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장면집 둘째 딸

<남편의 식탁 ep. 14>

by 강채리




내가 태어나보니 우리 집은 중국집이었다.


나의 영아기 시절을 떠올리면 유난히 선명한 이미지 한 조각만이 떠오르는데,

그건 바로 식당 뒷마당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는 누군가의 등 뒤에 내가 업혀있는 것이다(아마도 엄마의 등이었겠지. 혹시 일하시는 아주머니한테 애까지 업으라고 한 거라면.. 우리 엄마 그렇게 안 봤는데 아주 고약한 업주다, 하고 생각하지만 백퍼 엄마였을 거 같다).

붉은 고무 대야에는 그릇과 비눗방울이 뒤범벅이었다.


나는 낯가림이 무척 심해서 조금 험상궂게 생긴 손님이 오면

그 손님이 밥을 다 먹고 갈 때까지 울었다고 하니, 가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둘째 딸이었겠다.




짜장면이 과연 누구에게 친숙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삿날엔 짜장면 졸업 날에도 짜장면,

'오늘 점심 뭐 먹지?'를 출근하자마자부터 고민했음에도 딱히 먹고 싶은 게 생각나지 않을 땐 무난하게 짜장면,

유행가에서 어머님이 싫다고 한 것도 짜장면,

해장할 때도 나는 얼큰한 짬뽕보다는 부드럽고 달콤한 짜장면 파다.


짜장면을 먹을 이유는 참 다양해서 짜장면을 자주 찾아대기도 한다.






나는 '아빠 같은 남자와 결혼할 거야'파는 아니었는데,

남편이 아빠만큼이나 짜장면을 맛있게 만들어 줄 때면 내가 '아빠 같은 남자와 결혼을 한 걸까?' 생각이 든다.


엄마를 과소평가하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엄마보다 아빠가 해주는 밥이 맛있는 건 부정할 수가 없다.


게다가 엄마에게 "맛있다"라는 표현을 할 수 없었던 이유는,

맛있다고 하면 엄마가 신이 나서 일주일 내내 그 음식만 해주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결국 환갑이 지나도록 가족들에게 요리실력을 인정받지 못했다.


그것은 곧 나의 미래가 될 것임에 의심의 여지가 없으므로 나는 요리를 전적으로 남편에게 맡기기로 했다.

이미 그렇게 하고 있지만, 앞으로도 그렇게 하겠다는 뜻이다.

물론 남편의 의사는 고려하지 않은 다소 민주적이지 못한 결정이긴 하다만.







"짜장면? 춘장만 있으면 금방 만들지."


짜장면과 함께 먹을 탕수육까지 뚝딱 만들어내는 남편을 보며 생각한다.


15년쯤 지나 내가 쉰이 넘어갈 즈음이면,

곧 고등학생이 될 아들 녀석이 일요일엔 내가 요리사라며 주방에서 라면을 끓인다고 설치는 대신

아빠에게 배운 방식대로 직접 춘장을 볶고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엄마는 짜장면이 싫다는 말 같은 건 하지 않을 거다.

탕수육은 이제 그만두고 깐풍기를 만들어보면 어떻겠냐고, 발전의 길로 아들을 인도해주어야지.









남편의 레시피


돼지고기와 감자를 먼저 볶다가 양배추, 양파, 호박을 넣어 볶는다.

춘장을 넣어 볶아 주다가 간장과 설탕으로 간을 한다(이 상태로 먹으면 간짜장이 된다)

물을 자박하게 넣어 팔팔 끓으면 전분물을 넣어 걸쭉하게 만든다

면을 삶아 짜장 소스를 얹고 그 위에 완두콩이든 오이든 그마저도 없으면 파라도 썰어 올려야 비주얼이 완성된다. 삶은 달걀은 클래식하고 계란 프라이는 트렌디하니 취향껏 올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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