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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채리 May 13. 2020

5월은 가정의 달

-파나마에서 연남동으로

도연에게.


  와... 정말 너의 답장을 기다리다 목이 빠지는 줄 알았다. 목이 빠진다고 쓰고 보니까 말이야, 무언갈 이렇게 학수고대하고 나면 진짜로 목이 조금은 빠졌으면 좋겠다... 나는 목이 짧거든. 뭐 그게 콤플렉스까지는 아닌데 마음에 안 드는 구석이긴 해. 승모근에 보톡스를 맞으면 승모근 근육이 없어져서 목이 좀 길어 보인다고 해서 그걸 맞아볼까 고민한 적도 있어. 결론은 내 승모근은 그렇게 크지 않아 드라마틱한 효과를 볼 수 없을 것 같다는 이유로 맞지 않았지만. 요새는 오빠와 홈트를 열심히 하고 있는 와중이기 때문에 혹시 목을 늘리는 운동은 없는지 유튜브에 좀 찾아봐야겠어. 운동이 뭐든 해결해준다고 믿는 운동 만능주의자가 될 테야!(ㅋㅋㅋㅋㅋ)


그나저나 요리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원래 그렇게 뚝딱뚝딱 해먹는 걸 좋아하나 보지?? 내 남편도 요리를 즐기고 잘하는데 손이 많이 가는 건 안 좋아하더라? 그래서 내가 연습하는 메뉴들은 대체로 손이 많이 가는 것, 즉 남편이 안 해주는 음식들이야. 시누이의 생일 선물용 갈비찜은 고기가 야들야들하게 잘 삶아져서(전날 저녁부터 삶았거든) 시누이 가족이 아주 맛있게 먹었대. 시누이가 꽤 감동받은 눈치더라고! 근데 내가 요새 주방에서 시간을 제법 보내면서 따로 음악을 챙겨들을 시간이 없으니 주방일을 하면서 음악을 들었거든? 그랬더니 글쎄, 주방에서의 노동이 꽤 즐거운 시간이 되더라? 그래서 말인데, 갈비찜 연습이 끝났으니 난 이제 새로 도전할 메뉴를 정했어. 그건 바로! 새우장 그리고 깍두기야. 빠바밤- 언젠가 나의 새우장을 먹을 날을 기대해봐! 파나마가 여행의 마지막 여정을 보내는 곳으로는 아주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해. 한식이 그리울 즈음, 누군가와의 대화나 수다가 그리울 즈음, 정처 없는 마음을 이제 그만 한 곳에 내려두고 싶어질 즈음. 그즈음에 파나마에서 나와 함께 지내자!


   5월이 얼마나 바쁜 달이었는지...  처음으로 어버이날도 양쪽으로 다 챙겨야 했고 게다가 시누이의 생일도 어버이날이고! 그래서 5월 8일을 위해 5월 4일쯤부터 무척 바빴어. 사실 결혼 전엔 어버이날에 우리 언니는 부모님의 용돈을 두둑이 챙겨드리는 걸 담당했었고 나는 '소정'의 용돈과 카네이션을 담당했었는데(그래도 가족 식사 비용은 반띵을 했다구우) 올해는 카네이션 대신 뭔가 더 실질적으로 남는 걸(?) 해드리고 싶어서 한우와 간장게장을 보냈어. 홍삼이나 영양제 같은 건 이제 너무 식상하더라고. 우리 친정집엔 엄마 아빠 말고도 언니 부부와 조카들도 둘이나 살고 있잖아. 가족들 다 같이 맛있게 나누어 먹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다행히 고기도 간장게장도 맛이 좋은 거 같더라고. 후기를 열심히 뒤져가며 주문한 건데 특히, 간장게장은 언니가 동네 다른 아줌마들한테도 알려준다고 구매처를 묻더라. 혹시 너도 간장게장 주문할 일 있으면 말해. 내가 알려줄게! 아주 알이 꽉 차고 실하더라. 

과테말라 시댁에는 꽃바구니를 보냈어. 과테말라에 사는 친구한테 혹시 과테에도 꽃배달 서비스가 있는지 물었더니 글쎄 한국인이 하는 꽃집이 있다는 거야. 그래서 그 친구가 나 대신 결제를 해주고 꽃바구니를 주문해서 5월 8일 아침에 딱! 배달이 갔지. 어머님은 최근에 이사를 하셔서 이사한 집을 아는 사람이 없는데 누가 벨을 눌러서 의아하셨대. 인터폰으로 배달원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세뇨라 Lee가 보냈어요." (세뇨라는 스페인어로 미세스라는 뜻)라고 해서 나는 세뇨라 Lee를 모른다고 답하셨대. 그랬더니 배달원이 "여기 카드도 있는데 한국말로 적혀있어서 난 모르겠다."라고 해서 문을 열어줬대. 아무래도 잘못 배달 온 것 같다고 생각하시면서 꽃바구니를 받아 들었는데 그 카드에 내 이름이 쓰여있어서 너무 기쁘셨다는 거야. 너무너무 행복해하시면서 여기저기 자랑을 하시고 시누이한테 전화를 거셔서는 내가 쓴 카드 내용까지 읽어주시면서 "채리가 글을 쓰는 애라 그런지 어쩜 이렇게 말도 이쁘게 하니~"라고 하셨다는데... 너도 알다시피 나는 오글거리는 말은 잘 못하는 터라 사실 그거 네이버에서 '어버이날 카드 문구' 검색해서 골라 적은 거거든... 직접 전화도 오셨는데 목소리가 3옥타브까지 올라가셨더라고. 요새 코로나 때문에 집에서 혼자 계시니 웃을 일이 없으셨는데 오늘 너무 행복해서 많이 웃으셨다고 하시더라. 서로 다른 나라에 살다 보니 아마 카네이션 선물 같은 건 기대하지 않으셔서 더 마음이 좋으셨던 모양이야. 

꽃배달이 잘 도착한 걸 확인하고서 그때부터는 또 주방에서 갈비찜을 준비했지. 시누이의 생일 저녁상을 내가 선물하기로 했으니 말이야. 몇 시간 동안 주방에서 씨름을 해서 만든 갈비찜과 미역국을 배달해주고 와서는 녹초가 되었는데 시호의 이유식을 만들기 위해 다시 주방으로 들어가야 했어. 와.. 너무 힘들어 죽겠는데 어쩌겠니?  그래도 또 새끼 밥은 만들어놔야 하니 말이야. 그렇게 하얗게 불태운 5월 8일이 지나고 나니 결혼기념일이더라고?! 역시 5월은 가정의 달이 분명해.... 나는 무슨 날만 되면 가족사진이 그렇게 찍고 싶더라?! 우리 가족이 가족사진이 없었던 게(첫 가족사진을 내가 30대가 되어서야 찍었어) 늘 불만이었거든. 그래서 난 어떤 기념할 만한 날엔 가족사진을 찍기로 전부터 마음을 먹었어. 그리고 매년 결혼기념일에 가족사진을 남기는 건 꽤 괜찮은 의식인 것 같기도 하고 말이야. 가족사진의 드레스코드는 '간절기 옷'이었어. 파나마에선 절대 입을 일이 없는 드레스코드인데 트렌치코트가 너무 입고 싶어서 그렇게 정해버렸지. 마침 물려받은 시호 옷에도 니트가 한 벌 있길래. 거실에 에어컨을 두 대나 켜 두고 찍었는데 너무 더워서 찍자마자 벗어던져 버렸다. 어쨌든 그렇게 결혼기념일까지 잘 보냈어. 

아내로서 딸로서 며느리로서 올케로서 엄마로서의 5월은 무척 신경 쓸 것들이 많은 달이란 걸 깨달았어. 나의 5월에 대해(아직 5월이 18일이나 남았지만) 더 주저리주저리 미주알고주알 종알종알 쓰고 싶었는데 간략하게 추린 게 이 정도 ^^^^ 아참! 그리고 아직 하나가 더 남았어. 5월엔 시조카 생일도 있단다!!! 아직 외숙모로서의 5월이 남았어. 장난감이라도 사줘야 하는데 상업시설이 다 문을 닫아서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을 해봐야겠어.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를 정주행 한다고? 그의 영화를 아주 많이 본 건 아닌데, 네다섯 편 정도 본 것 같아. 나는 그중에서 특히 '바닷마을 다이어리'와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라는 영화를 좋아해. 너의 감상평이 궁금해진다. 아.. 나도 오랜만에 담백하면서도 포근한 일본 영화 한 편으로 나른해지고 싶다. 매일 밤 감상한 한 편의 영화들 중 추천해줄 만한 영화가 있다면 알려줘! 나도 잠이 안 오는 어느 사치스러운 밤에 혼자 노트북을 켜고 영화를 보며 충전을 해보겠어. 나는 최근에 본 영화 중에 '작은 아씨들'이 너무 재밌었는데 내 친구 분홍이는 졸라 재미없었다고(뭐 그녀와 나는 취향이 너무, 하나도, 전혀, 안 맞아서 놀랍지도 않지만).. 안 봤다면 너에게도 이 영화를 추천하고 싶어.


다가올 너의 내일도 지워야 하는 기억이 아닌 좋은 추억이 될만한 하루가 되길 바라며 이만 줄일게!




p.s. 시간 날 때 답장 좀.

파나마에서 채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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