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의 치토스

by 꼬드kim

구불거리는 곱슬머리를 길러 9대 1 정도로 가르마를 탄 선생님은 영어 교과서를 들고 앞문을 열었다. 오크통 같이 생겼던 선생님을 보자마자 우리 모두는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아야 했고, 수업이 시작되자마자 쏟아지는 졸음을 참아야 했다. 고저가 없는 발음, 곱슬거리는 머리, 통통하신 외모는, 영어라는 과목이 우리의 인생에 중요한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수업에 흥미를 일으키기에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창 밖을 내다보는 아이들, 따로 공부하는 아이들, 졸고 있는 아이들...

나 또한 '이럴 땐 성냥개비가 필요하겠어! 라며 무거운 눈꺼풀을 부릅떠 보려고 무진장 애를 쓰고 있었다.

그 순간 외침이 들렸다.

"치토~~~스!!!, 언젠간 먹고 말 거야!"

자던 아이들과 딴짓을 하던 아이들 모두 소리가 나는 교탁 쪽을 바라봤다.

외침이 끝난 선생님은 앙오(EN HAUT) 자세를 취하면서 한 바퀴를 뱅그르르 턴 포즈를 취했다.

여기저기서 깔깔깔 웃느라 수업은 엉망진창이 되었고, 덕분에 다시 상큼하게 수업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웃지 마라, 얘들아. 이래 봬도 내가 발레리노 출신이다."

"???"

"진짜래두, 나 발레리노 출신이야."

발레리나 정도의 단어만 알던 우리에겐 남자도 발레를 한다는 사실이 충격이었을 거고, 뚱뚱한 몸매까지는 아니더라도 적당히 통통한 몸매의 선생님이 발레복을 입고 발레를 한다는 것은 상상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 이후로도 선생님은 우리가 집중하지 못할 때면, 치토스를 외치면서 턴을 한 번씩 해주시면서 수업을 환기시켰다. 환기와 함께 나의 산만함도 가라앉았다.

"자 오늘은 49번이 책을 읽어볼까? 이 반 49번은 누구니? 49번??"

아무도 답이 없다.

'으악!'

나는 나도 모르게 스프링처럼 의자에서 일어났다.

"네가 49번이니? 거기서부터 읽어봐 봐."

"..."

"안 읽고 뭐해?"

'그동안 다른 사람들 앞에서 영어책을 읽어봤던가?'

기억나지 않고, 글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도 선생님은 내가 준비가 된다고 생각할 때까지 기다려주실 눈치였다. 하는 수 없이 나는 긴 숨을 한번 쉰 뒤, 책을 읽어가기 시작했다. 너무 긴장한 탓에 좋지도 않은 발음들은 안으로 숨어 들어가고 있었다. 그러기를 한참 지나자 선생님은

"아주 발음이 좋구나. 잘 읽었어. 자 그럼 우리 49번이 읽은 부분을 해석해 볼까?"

수업은 다시 진행되었고, 전속력으로 달렸던 나의 심박수는 수업이 끝날 때까지 잦아들지 않았다.

어느 날 담임 선생님의 심부름으로 교무실에 내려갔다. 치토스 선생님이 교무실로 들어오셔서 자신의 자리로 가기 위해 담임선생님 자리를 지날 무렵이었다.

"어, 영어 발음 좋은 학생이 와 있네. 안녕."

"아 안녕하세요."

"영어 공부 열심히 하고 있지?"

"아...음..... "

"발음이 좋은 것은 계속 연습하지 않으면 다시 굳어진다. 운동하지 않으면 몸이 굳어지는 이치와 같지. 알았지?"

" 아, 네."

연습하지 않는 나의 나태함을 들킨 기분이었다. 수업시간에 긴장하던 내게 단순히 칭찬해준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내가 잘못 생각한 것이었다. 그분은 진심을 다해 턴을 우리에게 보여줬듯이 내게 칭찬해주신 거였고, 내가 칭찬받은 만큼 성장하기를 바랬던 것 같다.

그날 이후 나의 나태함으로 나온 발음들을 내 귀가 들을 때면 반성과 함께 선생님이 생각난다. 세월이 지났고, 그만큼 나의 나태함은 더할 나위 없이 많이 쌓였다. 더불어 나 또한 알아들을 수 없는 발음들로 만들어진 단어들이 말로 나와지고 있다. 타인의 말을 잘 알아들으려면 내 발음이 더 정확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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