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 텀블링

by 꼬드kim

회사 체육대회 날은 꼭 날씨가 더 화창하다. 화창함을 느긋하게 즐길 수 있으면 좋으련만 운동하려고 나온 날이니 만큼 경기 참가는 필수다. 적당한 연차가 되었음에 고를 수 있는 권한(?)이 생겼던 것 같다. 남녀 혼합 릴레이를 골랐다. 무모할 수도 있으나 피구와 같은 운동보다는 짧은 시간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탓이리라. 대부분 그렇듯 그날도 선수들은 팀을 구성하는 사람들 중에서 뛰겠다는 사람을 남녀 비율만 맞추어 경기를 시작했다. 서로의 기록을 모르기도 하고 참가하는데 의의를 가지겠다는 마음에 '적당히 달려주리라'라고 나는 생각했던 것 같다. 경기는 시작되었고, 어느 순간 우리 팀이 아니 나의 팀이 지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조만간 바턴을 받아야 하는 내 입장에선 지더라도 내 탓이 아니기 때문에 부담은 아니었으나, 적당히 달리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것을 바꾸지 않고도 죄책감을 가지지 않을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자신이 없어졌다. 어느 순간 타인보다 잘 달려야 한다는 비교 우위의 마음이 내 마음속을 어지럽히는 듯했다. 출발선 뒤쪽으로 이동하여 바턴을 받을 준비를 하며 달리기 시작한다. 심장 박동수가 점점 올라가는 기분이다. 달리기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팀이라는 구성원 속에서의 나는 어느새 없어지고 최고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고, 어느덧 나는 지던 나의 팀의 순위를 바꿔놓으며 결승선을 끊었다. 한참 숨 고르기를 하고 있는데 한 직원이 와서 잘했다며 의외라고 칭찬인지 아닌지 모를 듯한 말을 건넨다.

"와! 잘 달리시네요. 보기엔 안 그래 보이는데"

"네?"

"굉장히 못 달리게 생기셨는데 역전해서 놀랐어요."

"네???"

'굉장히 못 달리게 생겼다'라는 뜻은 무엇을 뜻하는 걸까?’ 순간 오기가 생겼다.

"저 학교 때 반 대표 계주 선수였는데요?" 읔 나도 모르게 유치한 자기 자랑으로 받아치고야 말았다.

"그래요? 의외네요. 매일 엄청 느리게 걸어 다니시길래.... 하하하하!"

그 순간, '아 이 사람 나의 게으름을 봤었나' 하는 생각이 스쳐간다.

사실 내 걸음은 키에 비해 느리다. 누군가가 왜 이렇게 느리게 걷느냐고 뭐라 하면, '다리가 짧아서 그래'라고 말하곤 했다. 굳이 빨리 걸어야 하는 이유를 찾을 수 없어서, 혹은 딴생각하며 걷느라 그랬던 듯하다.


그래도 이 걸음에 조금 속도를 가지게 된 것 중학교 때 체육선생님 덕분(?)이다. 언제였을까, 세상 모든 일에 관심 없는 내게 체조를 권하셨다. 체조와 무용의 차이가 무엇인지 잘 모르던 내게 이런 제안이 구미가 당길리 만무했다. 선생님이 왜 내게 제안을 하셨는지 알 수 없어서 공부를 열심히 하는 타입도 아니면서 선생님의 제안을 공부 때문에 안 되겠다고 거절했다. 여러 번의 권유, 한번 도전을 해보고 적성에 안 맞으면 그만두게 해 주겠다는 설득에 결국 다음날 나는 연습실로 갔다. 몇 달 먼저 시작한 다른 친구들이 몸을 풀고 있었다. 그녀들의 쭉쭉 늘어나는 스트레칭 동작을 보니, 나의 몸은 더할 나위 없이 쪼그라드는 기분이었다. 키만 컸지, 몸 한번 제대로 스트레칭해본 적 없는 내게 스트레칭부터 고난의 순간이었다. 몸은 선생님의 구령에 휘영청 휘어졌으면 좋겠건만 그건 나만의 간절한 바램으로 끝났다. 다행히도 첫날은 선생님의 자상한 미소에 긴 시간이 끝났다. 아마도 그날 밤은 몸이 안 쓰던 근육의 통증으로 인해 잠을 잘 못 잤던 것 같다.

다음날 내 걸음은 더 느려져 있었다. 학교를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고민하는 애처럼 터벅터벅.

수업이 끝나고 연습실에 모였다. 먼저 도착한 멤버들은 자신들이 연습하던 스트레칭과 시선 처리 등으로 몸을 풀고 있었다. 끈기력이 부족한 나는 하루 만에 벌써 그만두고 싶어 졌다. 선생님이 들어오시고, 스트레칭과 필요한 동작들을 가르쳐 준다. 하루 만에 몸이 쭉쭉 늘어날 리 없는 나는 "다시!"가 내 이름인 줄 아는 날이 되었다.

"꼬드! 다시 가서 점핑하고 와!"

"꼬드! 다시!"

선생님의 스틱과 동작이 맞지 않으면 '다시'라는 단어는 계속 나왔고, 어느덧 나를 부르는 대명사가 '다시'인가? 가 싶었다. 그래도 ‘다시라고 부를 때가 나은 거구나’를 느끼는 건 그리 오랜 기간이 지나지 않아서였다. 다른 친구들과 달리 난 남아서 연습을 하지 않았다. 선생님이 "이상! 연습이 필요한 친구들은 남아서 연습 좀 하고 하교하도록!"이라는 말이 채 끝나지 않을 때쯤에 내 마음은 벌써 집에 거의 다 가있는 기분이었으니까... 실력이 빨리 늘지 않자, 대회에 나가야 하는 선생님의 마음은 조바심이 나셨던 것 같다. 180도로 벌어지는 일자 점핑이 나와야 하는데 점핑이라는 것에 몰입하다 보니 나는 120도 정도? 150도까지는 나왔으려나... 늘 엉거 주춤으로 착지.

결국 참지 못 한 선생님은 버럭 내 이름을 불렀다.

"꼬드 나와!"

가지고 계셨던 스틱으로 양다리 사이를 때리셨다.

타다닥.

아프다는 느낌보다는 맞았다는 충격으로 아찔했다. 지금은 체벌이라는 단어가 허용되지 않지만, 그 시절은 학교에서 종종 발생하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체기합을 제외하면 체벌을 받아 본 적 없고, 부모님께도 맞아본 적이 없는 나는 내가 여기 왜 있는 것인지를 잠시 잊어버렸다.

"꼬드 다시!"

다시 뛰어본들 150도 안 될 듯한 나의 점핑이 순간적으로 180도로 벌어질 리 만무한데 말이다. 준비를 위해 스타트라인에 섰는데 많은 스트레칭과 맞은 후유증 탓인지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다리는 덜덜 떨고 있다.

결국 150도 안 되는 점핑을 하고 착지.

"꼬드! 오늘 남아서 연습하고 집에 가."

난 기어들어가는 마지못한 소리로 대답을 했다.

의욕 없는 내게 선생님은 동작 하나하나를 그렇게 힘들게 가르치셨다. 추가 연습은 당연한 일이 되었고, 그러다 보니 집에 가면 밥 먹고 씻으면 잠 많은 내겐 간신히 숙제할 시간도 남아있지 않게 되었다. 시험 결과가 나왔다. 안 봐도 성적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거라 난 전혀 속상하지 않았다. 공부를 못 했으니 말이다. 선생님은 성적이 떨어진 학생은 4대를 맞아야 한다고 했다.

'응???' 나는 나의 성적표를 다시 봤다.

'아씨! 나또 스틱으로 맞는 날인 건가?'

그러나 선생님은 더 무시무시한 대걸레 자루를 뚝 뽑아왔다. 글만 보면 여지없이 힘센 남자 체육 선생님이다. 작은 체구의 한국 대표 체조선수셨던 선생님의 힘의 원천이 알고 싶었다.

"운동하는 건 자랑이 아냐!"

교탁 앞으로 나가자 선생님은 내게 이런 말씀을 하셨고, 4대를 때리셨다.

성적 떨어진 학생들을 모두 때리고 나니 대걸레 자루는 힘없이 부러져버렸다. 운동으로 다리는 후들후들한 상태였는데 결국 다리는 피멍이 들었다. 울고 또 울었던 것 같다. 내가 이 운동을 한다고 했던가...

그날은 연습하지 않았다. 마음도 엉망인 채로 친구와 하교를 하고 있는데 나를 불러 세웠다.

"꼬드!"

선생님을 바라보는 내 시선은 분명 곱지 않았으리라.

"꼬드 친구니?"

"네"

"오늘 꼬드가 맞았다. 집에 가서 얼음찜질 좀 해줘!"

'병 주고 약주고 인가'를 생각하면서 동시에 감동을 했다. '그래 나를 앞으로 끌고 가려고 무진장 노력하시는 선생님을 위해 다리가 좀 나으면 열심히(?)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그러나 운동과 공부를 병행한다는 것은 내게 무리였던 것 같다. 다음 시험 때에도 성적은 또 떨어졌다.

"꼬드 교무실로 내려와라."

'설마, 교무실에서 매를 맞는 건가?'

터벅터벅, 최대한 느리게 걸어가면서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생각해보면서 교무실로 내려갔다.

"여기 앉아."

'앉으라는 뜻은 체벌은 하지 않으시려나보다'라는 생각에 마음이 조금 안심이 되었다.

"도대체 성적이 자꾸 떨어지는 이유가 뭐니? 무슨 걱정이라도 있는 거야? 아님 집에 일이 있어?"

"..."

"얘기를 해야 선생님이 해결을 하지."

"저..."

"얘기해."

"아무래도 운동이랑 공부를 병행하는 것은 제게 무리인 것 같아요. 운동을 그만둘게요."

"후회 안 하겠어?"

"네."

"그래, 그럼 방학 지나고 보자."

그래라는 말이 그만둬도 된다는 뜻이라고 난 받아들이고, 조금은 죄책감이 들었지만 콧노래를 부르며 하교를 했다. 그렇게 해서 그 기간의 무용 대회에 나는 참가하지 않았고, 길 것 같았던 방학은 너무도 빨리 지나갔다.

"가을에 있는 체조 대회에 선수를 선발할 거야. 자 앞자리 빼고, 모두 책상에 엎드려."

'얼굴을 보면 소질이 있는 사람을 찾을 수 있으려나' 이런 궁금증도 잠시 내 책상 줄 순서가 되었다.

"꼬드김, 그 옆, 자 다음 줄!"

'응? 나 또?'

거절할 틈조차 주지 않으셨다.

모든 반에서 선발하신 것인지 연습에는 학생들로 북적였다. 그래도 몇 달한 효과인지, 많은 학생들이 있어서 그런지 내 이름은 많이 호명되지 않았다. 그래도 운동과 병행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더구나 아버지는 내가 운동을 한다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셨다. 부득이 학교 공부를 본의 아니게 더 열심히 주말에 몰아서 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번엔 체조대회라고 하셨는데, 여러 가지 새로운 동작들을 연습해야 했다. 앞돌기(텀블링), 옆돌기(텀블링) 등등. 빠르고, 군무같이 동작을 한 동작처럼 해야 하는... 느릿한 내 성격은 호흡 맞추기가 쉽지 않았다.


대회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어느 날, 예행연습을 위해 운동장으로 집합을 시켰다. 흙 운동장, 간혹 자갈이 발에 차이는 그곳. 그날따라 나는 엄마가 사주신 하얀 플라스틱의 예쁜 핀을 꼽고 있었다.

꽃 모양의 대형을 이루고 있는 그곳에서 나는 제일 마지막으로 구르기를 해야 하는 봉오리 역할이었다. 운동장과 단상의 차이는 꽤나 멀 것 같아서, 나는 구르는 척을 하면서 친구들의 구르기 마무리 자리로 살그머니 자리를 이동했다. 그 순간, 단상에서 운동장이 떠나갈 듯 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꼬드기임!!!!!!, 너 당장 단상으로 튀어왓."

'앗 보였나? 너무 꿈지럭 오리걸음으로 걸었던가?'를 고민하면서 단상으로 갔다.

"너, 봉우리 제일 안 쪽인데 안 구르고 뭐 하는 거야?"

"그게...."

"말 안 해?"

"허리가 아파서요."(응? 거짓말이 술술 나오네?}

"리허설이니까 가서 다시 똑바로 해."

"..."

"안 뛰어가?"

"네."

결국 나는 하얀 내 핀에 스크래치를 내면서 구르기를 했다. 마음에 스크래치는 덤이었다.


대회날이 왔다. 잠실 경기장에는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심장이 떨림으로 터질 것 같았다.

선생님은 우리를 불러 모아 말씀을 하셨다.

"너희들은 잘할 수 있어. 최선을 다해야 하고, 이 떨림을 극복해야 한다."

안경을 쓰지 않으면 시야 확보가 쉽지 않아서 긴장감은 배로 증가했다. 최우수상이 호명될 때까지 우리 학교는 호명되지 않았다. '그래, 우리는 장려상도 받지 못하는구나. 연습을 더 많이 할걸'하는 후회는 하지 않았다. 이미 결론이 났으니까. 그러나 짧은 순간이 지나가고 대상이 호명됐다. 익숙한 우리 학교 이름이다. 고생의 보람을 칭찬받은 것 같아 묘한 떨림과 기분이 좋아졌다. '이런 것을 느끼게 해 주려고 선생님이 그러신 거였구나'라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대상을 수상한 팀은 후년에도 대회에서 시범 경기를 보여줄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덕분에 고등학교 시험을 준비해야 하는 3학년에도 운동은 필수가 되어버렸다.

모두들 사춘기 시절이라도 접어들었는지, 같이 운동을 하던 친구들은 예고를 가고 싶다고 했고, 방향을 전환하는 친구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했던가. 나도 아버지께 예고를 가겠다고 했다.

아버지는 1등만이 살아남는 그곳에 나를 보낼 수가 없다고 하셨다. 아버지는 내 기질을 너무도 잘 알았던 것이다. 누구와 비교당하는 거 싫어하고, 이기기보다는 먼저 포기하고 마는 성격 그게 나라는 것을 말이다. 아버지 뜻을 충분히 거슬러서 운동으로 3년 가까이를 소비했기에 더 이상의 이탈은 아버지도 힘드실 것 같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아버지의 현명한 판단으로 난 너무 평범하지만 나다운 삶을 살고 있다.


나의 포기 잘하는 성격에 조금이나마 끈기를 갖게 해 준 선생님 그리고 보다 나답게 살 수 있게 해 준 방황할 때의 아버지 가르침은 지금도 내가 흔들릴 때면 가끔 되새겨 보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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