른 동행이 생긴다. 인터라켄 기차역에서 산악열차를 기다리고 있는데, 인도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말을 건넨다.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면서 산악 열차에 올랐는데 옆에 앉은 동양인도 한국인이라면서 인도 아저씨가 둘이 동행하면 좋겠다고 하면서 오늘의 동행을 만들어주셨다. 한동안의 어색함은 인도 아주머니들과, 아저씨들이 풀어주시고, 자꾸 인사 나누다 보니 어느새 세계 관광 패키지(인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캐나다 등)마냥 모여서 산악열차에서 내릴 때마다 사진 찍어주고, 웃어주고, 이야기 나누고 한마음이 되어버렸다. 많은 한국인도 있는데 우리 둘만 이 여행객들 속에 들어가 있는 기분 조금은 묘해졌다. 마녀 차장님이 운전하는 산악 열차를 타고 드디어 정상~ 신기한 건 '안녕하세요' 하는 말이 들리는 거다. 돌아보니. 그 높디높은 곳에서 시계를 판매하고 있는 한국 분이 있는 거다. '정말 대단한 한국이다'라는 생각을 했다. 그분과 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실 인터라켄 절경 보러 온 건데 오늘은 그간의 수다가 그리웠던 사람처럼 말을 건네 오는 모든 이들과 대화만 하고 있다. 지금 밖에선 눈이 내리고 있어서 온통 하얀 세상뿐이다. 그 산 절경은 어디로 갔는지, 사진을 찍어보아도 배경이 흰 바탕에 증명사진 정도? 눈밖에 안 보이는 그곳을 라면으로 마음 달래고 내려온다. 아무래도 다음에 다시 오라는 거겠지?

스위스에서의 마지막 날이라 그럴까? 어김없이 이른 새벽 눈이 떠진다. 마음은 쉬고 싶다고 말하나 몸은 벌써 여행 나갈 준비를 한다. 루체른으로 출발한다. 역 안의 매점에서 물 500리터짜리가 3.45 스위스프랑이다. 거의 2천 원이 넘는 건데. 이렇게 물가가 비쌀 수밖에 없는 이유를 잠시 고민해본다.

루체른의 빈사자상과 빙하 정원을 찾기 위해 헤매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길을 물어보기 위해 말을 건넨다. 그녀는 스위스에서 가이드를 하는 미국인이었다. 덕분에 더 이상의 헤맴 없이 바로 빈사자상까지 안내를 해주겠다고 한다. 시간적인 여유가 많지 않았는데 이런 행운 덕분에 보고 싶던 것들을 다 보고 간다. 여행이 주는 소소하지만 꽤 오래도록 간직되는 행복의 맛이다. 루체른에서 내게 주어진 시간이 많은 게 아니라서 간단히만 둘러봐야 하는 곳이지만 스위스의 맛이 느껴지는 곳이다.



튀빙겐 기사 아저씨가 허락해 준 무임승차



루체른에서 짐을 챙겨 튀빙겐으로 들어온다. 튀빙겐까지 가는 방법이 어떻게 되었더라. 기록해 두지 않았더니 잘 기억나지 않는다(나의 여행 방식은 항상 이렇게 취약하다) 취리히에서 바로 가는 기차는 아니었을 텐데. 다행히도 튀빙겐은 저녁에 도착했는데, 기차에 내려 지나가는 아저씨한테 숙소 가는 버스를 물어보니 직접 버스 정류장까지 데려다주신다. 아직 잔돈도 준비 못했는데 말이다. 데려다 주신 아저씨가 운전기사 아저씨와 말씀을 나눈다. 내 실력으론 그들의 대화까지는 이해하긴 어렵다. 그냥 잠자코 기다리는 수밖에. 버스를 타면 된다는 아저씨 얘기에 버스에 올라 지폐를 내도 되냐는 액션을 취하자 운전기사 아저씨가 그냥 타라고 한다. 튀빙겐도 독일의 조그만 지방 같은 곳이지만 헤세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이라 와보고 싶은 곳이었다. 오늘 유스호스텔의 룸메이트는 간호사분이셨다.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그녀가 무척이나 부러워진다. 잠깐 들을 강의가 있어 튀빙겐에 왔다는데 특이하게도 학생도 아닌데 유스호스텔에 머무른다. 더 이상 묻는 건 실례인 거 같아, 나도 간단히 짐 정리 후 2층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해 본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내겐 2층에서의 잠은 도전인데... 조금 추웠지만 거의 9시간을 자버렸다. 오랜만에 길게 자보는 잠이라 개운하다. 오늘도 못 잤음 몸살감기가 오지 않았을까 싶다. 다음날 아침 체크아웃을 하고 가방을 락커에 넣어놓고 헤세가 일했다는 서점과 튀빙겐 대학교를 찾아 여행을 시작한다. 세월은 어쩔 수 없는 걸까?

여행책 속에서 설명한 서점은 남자 속옷 매장으로 바뀌어져 있다. 나를 안 기다려주고 말이다. 무척이나 속상해진다. 헤세의 흔적을 느끼러 이곳까지 온 건데, 헤세의 흔적을 느끼러 칼브까지 넘어가야 하는 건지. 넉넉한 시간 배정을 하지 않고 온 나의 여행을 다시 체크하며 밤베르크와 칼브에 대한 좀 더 가고 싶은 곳이 어딘지에 대해 고민한다.



밤베르크는...

아무래도 세워둔 계획대로 움직이는 게 더 좋을 듯하여 독일의 작은 베니스라 불리는 밤베르크로 들어간다. 밤베르크를 둘러볼 수 있는 시간이 두세 시간 정도라 밤베르크 기차역 락커에 배낭을 집어넣는다. 짐을 집어넣자마자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우산이야 들고 있었지만 추위를 대비하진 않아서.. 대기실을 벗어나지 못하고 많이 망설이고 있는 내게 내 가방 크기보다 더 큰 배낭을 짊어진 여행객인듯한 아저씨가 말을 건네 온다. 어디 가려는 거냐고. 아마도 내가 방향을 몰라서 기차역사에서 망설이고 있다고 생각했나 보다. 구시청사 근처와 대성당, 신궁정 보러 간다 했더니 가는 방법을 알려준다. 사실 나도 알고 있는 거긴 한데 저 폭우를 어떻게 뚫고 가느냐가 문젠건데 말이다. 무거운 배낭을 내려놓으면 다시는 짊어지기 싫을 거 같아서 친구가 데리러 올 때까지 그냥 메고 있다면서 이 밤베르크가 너무도 좋아서 미국에서 가끔 책을 짊어지고 와서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아저씨. 무척이나 부러운 눈으로 또 난 그를 바라본다. 배낭 안이 가득히 책인 여행객. 여행 가면서 배낭 안에 한가들 책을 넣게 되는 날이 나에게도 올는지 잠깐 고민해 본다. 이런저런 고민을 하며 밍그적거리는 내게 아저씨는 비 오는 곳으로 어서 나가서 즐기라고 말한다. 즐겨야겠지 미친사람마냥. 그 추운 날씨에 청바지를 종아리까지 딱딱 접었다. 비 젖어 무거운 청바지 보담 다리가 시린 게 나을듯해서. 아무래도 감기가 걸릴듯하다. 밤베르크를 구경한 건지, 비를 구경한 건지, 추위가 뼛속 깊숙이 스며온다. 비가 여행의 속도를 더디게 해버려서 프랑크푸르트로 돌아왔을 땐 민박집 아저씨가 무척 걱정하고 있다. 꼭 내 집에 돌아온 기분이 든다. 누군가가 반겨주는 그 행복함. 못 먹는 거지만 챙겨주는 삼계탕을 마다 할 수 없어 한 그릇을 다 비워본다. 그러느라 애꿎은 밥 한 그릇을 다 먹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다음날 이른 아침부터 뮌헨 숙소 예약을 도와준 은경을 만나 비행기 타기 전 시간까지 탈탈 털어 미술관 구경이며 프랑크푸르트를 한없이 걷고 걷는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한 시간이 많아서인지 독일과 스위스란 나라가 무척이나 그리워질 것 같다. 결국 비행기를 타야 할 땐 올 때처럼 몸살감기에 앓아누워버렸지만 그래도 좋다. 다음 여행지를 비행기 안에서 떠올려본다. 그러나 아직은 아닌 걸까. 아무 곳도 안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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