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예언을 했을까? 올해는 역마살이 있는 사람이라도 여행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바쁘면 아무 생각도 안 날 법하건만 지칠 때면 ‘여행 가고 싶다!’는 혼잣말이 나도 모르게 툭 하고 나와 버린다.
‘거리두기’는 ‘집에 머무르기’의 유사어 같다.
혹은
‘그대로 멈추라고’와 동의어일런지도.
그러나 집에만 머무르기엔 좋은 날씨가 너무도 유혹적이다.
봄이었다. 꽃들이 활짝 피고 그 안에 무지개가 보였을 때 '그래, 올해는 가까운 곳이라도 자주 둘러보자!'라는 마음이 생겼다. 소소한 여행이라는 것, 그간 못 보던 것들을 돌아보게 되어 또 다른 즐거움을 선사할지도 모른다는 관점으로 나를 설득했던 것 같다.
봄에 피는 목련은 매혹적이다. 특히나 이렇게 봉우리로 있을 땐 고혹함마저 느껴진다.
장미 향기가 나서 나도 모르게 "장미다!"라고 말하는 순간 엄마가 "해당화야"라고 알려주신다. 해당화가 장미과라는 것을 인생 처음 알게 되는 쑥스러운 순간도 마주한다.
벼인가?
밀인가?
보리인가?
알 수 없다.
혼자 질문할수록 걸음이 늦어질 뿐이다. ㅎ
알록달록한 꽃들은 내게 화려함으로 자신의 패션을 자랑하는 듯하다.
호박일까? 작은 성장이 시작되는 봄이다.
운동으로 다니던 곳을 소소한 여행이라고 마음을 달리 먹으니 꽃에 앉아 있는 벌마저도 눈에 들어오는 신기한 시간이 내게 생겼다.
비슷하지만 다르게 생긴 식물들을 맞추기 위해 포털의 스마트 렌즈를 켜고 끙끙거린다. 아침 먹을 시간이 지나 배고파서 예민해져 오는 건 덤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뭐라도 챙겨 나와서 느긋하게 봄을 즐기는 건데 말이다.
올 한 해는 장마가 여름을 주름잡았다고 말해도 될 듯한데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물에 잠긴 한강을 보고 나는 생각했다.
'한강은 항구였던가?'
비오기와 그치기를 반복하니 백로도 볼 수 있게 되네.
여름에서 가을이 넘어가는 것을 식물들은 그라데이션으로 변화를 표현한다. 자연이 만들어내는 컬러의 조화는 늘 자연스럽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낀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고 있는지 장미가 기력을 다해 꽃 피우고 있는 듯하다.
새벽에도 늘 북적거리던 이곳은 그 시간을 조금 비켜서자 한적함을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나만의 공간 같아 나도 모르게 널찍이 앉아본다.
거리두기를 조금은 잘 지내보라는 선물인지 공원 안에 자그마한 식물원이 생겼다. 그간 마트에서, 식탁에서 봤던 과일들을 식물원에서 보니 또 다른 느낌이다.
지루한 시간일 줄 알았던 2020년이 두어 달도 채 남지 않았다.
자연이 자연스럽게 그라데이션으로 자신을 계절에 적응하듯, 내게도 천천히 지나가야 하는 이 시간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길 기다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