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치가 희끗하게 보일치라면 책상에 엎드려 졸고 있는 그의 머리카락을 뽑기 위해 반 친구들은 사투를 벌였다. 속아주는 것인지, 쏟아지는 잠에 속수무책으로 주무신 것인지 모르지만 새치 뽑기를 실패하면 우리는 모두 전속력으로 질주해야 했다.
반 아이들이 장난스러운 만큼 단체기합 종류는 자판기 메뉴처럼 다양하게 쏟아졌다.
어느 날 교탁이었던가 선생님 책상 위였던가, 두 곳 중에 한 곳에 종이 뭉치가 놓여져 있었다. 호기심 왕성한 아이들이 가만히 있을 리 만무하다. 드라마처럼 선생님이 자리를 비우자, 아이들은 판도라의 상자가 되어버릴 그 종이 묶음을 열었다. 6학년이면 성적에 대한 등수라는 게 없었을 텐데 선생님은 등수를 매겨놓은 종이 묶음을 올려놓으셨던 것이다. 남자아이 중 한 명이 반 아이들의 등수를 선생님 흉내를 내면서 호명했다.
그 종이 묶음은 하필 왜 그날 있었던 것인가.
오후 시간, 선생님은 반장 투표를 한단다.
출마 선언보다는 선생님의 지명으로 후보가 추천되었다.
민주주의란 단어를 모르던 시절이었을까?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있는 찰나, 등수를 호명했던 남자아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선생님, 꼬드는 정희보다 성적이 좋은데 왜 후보에 없어요?"
'꼬드?꼬드가 누구였더라? 아 나인데? 쟨 나의 성적을 어떻게 아는 거지?'라는 생각을 할 틈도 없이, 선생님은 바로 그 아이에게 질문했다.
"네가 어떻게 알아???"
답이 궁해졌다. 거짓말을 할 수 있는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기습 질문은 대답을 못하게 만들었다.
종이 뭉치가 제대로 놓여 있지 않았음을 선생님은 알아차렸다.
불같은 성격인 선생님이 내린 그날의 노여움은 어린 우리에겐 감당키 어려운 것이었다.
그날의 단체기합은 종합 선물 세트였다.
다양한 종류의 기합을 받다가 한 남자아이가 기절했다. 선생님은 그다지 당황하지 않은 채, 그 아이에게 응급처치를 했고, 여자아이들은 놀라 얼어붙었다. 그 상황이 무엇인지 모르는 남자아이들만 기절이 재미난 행동이라도 되는 듯 모여서 흉내를 내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 지난 후 선생님은 나가셨다. 사표를 내셨을까? 교감 선생님이 교실로 오셨다. 또 다른 단체 기합이 내려진다. 학교 보도블록을 열 바퀴 돌고, 반성문 작성하기다.
그 아이가 잘못을 했고, 그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간과를 했다.
그러나 그런 잘못과는 별개로 선생님은 공정하게 반장 후보를 선출하지 않았다.
'누구의 잘못이 더 큰 것일까'를 벌 받는 내내 궁금했다.
더불어 선생님에 대한 실망감으로 조심스럽게 열였던 신뢰가 바닥으로 떨어진 날이다.
'반장 후보 따위는 내게 중요하지 않은 일이었는데 말이다. 어른도 사람을 파악하는 건 꽤나 어려운 일인 거구나'를 깨닫기도 했던 것 같다.
결국 그날의 사건은 학교 열 바퀴와 반성문으로 끝난 것 같지만, 선생님에 대한 신뢰관계가 끝난 거였다.
그 이후로 그 어느 누구도 그의 새치를 뽑으러 책상으로 다가가지 않았으니 말이다.
졸업식날이다. 신뢰가 깨진 사이에 졸업장을 주고받는 것은 참으로 어색한 시간이었다.
"꼬드야."
그가 졸업장을 건네주면서 내 이름을 부른다. 내 눈은 아마 얼음보다 더 차가운 파란색이었으라. 그런 눈으로 선생님을 바라봤다.
"넌 커서 작가가 되거라."
크지도 않은 내 눈은 그의 표정에서 무언가를 해석하려는 듯이 커지고 있었다.
"?"
"글 잘 쓰니, 커서 작가가 되라고."
그 짧은 순간 그 기억이 떠올려졌다. 그날 숙제는 글짓기였다. 주제는 무궁화.
무궁화라는 주제로 대체 무엇을 쓸 수 있단 말인가. 우리나라 국화라는 것 말고는 아는 것이 없는데..
아파트 화단에 펴 있는 국화를 유심히 살펴보다가, 글짓기 숙제를 했다. 우리 집 베란다에서 키우는 마냥 나는 난생처음으로 거짓말을 술술 써 내려갔다.
선생님은 그런 나의 거짓말 글짓기를 혼내기는커녕 학교 수상작으로 뽑아주셨다. 잘했다는 칭찬이 없었기에, '나의 거짓말이 너무 그럴듯했나?' 하는 마음으로 그냥 넘겼을 뿐이고, 가끔 학교 대회에서 글짓기 상을 받을 때면 선생님의 칭찬이 없었기에 그날그날의 글짓기들은 그냥 그려려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일반적인 숙제였던 것이다.
글 잘 쓰니, 커서 작가가 되라는 덕담은 나를 적잖이 당황시켰다.
'이제 와서?, 이럴 거였으면 제대로 글 쓰는 법이라도 알려주시고, 칭찬도 미리미리 해주시지, 이제 와서?'
감동이라기보다는 마음속에서 원망의 눈물이 뚝 하고 떨어진다.
선생님께 난 그 날의 사과가 더 받고 싶었다. 이런 덕담보다는 말이다. 아니 설명이나 핑게 말이다. 내성적인 나보다는 활달한 정희가 후보가 되어야 하는 이유를 말이다.
어쩌면 이 덕담이 그 날의 사과였을지 모르겠지만.
작가는 아니더라도 이렇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끄적이게는 되었는데, 이제 와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남길 수 없게 무수한 시간이 흘러버렸다.
선생님, 덕분에 제 마음속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