찜닭을 통한 취향 발견

<남편의 식탁 ep. 13>

by 강채리


15년도 더 지난 2000년대 초반엔 '홍초 불닭'이란 게 유행했었다.


이름 그대로 매운 불닭이 유행했던 것인데,

나는 불맛이 나면서도 달짝지근한 매운맛이 조화롭게 어울리는 불닭을 사이드 메뉴인 누룽지와 먹는 걸 좋아했다.


매운맛에 혀가 조금씩 후끈거릴 때, 소맥을 곁들이면 더할 나위 없었다.


그리고 그 무렵 우리 동네엔 찜닭 집도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다.


닭 요리 중엔 '홍초 불닭'이 최고라는 나의 취향은 '봉추 찜닭'을 만나며 와르르 무너졌다.


간장 닭이 이렇게나 잘 어울릴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완벽한 '단짠'의 콤비네이션에 심지어 끝맛은 매콤하기까지 해....


게다가 이렇게 넙적하게 생긴 당면은 지금껏 내가 먹어온 당면과는 비교도 안되게 쫀득거렸다.



누군가는 찜닭을 사 먹고는 '어? 이거 우리 엄마가 자주 해주던 건데??!'라고 할지도 모르겠다만 엄마의 요리 솜씨가 그저 그랬던 우리 집에선 벌어지지 않은 일이다.


나는 찜닭을 처음 맛 본 그날부터 반해버렸다.

어찌나 찜닭이 맛있던지 매일매일 그것만 먹고 싶어 친구와 식사 약속이 잡히면 늘 찜닭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


찜닭이 왜이렇게 맛있나..하고 생각해보니, 나는 간장 불고기를 좋아했고 가장 좋아하는 반찬은 계란 장조림이었다.


분석은 끝났다.

나는 달달한 간장 양념을 열렬히 사랑하는 부류였다.





몇 년이 지나자 홍초불닭은 사라져 갔다.

어떤 특정 메뉴가 인기를 끌면 우후죽순으로 가게들이 생겼다가 조금 지나면 싹 다 없어지는 일이 반복적으로 일어났다.

오뎅바가 그랬고, 저렴한 육회 집도 그랬다.


나는 찜닭집들도 인기가 사그라들어 없어지진 않을까..

내 취업 걱정 다음으로 그것이 걱정이었지만 다행히 찜닭집은 여전히 동네에서 살아남았다.






내가 직장생활을 한창 할 즈음엔, 인터넷에 '백종원 레시피'많이 돌았다.


뭐야, 정말 이것들만 있으면 찜닭을 만들 수 있다고?

레시피가 너무 간단해서 얼마쯤 배신감까지 느꼈다.


집 앞 슈퍼에서 할인하는 닭을 4천 원 주고 한 마리 사 왔다.

레시피대로 양념을 만들어 찜닭을 만들어봤다.


찜닭의 때깔은 판매하는 것만큼 검은색이 아니었지만, 맛은 파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나는 그 후로, 찜닭을 아주 가끔 집에서 만들어 먹었다.


미역국과 찜닭.

서른 살을 통과하던 시기 어디쯤에서 비로소 나는 두 가지 음식을 직접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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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장 양념 먹고 싶다.." 라며 나의 니즈를 정확히 전달하는 날, 냉동실에 얼어있는 닭이 있다면 남편은 찜닭을 만들어준다.


배 찢어지게 먹어도 양념은 남기 마련이다.


남편은 찜닭 양념을 버리지 않고, 다음 날 아침 그 양념에 밥을 볶는다.


이런 사람이라면 어쩐지 평생 밥상머리 앞에서 다툴 일은 없을 것만 같다.






남편의 레시피


닭을 우유에 30분 동안 담가 비린내를 제거한 후, 삶는다

당면은 뜨거운 물에 미리 불려 놓는다

닭 삶은 물은 버리고 새 물을 받는다

맛술을 조금 넣는다

감자나 고구마를 넣는다

물이 끓으면 간장, 설탕, 물엿, 마늘, 고춧가루로 양념을 한다(보통은 고춧가루를 넣지 않지만 우리집은 넣는다)

당근, 파, 양파를 넣는다

불려둔 당면을 넣어 익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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