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동 & 충돌 5. main_ Germany

by 꼬드kim

그 해 가을(2007)


가을이다. 유난히 맑은 하늘은 가슴을 더욱더 시리게 한다. 혼자 쳐다봐야 한다는 이유만은 아닐 텐데. 모두들 뮌헨에 맥주축제를 간다는데 술 한잔 제대로 즐길 줄 모르는 내가 거기 가서 흥얼거리기란 쉽지 않을 것 같고, 내가 생각한 스케줄이 빡빡한지 동행 구하기가 쉽지 않아서 한 명의 동행을 로텐부르크쯤에서 만나 부분 여행을 하기로 했다. 또 한 명은 뮌헨으로 일정을 넣어 숙소에서 잠시 만나기로 하고.

핸드폰 없이 누군가를 만나야 한다는 건 서로가 약속을 충실히 이행해야 한다는 말과 동일한데 잘 만날 수 있을까? 부분 동행인지라 비행기부터 혼자다. 일본 비행기라 죄다 동양인 투성이. 승무원도 내가 일본인 승객인 줄 알고 창가 자리의 나에게 외계어인 일본어를 건넨다. 뭐라고 얘기하는 걸까? 이럴 땐 정말 복도 쪽 자리가 절실하게 탐이 난다. 자리가 없어 덩그러니 앉혀진 창가 자리는 더욱 춥고 외롭게 느껴진다. 이럴 땐 잠이라도 와야 하는데 그렇지도 않고.

다행히 제시간에 정확히 도착해 준 비행기 덕분에 이른 저녁시간이다. 숙소를 찾아가기 위한 첫 번째 미션을 수행하러 공항을 빠져나와 기다란 줄을 섰다. 기차역에 티켓 기계들이 즐비하건만 그들도 모두 나처럼 기계치라도 되는 건지 줄 서고 있다. 줄 서기 30여분 끝에 기차표 사기를 시도해본다. 너무도 허무하게 간단히 살 수 있어버린 티켓을 들고 나오니, 기차는 1시간은 넘게 기다려야 할 듯하다. 다행히 그 기다림을 같이 해주는 동지가 생겼다. 지방에서 왔다는 청년이 내게 말을 건넨다. "한국인이세요?" 회사에서 비행기표를 사줘서 작은 배낭 하나 메고 여행 왔다는 그. 한참이나 부러운 시선으로 난 그를 봤다. 내 배낭은 지금 현재 12kg 될 텐데 그의 배낭 무게는 5kg 정도 될까 싶다. 모든 남자들의 특징은 아니겠지만, 그도 초행길임에도 불구하고 타인에게 질문하지 않는다. 그와는 상반되게 끊임없이 출구를 찾을 때, 전철을 탈 때 묻는 나를 보면서 정말 잘 물어본다면 신기해한다. 역시나 대답해주는 외국인도 그런 거 같다고 수긍할 때면 좀 머쓱해지긴 하지만 어쩌겠는가. 나의 무기는 질문인 것을. 길치에게는 지도에 익숙해질 때까지 질문이 최상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다행히 유럽의 지도는 서울의 지도보다 찾아가기가 쉬울 때가 더 많은 거 같다. 사람들이 street도 잘 알고.

근처 호텔에 숙소를 정했다는 그와 다음 정거장에서 작별인사를 한 후 기차를 갈아타기 위해 또 다른 작은 기다림을 시작한다. 기차가 오기 전 도착을 알려야겠기에, 숙소 아저씨와 핸드폰 접속 시도. 유럽의 통화료는 너무도 비싸서 2유로를 넣어도 1분이나 통화가 되는 건지 물가 감지 속도가 확 와 닿는다. 아까의 그 기다란 줄 기다림 때문에 숙소까지 들어가는 기차를 하나 놓치고 나니 공항 도착시간에 비해 나의 기차 시간이 너무 늦어서 아저씨는 사고라도 난 줄 아시고 무척이나 걱정을 하고 계셨다 한다. 생각보다 숙소가 프랑크푸르트 시내에서 멀다. 숙소를 잘 선택한 거 맞을까. 동선에 대한 계산 없이 좋다는 후기 한 줄에 덜컥 예약하다 보니 이제야 의구심이 일어난다. 숙소 가는 시간이 여느 때와는 달리 아주 늦은 시간이 아닌 밤 9시라 조바심이 안 난걸 수도 있지만.. 그래도 호젓한 여행의 시작이라 좋다. 아무런 사고가 없다는 게 더 신이 난 것일 수도.

픽업 나온 아저씨와 007 작전처럼 기차역 근처에서 간신히 만나 숙소로 갔다. 아저씬 유학 후 정착하셨다고 한다. 가게라도 하면 좋겠지만 그런 조합에 들어가기도 쉽지 않고, 영업시간이 법으로 정해져 있어서 부지런하다고 혼자만 가게 문을 꼭두새벽부터 열수 있거나 밤늦도록 열수도 없다고 한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유럽에서 살아남으려면 그 나라의 언어는 기본적으로 조금 해야 하는 거 같다. 미국과는 달리 한국인이 적어서 그럴 수도 있고. 그 덕분에 다음날 아저씨 덕을 봤다.

다음날, 로텐부르크로 내려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아저씨가 직접 기차역까지 배웅 나왔다. 저렴한 주(州) 티켓(Lankarte Bayern)을 사주시겠다면서. 독일어가 절실히 필요한 타이밍~ 차장 아저씨한테 사서 건네주신 티켓은 거의 반 가격이라 연신 고마움을 표시하며 독일에서의 이튿날을 시작했다.



로텐부르크

Rothenburg

사람들은 여행을 준비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한다. 그런데 난 이상하게도 여행을 준비할 때가 제일 스트레스를 받는다. 비행기표를 아무 생각 없이 구입하고 그 안에 들어가는 꼼꼼한 일을 하기까지가 왜 그렇게도 싫은 건지. 책을 좋아하는 내게 가장 어려워하는 장르를 고르라 하면 여행 책과 잡지책이라 말할 정도로 잘 읽어내려 가지지가 않는다. 역시나 독일과 스위스 여행 책을 샀을 때는 몇 개월이 되도록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다른 이들이 다녀온 여행기라도 읽으면 좋으련만 무작정 책을 다 읽을 수 있을 때까지 그냥 기다린다. 어디를 골라야 할지 모르겠고, 외워지지도 않고.. 역시나 독일 책도 그랬다. 그래서 포기할까 하다가 어차피 동행을 못 구하면 오롯한 혼자만의 여행이 될 텐데 준비가 너무 없음 안 되겠다 싶어 억지로 두세 번을 읽다 보니 포스트잇 안 붙은 곳이 없게 모두 다 가고 싶은 곳이 되어버렸다. 욕심쟁이. 그래도 줄이고 줄여서 가는 곳이라 우선은 프랑크푸르트에서 내려가는 곳으로 가장 먼저 눈에 뜨이는 로텐부르크를 골랐지만 오늘 만나기로 한 동행은 나타나지 않는다. 무작정 기다릴 수 없어 혼자 여행을 시작. 정말 호젓하고 숨 쉬는 기분이 상쾌해지는 이곳. 로텐부르크의 햇살을 가르며 사이클로 여행하는 이들을 바라볼 때쯤엔 무척이나 부러운 시선은 한참이고 그들을 따라가 본다. 그렇게 멈춰서 있다가 어깨가 무겁다고 아우성을 칠 때쯤, 숙소 가서 그 무겁디 무거운 짐도 풀고, 밥도 대충 먹고 나니 졸립지만 따사로운 햇살을 느끼러 나가야 할 것 같은 에너지가 상승한다.


여행 조건 중에 뭐가 중요하냐고 물을 치라면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1%도 없지만 날씨가 아닐까 싶다..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도 좋겠지만 나처럼 짐 많은 뚜벅이 여행자는 무조건 날씨가 좋아야 사진도 혼자 찍고 폴짝거리며 뛰어다닐 수도 있기에..


Rothenburg
Rothenburg

로텐부르크는 성 외곽과 내부로 나뉘어 있어서 내부를 둘러보는데 몇 시간이면 될듯하지만 난 두루두루 꼼꼼히 살펴보기로 했다. 삼각대를 두고 혼자의 여행을 즐기고 있는 내게 건네주는 여행자들의 미소 또한 땃땃한 햇살처럼 따사롭게 느껴진다. 과일가게에 가서 포도며, 기다란 토마토 등을 사고, 로텐부르크에서의 또 다른 시도. 그들이 명물이라 말하는 슈니볼을 시험 삼아 한 개를 샀는데 너무 달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점원은 그래도 많이 달지 않은 카푸치노 슈니볼이란 것을 권했는데 여행 이틀째에 벌써 밥이 그리워지고 있다. 이럴 거 알고 첫날 민박집 밥을 일부러 많이 먹고 나왔는데도 말이다. 내일 여행을 위해 숙소로 돌아와 인터넷 접속을 시도한다. 유럽에서의 인터넷은 성인군자를 탄생시킬 거 같다. 속도도 느리고, 자판이 영문자판과는 또 달라서 간신히 퓌센 가는 열차를 알아봤다. 기다려지는 내일 여행지 퓌센. 새벽에 출발하려면 어여 자야 할 텐데 이틀째 이동 중. 거의 이번 여행은 매일 이동이라 짐을 싸고 풀고, 꾸리고 짊어지고. 고생이다 나의 어깨가. 내일은 동행을 만날 수 있을까?



퓌센 그리고 뮌헨


새벽 2시에 눈을 떠버렸다. 아무래도 이른 새벽 열차를 타고 가라고 몸이 말하는 거 같아 어스름을 갈라 숙소를 나온다. 아침도 포기한 채. 이럴 땐 식탐도 여행 욕심 앞엔 좌절하게 되나 보다. 지나친 여행의 독. 지나가는 거라곤 빵집 앞에 세워져 있는 배달차와 쓰레기차 그리고 나. 가을이지만 서늘하다. 호젓함은 나만이 누릴 수 있는 호사이겠지 하는 생각이 스쳐간다. 어제 들어올 때 지름길로 들어온 게 아니라서 1시간을 생각하고 걷고 있다. 이젠 어느 정도 여행지기가 된 거 같은 기분이 들고 있다. 방향 잡고, 역을 찾아나서고.

그렇게 일찍 서둘러왔건만 퓌센 역에 내리니 점심 즈음이 되어버린다. 로텐부르크에서 퓌센까지 6시간 40분 걸리는 이곳에는 나의 시간이 아주 이르지 않았나 보다. 코인 락카가 모두 full상태.. 이 12kg 짐을 어찌해야 할는지. 이 무거운 짐을 메고 성을 올라가게 생겼다.

다행히 info 할아버지가 흔쾌히 맡아주시겠다면서 저녁 7시 이전에만 찾으러 오라 하신다. 감사합니다를 연발하는 오버쟁이 나. 짐도 맡겼겠다 미리미리 화장실도 가두려는 내게 화장실 앞 코인박스에 잔돈도 대신 넣어주시는 할아버지 때문에 독일이 점점 더 좋아져 가는 나…


근데 어깨가 가벼워졌다는 흥분에 삼각대를 info에 놔두고 성까지 올라와버렸다는 걸 뒤늦게야 알았다. 동행 또한 나타나지 않았고. 이 이쁘디 이쁜 사진을 엽서 사진 마냥 배경만 찰칵찰칵 찍어야 하는 심정은 조금 우울해진다. 아무래도 그녀는 나를 잊었나 부다. 날씨가 기막히게 화창한데. 그렇다고 다시 내려갈 수도 없고 성 구경을 해야 하는 시간은 촉박하고. 하는 수 없이 그냥 절경 사진들만 찍는다. 지나가던 외쿡인에게 부탁을 했으나 내 머리는 어데 가고 성만 나오는 사진들. ㅎ. 노이슈반슈타인 성과 호엔슈반가우 그리고 마리엔 다리. 이 절경의 사진들을 봐버린 사람들이 오는 곳 퓌센.

예전엔 스틱 운전을 잘하는 남자, 길을 내비게이션 없이도 지도만으로 방향을 잘 찾아가는 남자가 원시시대의 야생성이 남아 있는 거 같아 좋아 보였는데, 어느덧 그 야생성을 나도 지니게 되는 거 같아 어느덧 3일 동안의 혼자 여행이지만 이젠 짝꿍이 길치여도 좋을듯하게 내 마음이 널찍해지는 거 같다.

그러고 보니 이렇게 돌아다니느라 아직 점심을 안 먹었다. 작년에 만난 터키 아저씨가 알려준 초밥을 파는 곳 nordsee를 발견하고 득달같이 달려가 보건만 죄다 생선 튀김. 그래서 대신 샐러드를 추가로 하나 샀는데 나의 느린 동작 탓에 발사믹 소스를 말한다는 게 요거트 소스를 말해버려서, 피시 버거의 느끼함에 샐러드까지 배로 느끼함을 제대로 느끼며 뮌헨을 향하는 기차를 탄다. 1등석이다. 왠 1등석? 유레일 패스를 나같이 나이 많은 사람이 사는 건 무조건 값 비싼 1등석밖엔 안 된다한다. 벅적거림이 없어 좋긴 하지만 느닷없이 나타나 구걸하는 아저씨와의 뮌헨까지의 동행은 조콤 무섭긴 하다. 뒷좌석에 한국들인이 있어도 도와줄 것 같지 않아 더더욱 무서워지는 기차여행 2시간…ㅋ

퓌센을 뒤로한 채 로텐부르크에서 만나지 못한 동행을 만나기 위해 들어온 이곳, 뮌헨이다. 그리고 숙소를 알아봐 준 동행도 만날 생각에 잠시 흥분 상태 모드지만, 숙소를 찾기도 전에 기진맥진해져 버렸다. 민박집 숙소의 얼렁뚱땅 만들어진 약도는 뮌헨의 조그만 골목까지 죄다 헤매게 만드는 중이다. 모두들 맥주 축제를 즐기러 나와서 벅적거림과 흥분 속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짊어진 배낭 덕에 축 쳐진 사람처럼 길을 헤매다 끝내는 어느 거리 한복판의 신호등을 노려다 보면서 서버렸다. 신호등이 마치 답을 알려줄 거라고 여기는 사람마냥. 노려보면서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전화기를 찾아서 물어보는 게 빠를 것 같다. 벌써 1시간이 지나가고 있으니. 그때 그녀가 나타났다.


독일 하면 생각나는 그녀 Alejandra


노려보고 있던 신호등 건너편에 그녀의 아버지와 그녀가 서 있었는데, 나의 모양새가 길을 잃은 늙은 양처럼 보였나 보다. 그녀의 아버지께서 길을 건너오셨다. 그녀와 함께. 그녀의 아버진 영어를 못하셨지만, 손에 쥐고 있던 나의 약도를 보시더니 그녀가 통역해준 바로는 숙소까지 데려다주시겠다고. 너무 기분이 좋아서 가슴이 쿵쾅거려온다. 심박수 급상승.

여행은 한순간에 설렘과 초조함 그리고 긴장 이런 거를 다 가져다주는 듯하다. 덕분에 숙소에 무사히 도착하자, 그녀의 아버지께서 내게 맥주 축제를 즐기러 가자 하셨지만, 동행도 만나야 하고 (그들과 축제를 즐기자고 약속했기에) 어찌할지 몰라하고 있는데 그럼 내일 관광을 시켜주시겠다 한다. 어찌해야 할까? 내일 스위스로 이동을 해야 하는 거라서. 이럴 땐 매일매일 틈을 안 주고 스케줄을 짜버린 나의 계획이 밉긴 한데. 망설이고 있는 내게 Alejandra가 대신 내일 아침나절 관광을 시켜주겠다고 8시에 데리러 오겠다 한다. 설레는 밤이 되어버린다. 숙소로 들어와 결국 여행하기로 한 동행은 만나지 못하고 대신 숙소 예약을 해준 다른 동행(은경)을 만나 숙소 사람들과 맥주 축제를 즐기러 잠시 밤거리를 나가본다.

다음날 아침. 어차피 어그러진 동행과의 여행을 접어버리고 Alejandra와 아침나절이라도 뮌헨을 둘러볼 마음에 준비를 서둘렀다. 하필 이렇게 중요한 날에 밖엔 비가 부슬부슬 온다. 거의 체감온도가 0도 인 듯. 다행히 스위스 갈 계획에 보드 점퍼가 있긴 하지만 그보다는 그녀가 나를 데리러 와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불친절한 뮌헨 민박집 아저씨의 태도로 아침도 먹지 못한 채 집 앞을 나가보니 그녀가 우산 속에서 기다리고 있다. 나의 여행은 또 이렇게 시작된다. 내 배낭을 어쩌지 못해 그냥 배낭을 메고 여행을 시작한다. 오히려 한기가 덜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ㅋ 내가 아직 독일 소시지를 먹지 못했다 하자, 그녀는 맛있는 독일 소시지와 프레즐 그리고 커피까지 대접해줬다. 내가 사야 하는 건데 말이다. 그녀는 자기 나라에 온 손님이라면서 극진히 대접했다.

그리고는 지금부터는 배낭도 그녀가 메겠다고 한다. 꽤 무거운데. 2시간을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호텔로 향해간다. 그녀가 일하는 곳이다.

짐을 그곳에 보관시키고, 알피나텍에 미술품을 보러 다녀오라고 한다. 어제의 길치 모습을 봐서 그런지 그녀는 내게 돌아오는 법을 세세하게 알려주며 정류장까지 배웅한다. 동갑인데도 챙겨주는 모습이 언니 같다. 중간에 내게 말을 건넨 한국인과 동행이 되어 칸딘스키 작품들을 보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그녀도 미술을 좋아한다면서 나를 무작정 따라나섰는데 정말 좋아하는지 우린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못다 본 칸딘스키의 작품이 못내 아쉬워 책을 덜컥 사버렸다. 그 무게가 얼마라고. 지금의 무게에 보태면 정말 지게쟁이처럼 지팡이를 짚어야 할지도 모르는 모양새가 나올 텐데, 현재 나에게 짐이 없다 보니 그것쯤은 까먹어버린 거다. 대신 옷이랑 신발을 버릴까 하는 생각에 빠진다. 신발이 젖어버려서 말릴 수 없을 것도 같고 옷도 낡은 거고. 현명한 건지 어리숙함인 건지. 다행히 알렉한드레아가 근무하는 호텔까지는 잘 찾아와서 맡겨둔 짐 찾아 기차역까지는 잘 갔는데. 아무래도 나의 여행기는 드라마틱한 게 좋은가 보다.

스위스로 가는 기차의 플랫폼이 바뀌어버린 거다.

분명 타임테이블은 18번인데 정작 기차 플랫폼 위에 있는 전광판은 2번 플랫폼으로 가라고 켜져 있다. 이 뮌헨의 플랫폼은 일렬종대로 있는 게 아니라서 18번에서부터 2번까지 달려가니 나름 최선을 다해서 뛰었는데 2분이 지난 후여서 휘익 휘익 기차는 역을 나가버린다. 나만 오두마커니 남겨두고. 패스니까 다음 기차를 타도 괜찮긴 하지만 문제는 스위스로 들어가는 기차가 그리 많지 않다는 것. 그리고 너무 뛰어버려서 갈증은 배가 되었는지 1.5리터짜리 물을 사서 반을 들이켜버렸다. 다음 기차를 기다리는 와중에 잠깐 일기를 쓰는데 짐이 너무 무거워서 손이 가만히 있어도 후들후들 떨려온다. 그러게 미술책까지 사는 욕심은 왜 부려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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