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forgettable Glasgow (2008)
늦봄. 예전 같음 벌써 여행하려고 별렀겠지만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마음을 많이 추스르고 있다. 그러나 느닷없이 12시가 되도록 잠이 안 온다. 혹자는 이런 마음을 후천성 여행 증후군이라 말하곤 한다. 딱 한 시간만 사이트를 방황하잔 맘에 컴퓨터를 켠다. 근데 어느새 여행 동아리가 아니라 여행사 사이트를 방황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얼마 남지 않은 추석 연휴 때의 비행기표가 거의 매진이다. 그러다가 벨기에 표를 발견하고는 휘릭 예매 버튼을 눌러버린다. 눈을 질끈 감고 있는 나. 그러고 나니 잠이 잘 온다. 항상 일을 저지르고 동행을 구해서 떠나고, 못 구하면 혼자 떠나는 거고. 무섭지 않냐는 질문엔 어느 정도의 고독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이젠 생긴 건지 괜찮은듯하다. 여행하다 보면 고독할 새가 없을 만큼 새로운 일이 많이 생겨서 그런 건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다음날 여행사에 문의했다. In-out를 바꿀 수 있냐고. 다행히 영국, 프랑스, 독일 이렇게 바꿀 수 있다고 한다. 고민이 된다. 독일. 그녀가(알레한드라) 있는 곳이기에 가고 싶지만 아직 지난번에 보낸 편지를 못 받았는지 그녀를 만나기 위해 무작정 그곳을 떠나긴 뭣하고, 파리는 혼자 가서 유유자적해도 좋지만 오붓이 걷는 게 더 좋을 때가 많은 도시라서 못 가본 영국으로 바꿨다. 그래서 비행기표는 영국-벨기에 이렇게 되어 내게 다시 가자고 리본을 매고 있다.
동행?
이번만큼은 쉽지 않다. 대부분 처음 여행지로 영국을 선택하는 편이라, 아무래도 혼자 여행을 시작해야 하나보다 이러고 있는데 슬그머니 쪽지 하나가 왔다. 초행인데 따라가고 싶다고. 이런 쪽지는 가끔 겁이 난다. 준비가 어느 정도 되어있는 게 아니라서 그냥 따라가고 싶은 경우가 많을 수 있기에. 아니나 다를까 나보고 비행기 취소해서 다시 예매하자고 한다. 가서 만나도 될 텐데 하는 생각에 난코스로 들어온듯하다. 그래서 난 여기저기 사이트 알려주고, 표를 잡아보라고 제안했다. 처음부터 수동으로 여행을 시작하려 들면 내가 완전히 개인 가이드처럼 되어주어야 하는 거라서 (서로서로 의지하는 게 동행인거지, 모든 일을 다 해결해주는 해결사가 아니니까). 역시나 쉽지 않다. 그녀는 잡으라는 표를 가격 고민 때문에 그만 놓쳐버렸다. 꽤 괜찮은 표였는데. 나도 그녀도 포기하려는 찰나에 한번 더 뜬 좀 더 높은 가격에 조금 더 안 좋은 조건의 비행기 표를 그녀가 구입했다. 가고자 하는 열망은 있는 거 같아 안심이 되던 순간에 그녀의 비행기 티켓이 금요일이라 그녀는 나보고 쭈욱 영국에 머무르자고 제안을 한다. 고민이 된다.. 내 표는 벌써 변경하기가 어려운데 단지 무섭다는 이유만으로 같이 있자고 하는 이 친구. 과연 동행과의 여행이 순탄할는지 저으기 걱정되기 시작한다.
동행이 생겼으니 준비하는 과정에 들어간다. 영국 인터넷 사이트는 무척이나 느리다. 예전에 책에서 읽었던 것처럼 자꾸만 속이 부글부글. 난 전형적인 한국인 속성을 보여주고 있다. 기차표 하나를 예매하는데 밤이 새 버릴 거 같다. 그 와중에 약간의 설득으로 그녀와 난 영국만 같이 여행하기로 합의를 봤다. 5일 중에 하루 정도는 버틸 수 있을 거라면서 그 정도는 혼자 오롯이 있어보는 것도 좋을 거다 이런 말들을 그녀에게 했다. 그래서 그녀는 에딘버러까지 가는 기차를 왕복으로 구매하는 것에 시도를 하고, 난 편도 구입을 시도한다. 뭐든 자세히 보려고 하지 않고 내게 기대려 하는 그녀는 계속해서 질문을 한다. 이럴 땐 뭘 눌러요? 이럴 때는요? 네이트로 적어주다 보니 그냥 밤이라도 차라리 전화를 하는 게 나을까 싶을 정도로.
다행히 계속되는 오류 발생 두어 시간 끝에 런던-에딘버러 기차표를 예매했다. 휴~
뮤지컬은 그녀가 예약하기로 한다. 그리고 나머진 그냥 내가 다 알아서 하기로 했다.. 찾아볼 생각 안 하고 끝없이 질문만 하고, 알아보지 않음이 슬슬 지쳐가고 있다. 그러나 결국 뮤지컬도 예약을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과연 영국 가서 뭘 해야 할지 막막한 생각이 슬쩍 들면서 너무 부정적인 여행이 되어가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도 되고. 여느 때처럼 잘 되겠지 이러면서 마음을 다스려본다.
여행 시작일이다. 몸을 피곤하게 만들지 않아서 그런 걸까. 비행시간 11시간. 기내에서 30분의 수면 빼고는 잠이 안 온다. 이번 여행은 무슨 용기가 있었는지 책도 안 사고, 예전에 파리 갈 때 사둔 두꺼운 책에서 런던과 스코틀랜드 그리고 벨기에 부분만 휙 뜯어 챙기고, 회사 언니가 건네준 소책자 영국-벨기에만 가방에 넣었다. 잠 안 오는 그 시간 동안 읽고 또 읽고, 이 정도면 외워질 법도 하건만 흐음~ 암기력 안 좋은 것 여행 내내 티 내고 있다.
경유시간이 1시간이라 빠른 입국, 출국심사를 받는 곳으로 들어가서 영국으로 들어가는 비행기를 탔다. 런던에서의 입국심사는 꽤 까다롭다. 파리가 아예 없던 것에 비하면 왜 왔느냐는 질문부터 언제 돌아갈 예정이냐는 질문까지. 동행이 다른 곳으로 갈 거냐는 질문에 안 간다고 해서 순간 입국을 못 할 뻔했으나 다행히 내가 이 사람은 런던에서 잠시 스코틀랜드 다녀온 뒤로 바로 서울 들어갈 거라고 말해 도장을 쿵하고 찍어준다. 입국심사 마치고 터미널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다음 미션이 기다리고 있다. 오이스터 카드 구매하기.
보통 공항에서 민박집까지 들어가는 데 비용이 4파운드 정도 하는데(대략 8천 원) 오이스터 카드가 있으면 2파운드 정도로 절반 가격 정도 한다고 한다.
아무 생각 없이 oyster card plz 했더니 이 아저씨 나랑 한판 하실 셈인지, 며칠짜리 카드를 원하느냐 해서 3일이라 했더니, 그런 것은 없다면서 계속 며칠짜리를 원하는지 말하라고 화를 내신다. 아 아찔해져 오면서 심장이 두근거린다. 옆엔 동행과 한국 분이 날 기다리고 있고(어디까지 가냐고 질문한 분인데 시내까지의 방향이 같다며 같이 가자고 표를 구입한 채 기다리는 눈치다) 매표소 아저씨는 카드를 안 줄 태세고. 뭐 잘못 말한 것이 있는지 점검과 고민을 하느라 잠시 후퇴한다. 이러고 있는데 개찰구에서 나오는 외국인 아저씨 한 분이 무언가를 내게 건넨다. 그땐 왜 이렇게 민첩하지 못함인지 그게 뭔지 몰라서 머뭇거리고 있는데, 매표소 아저씨 버럭 소리 지르고 계신다. 알고 보니 1일 티켓이라서 이 아저씨가 내게 공짜로 주려고 한 것인데 주지 말란 것이었다. "쳇! 치사해서 안 받는다고요. 꼭 돈 주고 삽니다요 사. 네?" (못 알아듣게 한국말로 궁시렁궁시렁)
근데 또 이 아저씨 안 주신다. 하는 수 없이 1회용 4파운드짜리 구매한다. 공짜 표도 날리고 돈이 대체 얼마가 날아가는 건지. 갑자기 참을 수 없는 서러움이 벌컥. 그래도 옆 사람들 챙겨야 하니까 서둘러 마음 추스르고, 민박집으로 간다.
민박집. 한 번도 아주머니가 아니었던 적이 없던 민박집이. 여긴 언니라 부를 수 없는 나이의 29세의 학생이 운영하고 있다. 영국이란 물가를 실감할 수 있을 만큼 모든 게 다 작다. 가구며, 화장실이며 부엌이며. 이 민박집주인에 대한 호칭이 애매모호해져 온다. 그냥 언니라 불러보고 싶지만 나보다 한참이나 어린 이 분을 뭐라 불러야 할지. 이 민박집 언니는 방세가 만만치 않아서 시작했다고 한다.. 그래도 아주머니들이 가지고 있는 느낌과는 또 다른 느낌에 어느새 영국에 적응해 보려 한다. 환전을 조금 아껴보고자 동전으로 바꿔온 나의 영쿡 돈들을 바꾸는 것부터 민박집 언니와 시작하면서 말이다. ㅎ
기내에서 30분밖에 못 잔 이런 날은 푹 자야 하는 것 아닐까. 초보자와 동행해서 긴장해 그런 건지 1시간 정도 잔듯하다. 벌써부터 초췌 모드일 것 같아 걱정이 앞선다. 짐을 줄여보잔 차원에서 물도 얼마 못 가지고 와서 컨디션 안 좋은지 내 몸은 일찍 알러지 보여주시고 있다. 나의 몸이 이러면 여행은 물론이고 동행도 힘들지 모르는데.
날씨는 9월인데도 코트 입어야 할 만큼 선선한(?) 느낌이다. 영국은 9월 정도면 추울 수 있다 했는데 또 너무 가볍게 봐서인지 어느새 덜덜덜 떨고 있다. 오늘 아침엔 어제 실패한 오이스터 카드 사기부터 시작하려 한다. 민박집 언니는 사람을 잘못 만난 것 같다면서 건투를 빌어준다.
지하철역에 도착해 이번에도 일단 간단하게 oyster card plz ~라고 말했더니 이 아저씬 deposit이 3파운드라면서 카드를 쓰윽하고 내밀어 주신다. 갑자기 하늘로 올라가 닿을 듯한 입 꼬리의 미소가 내 얼굴에 번진다. thank you를 연발하고 있는 나.
추운 날씨도 달랠 겸 승리를 축하하기 위해 동행자에게 커피 한잔을 쏜다. 대영박물관으로 gogo. 다행히 지하철 혼잡시간이 지나 overcharge 요금을 안 물어도 되고. 어제에 비해 수월한 하루를 시작한다.ㅎ~~
팸플릿도 들지 않고 그냥 걸어 들어가 본다. 많은 시간을 들여볼 수 없기에 대영박물관의 느낌만을 느껴보려는 중이다. 유난히 이집트 유물이 많다는 생각에 본국의 유물도 아닌데 가지고 있는 영국이 이기적이란 생각도 들고, 한편으론 이런 유물들이 이집트에 남겨져 있었다면 온전히 보존된 채로 남아있었을까 하는 다소 다른 생각이 동시에 스쳐간다.
두세 시간쯤 봤을까? 람세스들과 그리스 신전들. 빠르게 읽을 수 없는 정보들을 접어두고 일요일이니 장 구경을 하기로 했다. 뻔뻔한 햇살은 덥고, 응큼한 그늘은 춥고 시장 가는 길 내내 나는 옷을 벗었다 입었다 변덕을 부리고 있다.
Spitalfields market. 런던에서는 꽤 유명한 시장이라 한다. 분위긴 인사동 같다. 대신 차가 지나다니지 않아서 벅적거려도 사람들로만 벅적거리니 시끌시끌함이 기분 좋게 느껴진다. 먹고 싶은 베이글 가게는 너무도 멀어서 그냥 스타벅스 샌드위치와 카푸치노를 산다. 영국 물가를 생각해보면 스타벅스가 우리나라에서보단 저렴하다. 파리와는 달리 곳곳에 보이는 스타벅스, 왠지 이상한 느낌이다. 들리는 얘기론 영국인들이 미국을 아주 싫어한다던데. 왜 미국 회사 스타벅스가 이리도 많은 걸까? 스피탈필즈마켓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 보니 테이트 모던 문 닫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부랴부랴 전철 타고 휘익 건너간다.
Spitalfields market. 런던에서는 꽤 유명한 시장이라 한다. 분위긴 인사동 같다. 대신 차가 지나다니지 않아서 벅적거려도 사람들로만 벅적거리니 시끌시끌함이 기분 좋게 느껴진다. 먹고 싶은 베이글 가게는 너무도 멀어서 그냥 스타벅스 샌드위치와 카푸치노를 산다. 영국 물가를 생각해보면 스타벅스가 우리나라에서보단 저렴하다. 파리와는 달리 곳곳에 보이는 스타벅스, 왠지 이상한 느낌이다. 들리는 얘기론 영국인들이 미국을 아주 싫어한다던데. 왜 미국 회사 스타벅스가 이리도 많은 걸까? 스피탈필즈마켓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 보니 테이트 모던 문 닫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부랴부랴 전철 타고 휘익 건너간다.
테이트 모던. 모던이란 이름답게 현대 미술이 즐비하다.. 아는 작가보단 모르는 작가들이 많지만 열심히 챙겨본다. 서둘러 작품들 감상 후 야경을 보러 테이트 모던에서 나와 런던 브리지 쪽으로 걸어간다.
어둠을 잡아먹은듯한 도시. 그렇지만 곳곳에 밝혀진 불빛들에 의해서 더 조명이 빛나 보인다.
민박집으로 돌아와 내일 뮤지컬 티켓 사러 가야 하는데 성공할 수 있을까 하는 조바심에 여전히 또 밤을 지새우고 있다 시차 적응을 못하는 건지, 아님 불면증에라도 걸린 건지.
영국에서 머물렀던 민박집은 부엌이 작아서 식탁이란 게 딱히 없다. 각자 침대에 걸터앉아, 아님 소파의자에 앉아 아침을 먹는다. 라디오에서 나오는 don’t know why란 음악이 아침을 더 풍요롭게 하는듯한 기분이 든다.
Billy Elliot
아침의 새벽 공기가 차갑게 느껴진다. 티켓을 사러 가야 하는데 매진이지는 않을는지, 비싼 표만 남겨져 있음 어쩌나 하는 생각 등등을 하며 전철역을 향해 뛰어간다.
다행인 건지 두 번째 줄 자리가 비어있다. 서울 같으면 무대가 높지 않아서 꽤 비싼 자리일 텐데 많이 비싸지 않은 가격이라 무대상황을 고려해야 하는 것이 조금은 걱정이 되지만 그래도 어차피 영어를 100% 완벽하게 알아들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보는 것이라도 100% 잘 보이는 자리가 낫겠단 욕심에 그냥 예매하고 버킹엄 궁으로 방향을 튼다 버킹엄 궁전을 향해 걸어가던 중 아주 기다란 줄을 봤다. 무슨 줄이냐고 물었더니, 버킹엄 궁전을 들어가기 위해 표를 사는 줄이라 한다. 아마도 표를 사려면 1시간은 족히 기다려야 할 것 같다. 여유가 많다면 그냥 광장에 앉아 무작정 시간을 기다려줄 텐데 그렇지 못함을 탓하며 그냥 내셔널 갤러리 쪽으로 발길을 옮긴다.
높지 않은 건물, west wings부터 둘러본다. 그러다가 동관으로 옮겼을 때 책에서 보던 그림을 발견했다. 한국 가이드가 관광객들 사이에 둘러싸여 이것저것 설명을 해주고 있다. 나도 모르게 다른 그림을 바라보는 척하면서 귀는 그쪽으로 한참이나 커져버린다.
책에서는 이해할 수 없었던 평면의 그림. 가이드의 해석. 그 그림은 측면에서 봐야 한단다. 단체 관광객들이 자리를 옮기고 난 후 난 그 측면에 가서 서봤다. 역시나 알 수 없었던 의문이 풀리는 순간이다. 분명 정면에서는 없던 해골이 측면 쪽으로 방향을 틀어보니 보인다. 시선이란 것은 왜곡과 편견이 많은 이념이란 생각이 드는 순간이다. 많은 그림을 배가 고픔에도 참아가면서 봤더니, 허리가 아파와서 도저히 쉬지 않고는 다 둘러볼 수 없을 거 같아, 식당을 찾아 나선다. 민박집에 붙여져 있던 amato를 찾으러 어슬렁거린다. 차이나타운을 거슬러 올라가 대충 그곳이라 생각한 곳을 둘러봐도 쉬이 찾아지지 않던데. 역시나 그곳 주민인듯한 분에게 물어보니 번지수만으로 짠~ 하고 찾아준다. 저녁나절까지 미술 작품들을 들여다보니 그 그림들이 전하는 바는 다 헤아릴 수 없어도, 내 마음이 조금은 풍요로워지는 기분이 든다.
해가 내려앉아 석양이 드리워지는 런던. 그 석양을 바라보며 뮤지컬을 보러 가기에 맘이 설레어온다. 영화로도 상영이 된 빌리 엘리엇을 모두 추천하기에 선택은 했는데 영화랑 비교하기보다는 그냥 뮤지컬을 받아들이는 게 나을 거 같아 아무런 내용도 모른 채 뮤지컬을 본다.
영국 악센트가 강한 배우가 있긴 하지만, 관광객을 배려라도 한 건지 생각보다 잘 들린다. 공연이 한 20분쯤 시작되고 나서일까? 갑자기 무대 위로 한 남자가 올라온다.
에어컨 고장 나서 잠시 쉰다고 한다. 객석이야 덥지 않은데 무대가 더워서 일까? 기다리는 객석도, 무대에서 안으로 들어가 버린 배우들도 다 그러려니 하면서 무대 앞에서 팔고 있는 음료수를 사 먹으며 다시 시작하기를 기다린다. 영국인들은 인내심이 많은 것인지 신기하게만 느껴진다.
빌리와 그의 친구, 그리고 가족들 모두 한 명 한 명이 진짜 광부 같고, 아빠 같고(예쁘고, 날씬하고 이런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고스란히 베껴다 놓은듯한 기분. 너무도 열정적인 춤 탓에 빌리의 바지는 슬쩍슬쩍 내려갈 정도였다. 중간에 휴식시간도 적당히 쉬다 보니 아무래도 밤이 길어져 버렸다. 어느새 캄캄한 밤 런던의 지하철을 타고 숙소로 향하지만 계속 마주치는 눈길은 저으기 무서워 둘이서 100m 질주를 한다. 자꾸 마주치는 눈길은 적당하게 먼저 피해 주는 것이 상책이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Jane Austen
하루하루가 겨울이 바짝 다가오는 것인지 9월인데도 아침 공기는 꽤 싸늘하게 느껴진다. 오늘은 제인 오스틴을 만나러 가는 날이라 오늘도 어김없이 설레어온다. 기차 타고 3시간쯤 가니 제인 오스틴이 살았던
그곳-bath에 도착했다. 풍경은 여느 시골과 다름없이 한적함이 느껴져서 좋다. 로마식 목욕탕이 존재했던 곳이라 지역 이름이 바스라고 한다. 보통 런던에서 시외 관광을 넣을 경우 옥스퍼드를 구경하는 사람들과 윈저성을 구경하는 사람들로 분류되는데 나와 동행 둘 다 제인 오스틴을 좋아해서 바스 가기로 결정을 봤는데 내 친구들 모두 말린다. 그 먼 곳까지 제인 오스틴을 보러 가는 게 너무 에너지 소비 아니겠냐는. 하지만 워낙에 학창 시절 즐겨 읽었던 책들이라 그냥 그녀의 삶이 느껴보고 싶어져서 물어 물어 찾아간다.
생각보다 단출한 구멍가게 같은 그곳을 1층에 계시는 아주머니가 제인 오스틴 박물관이라 말씀해주신다. 그러면서 talk를 30분 후쯤에 시작할 건대 들을 거냐고 묻는다. 한참을 멀뚱히 아주머니만 바라봤다. 영국에서의 talk가 대체 무엇을 말하는지 언뜻 짐작이 안 가는지라. 가이드가 있을 줄 알았는데 무엇인지 정확히 모르겠으나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고 난 뒤 2층으로 올라가 구경하라고 하시는데 2층에 조그맣게 꾸며진 전시장이 전부였다. 1층과 2층 사이를 오가며 이것저것 둘러보며 기다리는데 talk를 시작한다고 2층으로 올라오라고 했다.
제인 오스틴 사진이 놓여있는 2층 조그만 사무실. 아까 그 아주머니는 정말 빠른 속도로 talk를 시작한다. 뉴스도 이보다 더 빨리 할 수 없을 거란 생각에 아주머니는 숨을 어떻게 쉬면서 말씀하시는 걸까 잠시 딴생각에 빠진다. 긴 시간 동안 제인 오스틴의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듣고 나니 머리가 쥐가 나버릴 거 같다. ㅋ
근처에 공원이 있다는데 아무래도 산책을 가야 할 듯. 반 타원형으로 생긴 중세쯤에 생긴 귀족 아파트 안쪽에 있는 공원이었다. 안으로 들어가 볼 수는 없지만 어느 날 서울로 돌아와 공작부인: 세기의 스캔들이란 영화에서 이 공원이 나올 때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왠지 같은 느낌을 공유하는 듯한 기분.
식사시간이 한참 지났음에도 그리 한적하지 않은 생선 식당을 들어갔다. 꽤 많은 생선 리스트가 있지만 영어 이름을 모르니 요리 메뉴를 고르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운에 맡겨보기로 하고, 마늘이 들어가 있다는 음식을 starter로 고르고 옆자리에 앉아서 드시고 계신 아저씨의 메뉴를 가리키면서 같은 것으로 달라고 한다.
starter로 뭐가 나올지 자못 궁금했는데 나온 요리는 홍합을 적당히 국물이 있게 졸인듯한 요리였다. 벨기에 홍합 요리가 유명하다는데 벨기에 가서 꼭 홍합을 찾지 않아도 될 만큼 맛있어서 메인 요리가 나오기도 전에 다 먹어버렸다. 메인 요리도 아저씨가 맛있게 드시고 계셨던 만큼 나도 맛있게 먹는다 뜻하지 않은 행복함이 깃든 늦은 점심이다.
돌아오는 기차에서 다음 일정을 어떻게 할 것인 고민 한다. 몸은 피곤한데 영국까지 와서 재즈 바에 안 가기는 아쉽고, 깜깜한 어둠이 내리고 있을 무렵이라 런던을 주소 하나만 들고 빠른 시간 안에 찾아갈 수 있을지 자신도 없고
Ronnie scott’s. 런던에서는 나름 유명한 재즈바라고 내가 재즈 바를 가고 싶다고 하니 민박집 언니가 알려줬다. 좋은 자리에 앉고 싶지만 몸이 얼마나 버텨줄지 몰라, 바 쪽에 앉아 칵테일 한잔을 시키고 음악 감상 몰입 모드가 된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영국이나, 프라하, 일본의 재즈 뮤지션들의 악기 구성은 나름 다양하다. 우리나라는 색소폰에 치우쳐있는 반면 이곳 역시 스타트로 베이스까지 구성된 밴드가 유럽 스타일의 음악을 연주한다. 모든 공연을 가본 게 아니니 나의 한국 음악 스타일은 편협하지만은. 몸이 점점 편안해져 가고 있나 보다. 그들의 연주가 끝나고 트럼펫이 넷이나 있는 빅 밴드가 나왔는데 어느새 눈이 감겨 오는데 음악 감상 모드일까? 조금 더 버텨보겠단 생각에 일어나 보지만, ‘퍽! 퍽!’ 하고 꺾어지는 무릎은 어쩔 수 없는 거 같다. 11시가 지났을까. 나도 처량해 보이지만 내 옆에 있는 머리 숙이고 앉아있는 동행이 안쓰러워서 아무래도 욕심을 버리고 숙소로 가야 할 거 같다. "가자." 이러고 살며시 불렀더니 후다닥 하면서 언제 졸았냐는 듯이 빛의 속도로 그녀는 재즈 바를 벗어난다. 휴~ 나같이 빡빡한 스케줄 좋아하는 동행 덕에 그녀도 참 고생이다. 오늘 하루도 길었지만, 그래도 여러 가지가 내 맘속에 쌓여서 포근히 잘 수 있을 거 같다.
영국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많이 보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는지, 에딘버러로 가는 새벽기차를 타겠다고 어제 12시쯤 돌아왔음에도 불구하고 5시 반부터 짐을 꾸리고 있다. 배낭은 어깨와 온몸이 짊어져서 두 손이 자유로워 좋지만 짐을 꾸릴 때는 참 시간이 많이 걸리는 편이다. 특히나 나같이 손이 느린 사람은 더더욱 물건들을 잘 고정시키기 위해 배낭에 넣었던 모든 짐들을 다시 켜켜이 개키고, 그 사이사이 구입한 미술책이며, 여행의 추억이며 잘 다시 집어넣는다. 6시라 약간은 날카로운듯한 새벽 공기를 가르며, 지하철을 향해간다. 지하철 시초인 나라가 영국이라서 그런지 참으로 많은 노선도를 보며 오늘 가야 하는 정거장을 찾아본다. 긴 거리를 딱 두 번에 가는 지하철이 있기에 지하철이 역사에 들어오자마자 바로 몸을 싣고 명상에 잠겼나 보다. 분명 방송에서 뭐라 했는데 못 듣고 말았으니 말이다. 한 정거장을 가고 나서는 한참 서있더니 이게 웬일일까? 지하철이 뒤로 간다. 핀칠로이드 역으로 다시 들어와 버린 시간. 20분을 까먹고 나니 기차역까지 가야 하는 시간은 40분밖에 안 남겨져서 맘이 조바심 난다. 역시나 몸이 편하긴 오늘 하루도 틀렸는지 다른 노선을 타기 위해 20kg을 향해가고 있는 배낭을 메고 다른 전철 쪽으로 걸어간다. 보증금도 돌려받아야 하고 가는 길도 물어봐야 하는데 하는 생각으로 걸음이 바빠온다. 기차 떠나기 3분 전에 간신히 킹 크로스 역에 도착한다. 휴~~ 그래도 뮌헨에서 스위스 넘어갈 때 2분 늦어 못 탄 걸 떠올려보면 꽤 일찍 도착한 편이다. ㅎ. 아침을 못 먹어서 기차 안에서 이것저것 시켜 먹으면서 영국의 전원 풍경을 구경한다. 우리나라도 이런 풍경이 많지만, 또 다른 느낌의 색깔이 전해져 오는 것 같다.
Scotland
12시쯤 스코틀랜드에 도착해서 숙소부터 찾는다. 아직 체크인 시간이 아니라서 가방을 맡겨놓고, 점심을 먹으러 다시 나간다. 맛있는 걸 먹어야겠지만, 여행 온 지 이 정도의 시간쯤이 되면 그냥 눈에 뜨이는 곳에 가서 때우기 형식이 되어버린다. 서울에서 봤던, 샌드위치 가게(quiznos)가 보인다. 서울에서도 안 가봐서 맛 보장은 못하지만 그래도 금강산도 식후경이니까. 먹고 나니 못 잤던 잠이 밀려온다. 어찌해야 할까? 잠도 깰 겸 산책 삼아 에딘버러 성부터 둘러보기 위해 주위를 둘러보며 성을 향해 간다. 스커트를 입고 파이프를 불고 계시는 할아버지를 보니 스코틀랜드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 제대로 느껴진다.
곳곳에 보이는 체크무늬 스커트 상점들. 성에 도착해 매표소에 가니 2만 원이 넘는 입장권이 좀 압박이긴 하지만 그래도 에딘버러에 제일 명물일듯한 이곳을 보지 않는다면 좀 서운할듯해서 찬찬히 성을 산책한다. 전쟁에서 에딘버러를 지키기 위해 지어진 곳 에딘버러 성. 한 손엔 가이드 녹음기가 들려있지만 어느 순간부터 오디오 가이드가 안내하는 걸 듣지 않은 채 내 의지에 맡겨 관람하고 있다. 어차피 들어봐도 긴장되지 않는 순간들이라 잘 안 들리니 대신 기념물들에 적혀 있는 짧은 메모들로 그날의 역사적 순간을 상상해 본다. 성 산책을 마친 뒤, 에딘버러 성에서 아래쪽으로 야트막해 보이는 산인지 언덕인지 정확히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보인다. 운동화를 신고 있던 우리 둘은 도전해보기로 했다. 무모했나 보다. 쭉쭉 미끄러져 내려오는 나의 발걸음은 중턱까지 만으로도 숨 차오른다. 그러는 사이 어둠이 내려앉아오고 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식료품 가게에 들러 포도랑 물이랑 밥해먹기 위한 이것저것을 산다. 실상 밥을 해 먹는다기 보다 난 밥과 먹을 무언가를 더 사고 싶었다. 오랜만에 마주한 햇반을 김 가루에 쓱싹쓱싹. 한 그릇 뚝딱 해치우고 싶은 맘 굴뚝같지만 나의 늙은 소화력으로는 무리였다. 하는 수 없이 소화시키러 야경 구경하러 나선다. 그제야 영국 와서 쇼핑을 한 번도 못한 게 떠오르지만 8시가 살짝 지난 이 곳의 상점들은 문을 다 닫았다. 멀뚱히 불 켜진 쇼윈도만 바라볼 뿐. 쇼핑을 포기하고 어느 정도 산책 후 내일 새벽 여행을 위해 숙소로 돌아간다.
Glasgow is not small area.
다음날 새벽 5시 반쯤. 짐을 싸고 보니 얼굴이 이상하다. 거울 보니 으아악~ 얼굴이 온통 모기에 물려서 형체가 이상해졌다 ㅠ.ㅠ 목폴라까지 입고 잤는데 목까지 물려버렸는데 어떻게 들어온 걸까? 반면 동행은 어느 한 군데도 물린 곳 없이 깔꼼한 얼굴. 여행이 우울해지려 한다. 안 그래도 유럽만 오면 얼굴에 알러지 반응 보여주는데, 거기다가 정말 여기저기 부어버려서 프랑켄슈타인 같은 얼굴로 돌아다녀야 하다니. 가릴 수 있는 만큼 최대한 가리고 배낭 메고 새벽 여행을 시작한다. 오늘부터는 혼자다. 동행은 런던으로 내려가서 서울 들어가고 나는 벨기에 넘어가고. 에딘버러에서는 벨기에까지 넘어가는 비행기가 없어서 글래스코까지 버스 타고 간다. 여기서부터가 또 사건이 시작된다. 글래스코를 작은 곳이라 생각하고 서울에서 알아보고 온 버스를 타고 무심코 공항을 갔는데 비행기 편명이 안 보인다. 아니 Ryanair 자체가 없다. 우찌된 일인건지?? 분명 3일 전에 체크인하라 했는데 안 해서 시간이 바뀐 걸 체크 못했나 내심 걱정하면서 인포메이션 가서 물어보니, 이를 어쩐다. 이 공항이 아니고 다른 공항이라 한다. ㅠ.ㅠ 택시 타면 얼마나 걸리냐고 물어봤더니 인포에 계신 할머니께서 한 10만 원 나올 테니 그냥 버스 타고 기차 타고 가라 하신다.
간신히 도착할 수 있을 시간이라고 서두르라는 말씀까지. 물어 물어 갔건만 체크인 시간 10분 늦었다고 비행기 안태워주겠다고 한다. 오늘 넘어가야 벨기에 가서 집에 가는 비행기 타는데. 하는 수 없이 인포 가서 오늘 묵을 수 있는 숙소를 알아봐 달라고 부탁하니, 호텔 리스트를 주면서 직접 전화해서 알아보고 가라 한다. 서울서도 전화만으로 새로운 지역을 찾아가는 거 쉽지 않을 텐데. 걱정과 함께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한다. 어떻게 하는 것이 후회 없이 서울로 즐겁게 돌아갈 수 있을는지. 체크인 카운터에서는 오늘 뜨는 비행기는 파리랑, 드레스덴 있으니 그걸로 바꾸던지, 아님 내일 벨기에 넘어가는 걸로 변경하라 한다. 내일 들어가면 벨기에 구경은 포기해야 하고, 전화로 호텔 알아봐야 하고, 드레스덴으로 들어가자니 어디만큼인지 모르니 벨기에 들어가야 하는 방법을 짤 수 없고. 일단 생각해보고 오겠다고 했다. 무작정 컴퓨터를 찾아 나선다. 그러고는 남겨둔 잔돈으로 테제베 사이트를 접속한다. 파리에서 벨기에까지가 가능하지 않을까 싶어서이다. 완전히 감각만으로 지도를 그리고 있다. 20분 만에 남은 돈으로 인터넷 여행 쇼부를 보고 있다. 다행히 파리에서 벨기에 넘어가는 테제베가 있다 굼뜬 인터넷으로 간신히 고비를 넘어가는 기분이다. 다시 데스크로 돌아와서 파리로 가는 비행기로 바꿨다. 오전의 벨기에 비행기를 놓치고 나서 오후 파리 행으로 바꾸고 나서 시간이 남았으나 한숨 돌리기 쉽지 않다. 책도 없이 파리에서 벨기에 넘어가는 걸 구상해야 하는데, 인터넷 사이트들은 속도가 너무 느려서 찾을 수 없고, 한글이 없으니, 동아리 사이트에 사람들이 올려놓은 자료를 도움받을 수 없고, 이럴 땐 로밍 안 한 전화기가 간절히 그리워지는 시점이다. 얼렁뚱땅 세운 계획이 성공하면 마지막 기차를 타고 숙소까지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아서 일단 12시까지만 기다려달라고 숙소에는 이 메일을 보냈는데 그래 줄지 걱정도 되고(브뤼헤 유스호스텔은 10시까지 도착해야 체크인이 가능한 곳이다). 백만 가지 생각들을 하다 보니 파리 가는 비행기 탈 시간 3시가 다가온다. 5만 원 정도 더 주고 표를 바꿔서인지 내가 산 저가 비행기 표가 원래 우선권이라는 게 있었는지 모르겠으나 비행기를 먼저 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맨 앞자리 앉았는데도 2시간은 너무도 길다. 상상만으로 짠 이동거리라 파리에서 벨기에 넘어가는걸 누군가한테는 확정을 받고 싶은데 옆에 앉으신 아주머니 불어로 뭐라 뭐라 하시면서 영어는 못하신다는 바디랭귀지를 하신다.ㅠ.ㅠ 결국 입국심사 밟는 파리에서 넘 경황없는 탓에 짐도 놔두고 입국대를 빠져 나와버렸다.ㅋ 아차 하는 나의 표정에 모두들 짐 놓고 온 것을 알았는지 직원들한테 말하라고 입국객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출입국 직원을 가리킨다. 그렇지만 다시 돌아서 수속 밟기엔 마지막 기차마저 못 탈수 있기에 입국장으로 나오는 문이 잠깐 열리는 틈을 타서 몰래 들어간다. 걸리면 뭐라할텐데 지금은 그런 거 따질 경황이 안되고. 다행히 짐 가지고 나오는데 성공한 나는 공항에서 북부 역까지 가는 버스를 알아본다. 한 4년만에 다시 들어온 파리다. 아차! 공항에서 떼제베를 탈 수 있는 북부 역까지의 시간을 넣지 않은 거다. 지금의 상황으로서는 그냥 gogo하는 수밖에 없으니 일단 공항버스를 타서 슈퍼맨 책 읽고 있는 옆 좌석 아이한테 물어보기를 시도한다. 북부 역까지 얼마나 걸리냐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이 아이가 북부 역까지 길을 알려주겠다고 한다. 파리의 지하철을 이용하려면 회수권 이런 거를 샀어야 하는데 상상으로만 계획을 하다 보니 그런 게 없다. 우후후 점점 상상과 동떨어진 현실을 나는 마주하게 된다. 불어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회수권을 불어로 뭐라 하는지도 까먹었는데 다행히도 북부 역에 도착하자 이 아이가 가방에서 회수권을 꺼내 한 장 건네준다. 선물이라고. 어찌나 고마운지 왈칵 눈물이.
역시 프랑스 지하철 역 이름들은 어렵다 그런 나의 속마음을 읽기라도 했는지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려는 이 아이는 내가 지하철 환승을 못하고 헤맬까봐 일부러 환승역에서 내려 방향을 잡아주고 본인이 가야 하는 곳을 향해 다시 또각또각 걸어간다. 본인의 여행가방도 만만찮게 무거웠을 텐데 그런 건 아랑곳없다는 듯이 말이다. 북부 역 공항버스에서 이 아이를 만나지 않았음 어떻게 되었을까? 으아악 점입가경 파리 기차역은 파업 중이다. 기계가 나의 카드를 읽지 못해 기차표를 살수 없어 지나가는 아저씨를 붙잡고 부탁해서 매표소 가서 표를 하나 산다. 파업 중이라 창구 앞에 늘어선 줄은 엄청나게 길다. 그래서 기차 하나 또 놓치고 결국 마지막 열차에 몸을 싣는다. 기차에서 졸려도 잠을 잘 수가 없다. 잘못해서 벨기에를 넘어 저 멀리 떨어지면 안되니까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