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아마도 나의 키가 그렇게 크지 않았나 보다. 앞에서부터 세 번째 자리에 앉았던 걸로 기억이 나니 말이다.
학교라는 사회생활에 관한 기억은 거의 4학년 때부터 시작된다. 소심하고 소극적인 아이 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적어도 수다스럽지는 않았던 것 같다.
어느 날
선생님은 “선생님 일을 도와줄 사람?”이라고 반 학생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던가? 그래서 선생님이 나와 내 짝꿍에게 도움을 요청했었나?
아님 짝꿍이 번쩍 손을 들었던가?
기억은 명확하지 않지만, 무슨 연유인지 나의 짝꿍과 내가 선생님의 일을 도와주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그냥 선생님의 소소한 일들.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들이 아니어서 엄마께도 말씀드리지 않았던 것 같다. 4학년이 뭐 대단한 도움을 줄 수 있는 나이도 아니고. 교실을 함께 마무리하고 나면 가끔씩 선생님과 간식도 먹고 달달한 차도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와 함께 질문도 하셨던 것 같다.
가족 그리고 함께 살던 고모 삼촌들을 제외하면 어른과의 대화는 처음이었을 듯. 어른과의 대화는 무엇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상대방과 대화를 주고받는다는 것이 재미있는 거구나’를 느끼기도 했던 것 같다.
그날도 따땃한 볕이 교실 창을 통하여 들어왔던 것 같다. 어디서 났는지 모르지만 선생님은 기타를 연주하면서 노래를 부르셨다.
당신에게서 꽃내음이 나네요.
잠자는 나를 깨우고 가네요.
싱그런 잎사귀 돋아난 가시처럼
어쩌면 당신은 장미를 닮았네요~~
조기교육의 강력함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세월이 흘렀음에도 이 노래가 기억나니 말이다.
선생님은 내가 이 노래를 따라 부르기를 원했었을까? 나는 이 노래의 의미를 정확히는 몰랐던 것 같고 그냥 앞 소절만 흥얼거리게 되었는데 그것은 의미를 알아서라기보다는 입에 맴맴 돌아서 그런 것 같으니 말이다.
하나 중요한 건, 의미를 알았건 알지 못했건 혼자 있어도 흥얼거림이 없던 내 삶에 풍류가 들어온 시점인 것은 확실하다. 집으로 들어가는 길, 기분이 좋을 땐 언제나 흥얼거리고 있으니 말이다. 노래를 부르는 게 좋다는 걸 모르는 내 인생이 조금 더 달달해지게 된 시작점에 선생님이 계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