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3.27
개리 비숍의 또 다른 책.
책 중간중간 그가 기재해 둔 명언들이 그의 글들과 잘 어우러져 있다.
“내가 옳다고 느끼고 싶은 인간의 욕망보다 더 치명적인 것은 없다."
이런 ‘치명적인 것을 지닌 인간이 상황을 바꿀 수 없을 땐 어떻게하지?‘라는 너무도 우둔한 나의 혼잣말에그가 기재해 둔 빅터 프랭클의 “더 이상 상황을 바꿀 수 없을 때는 우리 자신을 바꾸는 수밖에 없다."이 답이 되지 않을런지.
사람들은 살아 있는 대화에 불과하다. 내면의 대화든, 입으로 뱉는 대화든 말이다. 대화가 몸을 입은 것이 곧 사람이다. 뼈에 가죽을 입혀놓은 게 떠드는데 별의별 말을 다 한다. 그리고 그 말의 한계가 곧 그 인생의 한계다.
간단히 말해서 당신은 당신이 하는 말이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당신이 하는 말의 본질'이 바로 당신이다. 당신에게 인생이 버겁다면 실제로 버거운 거다. 혼란이 생기는 이유는 '나는 눈에 보이는 그대로를 말할 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은 거꾸로다. 실제로는 당신은 자기 대화를 거쳐 인생 경험을 창조하고, 그런 다음 거기에 맞춰서 행동한다. 언제나 그랬다. 당신이 상대하고 있는 것은 결단코'있는 그대로'의 인생이 아니다. 당신이 상대하는 건 인생에 대한 당신의 '의견'이다. 사람에 따라 인생에 대한 경험이 그토록 다양한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이 내용을 읽으면서 잠시 숨 고르기를 했다. 그간 나 또한 얼마나 많은 말들로 한계 혹은 상황에 대해서 떠들어 왔는지. “상상력과 의지 사이에 무엇이 이겼을까?‘라는 나의 질문엔 에밀 쿠에의 “상상력과 의지력이 서로 충돌하고 적대적일 때 이기는 쪽은 늘 상상력이다. 예외는 없다.“라는 문장이 어울릴 것 같다. 나 역시 늘 내 상상력이 이겼던 것 같으니 말이다.
이제 당신이 그 깨끗한 스펀지로 태어났다고 생각해 보라. 당신은 이걸 흡수하고 저걸 내뱉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삶이 진행되는 동안 한 번도 눈치채지 못했지만 '물기'는 말라간다. 삶은 더 예측 가능해지고, 새롭고 흥미진진한 일들은 줄어든다. 그러다 어느 날 그 말랑한 스펀지는 딱딱해진다. 크고 작은 구멍들 속에 갇혀버린 많은 것들은 이제 아무리 쥐어짜도 밖으로 뱉어질 수 없다. 그것들은 얼룩이 되어 그 안에 영원히 갇힌다. 이게 바로 우리의 잠재의식이 작용하는 원리다. 처음에 잠재의식은 깨끗하다. 아무것도 묻어 있지 않고 아직 규정되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새 자리가 잡혔고 바꿀 수 없다. 중심부에는 아주 구체적인 목적이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다. 당신 눈에는 아직 안 보이겠지만. 우리는 오직 자기 관점으로 진실을 바라본다. 자, 그러면 작은 연습을 하나 해보자.
당신이 뜨거운 커피 한 잔을 들고 있다고 상상해 보라. 어디서 나타났는지 갑자기 누가 당신의 팔꿈치를 쳐서 뜨거운 커피가 사방으로 쏟아진다! 팔다리에도 커피가 튀고, 온 바닥에도 흩어진다. 뜨거운 커피가 닿은 곳은 심하게 쓰라리고, 바지를 다 버렸는데 당신은 20분 후에 취업 면접이 있다. 당장 웃을 갈아입어야 한다. 하지만 당장 옷을 갈아입을 수가 없다. 당신은 집에서 한참 떨어진 스타벅스에 있고, 면접장은 걸어서 15 분 거리다. 당신은 부딪힌 남자를 보면서 이렇게 말한다. "아, 진짜..•·•• 저기요!" 남자는 어깨를 한 번 으쓱하더니 뭐라 잘 들리지도 않는 소리로 사과의 말을 웅얼거리고는 잽싸게 사라진다.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이. 당신은 심장이 벌렁거린다. 머릿속은 온갖 생각으로 뒤죽박죽이 되고 분노로 온몸이 덜덜 떨린다. 그러다 가 좌절감이 밀려온다. 곧 마음이 가라앉으며 무력감이 들더니 이내 체념한다. 어떻게 잡은 면접 기회인데! 망했다. 당신은 스타벅스를 나와 집으로 간다.
자, 그러면 이제는 이 장면을 스타벅스 구석에서 지켜보고 있다고 상상해 보라. 사건 속에 참여하는 것 아니라 이번에는 관찰자가 되는 것이다. 당신은 차분하게 아침의 차 한 잔과 머핀을 즐기는 중이다. 그때 한 남자가 들어오는 게 곁눈으로 보인다.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 다소 초조해 보인다. 남자는 커피를 주문하고, 손을 뻗어 신용카드를 꺼내려다가 지갑을 떨어뜨린다. 당신은 차분하게 아침의 차 한 잔과 머핀을 즐기는 중이다. 그때 한 남자가 들어오는 게 곁눈으로 보인다. 젠장!" 남자는 날카롭게 말한다. 그는 계산을 하고 옆으로 물러나 픽업 카운터까지 몇 사람을 지나친다. "티미 님!" 직원이 외친다. "티미 아니고 토미예요.” 남자가 쏘아붙인다. 토미는 커피를 받아 들고 휙 돌아선다. 당연히 뒤에 서 있던 사람을 보지 못한다. 콩! 토미가 돌아서는 걸 예상하지 못한 어느 젊은이와 세게 부딪힌다. 토미의 커피가 사방으로 날아간다. "아, 진짜......저기요!" 도미가 소리를 지른다. "아, 진짜......저기요!" 도미가 소리를 지른다. 매장 안에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무슨 일인가 쳐다보는 통에 사방이 고요해진다. 당황한 것이 분명한 젊은이는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려고 소곤소곤 사과를 하고는 서둘러 물러난다.
컷!!!!
둘 중 어느 이야기가 진실 인가? 흠, 둘 다 진실이다. 첫 번째 시나리오에서는 상대와 부딪힌 게 당신의 직접적 경험이고, 당신은 그 때문에 취업 면접이라는 기회를 놓친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 시나리오에서 당신은 사건에 참여하는 게 아니라 관찰자의 입장으로, 양측 모두에게 제각각의 이유로 잘못이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당신이 첫 번째 시나리오만을 보거나 경험했다면 잘못은 순전히 상대에게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게 바로 진실의 까다로운 측면이다. 우리가 오직 자신의 관점에서만 진실을 바라본다는 사실 말이다. 이 연습을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생각해 보라. 진실이라고 의지해왔던 것은 사건이나 환경에 따른 개인적 경험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우리는 개인적인 경험을 마치 불변의 사실처럼 여기면서 그것을 바탕으로 인생을 만들어나간다. 당신만의 확고한 진실은 당신을 통해 연명한다. 진실을 영속시키는 것은 당신이다. 이제는 모두 당신 책임이다.
일단 한번 확고한 기정사실이 되고 나면 당신의 진실들은 더 깊이, 더 멀리 나아가서 삶을 송두리째 집어삼키기 시작한다. 마치 실존의 그림자처럼 저 먼 과거에서부터 시작해 당신의 미래까지 기어오른다. 당신은 그 진실에 발목이 잡혔다. 말 그대로 꼼짝없이 붙잡혔다.
과거가 얼룩진 사람은 많다. 파산했던 사람도 있고, 폭행이나 강도, 사기를 당한 사람도 있다. 남에게 휘둘려 고생한 사람, 원하지 않는 목적에 이용당한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런 일이 당신을 규정하지는 않는다. 지금을 결정한 것은 과거에 일어난 일이 아니라, 당신이 선택하고 고수한 진실들이다.
위의 글은 일상 속 삶에서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에 대해 아주 명확하게 적혀 있었다. 특히나 모든 상황을 객관적으로 판단하려고 노력하는 내게 있어서는 더 들어맞는 문장이라 난감한 느낌이 들면서도 내가 하고 있는 착각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됐다.
저자가 말한 내가 가지고 있는 스펀지는 많이 딱딱해져 있을 거다. 다시 말랑말랑 해지지야 않겠지만 조금은 유연함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우주는 당신 편이 아니다. 우주는 누구의 편도 아니고, 당신에게 악심을 갖고 있지도 않다. 어떤 일이 벌 어진다면 그것은 오직 당신이 거기에 계기를 주었기 때문이다. 그뿐이다.
당신 삶의 주인이 돼라. 남은 하루하루에 무엇까지 가능한지 깨닫는 데 필요한 일을 하라. 미래는 이미 도착했다. 그 미래를 위해 당신은 대체 무엇을 할 것인가?- 게리 비숍
"영혼은 자신의 '생각'이라는 색깔에 물든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그의 말처럼 나에게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은 내가 계기를 주었기 때문이다. 모든 계기가 선순환하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고는 있지만 그럴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고 월요일부터 각오를 해본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