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지찌개 얘기에 순두부찌개가 빠질 수 있나

<남편의 식탁 ep. 15>

by 강채리



비지찌개 얘기를 하려면 순두부찌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

내가 처음으로 식당에서 비지찌개를 사 먹던 날, 그 비지찌개에선 엄마의 순두부찌개 맛이 났다.


엄마의 순두부찌개는 어린 시절의 내가 반기던 메뉴 중 하나였다. 옅은 주황빛을 띤 국물에 김치와 돼지고기, 그리고 순두부가 들어있는데(여기까지의 설명만 들어도 이미 맛이 비지찌개와 흡사할 것을 예상할 수 있다) 몽글몽글한 두부들이 입 속으로 들어오면 잠시 내 입안을 보드랍게 감싸다 솜사탕처럼 스르륵 사라져 버린다. 뜨끈한 온기를 품은 두부를 후후 불어 입에 넣는 것이 즐거워 엄마의 순두부찌개를 좋아했다.


그러다 대학생이 되어 식당에서 처음으로 순두부찌개를 사 먹은 날 받은 충격을 잊지 못한다.


"뭐야? 순두부찌개가 맛이 왜 이래?"


둥둥 떠다니는 이 기름들은 뭐고, 왜 날계란이 퐁당 빠져있는 것인지??!!

그런데 다른 어느 곳에서 먹어봐도 순두부찌개는 그런 맛이었다.


그럼 우리 엄마가 만든 순두부찌개의 근본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했더니, 그건 바로 비지찌개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 근처의 한 식당에서 먹은 비지찌개에서 엄마의 순두부찌개를 만났다.

보드라운 순두부 대신 몇 곱절은 더 고소한 콩비지가 들어있을 뿐, 이건 분명 엄마의 순두부찌개와 같은 맛이었다.





돈을 주고 콩으로 만든 음식을 사 먹기 시작한 건 서른이 남어서부터다. 나는 콩밥을 주면 콩만 골라내고 먹었고(성인이 된 지금도 여전히 콩밥은 싫어한다) 콩을 달큼하게 졸여낸 콩자반은 제일 싫어하는 반찬이었다. 두부는 그래도 콩보단 나은 형편이었지만 굳이 찾아먹는 식재료는 아니었으며, 비지에겐 쉽게 나의 곁을 허락하고 싶지 않았다. 역시 입맛은 변한다고 하질 않던가? 서른이 넘어선 어느 날부터는 두부는 생으로 먹어도 데쳐 먹어도 구워 먹어도 끓여 먹어도 맛있고, 식당에서 비지찌개를 시켜 먹을 때 옆에서 누가 한 수저 떠먹는 게 아까울 지경이다.


파나마엔 인스턴트 두부밖에 팔지 않아 고소한 두부가 그리워진다. 얼마 전 집에서 손두부를 만들어볼까 하고 만드는 방법을 찾아봤는데, 콩을 최대한 곱게 갈아야 비지가 많이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두부를 만드는 과정에선 비지는 찌꺼기 취급을 당했다. 맛있는 위로를 건네는 위대한 찌꺼기다.






"중국 슈퍼 가면 콩 팔겠지? 비지찌개 먹고 싶다."


파나마에 사는 중국인들은 대체로 크고 작은 슈퍼들을 운영한다. 한 중국 슈퍼에서 비지찌개를 해 먹을 요령으로 콩을 유심히 살폈다. soybean이라고 쓰인 콩을 한 봉지 사와 남편은 콩국수도 만들고 비지찌개도 만들었다. 비지찌개와 곁들일 제육볶음까지 뚝딱뚝딱이었다.



엄마의 순두부찌개보다 훨씬 얼큰하고 고소한 맛이었다. 비지찌개 맛이 나던 엄마의 순두부찌개에 대해서 쓰고 있자니 엄마에게 왜 순두부찌개를 그렇게 끓였는지 묻고 싶어 진다. 시차 때문에 지금 엄마에게 전화를 걸 수는 없지만, 요리에 큰 재능이 없던 엄마의 대답은 예상이 된다.



엄마는 그냥.. 원래 그렇게 끓이는 건 줄 알고 그렇게 끓인 건데..
순두부찌개가 원래 그런 맛이 아니니??








남편의 레시피


불린 콩을 물을 약간 넣어 갈아 둔다.

김치와 돼지고기를 약간의 간장과 고춧가루를 넣고 볶는다

어느 정도 볶아지면 김치 국물을 잠길만큼 붓고 팔팔 끓인다

물이나 육수를 추가로 넣고 끓으면 비지를 넣고 또 팔팔 끓인다


추신: 김치 맛에 따라 찌개 간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간은 추가로 해야 할 수도 있다. 그리고 남편도 비지찌개를 처음 끓여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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