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그 치과 어디입니까?

by 꼬드kim

2월, 엄마의 치아 통증이 시작되었다. 병원에 들러 치료를 받고 약 복용 후 경과를 지켜보자는 소견을 들었다. 호전이 되는 것 같으나 통증은 남아 있었고 나의 디스크는 가출을 했다. 극심한 디스크 통증으로 입원을 한 나는 엄마의 치아 통증은 잠시 잊어버렸다. 엄마는 아픈 내게 말씀하시는 것이 부담스러우셨는지 언니에게 얘기를 했고, 언니는 언니가 다니고 있는 치과에 모시고 가서 진료를 받았다. 엄마의 치아 상태는 임플란트를 해야 한다고 했단다. ‘임플란트를 하려면 발치 및 뼈 이식 등이 필요해서 치과를 몇 번 방문해야 할 텐데… 서울에도 치과가 많은데 그 먼 곳까지 다니시는 건 아닌 것 같다. 엄마 선택에 맡겨보자.’고 언니는 내게 말했다. 나는 엄마와 치과를 동행할 수도 없고 추운 날씨도 계속되고 있기도 하고 있던 터라 언니 의견이 지금으로서는 최선인 것 같았다. 며칠 후 엄마는 다니시던 치과에서 치료를 받으시겠다고 말씀하셨다. 뼈이식이나 임플란트는 쉽지 않으니 치료도 잘하고 친절한 선생님에게 받는 것이 좋겠다면서 말이다.

발치가 잘 되자 통증이 줄어들어 모든 것이 잘 되려나 생각했는데 임플란트 조건은 예상외로 까다로웠다. 골다공증 약 복용으로 뼈이식이 안 될 수도 있다며 검사를 먼저 해보자고 하셨다. 다행히도 검사 결과가 뼈이식 가능하다고 해서 뼈이식을 하고 오신 날이었다. 얼굴은 심하게 부어있었으며 더 심하게 붇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입 주변을 테이핑 하고 손에는 죽이 담긴 쇼핑백을 들고 계셨다.

“이 죽은 뭐예요?”

“@&%#*£¥”

엄마의 외계어를 이해할 수 없어 그날 대화는 카톡으로 했는데 원장선생님이 챙겨주신 거였다. 바쁘시간이겠지만 감사의 톡을 남기니 ‘죽 잘 식혀서 드시게 하고 오늘 많이 부을 거니까 얼음찜질 잘해주어야 한다 ‘고 원장 선생님이 답장을 주셨다. 그날따라 더 추운 날씨였지만 선생님의 배려로 마음이 더 따뜻해졌다. 인플루언서도 아니지만 동네방네 선생님의 훈훈한 마음을 자랑하고 싶었다. 전소된 차에서 멀쩡하던 스탠리 텀블러의 건장함을 홍보하는 것처럼 말이다.

어느 날 잠시 나의 근황이 궁금하여 먼 곳에서 와 준 친구와 차 한잔을 하게 되었는데 임플란트 이야기가

나와서 나도 모르게 홍보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가격이 얼마?”

“***원이야.”

“비싸네.”

“좋은 거라서 그렇다고 했어.”

“우리 시부모님은 훨씬 저렴한 곳을 잘 찾으셨던데 견적 좀 받아보고 했으면 더 좋았을 것 같아.”

“아는 사이라고 늘 잘해주셨던 터라 지금 가격도 잘해주신 걸 꺼야. 난 그분을 믿어. “

”지인이 믿기 어려울 때도 있어. “

친구의 말이 모두 다 맞는 것도 틀린 것도 아니지만 뭔가 씁쓸하다. 그 찰나의 순간에 많은 생각이 오갔다. 그분은 기본적으로 선한 사람이며 나의 지금의 상태를 잘 알고 있기에 자신의 부모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나의 엄마 치료하고 지켜보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분의 치료를 선택한 엄마의 결정, 그리고 나의 동의에 대한 후회는 없다. 모든 치과가 과잉진료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공포 마케팅처럼 환자에게 해당 치료를 받지 않았을 때 돌아올 결과를 어마무시하게 얘기한다면 전문가가 아닌 우리로써는 간과할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멀더라도 믿을 수 있는 의사에게 치료를 맡기는 것이 더 현명한 걸 거라고 생각한다.


이 일을 계기로 널리 홍보하려는 마음도 조금은 접어졌다. 치과 선생님과 환자로써가 아닌 음악을 통해 선생님과 알고 지낸 시간들, 그로 인해 말하지 않아도 가족같이 챙겨주는 그 마음이 다른 환자들과의 형평성 문제로 보일까 조심스러워졌기 때문이다.


모든 일에 치밀하게 계산하고 살지 못해 이득이 적을 때도 있겠지만 이런 훈훈함으로 더한 행복이 올 수도 있다는 걸 새삼 깨달은 날들이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느림의 재발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