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의 상상할 수 없는 다소 왜소한 몸으로 태어났다고 한다. 또한 상상이 잘 안 가지만, 모유 수유를 완강히 거부한 당찬 아가였다. 이로 인해 밥만 고집하는 내게 영양소를 골고루 섭취시키기 위해 엄마는 고군분투를 하셔야만 했다.
조기를 볼 때면, 밥상 위에 올라온 조기 반찬을 보고 엉엉 울었던 기억이 난다. 울고 있던 나를 보며 적잖이 당황한 엄마는 내게 물었다. 왜 우느냐고. 난 조기가 째려보고 있어서 무섭다고 했다. 맛있는 반찬을 보고 흘리는 감격의 눈물도 아니고, 조기의 부릅뜬 눈이 무서워 울다니 엄마는 어이없어하셨다. 그 순간 아빠와 엄마의 리액션은 다르게 나타났다. 아빠는 상위에 있던 깻잎으로 눈을 가렸고, 엄마는 살만 발라 내 밥 위에 얹어주셨다. 문제는 해결된 걸까? 기억나지 않지만 엄마의 성화에 아마도 조기구이 반찬을 흰쌀밥과 함께 꾸역꾸역 먹었을 것 같다. 내가 모르는 생선이 밥상 위에 올라올 때면 난 꼭 이름을 확인하기도 했다. 어린이가 알면 뭐 얼마나 안다고 이름 모르는 생선을 먹일라치면, 한참을 실랑이를 벌여야 했다. 어느 날 하얀~ 생선이 올라왔다. 적어도 조기는 아니다. 고등어의 단단함과 퍽퍽함을 주는 질감으로도 보이지도 않았다.
"엄마! 이거 뭐야?"
"고등어."
"고등어는 이렇게 안 생겼는데, 이거 무슨 생선이냐고?"
"고등어야!"
"고등어 아니래도!"
"그냥 좀 먹어!"
그 순간 나는 접시의 생선 몸을 휙 뒤집었다.(어렸을 적부터 젓가락질을 꽤 잘했다.) 동시에 나도 뒤로 물러나면서 거의 몸을 뒤집었다.
"옴마야! 나 이거 안 먹어!"
그 접시 위 생선의 뒷모습은 노란색과 파란색의 줄무늬가 있는 생선이었다. 아빠 넥타이가 떠오르기도 하면서 그냥 느낌만으로도 징그럽다는 생각에 단식 투쟁이라도 할 모양새를 갖추었다. 결국 그날 엄마는 단백질 섭취 미션을 실패하셨다.
할아버지 환갑 잔칫날이었던가, 준비 날이었던가. 동네 어르신들 모셔놓고 하는 잔치인지라, 시골 마당에는 잡혀야 하는 돼지가 있었고, 나는 무서움에 떨며 방에 있었다. 돼지가 잡혀 죽어가는 그 순간 내는 슬픔의 소리는 귀를 막아도 참기가 어려웠다. 한참이 지나고, 언니는 엄마가 부엌에 와서 심부름을 하라고 했다는 말만 남겨둔 채 나갔다. 밖의 상황이 조금은 잠잠해진 듯하여 조심스럽게 부엌으로 갔다. 할머니네 부엌은 아궁이가 있어서 알게 모르게 아늑함을 준다. 고구마를 구워 먹던 추억이 있어 그런 것 인지도 모르지만... 어른들은 내가 좋아하는 아궁이에 불을 지펴고 밥이 아닌 무언가를 하고 계셨다. 부엌을 들어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는 내게 엄마는 부엌으로 들어오시면서 이리로 오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가마솥에서 건져내어 소쿠리에 담아진 것 중 하나를 내 입에 넣으려고 하셨다. 엄마와 나 다시 시작이다.
"엄마! 이거 뭐야?"
"탕수육"
"돼지고기?"(돼지고기가 맞다면 아까 그 슬픔의 주인공이겠지?)
"아니, 소고기. 어여 먹어!"
"으응. 싫은데..."
"어서 먹으래두!"
하는 수 없이 나는 입에 정체가 미심쩍은 탕수육이 하나 들어왔고, 나는 그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서 가마솥 옆에 있던 소쿠리 쪽으로 이동했다. 일하시던 아주머니에게 물었다.
"이거 뭐예요?"
"탕수육."
"돼지고기요?"
"응, 돼지고기."
그 순간 말을 하느라 잠시 씹혔던 고기는 무의식적으로 내뱉어졌고, 그와 동시에 후다닥 뛰어 온 엄마의 등짝 스매싱을 난 경험 해야 했다.
"그냥 좀 먹으라는데, 넌 왜 이렇게 매번 힘들게 하니!"
사실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니, 나도 이렇게 까다롭게 행동하고 싶지 않는데도, 음식과 떠오르는 이미지는 내게 너무 힘든 연상작용이었다.
방학이면 시골에 가야 하는 내게는 위기의 시간들이 더 빈번하게 나타났다. 외할머니댁에서 길러지고 있던 닭들은 지금 치킨집에서 파는 닭의 크기와는 비교가 안 될 만큼 엄청 크고 힘이 셌다. 그래서 높은 툇마루까지 날아와 나를 위협하며 방에 가두곤 했다. 가끔 마당을 가로질러 화장실이라도 가려고 하면 그 날카로운 부리로 계속 쪼아대는 통에 계속 울어야 했다. 그날도 화장실을 가러 마당을 후다닥 가로질러가고 있었건만 나보다 더 재빠른 닭은 내 앞으로 와서 내 무릎을 공격했고, 무릎에서 흐르는 피를 보자 결국 난 목 놓아 울어버리고 말았다. 화들짝 놀란 할머니는 나오셔서 사촌 오빠에게 그 닭을 잡으라고 지시하셨다.
그날 저녁상에 올라온 음식은 삼계탕이었다. 다리 꽁꽁 묶인 채. 무섭기도 하고 나를 공격한 그 닭이었을 거란 생각에 복수한 것 같아 조금은 마음이 후련했지만, 나는 무서워서 숟가락은커녕 젓가락으로도 그 닭을 찔러보지 못했다. 그전에도 삼계탕이란 음식을 먹었던 기억이 없지만, 나는 오롯하게 누워 쌀을 품고 있는 닭을 해부할 엄두를 내본 적이 없다. 채식주의를 선언한 것도 아닌데, 계속되는 이런 나와 음식 간의 충돌은 결국 영양실조까지 불러왔다. 단백질 부족, 지방 부족, 칼슘 부족.
아마도 그때가 아니었을까 싶다. 엄마의 특단의 조치.
식사시간, TV에 몰입해 있으면, 아빠는 내 밥그릇을 항상 숨기셨다. 그것을 알아채는 시간은 TV에서 정신을 차릴 때이다. 그러다 보니 생기는 버릇은 아빠가 그릇을 못 숨기게 밥공기를 부여잡고 먹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난 정신을 차릴 때까지 숟가락으로 허공을 푸고 있게 된다. 그날도 밥상이 나왔고, TV에서 재미있는 것을 했던 것 같다. 밥과 국을 한참 먹다가, 국 맛이 처음 먹어본 맛임을 뒤늦게 깨달았다.
다시 시작
"엄마, 이거 뭐야?"
"된장국."
"응? 된장국?, 맛이 다른데..."
"아니야, 어여 TV 보면서 밥 먹어."
"어어"
밥 반공기도 잘 안 먹는 내게 어여 반공기를 먹이는 것이 엄마에게는 무척이나 중요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TV 보면서 밥 먹는 것도 괜찮다고 하시는 것 같았다. TV에서 재미있는 것도 끝나고, 식사도 끝나고 부엌에 가서 그 음식의 정체를 확인하려 했다. 된장국은 아닌데, 된장국 같다. 결국 그날 알 수 없다 보니 다음날 엄마에게 계속 물어보는 질문에 지쳐 답을 주셨다. 추어탕이란다. 지금 같은 시대였으면, 인터넷으로 찾아보면 되겠지만 그 당시는 그 상황이 안되다 보니, 된장국과 비슷하나 그냥 맛있는 또 다른 국 정 도로만 받아들였다. 한참이 지나서였을까, 엄마는 내가 집에 온 것을 인지 못 하신 듯했다. 추어탕의 재료를 미처 숨겨놓지 않으셨으니 말이다. 목이 말라 냉장고 쪽으로 가는데, 양재기가 들썩거린다.
호기심에 나도 모르게 덮여 있던 양재기를 열어봤다. 판도라의 상자다.
이상하게 생긴 물고기들이 몸부림을 치고 있다. 나는 뒤로 물러남과 동시에 소리를 지르고야 말았다. 엄마는 허겁지겁 뛰어오셨고, 이내 한숨을 쉬셨다. 그것을 왜 열어봤냐면서 말이다.
그날 추어탕은 상에 올라오지 않았다.
다음날 엄마는 저녁상에 추어탕을 올려주셨다. 된장국 같은 추어탕을 말이다. 추측컨데, 어제 그 이름 모를 물고기였을 것이다. 이 음식을 다시 먹이려면 협상과 타협, 안 되면 협박이 필요할 것이었기에 아마도 저녁시간 반찬으로 택하신 것 같다. 그 음식을 마주하고 먹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여졌다. 팔딱거리던 그 정체모를 물고기로 만들어진 음식일 텐데, 걔네들은 어디 가고 된장국처럼 변장하고 있는지 말이다.
한 숟가락도 안 먹자, 엄마는
"그래! 이게 추어탕이야, 어제 네가 본 것은 미꾸라지이고. 근데 말이야. 너도 이런 것을 먹어야 살 수 있어요... 엄마 도와주는 셈 치고 먹어보자. 어차피 너 벌써 먹어봤던 거니까 먹을 수 있어."
사실 엄마에게 시위를 하려고 안 먹는 것은 아니다. 나도 이런 내가 싫긴 하지만, 음식을 볼 때 '맛있겠다'라는 미각보다는 재료가 시각적으로 먼저 떠올라서 어떻게 제어가 안 되는 것뿐이다.
결국 엄마가 이기셨다. 나는 그날 이후 추어탕을 먹게 되었다. 과거 못 먹던 음식 중에 하나였던 임연수는 껍질을 벗겨 상에 올려주셨고, 다른 반찬들도 재료를 알 수 없게 만들어 먹이셨다. 나는 내 증상이 나아지는 것 같았다. 한강의 채식주의자 책을 접하기 전까지는...
책 속의 주인공은 나처럼 거부하고 있었고, 나 또한 나의 과거 일들이 다시 재생되는 기분이었다. 무서웠다. 육식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편식으로 인해 또다시 영양실조가 올까 봐.
결국 책을 읽자마자, 난 큰 줄거리만 기억한 채 모든 내용을 기억에서 지우려고 했다.
진안으로 여행을 갔을 때이다. 맛집을 찾아 여행해야겠지만, 검색 시간이 많지 않았기에 진안의 맛집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다가 용담댐 근처의 부뚜막이란 곳을 알게 되었다. 어제비라는 새로운 음식을 파는 곳이었다. 여럿 후기 속에서 맛을 가늠해본다. 쏘가리와 빠가사리가 주메뉴였다. 먹어봤던 음식일까? 기억나지 않는다. 음식 양이 많을 것도 같고, 먹어보지 않은 음식에 대해 안 먹을 확률이 높다는 것을 알고 있는 엄마는 그냥 추어탕을 시키자고 하셨다. 새로운 음식인 어제비가 먹어보고 싶었으나, 나도 나를 알기에 추어탕을 시켰다. 첫 숟가락을 먹자, 평소에 먹던 추어탕의 텁텁함이 없었다. 밥은 반 그릇도 못 먹었는데, 추어탕은 뚝배기의 바닥을 보이도록 먹는다. 그러다 정신이 들자 떠오르는 생각은, 이 추어탕은 미꾸라지인가? 아님 쏘가리나 빠가사리를 갈아 만든 것일까? 바쁜 직원에게 이런 한가한 질문은 할 수 없었다.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쏘가리나 빠가사리로 만든 추어탕이었다면 난 그들에게 감사하고 싶어 졌다. 동시에 엄마에게도 감사를 드렸다. 만약 미꾸라지가 아닌 새로운 생선으로 만든 추어탕이었다면 엄마의 추천으로 내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이 하나 더 늘어났으니 말이다. 채식주의를 선언하며 사는 것은 아니지만, 이만큼이라도 건강한 삶을 살 수 있게 된 것은 부모님 덕분이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