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나마에서 연남동으로
도연에게,
편지를 시작하자마자부터 하고 싶은 말은, 난 절대 집순이가 아니야. 나는 하루에 한 번은 외출을 해야 하는 사람이거든. 그곳이 마트가 되었건 공원이 되었건 카페가 되었건 간에 말이야. 그런 내가 집에서 운동하기를 좋아하는 두 가지 이유가 있어. 첫 번째로는 효율성을 생각해서야. 집에서 하면 그냥 잠옷 입고 운동해도 되는데, 나가서 해야 한다면 옷도 좀 갖춰 입어야 하고 그렇잖아. 요가학원 다니려면 좀 그럴싸한 요가복도 사야 할 거 같고 말이야. 근데 너도 알다시피 나는 장비병이 전혀 없잖아. 그래서 요가를 다닌답시고 요가복을 여러 벌 사야 하고 그런 상황이 싫거든. 게다가 그런 곳에 가서 어디에 자리를 잡아야 하나 쭈삣거리는 것도 싫고 이용 수칙을 자연스럽게 익힐 때까지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하나 힐끔힐끔 눈치껏 행동해야 하는 것도 싫어. 아니 왜 남의 눈치를 봐? 왜 쭈삣거려? 그냥 빈 곳 아무 데나 자리 잡으면 되지!라고 생각하지? 넌 비형이기 때문이야. 난 에이형이거든. 어쨌든 적어도 나에겐 집에서 운동을 하는 게 시간적인 측면에서나 비용적인 측면에서나 심지어 정신적인 측면에서까지 여러모로 경제적이고 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단 한 번도 바뀐 적이 없어.
두 번째 이유는 나는 여러 사람이 한 곳에서 샤워를 하는 게 싫어. 그런 면에서 대중목욕탕은 나에겐 끔찍한 곳이기도 해. 모르는 사람 앞에서 발가벗고 있는 게 창피하기도 하지만, 내가 모르는 사람의 알몸을 보는 것도 곤욕스러워. 근데 이게 내가 보고 싶지 않다고 해서 안 볼 수 있는 게 아닌 거야. 처음 보는 알몸들이 자꾸만 눈에 걸리적거리더라고! 그래서 안 가다 보니까 어쩌다 그런 환경에 노출되면 막 눈 둘 곳을 찾느라 안절부절못한다니까.
아니, 그런데 운동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내가 파나마에 와서 놀란 게 있어. 우리 집 바로 앞에 근사한 공원이 있거든. 피크닉에 적합한 공원은 아니고(애초에 파나마의 날씨가 고온다습해서 피크닉에 적합하지가 않기도 하지) 사람들이 운동하러 많이 오는 공원이야. 남편의 설명에 따르면 원래는 개인이 소유하던 골프장이었는데 국가에서 그걸 공원으로 바꾼 거라고 하더라고. 그래서인지 걷는 코스에 오르막이 적절히 섞여있어서 운동하기에 더없이 훌륭해.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불던 어느 저녁에 그 공원으로 남편이랑 산책을 나갔는데 운동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놀랐잖아! 게다가 대부분 달리는 사람들이었어. 나는 달리는 사람에게 얼마쯤 경외심이 있거든. 다들 호흡의 달인인가? 숨찬 걸 어떻게 조절하며 뛰는 건지 매번 신기하더라고. 나도 달리기를 좋아해서 매일 조금이라도 달리지 않으면 막 몸이 찌뿌둥한 사람이고 싶단 생각을 자주해. 공원에 나갔더니 글쎄, 탄탄한 근육들이 있어야 할 제자리에 적당히 달라붙어가지고 엉덩이는 또 얼마나 크고 바짝 올라 붙어서 탐스러운지.. 가슴? 말할 것도 없지. 풍만한 가슴에 어울리는 야시시한 브라탑들을(정말 어떤 브라탑은 안 입은 거나 다름없는 디자인이었어) 입은 그런 여자들이 머리를 바짝 하나로 올려 묶고 달리는데... 나는 그냥 산책이고 뭐고 잘 보이는 벤치에 앉아서 달리는 사람들 구경이나 하고 싶더라니까. 쌍둥이 유모차를 밀면서 뛰던 여자는 진짜 미드에 나올 것 같은 모습인 거야. 마치 직업은 승소율이 높은 변호사일 거 같은. 또 어떤 남자는 한 손에 개목줄을 잡고 엄청 큰 개와 함께 달려. 와.. 나 뿅 갔잖아. 이 사람들 진짜 졸라 섹시해!! 심지어 다른 곳에 눈길 돌리지 않고 앞만 보며 달리는 그 개마저도 섹시한 거야! 근데 있지, 섹시함의 정점을 찍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 줄 알아? 그렇게 땀을 흘릴 것을 대비해서 좋은 향을 뿌린 사람이야. 땀으로 티셔츠가 흠뻑 젖은 사람이 내 옆을 스쳐가면서 나에게 보낸 공기가 기분 좋은 향기를 은근하게 품고 있을 때! 나는 고개를 돌려 방금 지나간 사람의 얼굴을 다시 한 번 보고 싶어져. 공원에 한 번 나가면 내 시선이 닿는 모든 것들이 엄청난 자극이 되어 나에게 돌아와. '나도 내일 또 나와야지!!'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그러고서 다음날 또 공원에 나간 적은 단 한 번도 없네.... 내 끈기는 영 나에게 졸라 섹시한 사람이 될 기회를 허락해주지 않네.
코로나 때문에 집에서 갇혀 지낸 지 벌써 50일 가까이 되어가. 남편한테 통행금지가 해제되면 어디부터 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몰에 가고 싶대. 우리의 주요 외출 지는 에어컨 빵빵하고 유모차 끌기 편안한 몰이었거든. 나는 가장 먼저 그 공원에 가고 싶어. 이른 아침 시호를 유모차에 태워 공원을 한 바퀴 돌고 돌아오는 건강한 아침 의식을 만들어보는 게 올해의 목표라고 해두지(사실 목표까진 아니고 그냥 계획? 정도였는데 쓰다 보니 목표가 되어버렸..).
그나저나 폴킴은 1년 내내 앨범 작업을 해? 왜 나는 네가 항상 폴킴 앨범 작업을 하고 있는 거 같지? 이건 그냥 우리끼리 하는 얘긴데, 사실 난 폴킴 노래 안 좋아해(어쩌라고).
그럼 오늘도 삼계죽같은 하루가 되길 바라!
p.s. 시간날 때 답장 좀.
파나마에서 채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