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김치

-파나마에서 연남동으로

by 강채리

도연에게.



뭐????!!! 파리넬리에서 그런 장면이 나온다고?? 형이 대신 임신시켜주는..? 야한 영화였다고? 방구석 1열에선 그런 장면은 나오지 않던데.. 내 생각보다 훨씬 더 훌륭한 영화였구나... 근데 사정을 하지 않으면 오르가슴도 느끼지 못하는 건가?? 그렇다면 그건 너무 가혹한데. 오르가슴은 느끼되 사정만 안 되는 거겠지..?

나는 오페라를 한 번도 본 적은 없는데, 뮤지컬은 꽤 좋아해. 비싸서 자주 보지는 못 하지만. 아! 근데 너 오페라와 뮤지컬의 차이를 알아? 그것들의 차이에 대해서 방구석 1열에서 설명을 해줬어. 아주 명료하더라고. 오페라는 노래를 공연하기 위해 스토리를 입힌 것이고 뮤지컬은 스토리를 공연하는데 노래를 첨가한 거래. 그래서 오페라'가수'라고 하고 뮤지컬'배우'라고 한다고 하더라!! 나는 나의 교양 수준은 미처 따라가지 못할지라도 클래식 공연 보는 걸 좋아해. 시드니에 갔을 땐 오페라 하우스에서 시드니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공연을 봤는데 2부부터는 사정없이 상모를 돌려가며 졸았어.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선 모차르트의 고향답게 8월에 클래식 페스티벌이 열려. 주변 유럽 국가 사람들이 페스티벌 기간 내내 클래식을 다양하게 즐기러 여행을 오는데, 특히 가족 단위로 와서 드레스나 턱시도를 차려입고 공연을 보러 가는 모습이 무척 근사해서 인상 깊었어. 잘츠부르크에서도 오케스트라 공연을 봤는데 그땐 다행히 졸지 않기에 성공했어! 오페라도 언젠가 꼭 보고 싶다. 아! 발레 공연도 재밌으면서 사정없이 잠이 쏟아진다는데.. 어떨지 무척 궁금하다.


그나저나 오늘은 난생처음 파김치를 담갔어. 겉절이나 일반 김치보다 레시피가 간단하던데 맛이 괜찮다면 종종 담가 먹어야겠어. 이틀쯤 지나 파김치에 맛이 들면 수육을 삶아서 파김치로 돌돌 말아먹고, 짜파게티를 세 개 끓여서(둘이서 두 개는 무조건 부족하니까) 면발보다 길쭉한 파김치를 얹어 호로록 같이 먹을 생각이야. 파김치를 담그다 생각해봤는데 왜 우리는 무척 피곤하고 지친 상태를 일컬어 파김치가 됐다고 표현하는 건지 궁금하지 않아??? 그래서 내가 검색을 해봤어. 파는 빳빳하게 서있는 게 특징인데 김치로 담가놓으면 양념이 젖어 들어 축 처지잖아. 그래서 그런 거라네??!

내일모레는 시누이의 생일이야. 파나마에 있는 유일한 가족이지. 그녀가 내 생일에 직접 케이크를 만들어줬거든. 나는 케이크를 만들어낼 재주는 없으니 연습했던 소갈비찜을 만들어 파김치와 함께 선물로 전달하려고 해. 파나마는 상업시설이 모두 닫혀있는 상태라, 나는 그녀에게 '남이 만든 밥'을 선물하기로 했달까. 그래서 내일은 갈비찜을 연습할 거야. 연습용과 선물용으로 갈비를 나누어 넉넉하게 사 왔거든. 아, 근데 혹시 연습용이 맛있게 잘 되면 그냥 그걸 갖다 주려고(ㅋㅋㅋㅋㅋㅋ). 실전에서 같은 맛을 안 날 수도 있으니. 만약 갈비찜이 성공적으로 된다면 이제 또 새로 연습할 메뉴를 하나 정해봐야겠다. 내년쯤 코로나가 사라지고 네가 파나마로 여행을 올 수 있게 된다면... 기대해봐 나의 메뉴들을! 그동안 갈고닦아 볼게. 다음 편지에선 갈비찜과 파김치의 성공 여부를 전할게!


p.s. 시간 날 때 답장 좀.

파나마에서 채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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