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동 & 충돌 7. main_Spain

by 꼬드kim


배낭을 팔려는 충동이 여행의 충동을 불러오다.(2008)


한참을 일과 실랑이하고, 아프고 나니 배낭을 팔아버려야겠단 생각이 든다. 그랬더니 엄마가 서운하지 않겠냐 하시면서 그냥 두라고. 그게 화근이었다. 팔려고 꺼낸 가방을 보니 또 떠나고 싶어진다. 동행을 구하기도 전에 벌써 비행기표부터 사버린다. 너무 늦게 질러버린 탓에 가고 싶은 마음이 더 커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이번 여행은 겨울이라 무작정 따뜻한 나라를 가야겠다는 마음에 스페인을 선택한다.


환상의 동행자들

다행히 영어를 정말 잘하는 혜일과 나침반 같이 든든한 혜영이를 동행으로 만났다. 혜일인 나보다 8살이나 어렸다. 어린 친구들과의 동행은 모험이 따를 수 있다. 상황에 따라 그와 더불어 액티브하고 흥미 진지한 여행이 될 수도 있고. 그 후 몇 명한테서 연락이 더 온다. 자신들을 데리고 떠나달라는 그녀들의 메시지는 덜컥 겁나게 한다. 내가 가야만 하는 곳이 스페인인데 그런 건 아무 상관없다는 그녀들의 메시지는 사뭇 진지하긴 하지만 왠지 모를 수동적인 의지가 담겨있어 선택이 망설여진다. 그런 메시지와는 달리 제일 먼저 메시지를 보내 온 혜일이는 동행을 원한다면서 처음부터는 할 수 없고 스페인 일정부분을 조정해서 같이 다니고 싶다고 한다 중동을 다녀왔다고 말하는 이 아이와 같이 한다면 각각 지니고 있는 여행 스타일이 어우러져 신나는 여행이 될 것 같아 마음이 끌린다. 이렇게 되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게 되는 거다. 둘만의 여행을 위해 준비 중에 다른 한 명의 동행이 된 혜영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스페인이 가고 싶은데 아직 표를 못 구했지만 최선을 다해볼 테니 같이 가자는 동갑내기 친구 혜영. 그녀는 정말 그녀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서 나와 같은 항공사 비행기를 그것도 같은 날짜의 시간 티켓을 짠하고 구했다. 대단한 열정이기에 왠지 이번 여행은 떠나기 전부터 설레어 온다.

사는 곳이 각각 달라서 우선 만남을 진행해 봤다 어차피 떠나면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겠지만 여행지에서 처음 만나는 것보다는 사전의 돈독함을 다져두는 것이 서로간의 여행을 좀더 편안하고 끈끈하게 해줄 테니 말이다. 취향도 나이도 모든 것이 다르지만 내가 정해온 스케줄을 따라서 여행을 준비하겠다고 한다. 한편으론 고맙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론 그들이 보고 싶어하는 것을 넣어야 해서 많이 고민이 된다. 스페인과 포르투갈로 엮어진 책을 하나 샀다. 읽다 보니 여기저기 붙어있는 포스트잇은 어느 곳을 포기해야 할지 쉽지 않은 고민이 되어 돌아온다.

바다를 좋아하는 나로써는 여행 동안에 바다를 들러보고 싶은데 항상 대륙을 다니다 보니 그곳을 접하기란 쉽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이번엔 스페인의 발렌시아를 넣어보는데 이동경로가 만만치 않아서 모두들 고개를 끄떡이지 않고, 나만 바라본다. 결국 다음을 기약하며 여행지를 다이어트 한다 이동경로를 바르셀로나-그라나다-세비야-바르셀로나-쿠엥카-마드리드나 정도로 정하니 그녀들이 나를 설득하기 시작한다. 쿠엥카를 빼고 딴 곳을 가기 위함이다. 동행자와의 가고 싶은 곳이 다를 때는 가끔 타협을 통해 스케줄을 다르게 짜도 좋을 듯 하다. 어차피 서로가 여러 번 올 수 있을 상황이 생길지 모르니 최대한 의견을 존중하여. 그래서, 쿠엥카는 나 혼자 다녀오기로 하고 출발날짜에 보기로 했다. 혜일이는 바르셀로나에서 만나기로 하고, 혜영이는 공항에서 보기로 했다.



여행 스케줄은 대체 언제쯤 확정되는 거유??


아주 이르지 않은 아침시각, 공항도 그리 부산하지 않다. 우린 느긋하게 체크인을 시도한다. 근데 부지런한 이들이 모두 기내복도 쪽 자리를 벌써 다 찜해버려서 아무래도 이번 여행도 내내 부시럭거림은 또 심해질 듯 하다. 내 오른쪽에 앉은 외국인과 눈인사를 나눈다. 여행지에서 만난 한국인 남자들이 말하는 편견(유럽남자들은 여자한테만 친절하다)을 이분 또한 갖고 있을까? 가방도 번쩍번쩍 들어올려주시고, 앞뒷자리까지 모두 챙겨 넣어주는 자상함에 혜영이와 난 감동 그 자체라 입을 떡 벌리고 있다. 자리에 앉아 이것저것 정리도 하고, 수다도 떨다가 모두들 잠잘 즈음 우린 공부하지 못한 여행 책을 꺼내본다. 옆에 앉은 그 외국인도 열공모드. 한참 열공모드이던 외국인이 나의 책을 쓰윽하고 봤나 보다. 스페인 가냐는 질문과 함께. 그렇다고 하니까 이(이름은 하지메) 열성적인 분이 나의 모든 여행계획을 다 바꿔버렸다.

얘기하다 보니 스페인인 하지메는 우리가 세세하게 나눠놓은 여행에 첨삭을 하기 시작했다. 쿠엥카를 가겠다는 내게 쿠엥카 대신 열심히 톨레도를 얘기한다. 톨레도가 더 중세적인 분위기에 볼 것이 많다고. 쿠엥카의 절벽 하나와 거꾸로 매달린 집 하나뿐이라는 둥. 그 외에도 가봐야 하는 곳 여러 곳을 읊어준다. 듣다 보니 스페인에서 안 가봐야하는 곳은 어디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번 여행은 큰맘 먹고 포르투갈도 포기했는데 말이다. 여행 이야기 하느라 어느덧 갈아타야 하는 곳 네덜란드에 들어와버렸다. 아쉬운 맘에 비행기안에서 그렇게 많은 음식을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혜영이가 커피 한잔을 대접하고 싶다고 하니까, 아일랜드행 비행기로 갈아타야 하는 하지메는 우리를 따라 나선다. 분명 이렇게 좋은 사람을 만났기에 우리의 여행은 아주 즐거운 여행이 될 거라는 기대를 가져보게 된다. 스페인행 비행기를 기다리는 시간은 2시간 남짓밖에 안되지만, 무척이나 길게 느껴져 온다. 서울시간으로 새벽이라서 그런 건가? 스페인 공항에 내리고 나니 번쩍번쩍한 대리석 계단이 제일 먼저 우리를 맞이해준다. 밖으로 나오니 어쩌지? 스페인은 항상 화창할 거란 생각에 우리 모두 우산을 안 가지고 왔는데 비가 온다. 겨울비가. 기분이 묘하다. 2월에 내리는 겨울 비.

다행히 픽업요청으로 마중 나온 아저씨가 공항안쪽으로 우리를 데리러 왔기에 비를 맞지 않고, 차를 탄다. 어둠이 깔린 스페인. 스페인의 이런저런 얘기를 들려주시는 민박집 아저씨. 스페인에서의 하루는 여행처음으로 조용하게 끝나간다.

먼저 와서 기다려주는 혜일이와 하지메가 말해준 팁들과 기타 의견들을 조합하여 밤새내 일정을 재조정 놓았지만, 다음날 일정은 여지없이 나에 의해서 바로 그날 아침시간에 바뀌어버린다. ㅋㅋ

아침 식사시간. 한국 배낭객들 모두 모여 민박집 아침을 먹는다. 그 중 내가 제일 고령이다. 모두들 기겁하며 왕 누나라 부르는데 아무래도 체력이 떨어지면 그 어떤 곳도 이들과 동행할 수 없을 것 같아 보인다. 방학이라 잠깐 스페인 여행을 왔다는 근민이라는 아이가 우리에게 스페인 축구를 보러 가자고 제안한다. 우리 모두 고민에 빠지는데 내가 "좋아요~". 이렇게 말해버렸다 이래서 여행은 더 재미난 거 아닐까 하고 나 혼자 큭큭거리며 동행들에게 동의를 구한다 다행히도 쿨한 혜영과 혜일인 내 수정된 계획에 오케이를 해줬고 오늘의 일정을 수정한다. 혜일과 몇몇은 다른 나라 여행지에서 가지고 들어온 쌓인 세탁물들을 맡기러 세탁소로 향하고, 혜영과 난 축구 예매를 하러 나선이들을 따라 나선다. 생각보다 민박집에서 가까워서 걸어간다. 축구를 보려는 사람이 많아서 표를 살려면 한참이나 걸릴 것 같아 고민이 되어온다. 오늘 많이 돌아다녀야 하는데. 다행히 근민이가 대신 예매를 해주겠다고 한다. 참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표가 남아있을지 몰라서 일단 저렴한 표를 사달라 하고 우린 다음 여행지로 출발~



피카소 좋아?!

피카소 미술관은 혜영이가 꼭 가보고 싶다는 곳이다. 늦게 도착한 우리는 줄이 길어 1시간 가까이나 기다렸는데, 오늘은 무료 관람이라고 한다. 여행 처음으로 당첨되어보는 무료관람이다. 기다림의 지침도 잊어버리고 즐거이 그림을 바라본다. 아무리 그림 보고 즐거워도 배고픔은 잊혀지지 않나 보다. 점심때가 한참이나 지나서야 우리는 식당을 찾아나섰다. 그런데 또 비가 내린다. 어쩌지. 이번엔 네명인데 네 명 중 한 명만 우산이 있을 뿐이다. 스페인은 우산을 팔러 다니는 사람이 간혹 있다. 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혜영과 나의 마음을 읽기라도 했는지 혜일이가 얼마냐고 아저씨한테 물어봤다. 5유로란다. 비싼 걸까?? 헤일인 단칼에 no way를 외쳐버렸다. 읔, 저렇게 빨리. 아저씬 흥정모드. 그럼 얼마를 원하느냐고 물어보는데, 2유로를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혜일이가 언니처럼 든든하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그러나 흥정실패. 결국 우린 가지고 있던 우산 하나로 네 명이 이동해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ㅎ 그래도 여행이라 모든 것이 좋다. 그냥 가지게 되는 대책 없이 줄줄 흘러내리는 긍정적인 사고들. 우산 속으로 머리만 집어 넣은터라 가까운 곳으로 이동해서 스페인 음식 빠에야를 시켰다. 식당아저씨는 우리가 만만해 보였던걸까? 맛이 어떨지 몰라 음식을 2개밖에 안 시켰는데도 남겼을 만큼 형편없었는데 자리 값을 내라 한다. 결국 제가격 주고 먹은 것처럼 되어버리는 상황이다. 어딜 가도 이런 속보이는 장사를 하는 사람은 있게 마련인가 보다. 비도 피할 겸 아이스크림 가게에 들어갔다. 가끔은, 어리석은 행동 같아 보이지만 행복은 계산한 만큼 되는 것이 아니라고 난 생각한다. 이 아이스크림집도 마찬가지였다. 우린 거의 우산 값에 가까운 커피들을 사 마셨다. ㅋ 그게 더 우리에겐 휴식이라서 그런 셈이 나왔던 것 같다



가우디와 FC 바르셀로나를 즐겨 할 시간~

추적추적 내리던 비가 조금씩 그쳐가는 걸 보면서 다음 장소로 이동한다. 스페인엔 건축가로 아주 유명한 사람 가우디. 그 사람이 만든 아파트(카사밀라)를 보러가는 거다. 카사밀라. 하늘 위를 바라보면 중앙이 뻥하고 뚫려있는 아름다운 곳이다. 우리나라와 같이 높디 높은 아파트는 아니지만 보면 볼수록 살고 싶을 만큼 예쁜 집이다. 우린 모두 자기집인양 여기저기서 사진도 찍고 간단하게 되어있는 그의 작품집도 구입한다. 겨울 해는 짧았다. 어느덧 6시가 되어가고 있다. 밥을 먹을 시간도 없이 축구장으로 간다. 그러고 보니 연락할 방법이 없으니, 만나기로 한 장소에 그들이 안 와있으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을 하게 된다. 표를 못 샀으면 다른 곳으로 이동해버렸을 수도 있을 테니까 말이다. 다행히도 근민이와, 명진이는 왕언니들을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한국인들을 어디서 만났는지 몇몇이 더 보이고. 우리 자리는 아주 꼭대기. 잘 보이는 건 아니지만 FC바르셀로나 축구선수들의 빠름이 너무 잘 느껴져 온다. 우리나라 선수들한테는 미안하지만 빠르기 속도가 우리나라와는 확연히 다름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어느 편을 응원한다기 보다 골을 넣을듯한 모션만 나오면 소리를 지르고 있는 우리에게 소나기라는 거대한 적이 나타나버렸다. 우산이 없던 우린 후다닥 안으로 들어와버렸다. 아아! 그 사이 함성은 제일 커져버렸다. 그 찰나에 골을 넣어버린 거. 비를 겁먹고 피해버린 우리만 못 보고 용감히 자리를 지켜낸 스페인들과 근민, 명진은 우리에게 설명하느라 정신이 없어진다. 그 열정의 도가니 속에 다시 들어가는 우리.

경기가 끝나고 나가는 스페인 사람들은 꼭 우리가 2002년때 행진하던 사람들마냥 그들도 어딘가를 향해서 행진을 한다. 따라가보고 싶지만 너무 배고파서 우린 축구 얘기를 민박집으로 옮겨왔다. 잊지 못할 것 같다. 여행에서 돌아와서 시간이 좀 지난 후 ‘아내가 결혼했다’를 봤는데 거기 보면 바르셀로나 축구장이 나온다. 가있지 않아도 그곳의 열기가 느껴지는. 그래서 내겐 여행이 좋은 것 같다.



오늘의 미션은 신발찾기~~

마드리드의 셋째 날이다. 오늘은 비가 안 오겠지? 오늘도 가우디 작품들을 보러 갈 거라서. 따뜻한 햇살이 필수 일듯한데 말이다. 먼저 구엘 공원으로 갔는데 산책하기가 좋다. 어느 순간 기분 좋음 올라가지는 내 두 팔이 하늘을 향해 번쩍 팔 벌리고 있다. 구엘 공원은 올라가는 길은 야외 에스컬레이터도 수월하게 올라갈 수 있다.

공원인만 만큼 산책을 즐기다 보니 어느덧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에 들어가야 하는 시간에 너무 늦어버렸다. 1시간 반을 기다렸을까?

드디어 성당에 입장. 근데 왠걸, 온통 공사하느라 대리석인듯한 하얀 가루들이 여기저기 날리는 거다. 아직 완공된 건물이 아니라 한다. 근데 왜 공개를 하는걸까하고 궁금했는데 관광객이 내는 입장료로 계속해서 건축물을 완성해가는 중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같으면 속 터져서라도 벌써 다 올려버렸을 텐데 그들의 느긋함과 여유가 부러워진다 슬슬 배가 고파온다 밥 시간을 잘 못 맞추면, 스페인에선 굶어야할 때가 있다. 시에스타시간에 걸려버리면 말이다. 나같이 굶는걸 못하는 사람에겐 이건 꽤 치명타이다. ㅎ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목표해둔 곳을 부지런히 찾아 간다 스페인 와서 빠에야를 먹어야 하지만 어제 먹은 맛없는 빠에야 때문에 오늘은 스파게티를 사먹기로 했다. 먹고 나니 시에스타 시간이다. 혜일이는 맡겨둔 세탁물 찾으러 민박집 쪽으로 간다고 하고 혜영와 난 그 시간에 길거리를 두리번거리기로 했다. 이방인같이 생겼지만 이방인 같지 않게 어슬렁거리면서 걸어보기는 너무도 좋은 날씨다. 오늘의 마지막 미션만 하면 집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름하여 신발가게 찾아 나서기. 내가 너무 신발을 좋아하는 지라 스페인 특유의 신발을 사러 가기로 했다. 커피까지 쏘기로 했는데 여행 책에까지 소개된 그 집 찾느라 한참을 걸렸으나 정작 신발 집에 신발은 우리 모두 웃게 만들어버렸다. 혜영인 이렇게 촌스러운 신발을 파는 곳을 소개한 그 책을 고소해야겠다는 둥, 그래도 기념인데 촌스러워도 사라는 둥. 사실 거의 집신 같아 보이는 그 신발을 살수가 없었다. 책은 왜 예쁘다고 소개했는지 이해할 수 없지만 그거 찾느라고. 버둥버둥 1시간을 헤맨 그 골목골목이 추억으로 켜켜이 쌓여졌다. 내일을 위해 집에 일찍 들어온다. 드뎌 알함브라궁전 보러 그라나다로 옮겨갈 거라서.




우리의 숙소는 어디 있나요?? 그리고 지금 시각은 오후? 오전? 으응? 새벽???


나이 들어서인지 먹는 것에 무지 목숨을 걸게 된다. 아침 9시 비행기라 8시에 주는 아침밥을 못 먹을 것 같아 민박집 아저씨한테 좀 일찍 만들어주심 안될까요 했더니, 아침에 만들어주는 건 자신이 없으시고, 대신 늦은 밤에 도시락을 만들어놓으시겠다고 한다. 1시간전에는 도착해야 하고, 또 공항까지는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몰라서 대충 넉넉잡고 길을 떠난다.

전철 타고 기차를 타야 한다. 그런데 오늘 기차는 공짜다. 스페인에 기차가 공사 중이라 불편하게 해서 죄송하다고 공짜로 공항까지~ 기분이 좋아진다 비행기 체크인하고 정성껏 싸준 도시락 먹으면서 비행기를 기다려본다. 작은 스페인에어이지만 철저하게 짐 검사를 한다. 핸드캐리하는 음식물 모두 폐기처분 당하고. 그래서 우리의 여행을 위해 마련해준 민박집 동행들의 음식을 모두 공항에서 버려야 했다. 아시아인이라고 무시라도 한걸까? 일찍 체크인 했음에도 불구하고 비행기 꼬리부분에 타보긴 처음이다. 어찌나 소음이 크던지 이륙 때까지 눈감고 있자 이런 것이 그새 착륙한다고 안내방송을 한다. 1시간이란 소음 속에 이륙을 못 느끼고 자버렸나. 소음 속에서 1시간을 보내서 그런지 공항에 내리니 머리가 어지럽다. 짐 찾아, 공항버스 타고 꼬불탕꼬불탕한 언덕배기 골목길들을 낑낑거리며 짐을 메고 그라나다 숙소에 갔다. 그런데 예약이 안되어 있다고 카운터 직원이 얘기한다. 그럴 리 없다는 나의 대답에 어찌된 영문인지 확인해보더니, 똑같은 이름의 체인점 중 포르투갈에다가 우린 예약을 해버린 거였다. 어이없어서 한참을 웃었다. 혜영이가 예약하고 내가 확인하는 거였는데 그때 우린 뭘 한걸까? 다행히 그라나다 숙소에서 포르투갈 숙소 취소를 해줬지만 막막해지는 상황이다. 우린 연고지도 없는 이곳에 다른 숙소를 찾아나서야 했다. 혜일인 우리보고 여기서 짐을 지키고 있으라 한다. 본인이 찾아서 오겠다고. 미안했지만 우린 땃땃한 햇살에 가방을 의자 삼아 혜일이를 집 나간 엄마를 기다리는 사람들 마냥 넋 놓고 기다려본다.

얼마가 지났을까. 헥헥 거리며 오는 혜일이가 우리에게 미소를 날린다. 좀더 좋은 오스탈이라는 형태의 숙소를 잡은 거였다. 캐리어를 들고 온 이 둘은 쿵쾅거리며 그곳을 향해 열심히 내려가고, 나또한 어깨 무너져라 짐을 짊어지고 내려간다. 특급호텔만큼은 아니더라도 깔끔한 숙소가 이내 맘에 든다. 대략 가방을 내려놓으니 12시. 그라나다 시내로 나와서 책에 적혀져 있는 맛집을 찾아 나선다. 상그리아 이런걸 마시고 싶지만, 점심이니 오징어 요리와, 피자 이런걸 시켜놓고 푸짐히 먹고 나니, 또 시에스타에 걸려버렸다. 아직까지 제대로 된 쇼핑 한번 못했는데 말이다. 우리도 오늘만큼은 시에스타를 즐겨보자며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창문에 달린 나무 가리개는 커튼을 대신하는 것인지 가리개를 닫으니 오후 4시인데도 방이 깜깜해 낮잠 자기 적당해졌다. 스페인들은 이렇게 해놓고 낮잠을 즐기는구나 이런 생각을 한다. 잠시 낮잠을 잤다고 생각하고 나무덧문을 열었더니 밖은 어둠이다. 몇 시지? 시계를 보니 5시다. 5시치고는 꽤 어둡다는 생각을 하며 시계를 다시 보니 새벽5시다. 대체 몇 시간을 잔 건지. 어이가 없어서 한참을 웃어버리고 만다. 나무덧문은 최적의 수면 상태를 만들어주었나 보다. 여행하다 보니 하루가 없어지는 날도 생겨버리네 이럼서 웃을 수 밖에. 나는 새벽을 밤처럼 즐기기 위해 나갈 준비를 한다. 혜영도 따라 나서겠다고 해서 6시까지 기다리다가 새벽을 맞이하러 나가본다. 견해 차이지만 타지에서 겪는 밤은 무서울 수 있는 거라 새벽은 안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던 거. 알함브라궁전을 보러 올라가는 길이 내내 무서운지 혜영은 돌아가자고 한다. 하는 수 없이 조금 걷다가 숙소로 돌아와 알함브라 궁전의 아침을 기다려본다.

아침 7시. 다시 정확해진 나의 생채시계는 두뇌 속의 여행 계획 시간대로 눈이 떠지고 준비를 마치고 궁전으로 향했다.

따듯한 햇살과는 상반되게 알함브라 궁전 뒤편에 있는 산에는 만년설이 보인다. 역광이라 제대로 찍을 수 없는 그 산이 참 멋져 보인다.

알함브라궁전은 겉에서 보기엔 사각형 건물이라 밋밋해 보였지만 찬찬히 들여다보니 이슬람의 문화가 섞여있어서 감탄사를 자아내게 한다. 색색들이 다양한 무늬들, 조각들. 너무 올려다보고 넋 놓고 봐서 벌어졌던 턱과 고개가 아플 지경이 되어버린다. 궁전 안에 있는 멋진 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려 했으나 1시부터 식당을 연다고 한다. 정말 느긋한 민족 같다. 호텔인데도 오픈이 1시면 사람들은 대체 몇 시에 식사를 하는 걸까 흐음. 하는 수없이 여행 책에 소개된 스페인 가정식 백반을 먹으러 간다. 나열해주는 메뉴 이름을 들어보고 골라보려 하지만 역시나 스페인 이름이라 그냥 포기하고 메뉴판 지적으로 이거이거 이런 식으로 시켜먹는다. 나름 볶을 복이나 맛 집이라고 나와서 그런지 참으로 맛있다. 느긋하게 점심을 먹고 나니, 어김없이 시에스타에 걸렸지만 오늘은 쇼핑의 아쉬움을 뒤로한 채 그라나다를 떠난다. 혜영이와 나는 세비야로 넘어가서 플라멩고를 보기로 하고 혜일이는 이곳에 하루 더 있다 마드리드로 넘어가 만나기로 했기 때문이다. 플라멩고의 진수를 볼 수 있을는지. 사뭇 기대가 크다.



정열(?)의 플라멩고를 잠이 무찔러 버리는 밤??


버스가 서쪽을 향해서 달린다. 해가 계속 지지 않고 지평선 언저리에 걸쳐서 붉은 광선을 쏘아대는 게 견디기 어렵다. 2월인데 20도라 버스는 에어컨 가동 중. 제대로 붉은 노을이 발사하는 광선. 아무리 손바닥으로 가려보아도 가려지지 않는 태양. 나의 선글라스는 주인을 보호 해줄 생각도 없이 버스 바닥 배낭 안에서 자고 있다. 그렇게 노을과 씨름하다 보니 어느덧 세비야에 들어왔다. 숙소로 들어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을 찾아야 하는데 정류장은 곳곳으로 퍼져있고, 우린 숙소를 가기 위해 버스 타는 곳을 찾아 헤맨다. 이럴 때 택시가 딱 생각나면 좋으련만 항상 택시는 누가 말해줘야만 택시라는 교통수단이 있구나 하고 생각이 나는 나의 이상한 버릇으로 오늘도 어김없이 동행인 혜영이가 고생을 하고 있다. 몇 번의 정류장을 헤맨 뒤 버스를 타고 몇 번의 질문 끝에 세비야 유스호스텔을 찾는다. 유스호스텔 안에는 젊은이들도 바글바글하다. 시간도 이르지 않고 해서 짐을 대충만 풀고 플라멩고를 보러 나가기로 했다. 항상 질문이 중요하다. 리셉션에 물어봤더니 우리가 보고자 한 플라멩고팀은 휴가를 가버렸다 한다. 어쩐다 그거 보러 여기까지 내려왔는데 하는 생각이. 하는 수 없이 리셉션 직원에게 추천해달라고 해서 그녀가 소개시켜주는 곳을 가기로 한다. 신인이라서 무료라며. 빨간 대문의 플라멩고가 열리는 술집을 찾으란다. ㅎ 저녁이면 지리가 웬만큼 익숙하지 않으면 헤맬 수 있는데 길 잘 찾는 혜영도 조금은 힘든 가보다. 빨간대문집 찾느라 세비야 골목을 죄다 헤매는 거 같다. 그런데 나 이런 헤맴을 좋아한다. 이럴 때 아님 언제 이 동네 골목들을 누벼보겠는가. 대학가 근처였는데 학생들도 공부(?)만 하는지 그 술집을 잘 모르고. 결국 빨간 대문을 발견했다.

벅적거리는 사람들과 쉼 없이 펴대는 기다리고 있던 관객들의 담배연기 틈바구니 속에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오랜 기다림 속에 드뎌 플라멩고팀이 나왔는데, 나의 상상과는 달리 통통한 여자분이 플라멩고 음악에 맞춰 춤을 춘다. 노래를 부르시는 아저씨 또한 표정은 사뭇 진지하지만, 스페인어를 모르는 나로써는 그들의 구슬픔이 전혀 전해지지가 않아 내내 안타까워진다. 한 1시간 공연을 지켜봤을까. 그 공연을 보기 위해 담배연기 2시간정도는 참은 거 같은데. 이 구슬픔에도 천하무적 잠은 참아지지가 않는다. 눈꺼거풀이 커튼콜마냥 올라갔다 내려온다. 오늘 영업 끝이라고 알리는 듯이. 하는 수 없이 2부를 포기하고 다시 숙소로 향한다. 나무덧문이 꽉 닫혀있는 숙소로 돌아오니 젊은이들은 모두 자고, 씻고 잠을 청해보지만 누우니 내일의 일정짜기 모드로 머리가 전환해버렸는지 쉽게 잠이 오지 않아서 혼자서 또 부스럭거린다. 아무래도 오늘도 화장실 가서 밤새기를 해야할 것 같다.

다음날, 이곳 숙소는 아침을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곳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장을 봐서 냉장고에 넣어둔다. 우린 어제 늦게 들어온 터라 넣어둔 게 없어서 기본적으로 제공이 되는 팬케잌을 만들어 먹기로 했다. 어제 같이 공연 보면서 알게 된 여행객 한 분이 조금 더 만들어 나눠주시겠다 해서 호젓이 앉아 아침 햇살을 받으며 아침을 기다려본다. 스페인 햇살이 워낙에 강해 따갑지만 상쾌한 기분도 들게하는거 같다. 에너지 충전하는 기분. 간단히 팬케잌으로 아침을 챙겨먹고 카테드랄을 보러 출발하기로 했다. 혜영이 덕분에 카테드랄도 수월하게 도착한다. 카테드랄 구경 후 스페인광장으로 들어가 바닥에 그려진 타일조각의 그림들을 바라보자니 블랙셔츠와 블랙 진을 입고 있던 나는 햇빛 속으로 타들어갈 거 같다. 60cm정도의 크기를 여러 개로 나눈 타일에 스페인 역사를 담아놓은 광장이다. 이 역사를 들으러 온 유치원생들과 선생님 말씀에 귀 기울여보지만 알아들을 수 없는 스페인어. 알아들을 수 없다 보니 따듯한 날씨와 더불어 나른함이 밀려와 드러눕고만 싶어진다. 드러누우려는 찰나를 거스르고 스페인 대학으로 슬쩍 들어가 본다. 파리에 있던 대학은 경비아저씨가 절대 못 들어가게 하던데 이곳은 문이 개방되어있어서 살짝 도서관 문이라도 열려있을 치라면 그들의 삶을 기웃기웃거려 본다. 식당에선 한참들 점심 식사를 한다. 무얼 먹고 있을까 사뭇 궁금해진다.



마드리드와 가보지 않았으면 후회할 뻔 한 똘레도..


어느덧 마드리드로 옮겨야 할 시간이다. 못한 쇼핑의 한을 여기서라도 풀겠단 맘을 먹은 나와 혜영이는 기차시간이 간당간당 해지도록 쇼핑을 해댄다.ㅎ. 기차 놓치면 아찔해지는데 그 순간 혜영이 택시를 바로 잡는다. 난 스페인어로로 기차역을 뭐라 하나 한참 고민하고 있는데 역시나 빠른 혜영이 렌페를 외치고. 그 한마디면 문제가 해결되는 명쾌해지는 순간이다. 렌페는 초고속열차라서 그런건지, 짐 검사를 공항처럼 철저하게 한다. 짐을 기차 객실 옆 화물칸에 번호표를 나눠주고 실어주는 사람도 있다. 이어폰도 나눠주고 냉난방도 적절하게 나오는 게 스페인에어 비행기 꽁무니보다 훨씬 좋다는 생각이 든다. 드뎌 우릴 빠꼼히 기다리고 있을 혜일이를 만나러 가기 위해 마드리드로 들어간다. 전철역까지 마중 나와 있는 혜일이. 꼭 친구 집에 놀러온 듯 편안해지는 기분이 든다. 숙소 체크인도 알아서 다 해놓고, 방 정리까지 해놓은 그녀를 보고 있자니 언니들보다 참 어른 같아 뿌듯해진다. 오늘은 혜일이 생일이라서 여러 가지 사간 음식과 함께 생일 파티도 한다. 외국에서 맞는 생일의 기분은 어떨까 나 또한 같이 상상해본다.

마드리드도 나름 볼게 많겠지만, 이번엔 여행 구색을 좀 달리 했다. 미술관 투어도 하고, 톨레도도 가이드 껴서 가보자고 그래서 ‘자전거나라’라는 곳에 신청을 했다.

이른 아침부터 모이는 장소에 간다. 가이드를 맡은 청년이 쁘라도(Prado) 미술관으로 안내한다. 그의 신상내력이 자못 궁금해진다. 유학생 아님 이민? 많은 궁금증이 관광객들 사이로 퍼져가고 있는듯하다. 스페인 미술관은 이상하게도 우리나라와는 달리 이처럼 단체 관광객이 미술관에 들어갈 때는 관람료가 단체에게 더 비싸다고 한다. 그리고 2시간 이상 미술관 안에 있을 수도 없고, 현지 가이드도 옵션으로 넣어야 하고. 현지가이드 옵션이야 그 나라의 구직정책 때문에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가이드가 설명하고 싶은 그림을 다 설명할 수 있는 시간을 주지 않는다는 건 그다지 합리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동시에 개인이 와서 조용히 미술 감상을 하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단체 관람객의 설명 소리가 방해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우리의 가이드는 꼭 보여주고 싶어하는 그림이 단체 관광객은 들어갈 수 없는 구역이라면 문밖에서 안쪽으로 고개를 쭉 내밀게 해서 모두 보게 한 다음 밖에서 설명을 열심히 한다. 역시 한국인이다. 못하게 하면 다른 방법을 써서라도 꼭 보여주고야 말겠다는 의지. ㅋ

그 후 톨레도를 가기 위해 부지런히 지하철과 버스 타고 톨레도로 향한다. 중세분위기가 난다는 그곳. 우린 꼬마열차가 너무 타고 싶어 가이드에게 양해를 구하고 일행무리에서 잠깐 이탈하여 소꼬트램을 타러 간다. 톨레도를 일주하는데는 소꼬트램만큼 편안한 교통수단이 없을듯하다. 낮게 드리워진 구름들 그 구름과 어우러져있는 하늘. 간간히 데이트 하는 연인들을 보고 있자니 이내 시샘이 난다. 이런 좋은 풍경에서 데이트 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부럽던지.

저녁 관광은 패키지에 없었으나 가이드는 스페인 궁과 시내관광을 시켜준다.. 정말 열심히 하는 가이드 같다. 지쳐서라도 집에 갈 거 같은데 보여주고 싶은게 많다고. 슬슬 여행의 막바지라 욕심 내서 따라가본다. 소매치기 많다는 스페인, 무시무시한 소문이 많은 나라. 그렇지만 본인만 잘하면 아무 탈이 안 생긴다는 그의 말을 점점 믿어가고 있는 듯 하다.



쿠엥카 대신 세고비아~


쿠엥카를 여행하기로 했던 날이다. 그렇지만 하지메에게 설득 당해서 경로를 바꿔버린 그곳을 향해 간다. 세고비야. 로마 수도교가 있고, 백설공주에 등장하는 성이 있는 그곳. 오늘도 햇살이 따사롭다. 수도교는 사진으로 실감할 수 없을 정도로 참 크다. 비교해보려고 사람이 옆에 가서 서니 한없이 사람이 작아진다. 백설공주 성의 모티브 세고비아 알카사르. 동화도 음울했었나. 아님 그곳에 슬픈 역사가 베어 있어서일까. 우리는 이 음울한 느낌을 주는 알카사르를 두고 슬슬 여행을 마무리해 간다. 동행들은 빠른 시일 내에 다시 어여 오고 싶다고 한다. 스페인이 넓어 많은걸 본건 아니지만 다른 여느 때보다 훨씬 더 많이 느낀 것 같다. 그리움이라는 중독을 남아 겨울이 되면 스페인이 오고 싶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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