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기억 추억

연남동에서 파나마로

by 도연

채리에게


답장이 좀 늦었지? 주말 연휴 동안 밀린 음주생활을 좀 했더니 술병이 나서 정신을 못 차렸다네. 나이 생각을 해야 하는데 말이지, 한번 손에 술잔을 드는 순간 죽도록 마시는 이 버릇 좀 고쳐야겠어.라고 다짐만 10년째야. 아마 난 안 되겠지... 시누이의 생일파티는 잘했어? 너의 소갈비찜 연습용 비주얼은 인스타그램으로 확인을 했어. 네가 소갈비찜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게 경이로울 지경이야. 나는 음식 하는 걸 꽤 좋아하는데도 소갈비찜이나 김치 같은 하이레벨은 도전 자체를 안 하거든. 양파, 배 같은 걸 갈아야 하고 고기의 핏물을 빼야 하는 등 너무 오래 걸려... 나는 성격이 급해서 바로 조리할 수 있는 음식을 선호하는 편이야. 금방 끓여내는 찌개류나 볶음류 같은 것들 말야. 중남미를 여행하게 되면, 한식이 그리울 때쯤 파나마로 도착하면 정말 좋겠다. 그럼 네가 만든 김치볶음밥에, 파김치와 갈비찜을 먹으며 한국을 그리워할 테지. 파나마를 가장 마지막 도시로 정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어제가 채리의 결혼 1주년이었더라. 사진첩을 문득 보다가, 네가 파나마로 가기 전에 다니엘 오빠와 함께 호피 폴라 앞에서 식사를 했던 사진을 보았어. 꽤 오래된 것 같았는데 1년밖에 안 지났더라고. 이렇게 시간이란 사람의 추억과 기억으로 조작되니, 너에겐 결혼과 출산 그리고 파나마로의 이주까지 모두 일 년 새에 벌어진 일이라는 게 신기할 따름이야. 나는 참 별 일 없이 보냈는데... 싶다가 '그동안 나에겐 무슨 일이 있었나' 생각해봤거든. 호피 폴라를 폐업했고, 이사를 했고, 부지런히 돈을 벌고, 소설을 시작하고 끝을 보고, 꼭지를 떠나보내고, 연애까지 시작했으니 정말 나에게도 많은 일들이 있었더라고. 어쩌면 잊지 못할 2019년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벌써 연말 느낌 무엇?) 우린 앞으로 또 얼마나 많은 시간과 세월을 보내며, 얼마나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며 특별한 일과 나쁜 일들을 보내게 될지. 문득 궁금해지는 밤이다.


그 시간들이 무엇이 되었든 모든 게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이라 믿고 싶고.

앞으로 다가올 시간들은 지워야 하는 기억들이 아니었으면 싶고.

다 좋은 추억으로 남아주길 바라고 말이야.



주말을 정신없이 보내고, 드디어 책상에 앉아서 노트북을 펼쳤더니 평온해져 온다. 너무 집에만 있었더니 외출을 하거나 사람들을 만나면 불안하고 초조해. 빨리 집에 가서 글이나 쓰고 싶고, 혼자 누워서 영화나 보고 싶고, 아직도 무기력증을 극복 못한 것인지도 모르겠어. 오늘 밤부터,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작품들을 정주행 해보려고 해, 바쁜 일들이 없으니 밤마다 영화 하나씩 보는 게 요즘 루틴이거든. 네가 이 영화 꽤 좋아한다고 블로그에 썼던 기억이 나는데, 다 보고 재미있으면 감상평을 남겨보도록 할게 :)


파나마는 지금 아침일 테니, 오늘도 남이 해준 밥을 먹고 기운찬 하루를 보내기를!




ps. 안 바쁠 때 답장 좀

연남동에서 도연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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